역대 미국 국무부 장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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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콜린 루터 파월 (Colin Luther Powell) |
출생 | 1937년 4월 5일, 미국 뉴욕주 뉴욕 |
국적 | 미국 |
정당 | 공화당 |
종교 | 개신교(성공회) |
경력 | 국가 안보 고문 (1987~1989) 합동참모의장 (1989~1993) 국무장관 (2001~2005) |
1 소개
콜린 파렐과는 다르다!
2 생애
1937년 미국 뉴욕 주 맨해튼의 할렘에서 태어났다. 자메이카에서 이민 온 아버지 루서 시오필리어스 파월(Luther Theophilus Powell)와 어머니 모드 애리얼 매코이(Maud Arial McKoy)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성을 보면 알겠지만 스코틀랜드 혈통도 흐른다.
뉴욕시립대에서 지질학을 공부하였으며 미 육군 ROTC 과정에 입교, 보병소위로 임관하여 현역 소집[2],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였다. 중령 때 주한미군으로 동두천시 인근에서 대대장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1980년대 중반에는 주독미군에서 제5군단장(중장)으로근무하였으며 1987년에 로널드 레이건에 의해 국가안보보좌관에 올랐다. 1989년엔 대장으로 진급했고 1차보직으로 육군전력사령관으로 지냈다. 흑인으로서 포스타가 된 것은 분명 범상치 않은 일이라 흑인 최초의 대장이라 알려지기도 했지만, 이전에 흑인으로서 포스타를 단 이들이 없지는 않았다.
최초의 미국 흑인 장성인 육군준장 벤저민 데이비스 장군(Benjamin O. Davis, Sr., 1877-1970). 참고로 데이비스 집안은 군인 집안으로 벤저민의 아들인 벤저민 데이비스 주니어(Benjamin O. Davis, Jr., 1912-2002)도 육군 항공대에 들어가 공군 창설시 전군, 중장까지 진급했고 이후 명예 공군대장이 되었다.
공군대장 대니얼 제임스(Daniel James, Jr.,1920-1978) 장군이 최초의 미군의 흑인 대장(1975년 진급)이다. 6.25 전쟁 때 F-51 조종사로 참전했다고. 베트남 전쟁에도 참전했으며 NORAD 사령관을 지내기도 했지만, 비교적 젊은 나이인 58세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아들인 대니얼 제임스 3세 장군은 주방위군 공군 중장을 지냈다.
3 합동참모의장 시절
파월은 1989년에 미국 흑인 최초로 합동참모의장에 보임됐다. 더욱이 흑인 최초의 합참의장이라는 점에다 육사 위주에 가끔 해군사관학교[3] 출신이 섞인 사관학교 출신 위주의 합참의장 인사를 뚫은 최초의 ROTC 출신 합참의장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았다. 무엇보다 이 보직은 대장으로 진급한지 얼마 안되어 합참의장이 된 것으로,[4] 한국군에서도 미군에서도 합참의장이나 육군참모총장 보직은 대장으로서의 2, 3차 보직임을 감안하면 이 또한 위업이라 할 수 있다.[5] 재임기간에 파나마 전쟁[6]과 걸프 전쟁을 지휘했으며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의 신임이 대단했다.
엄밀히는 합참의장이 대장 1차 보직이 아니었다. 1980년대 초에 국방장관 자문관으로 근무하며 그레나다 침공과 리비아 공습에 전술적 제안을 했고 독일에 주둔하는 육군 제5군단에서 근무하다가 1987년부터 89년까지 중장계급으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국가안보자문관으로 근무했다. 1989년 4월에 대장으로 진급하면서 육군전력사령관에 올랐고 같은 해 10월에 합참의장이 되었다. 육군전력사령관 보직이 6개월에 불과해 1차 보직으로 합참의장을 받은 것처럼 잘못 알려진 것. 물론 합참의장이 거의 통합전투사령관이나 참모총장 정도의 요직을 거친 사람들이 주로 맡는 보직임을 감안하면 꼴랑 6개월만에 합참의장으로 영전한 것도 보기드문 일임엔 틀림없다.
걸프전 당시에 다국적군 사령관은 중부사령관인 육군대장 노먼 슈워츠코프 장군이었다. 합참의장을 최선임 군인이 맡는 것과 대한민국 국군과 달리 당시 미국은 1956년도 임관자인 슈워츠코프 장군이 1958년 임관자인 파월의 지휘를 받았다.[7]
걸프 전쟁 후에 뉴욕에서 퍼레이드를 하던 파월 장군.
걸프전쟁의 승리 이후 약 8개월 후인 1991년 11월 한국을 방문한 모습. 오른쪽은 대한민국 국군 합참의장이던 대한민국 육군대장 정호근 장군[8]이다.
인기가 대단해 미국 여론과 공화당에서는 그를 원수로 진급시키려고 했다. 만약에 성사됐으면 오마 브래들리 장군에 이어 11번째 원수로 진급했을 텐데, 빌 클린턴 정권인수위에서는 이를 거부했다.
4 그 후의 생활
1993년 8월에 퇴역했다. 전쟁 영웅으로 1996년엔 공화당에서 빌 클린턴을 견제할 대항마로 떠오르기도 했으나 밥 돌이 나갔고 졌다.
그 후 21세기 들어서 조지 워커 부시의 행정부에서 흑인 최초의 국무장관을 맡았으나 이라크 전쟁 등에서 딕 체니나 도널드 럼즈펠드 등과 의견 차이를 보였다. 파월이 상대적으로 온건했던 탓이다.[9] 조지 부시 2기 행정부에서 사임하였다. 그의 뒤를 이어 국무장관을 지낸 이는 콘돌리자 라이스로 미국 흑인 여성 최초로 국무장관이 되었다. 이러한 국무장관들로 인해 부시정권은 최초 흑인 남녀 국무장관이 임명되고 있었던 최초 정권으로 기록되나 인권정책에서는 워낙 엉망인 부시 정권이 워낙 크고 아름다운 삽질을 해놨던지라 그는 공화당 지지자임에도 2008년 대선에서 버락 후세인 오바마를 지지했다.
그 외에도 파월은 딕 체니를 매우 경계하고 싫어했다. 사실상 명예직에 가까운 부통령이 실세로 군림하며 모든 상위 각료들에게 간섭해댔으니 싫어할 수 밖에. 부시 정부 측근이었던 사람치고 체니 부통령을 좋아했던 사람은 사실 몇 없다.
5 명언
- Get mad, then get over it.
- 미친듯이 화내라, 그리고 넘겨 버려라. [11]
- Never let your ego get so close to your position that when your position goes, your ego goes with it.
- 당신의 지위에 당신의 자아가 휘둘리지 않도록 하라.
- Giving back involves a certain amount of giving up.
- 보복은 어느 만큼의 포기를 포함하고 있다.
- Command is lonely.
- 지휘란 외로운 것이다.
- I have seen what war can do.
- 전쟁이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 보아 왔지.
- Pottery Barn Rule. Once you break it, you are going to own it.
- The commander in the field is always right and the rear echelon is wrong, unless proved otherwise.
- 현실은 그 반대라고 증명되지 않는 이상, 현장의 지휘관이 항상 옳고 후방(의 상급 지휘관)은 그르다.
5.1 파월 독트린
군사력을 동원해야 하느냐의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파월이 제시한 8대 기준. 다만 파월 장군의 독창적인 생각은 아니고, 레이건 행정부의 국방장관이었던 캐스퍼 와인버거가 제시한 '와인버거 독트린'(이건 6개 내용으로 구성되었다)을 바탕으로 보완, 발전시킨 내용이다.
- 핵심적 국익이 위협받고 있는가?(Is a vital national security interest threatened?)
- 비군사적 조치들은 충분히 시도된 후인가?(Have all other non-violent policy means been fully exhausted?)
- (군사력을 통해) 달성하려는 목표는 구체화되어 있는가? (Do we have a clear attainable objective?)
- (군사력 사용에 따른) 결과는 확실히 고려된 상태인가?(Have the consequences of our action been fully considered?
- (군사력 동원에 따르는) 비용과 위험은 정확히 분석되었는가? (Have the risks and costs been fully and frankly analyzed?)
- 군사적 개입의 무분별한 연장을 막기 위한 출구 대안이 세워져 있는가?(Is there a plausible exit strategy to avoid endless entanglement?)
-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는가?(Is the action supported by the American people?)
- 광범위한 국제적 지지를 받고 있는가?(Do we have genuine broad international support?)
위의 내용들을 기준으로 맞춰봐도 걸프전(1991년)은 왜 성공했고, 반대로 이라크전(2003년)은 왜 실패했는지를 확연히 알 수 있을 것이다.
6 가족 관계
- 루터 테오필러스 파월 (父)
- 마우드 아리얼 맥코이 파월 (母)
- 알마 존슨 파월 (부인)
- ↑ 사진은 국무장관에서 사임한 후 얼마 뒤인 2005년 3월의 사진이다.
- ↑ 이름에만 예비역이 들어가는 한국의 ROTC와 달리, 미군 ROTC는 전군 장교들이 원칙적으로 졸업, 임관, 전역을 동시에 하는 진짜 예비역 장교 과정이다. 전역하지 않고 바로 현역으로 소집되어 복무하는 것도 소수가 선발된 인원만이 한다. 베트남 전쟁 시기엔 장교 공급이 모자라 거의 100% 현역 소집되었다.
- ↑ 공군사관학교는 짧은 공군 역사 탓에, 2014년까지도 합참의장을 배출하지 못 했다. 그간의 공군 출신 합참의장들은 육사 졸업하고 공군으로 옮긴 인물들이다.
- ↑ 육군 전력사령관으로 근무한지 1년도 채 안되어서 최고 보직인 합참의장으로 진출.
- ↑ 2014년 3월 현재 합참의장인 마틴 뎀프시 장군은 육군대장 진급을 앞두고 통합군 중부사령관 대행을 했던 것까지 포함하면 교육사령관-참모총장에 이어 대장 계급 4번째 보직을 지내는 것이다.
- ↑ 마누엘 노리에가를 쫓아낸 사건이다. 이 일로 파나마군은 해체되었고 공공부대만을 운용한다.
- ↑ 두 사람은 실제로 손발이 잘 맞았으며, 걸프 전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냈다. 하지만 순수한 군인의 길을 고집했던 슈워츠코프 장군은 이후 파월의 정치 행보를 못마땅하게 여겨, '파월은 정치군인이 되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 ↑ 정 장군은 1년 전 개정된 국군조직법 개정으로 육-해-공 3군의 야전부대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총괄적으로 행사하게 된 최초의 합참의장이었다.
- ↑ 전쟁을 몸소 체험했던 인물이기에 전쟁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파월 외에도 2차대전 후 미국의 역대 국무장관 중에는 고위 장성 출신이 더러 있었다. 유럽 재건구상인 '마셜 플랜'으로 유명한 조지 C. 마셜 장군은 2차대전 당시 미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한 원수였고, 레이건 행정부의 첫 국무장관인 알렉산더 헤이그 장군도 나토 사령관을 역임했던 육군대장 출신이다.
- ↑ 사전도 안 찾아보고 오역하지 말자.
- ↑ 리더에 대한 조언이라는 점과 get over 의 뉘앙스를 감안하면 뒤끝부리지 말라는 의미에 가깝다고 봐야 할 것이다.
- ↑ 미국의 생활용품 체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처음에는 도자기 체인점에서 출발하였고 디스플레이 된 상품을 파손한 경우 손님이 이를 사가야 한다는 법칙을 만들어냈다.
- ↑ 이 말은 그가 조지 부시 대통령과 독대한 자리에서 이라크 전쟁에 대해 평가한 말이다. 그는 후세인을 죽이는 것은 쉽지만 그 이후의 이라크의 정세에 대해서는 미국이 철저히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부딪힐 것을 염려했고 그것은 이후 사실이 되었다.
- ↑ 아버지의 뒤를 이어 육군 장교로 임관했으나, 독일에서 근무중 교통사고를 당해 중상을 입어 조기전역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