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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 시절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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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경기 당시 투구 모습. 위 사진의 투구폼과 확연한 차이가 난다.???: 나는 잘못이 없는듯 시포요...
이름 | 전병두(全炳斗 / Byeong-Doo Jun) |
생년월일 | 1984년 10월 14일 |
출신지 | 부산광역시 |
출신학교 | 중앙초-부산중-부산고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좌투좌타 |
프로입단 | 2003년 2차 1라운드 지명 (전체 8순위, 두산) |
소속팀 | 두산 베어스(2003~2005) KIA 타이거즈(2005~2008) SK 와이번스(2008~2016) |
등장곡 | AC/DC - Hells Bells[1] 이한철 - 슈퍼스타[2] |
목차
1 소개
전병두는 인성이 최고였다. 자기 관리를 비롯해 존경받을 만한 선수다.
해당 기사서 전병두의 재활을 도왔던 이 원장이 말한 전병두에 대한 생각
RE28ECT
SK 와이번스 팬들의 가장 아픈 손가락
前 두산 베어스, KIA 타이거즈, SK 와이번스 소속의 좌완투수. 등번호는 28번.
2000년대 김성근 투수혹사의 대표적 희생양[3][4]으로 SK 와이번스에서는 마크 프라이어 같은 존재이다.[5]
SK 와이번스 팬들이 가장 기다렸던 투수지만, 2016년 10월 8일에 은퇴 경기를 치르게 되어 SK 팬들의 영원한 아픈 손가락 으로서 기억에 남을 선수.
2 두산 베어스 시절
두산 베어스 시절.
부산고등학교 출신으로 2003년 두산 베어스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 좌완 강속구 투수로 기대를 받았다. 당시 입단 동기중 노경은과 나주환이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나주환과 전병두 둘 다 입단은 두산에서 했는데 SK의 주력 선수가 된다. 프로 입단 2년차인 2004년에 이미 35경기에 나와 81과 2/3이닝을 던졌고, 59사사구, 50삼진을 기록했는데 혹사 비긴즈 당시에는 컨트롤이 잡히지 않은 좌완 강속구 투수 유망주에 불과했지만, 팬들의 기대가 큰 선수 중 하나였다. 1차 지명 출신 입단 동기도 기대가 컸다
3 KIA 타이거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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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시절.
2005년 7월 10일에 KIA 타이거즈의 다니엘 리오스와 2:1 트레이드[6] 김정수 이후 좌완 강속구 투수가 없다시피 하던 KIA에 힘을 실어주게 된다. 당시 KIA는 유남호 감독 치하로 창단 첫 꼴등을 찍는 시즌이라 리빌딩이 필요했고, 두산에서는 포스트 시즌용 1선발이 필요했기에 트레이드가 이루어진 것.
노리타들의 주장과는 달리, 전병두는 두산-KIA 시절에 폐급 투수는 아니었다. 2차 1순위로 지명되어 입단 당시부터 흔치 않은 좌완 파이어볼러로 큰 기대를 받았고, 폐급 투수면 아무리 유망주라도 1선발이랑 바꾸는 게 가능하지도 않다. 제 아무리 리오스가 2005년에 KIA에서 부진했던 데다가 태업 의혹까지 받았다고 해도 리오스는 해 온 게 있었고, 전병두는 탑급 유망주였으니 트레이드가 가능했다. 실제로도 트레이드 후 2005년 49경기 57이닝을 던지면서 3.00의 평균 자책점을 찍었다. 이때 활약과 놀라운 구위를 바탕으로 2006년 WBC 대표팀에 뽑히며 병역특례를 받았고,[7] 당시 대표팀 투수코치였던 선동열이 훈련 당시 전병두의 불펜 투구를 보고 극찬할 정도였다.[8] 2006년 시즌에서 KIA에선 4~5선발로 기용하여 좌완선발로 키우려했다. 후반기 부상으로 101⅓이닝을 던지면서 탈삼진을 94개나 기록했다. 잘 던지는 날에는 영점이 잡히면서 언터처블의 모습을 보였지만, 2006 시즌 후반 팔꿈치 부위의 작은 부상으로 구위와 제구가 떨어지며 부진했고, 시즌 종료때 평균자책점은 4.35를 기록했다.
4 SK 와이번스 시절
4.1 2008 시즌
결국 2008년 5월 4일 김연훈과 함께 세트로 SK 와이번스 소속의 채종범, 이성우, 김형철과 2:3 맞트레이드를 통해 SK로 이적했다.[9]
KIA에선 김상훈의 부상으로 차일목이 주전이 되자 백업포수를 해결하고 조범현 감독의 SK시절 눈여겨본 채종범을 06년 이후 확연히 폼이 떨어져버린 이종범과, 시즌 초 조범현에게 찍혀서 방출된 조경환의 자리를 보강한다는 목적. 조범현 감독의 주도로 이뤄진 트레이드 이후 08시즌에서 07년도 좌완 2차 전체 1번으로 뽑아 데뷔한 양현종이 영점을 못잡고, 2차 2라 신인 팔아먹고 내야수가 없다고 데려온 유격수 용병 윌슨 발데스가 삽질을 하자 조범현을 욕하는 기아팬들의 원성이 극에 달했다.
여담으로 2008년 트레이드되고 단 3일만에 선발로 등판했는데, 이날 LG전 성적은 5이닝 1피안타 7사사구 4삼진 무실점을 기록했지만 SK 타선은 9안타 7볼넷을 뽑아내며 전병두에 힘을 실어주며 이적 후 첫 승을 안겨준다. 이 때 경기전에 포수 박경완은 전병두에게 "형만 믿고 싸인내는 대로 마음대로 던져, 형이 다 받아줄게"라고 말했다고 한다.
4.2 2009 시즌
커리어하이 시즌
하지만 역대급 혹사를 기록한 시즌
2009년 시즌에 드디어 기량이 만개한다. 잡히지 않을 것 같았던 영점이 잡히기 시작했던 것. 영점이 잡힌 과정이 특이한데, 김성근 감독은 제구를 잡으려고 시도했던 다른 감독들과 달리 팔 각도를 올리게 하였다. 참 신기하게도 이건 제구력을 잡는 교정법이 아니라, 제구를 포기하고 속구를 던지는 방식이었는데 영점이 잡혔다.
결국, 김성근 감독의 교정법대로 제구를 포기하고 걍 쎄게 던졌더니 타자들이 못치더라 이 얘기(…). 원래는 팔의 각도 때문에 김성근 감독도 꽤나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하는데 투구폼을 잘못 건드렸다간 제구도 구속도 둘다 잃어버릴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병두를 불러 일대일 면담을 하면서 전병두에게 어떻게 던질래?라고 물어보기까지 했단다…. 그리고 전병두의 답은 TV에 구대성 선수의 투구 폼을 띄워놓고 이렇게 던질래요라고 했다고 한다.[10]
시즌 초에는 선발로 출장해 5월 23일 두산전에서 9타자 연속 삼진[11]이란 무시무시한 포스를 뿜어댔고, 6월 중순부터는 채병용의 부상과 이승호의 과부하, 부상에서 회복이 덜 된 윤길현 등으로 맛이 가버린 SK의 벌떼 불펜으로 보직 변경, 원 포인트 릴리프부터 최대 4이닝 짜리 롱 릴리프까지 소화하는 등 전천후 핵심 계투으로 맹활약, 또한 2009시즌 좌완 투수들 중 슬라이더가 가장 좋다는 소문을 듣고 봉중근이 전병두에게 그립을 배워가기도 했다.
2009년 페넌트레이스 성적은 8승 4패 8세이브 1홀드, 50사사구/136삼진, 평균자책점 3.12로 팀내 다승 공동 4위, 세이브 2위이며, 시즌 초 선발투수로 출장을 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일단 133⅓이닝으로많이도 던졌다 역시 킬성근 규정이닝을 채워 리그 평균자책점 2위와 탈삼진 5위를 차지했다. 시즌 종료 뒤 연봉점수 계산으로 투수왕국 SK에서 팀내 투수 중 1위였다. 흠좀무.
포스트시즌에도 활약할 것이란 팬들의 예상을 깨고 부상 때문에 포스트시즌 엔트리에서 제외되었고, 팀은 두산 베어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 2연패 뒤 3연승을 거두며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지만, KIA 타이거즈를 상대로 7차전까지 까는 명승부 끝에 3승 4패로 패하여 준우승에 그쳤다.
4.3 2010 시즌
많은 야구팬들과 언론들은 2009 시즌의 역대급 혹사로 인해 부진하거나 2010년에는 보지 못할수도 있다고 예상하였으나 2010년 역시 건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전매특허인 이닝당 탈삼진 평균개수도 여전했다.
복귀 후 그는 군 문제가 해결된 좌완 강속구 투수라는 점에서 미래가 밝다고 볼 수 있어 향후 김광현, 고효준과 함께 선발진에서 한 축을 담당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하지만 2010년 SK는 김성근 감독도 말했지만 기본적으로 안심하고 맡길 수 있고 고정적으로 선발로 뛰어줄수 있는 선발 투수가 김광현과 카도쿠라 켄의 원투펀치 뿐이라[12] 나머지 로테이션은 그때그때 구멍을 메우는 식의 야구를 했었다. 그 중심에 고효준과 전병두가 제 역할을 해줬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문제는 벌떼야구와는 조금 다르게 여러 명으로 선발(즉 초반 이닝) 및 중간 이닝을 메우고 중계로 바톤터치(필승조로 불리는 정우람, 이승호로 연결) 방식이다 보니, 성적'만' 봤을 땐 크게 잘한 것처럼 보이진 않고 전병두가 출장한 경기도 27경기뿐이었지만 그래도 67⅔이닝을 소화하며 팀을 위해 자신의 역할은 충분히 해주었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 4경기 모두 등판하여 4⅓이닝 2피안타 1볼넷 7탈삼진 1실점 1자책점 평균자책점 2.08, 2승 1홀드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 무패로 우승하였다.
대만과의 한국 대만 클럽 챔피언쉽에서 글로버의 뒤를 이어 등판. 5⅔이닝 무피안타라는 굉장한 호투를 펼치고 내려왔으나, 9회말에 송은범이 끝내기 안타를 허용하며 아쉽게 됐다.
4.4 2011~2014 시즌
2011년에는 자주 경기에 등판하여 51경기에 92⅓이닝[13] 87탈삼진을 기록하며 좋은 활약을 했지만, 11월 17일에 왼 어깨 회전근 재건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재기 가능성은 정말 낮았다. 팔꿈치 인대 접합, 즉 토미 존 수술의 경우에는 2010년대에 들어와 선수 본인의 재활 의지에 따라 회복 기간이 많이 단축되고 빨라진 편이지만, 어깨와 관련된 수술은 한국은 물론이고 이쪽보다 의료시설이 잘 구축된 미국에서조차도 재기한 선수는 많지 않다. 굳이 찾아보자면 외국의 사례로는 바톨로 콜론처럼 줄기세포 치료법이라는 묘한 시술을 한 케이스 정도고, 그나마도 논란의 중심에 있는 시술법이었다. 국내에서는 17%의 사나이이용훈이 그나마 재기에 성공한 케이스. 그마저도 수술 전의 구위를 상당히 잃어버렸다.
2012년~2014년까지 퓨처스 리그 경기조차 출장하지 못하며 기약 없는 재활의 기간을 보냈다.
4.5 2015 시즌
팀에서 기나긴 재활에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인지, 6개월 동안 재활이 미진하면 방출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후 7월 들어 ITP를 소화하는 것을 보고 시한부 통보는 취소했지만, 팀에서 전병두에게 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당장 16시즌에 방출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하지만 9월, ITP가 끝나고 피칭 단계에 들어갔다. 이미 2군 시즌은 종료했기 때문에 무리할 필요가 없어 내년을 보고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최민규 기자의 언급에 의하면 현재 90%까지 몸 상태가 올라왔다고 한다. 과연 내년엔 마운드에서 볼 수 있을지
그리고 11월 프런트는 전병두를 보류선수 명단에 묶었다. 전성기를 이끌었던 선수고, 기량이 저하된 것이 아닌 부상이라는 것에 한번 더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4.6 2016 시즌: 5년 간의 긴 재활과 마지막 5구
SK 와이번스 2군 캠프에 참가, 대만으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그리고 3월 초, 5년 만에 포수한테 드디어 공을 던져봤다고 한다. 기사
영상 썸네일이 여러의미로 압도적이다(...)
시즌 전 제춘모 코치의 마춘텔에 나와서 오래간만에 팬들앞에 얼굴을 비췄다. 헬쓱한 모습에 팬들이 안타까워했다. 섹도시X
'마운드 피칭' 전병두, 4년 만 최고 페이스
‘라이브 3회 완료’ 전병두, 복귀 희망 커진다
그러나 이러한 복귀를 위한 엄청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전병두는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고 말았다.
2016년 9월 8일 KIA 타이거즈로 트레이드 된 옛 동료 고효준이 모자에 28번을 매직으로 새기고 마운드에 올라왔다. 28번 새긴 고효준, 전병두와 함께 던졌다
9월 25일 한화전부터 다른 선수들도 모자에 28번을 새기고 뛰기로 했다.
등판 하루 전날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리고 2016년 10월 8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 선발로 내정되며 은퇴 경기를 가졌다. 첫 타자를 상대하고 내려올 예정. [14]
전병두의 현역시절 마지막 상대 타자는 김상수가 되었다. 1구 130km 직구, 2구 129km 직구, 3구 128km 볼, 4구 130km 파울, 5구 130km 직구를 타격하여 유격수앞 땅볼로 아웃카운트를 잡아내고 동료들과 인사한 다음 사실상 선발투수인 윤희상으로 교체되었다.[15][16] 많은 SK팬들이 말하는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오늘 전병두를 위해 잠시 투수코치를 맡은 김광현이 직접 마운드를 올라가서 전병두에게 포옹한 장면. SK 왕조시절 같이 투수진에서 활약했던 두선수의 만남은 많은 SK 팬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전성기때에 비해 팔 각도가 한참이나 내려갔으며[17], 구속도 한땐 150km에 육박할 정도에서 130km을 간신히 찍을 정도로 눈에 띄게 줄었다.
2016년 그의 마지막 현역 시절이 이렇게 끝이 났다. 2016시즌 주요 기록으로는 1경기 선발등판, 0.1이닝, 무실점, WHIP 0.000, WAR 0.02. 참고로 이날 경기를 끝으로 소속팀 감독이던 김용희 감독도 팀을 떠나게 됐다. 압도적으로 망한 커리어를 감안하면(...) 현역 감독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상당히 낮기에 이날 경기가 김용희 감독에게도 사실상의 은퇴경기가 됐다. 상대 팀 선발이었던 요한 플란데의 WAR은 마이너스(...). 끄동님에 플란데까지 트리플 은퇴경기
한편 같은 날,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한화 이글스가 KIA 타이거즈에 연장전 역전승을 거두며 '역시 마리한화'라는 타이틀과 함께 시즌을 끝마쳤다. 전병두를 이렇게 망가뜨린 사람이 김성근 감독이란 걸 생각하면, 또 그와 같은 일이 다시 한번 반복되고 있는 걸 생각해보면 여러모로 씁쓸한 일.
그리고 은퇴 경기 1루측에서 맹목적 김성근 감독 추종자들과 SK 와이번스 팬들이 전병두 혹사에 대해 말싸움을 했다. 노리타는 이래서 노답이다
5 은퇴
자신의 인생 황금기에 3년간 4948구를 던지는 혹사를 끝으로 복귀를 못하고 결국 은퇴한 비운의 파이어볼러
결국 부상을 이겨내지 못하고 2016년 9월 7일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5년 간의 재활' SK 전병두, 결국 은퇴 선택 이것으로 김성근 투수 혹사의 피해자가 하나 더 생겨났다. 그러나 다행히도 SK 구단 측의 배려로 1군 경기에서 단 한번이라도 뛰어보고 싶다는 선수의 뜻을 받아들여 선발 투수로 한 타자만 상대하고 은퇴경기를 치뤄주기로 했다.[18][19] 은퇴 경기는 최종 잔여 경기인 10월 8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홈 경기가 그의 마지막 경기로 결정이 되었고, 상대인 삼성 역시 양해해 주었다.[20] 1군 엔트리를 그렇게 낭비해도 되냐는 의견이 있을 법도 하지만, 그런 거 없고 오히려 "전병두 때문에 5강 못 가도 괜찮다"는 의견도 나온다.은퇴식을 김성근 앞에서 치렀어야 그러나 전병두가 던지기도 전인 10월 5일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가 확정되면서 본인은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마지막 등판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SK팬 이외에도 탑급 유망주 시절 소속팀인 두산이나 기아팬들도 많이 그리워했으며, 침울한 분위기고 타팀팬들도 전병두를 안타까운 선수로 기억하며 잊지 않겠다고 말한다.
디시위키 전병두 항목 에서는, 전병두 선수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기는 문단의 글귀들이 적혀 있다. 온갖 개드립과 욕설로 점철된 디시위키임에도 이런 서술이 있다는 것 자체가 그를 생각하는 팬들의 마음을 대변해준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항목에서조차도 노리타가 개소리를 지껄이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21]이 정도면 진짜 대단하다
오랜만에 열리는 은퇴 관련 행사인 만큼[22] 팬 차원에서도 준비가 되고 있다. 비룡천하부터 SK 와이번스 갤러리 등에서 모금을 진행 중이다. 감사패, 골든글러브, 팬북 등등 다양한 선물들이 준비될 것으로 보인다.
그가 썼던 등번호 28번은 2017년 2차 1라운드로 지명된 신인 김성민 선수가 이어받게 될 예정이다.
은퇴 경기에서 1구 스트라이크, 2구 스트라이크, 3구 볼, 4구 파울, 5구 유격수앞 땅볼로 1번타자 김상수를 잡아내며 본인의 마지막 임무를 완수하였다[23]
최훈도 10월 9일 카툰에서 은퇴를 위로하는 동시에 김성근을 비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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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다시 감독의 혹사로 이렇게 젊은 피가 제대로 뜨지도 못하고 은퇴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6 기타
- 주무기는 역시 묵직한 직구. 최고 150km, 평균 140km대 초중반에서 형성되는 묵직한 직구를 자랑했었으며, 변화구 중에서는 날카로운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썼었다. 114km/h 정도에서 형성되는 낙차 큰 커브도 구사했었다. 또한 구속 차이가 상당히 나는 체인지업도 구사했었으며,[24] 서클 체인지업도 구사했었다.
- 별명은 핵탄두, 뱅두, 카스왕.[25]
좆씨 가문 시조앵두뱅두러뷰미슈센베두
- 성격이 순하고 상당히 소심하여, 경기가 끝나고 인터뷰 할 때마다 고개를 푹 숙이고 들리지 않는 소리로 조심조심 얘기하는 모습을 보여줘 팬들 사이에서는 최정과 함께[26] 인터뷰에 부적당한 선수로 자주 지목됐다. 전병두 본인도 소심한 성격을 고치고 싶었는지 '나쁜남자'라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녔지만 행동은 정반대인 데다가, 인터뷰 시 항상 모범답안적인 답안[27]을 내놓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하지만 인터뷰할 때 조그만 소리로 조심조심 얘기해서 그렇지, 말주변은 생각보다 좋았다.[28]
- 어찌된 일인지 2003년부터 2011년까지 두 자리 수 승수, 두 자리 수 세이브, 두 자리 수 홀드 중 하나라도 기록한 해가 단 한 차례도 없다. 두산-KIA 시절에는 본인이 완성이 안 된 반면, SK 이적 후에는 전천후로 투입되었기 때문에 그런 지도 모를 일.
- 야구선수치곤 꽤나 잘생긴 외모로 얼빠들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김성근 감독도 "전병두는 왜 인기가 있지?" 라고 물었을 정도. 순하게 생긴 외모, 어눌한 행동과 말투로 모성본능을 일으키는 타입이라고. 팀 동료인 나주환은 "저것이 다 설정이다."라고 드립을 쳤지만 얼빠들에겐 씨알도 안 먹히는 듯했다.[29]
- 부상 경력이 있던 선수를 보직 파괴 후 혹사시켜 선수 생명에 치명타를 입힌 정황이 너무 명확해서 김성근 감독의 열혈 지지자들도 어지간한 중증 아니면 쉴드 안 쳐줬었다. 그러나 김성근이 SK를 거쳐 고양 원더스에서 지속적으로 이미지를 상승시키고 시간이 흘러 잊혀지면서, 나무위키의 이 항목에서조차 혹사 피해자란 언급이 지워졌다 복구되기를 반복하기에 이르렀다.
-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노리타들은 유망주 시절의 전병두가 가망도 능력도 의지도 없고 부상을 달고 살아 은퇴 직전인 폐급 투수였는데 야신 덕분에 몇 년 빛났을 뿐인 투수라는, 당시 창창한 나이였던 전병두를 가지고 록키 찍는 소리를 지껄였다. 살려조가 등장하기 이전, 전병두는 김성근의 무지막지한 혹사의 대표적 피해자였기 때문에 어떻게든 이에 따르는 비판을 피해보고자 노리타들이 지속적인 역사 조작을 시도한 것이다. 실제로 과거 김성근 비판 문서에는 이런 식의 왜곡이 버젓이 실려 있고 '선수 본인도 고마워하지 않을까?' 라는, 전지적 김성근 시점의 서술이 살아 있었다. 정상적인 SK 팬과 노리타의 차이는 여기서 발생한다. SK 팬은 전병두를 깎아내려 김성근을 옹호하려는 짓 따위는 하지 않는다.
- 2015년 권혁의 혹사로 김성근이 비판받자 노리타들은 전병두에게 했던 것과 거의 똑같은 방식의 옹호를 시도했다. 권혁의 커리어로우를 가져와서, "원래 이름없이 잊혀질 그저그런 투수가 김성근 감독 덕분에 빛나고 있다. 선수 본인도 고마워하지 않을까?" 라고 지껄이고, 혹사로 퍼지는 것이 눈에 띄게 보이자 삼성 시절의 부상과 수술이력을 가져와서 "삼성 시절에 이미 망가졌다 고로 혹사로 망가진 게 아니다." 라고 주장했다. 이런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병두가 폐급투수였고 KIA 시절 부상 재발로 망가졌다는 논리는 그저 노리타들이 혹사 논란이 터질 때마다 역사를 왜곡해서 김성근을 옹호하기 위해 쓰는 수법일 뿐 진지하게 받아들일 게 못된다. 참고로 노리타들의 주장은 아주 간단하게 반박가능한 것이 권혁은 1차 지명 출신에 2007년 순수 불펜투수로 한 시즌 100탈삼진을 찍은 바 있는데다가 2009년 홀드왕이었으며 삼성팬들이면 대부분 알만한 안정권KO의 권이 권혁이다. 심지어 삼성 시절 권혁은 말년에 기회를 못 받아서 그렇지 올림픽 국가대표까지 뽑힌 리그 상급의 불펜투수였다. 즉 폐급 투수라고 하는 소리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7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ERA | 피안타 | 사사구 | 탈삼진 | |||
2003 | 두산 베어스 | 6 | 2 | 0 | 0 | 0 | 0 | 0.00 | 2 | 1 | 0 | |||
2004 | 35 | 81⅔ | 0 | 4 | 0 | 1 | 5.51 | 86 | 59 | 50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ERA | 피안타 | 사사구 | 탈삼진 | |||
2005 | KIA 타이거즈 | 49 | 57 | 3 | 2 | 5 | 2 | 3.00 | 37 | 39 | 55 | |||
2006 | 44 | 101⅓ | 5 | 8 | 0 | 1 | 4.35 | 89 | 60 | 94 | ||||
2007 | 9 | 28 | 3 | 2 | 0 | 0 | 4.18 | 23 | 16 | 9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ERA | 피안타 | 사사구 | 탈삼진 | |||
2008 | SK 와이번스 | 10 | 33 | 2 | 4 | 0 | 0 | 4.64 | 27 | 26 | 29 | |||
2009 | 49 | 133⅓ | 8 | 4 | 8 | 1 | 3.11 (2위) | 114 | 50 | 136 (5위) | ||||
2010 | 27 | 67⅔ | 5 | 2 | 0 | 1 | 3.06 | 55 | 28 | 52 | ||||
2011 | 51 | 92⅓ | 3 | 3 | 3 | 8 | 3.80 | 67 | 67 | 81 | ||||
2012 | 어깨 회전근 수술 후 재활 | |||||||||||||
2013 | ||||||||||||||
2014 | ||||||||||||||
2015 | ||||||||||||||
2016 | 1 | ⅓ | 0 | 0 | 0 | 0 | 0.00 | 0 | 0 | 0 | ||||
통 산 | 281 | 596⅔ | 29 | 29 | 16 | 14 | 3.86 | 500 | 346 | 512 |
- ↑ 트레버 호프만의 등장곡으로 이것이 의도일 가능성이 크며 2011년부터 썼다.
- ↑ 은퇴경기 당일에는 Hells Bells 대신 이 곡과 함께 등장했다.
- ↑ 같이 혹사당한 투수들로 채병용, 고효준, 정우람 등이 있는데 채병용은 강병철-조범현 감독시절에도 혹사를 당했고, 정우람은 역대급 유연성에 커리어 중간중간 안식년이 있어(07, 09) 부상이 없었고, 고효준은 수술대에 오르긴 했으나 전병두만큼 치명적이진 않아 군복무 후 복귀했기에 부각이 덜 된다.
- ↑ 김성근이 혹사를 인정한 몇 되지 않는 투수. 그러나 감독 사생팬들은 여전히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폐급에 부상을 안고 있던 3류 투수가
WBC 국대도 했는데?김성근 감독의 관리와 지도하에 에이스급으로 떠올랐으며 부상은 전적으로 KIA에서부터 서정환 감독이 혹사시킨데가가 관리를 못해줬기에 생겼고 김성근이 경질당한 후 감독 대행을 맡았던 이만수가 포스트시즌에서 당겨썼기 때문에 커리어가 망가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네이버 스포츠와 같은 포털사이트에 전병두의 기사가 올라오면 이런 주장을 하는 댓글들이 달렸다. 김성근의 실체가 드러나기 전 까지는. 현재도 간간히 페이스북 야구 관련 페이지에서 저런 헛소리를 늘어놓는 노리타들이 종종 있다. - ↑ 마크 프라이어 역시 2003년 한 해 빵집 영감님에게 잔인하게 혹사당하고, 그 다음 해부터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가 2006년부터 기약없는 재활에 들어갔다가 그 다음 해 시즌 종료 후에 방출, 결국 이 팀 저 팀을 돌다가 2013년 12월에 겨우 33세의 나이에 은퇴하고 만다. 게다가 2003년은 둘의 데뷔 시즌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 ↑ 외국인 선수 지명권과 함께 KIA로 트레이드, 당시 KIA는 미래를 받고, 두산은 현재를 받았다고 하여 WIN-WIN 트레이드라는 평가가 있었다.
- ↑ 여담으로 당시 대표팀 막내였다.
- ↑ 참고로 명투수 출신인 선동열은 삼성 감독 시절부터 투수들에게 깐깐한 평가를 내렸던 걸로 유명하다.
그래서 박사장님한테 추해지기 전에 은퇴하라고 하고 팔각도 좁히라고 했나보다 - ↑ 당시 주전포수였던 김상훈의 부상과 외야의 부실화로 인한 필요성에서 이루어진 트레이드였지만 밸런스가 맞지 않는 트레이드라 트레이드 당일부터 가열차게 까였다. 후의 결과가 아닌 당시의 네임밸류만 보아도 전병두는 군면제가 해결된 겨우 20대 중반의 좌완 파이어볼러 유망주였으며, 김연훈은 팜 출신의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2라운드에 뽑힌 내야수였다. 조범현 KIA 감독의 고교 시절 은사가 김성근 감독이었기에 스승의 은혜를 갚는 조공 트레이드라고 불렸다. 이후 SK에서 온 선수들이 모두 삽질한 반면 2009년 김연훈과 전병두가 예상대로 성적을 잘 내자 조범현 감독에 대한 비난은 거세졌다. 조범현이 우승감독임에도 안티가 많고 16연패 이후 짤린 원인에도 꼽힐 트레이드 망작 중 하나.
- ↑ 불 같은 강속구를 가졌지만, 제구가 엉망인 일명 '와일드씽' 투수들을 오히려 팔각도를 높혀서 더욱더 구위를 강조하는 쪽으로 개조하니 오히려 제구가 잡히는 것처럼 보이면서 성공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배터리코치, 포수와 상의해서 말 그대로 압도적인 구위와 랜덤제구로 타자를 윽박지르는 더욱더 공격적인 피칭을 하는 것이다.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도 유인구 없이 바로 빠른 공으로 승부하는 게 그 예 중 하나. 이게 먹히기 시작하면 상대 타자들도 구위에 현혹되어서 어설픈 볼에도 마구 배트가 나오면서 삼진이 엄청나게 잡히게 된다. 이러면서 투수가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게 되고 제구도 좋아지는 것이다. 냉정하게 관찰해보면 마치 제구가 잡힌 것처럼 보이는 것일 뿐이지만, 어찌하던 타자를 잡아내고 승리투수가 되면 장땡이니 상관없다. 멀리는 김정수, 가까이는 양현종이 이런 타입의 투수이다.
- ↑ 선동열과 함께 무려 역대 공동 2위 기록. 1위는 1998년 이대진의 10타자 연속 삼진.
- ↑ 시즌이 끝난 후 결과론적으로 얘기했을 때의 내용이다. 실제로는 고효준, 게리 글로버, 송은범 등 로테이션상 들어갈 고정선발 후보는 나름대로 준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마음대로 되질 못했고, 특히 김광현에 이은 2, 3 선발로서 글로버가 제 역할을 해주길 바랬는데 그러지 못한 점은 선발 투수 관리에 문제가 커질 수밖에 없었음이 시즌 과정 및 결과로서의 평가다.
- ↑ 참고로 이것도 한 달가량 쉬고 올린 성적이다.
- ↑ 구대성 등 여러 투수들의 은퇴경기 장면이다.
- ↑ 경기 후 전병두는 "최선을 다해준 김상수 타자에게도 고맙다. 1구와 2구 가만히 지켜보길래 놀랐다. 3구부터 적극적으로 타격을 해줘 고맙다"라고 말했다.
- ↑ 팬들의 의견은 '3구부턴 김상수의 진짜 실력이다'(...)
- ↑ 거의 사이드암으로 보일정도로 팔 각도를 내렸다.
- ↑ 선발 투수로 나서 한 타자 상대하는 형식으로 은퇴 경기를 치르는 것은 2010년 한화 구대성의 은퇴 경기 이후 처음이다. 이는 송진우가 은퇴할 때도 적용되었다.
- ↑ 참고로 이것은 SK 창단 첫 은퇴 경기이기도 하다. 김재현, 김원형, 박재홍, 박경완은 모두 은퇴식.
- ↑ 이 경우가 사실 엄밀히 따지면 위장선발이니 상대팀의 사전 합의는 꼭 필요한 절차이다. 이때는 당연히 상대팀에게 사실상의 선발인 다음투수(윤희상)도 미리 알려주는게 예의고.
- ↑ 이들의 헛소리는 주로 전병두는 김성근이 키워줘서 그 기량이 만개했고 이만수가 망가뜨렸다는 거다.
- ↑ SK 구단의 가장 최근 은퇴 관련 행사는 2014년 4월 박경완의 은퇴식.
- ↑ 이 때 모든 야구팬들이 얼마나 김성근의 혹사가 심각했는지 한 순간에 바로 알 수 있었는데, 팔 각도가 아예 올라가질 않아서 사이드암으로 던졌다. 회전근을 망가트릴 정도로 혹사를 시켰던 것. 한화에서 김성근이 망가트린 김민우도 이럴 위험성이 다분하다.
- ↑ 세 손가락으로만 공을 잡는 변형 체인지업. 일반 체인지업 그립으로 공을 잡았더니 속도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다는 김성근 감독의 지적으로, 속도를 좀 더 낮춘 변형 체인지업을 구사한다.
- ↑ 2011년 시즌 초반 불가사의한 운빨로 카스포인트를 두둑히 챙기며 선두권에 이름을 올리는 일이 많았던 탓에 생긴 별명. 물론 초반 이후엔 급격히 떨어졌다.
- ↑ 최정은 인터뷰 할 때 버벅거리기로 유명했는데, 어느 정도냐면 2010시즌 스프링캠프 때 본인의 인터뷰에선 심지어는 기도할 때조차도 말을 더듬는다고 밝혔을 정도였고, 그로 인해 유명 선수 중에서 백치의 대명사로 여겨졌다.
- ↑ 좋게 말하면 모범 답안적, 안 좋게 말하면 항상 똑같다(…).
- ↑ 이 기사를 참조할 것. 전병두의 말빨이 생각보다 상당히 좋다는 것을 보여준다.
- ↑ 얼빠들도 얼빠들이지만, 나주환의 성격은 정근우의 마이너 버전인지라 신뢰도가 높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