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강우석(康祐碩) |
출생 | 1960년 11월 10일, 경상북도 경주시 |
학력 |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 중퇴 |
데뷔 | 1989년 달콤한 신부들 |
1 소개
한국의 영화 감독. 실미도를 통해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1000만 관객을 넘긴 영화를 만든 감독이기도 하다.
2 영화감독이 되기까지
어린시절 고향에서 수학경시대회에서 암산왕을 차지할 정도로 촉망받는 인재였으나[1][2] 취미로 시작한 조조영화 보기에 빠져서 (조조영화를 다보고 학교에 등교했다고 한다.)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마음을 잡게 된다.
성균관대학교를 다니면서 알바로 영화일을 시작하다가 졸업 후 애마부인 시리즈의 조감독으로 영화판에 본격적으로 입성한다. 사실 성균관대학교를 중퇴했다고 힐링캠프에서 밝혔다
3 감독이 되다
평소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강우석은 농촌총각이 결혼을 못해 자살을 택하는 뉴스기사를 접하고 1988년 농촌총각이 도시여자와 결혼하려는 내용의 '달콤한 신부들'로 감독으로 데뷔한다. 제목이 이상야릇한 제목인지라 제작자가 역시 에로영화 조감독 출신답구만 하고 웃었다고 한다. 주연은 최재성이 맡았다. 하지만 서울관객 2만 1천여명으로 그리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다음 영화인 시험 성적을 비관하여 자살하는 학생들의 기사를 접하고 학생의 유서에 써져있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글귀를 모티브로 동명의 영화를 만든다. 서울 15만 관객으로 흥행에 성공하며 주연이었던 이미연은 단숨에 하이틴 스타가 된다.[3] 이후에도 사회문제에 관한 여러 작품들을 연이어 내놓지만 개봉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그나마1992년 영화인 최진실 주연인 미스터 맘마가 서울 22만 관객으로 흥행에 성공하여 영화 제작을 계속 이어나가게 된다. 그리고 그 다음해인 1993년에 투캅스 1편이 서울 86만이라는 대박 성공으로 막대한 돈을 벌어 그 돈으로 영화사 시네마 서비스를 열게 된다. 당시 어머니의 소원이었던 전셋집을 사드리기 위해 어머니에게 돈을 내밀었지만 어머니가 강우석의 재능을 인정하고 그 돈으로 영화사를 차리라고 했다고. 연출보다도 다른 감독들을 키우려는 방향도 노려보지만, 그의 연출작 외에는 그다지 성공하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어 위기를 겪는다. 그래도 제작을 꾸준히 하여 2000년대 와서 제작투자한 신라의 달밤이라든지 흥행 성공작도 나왔다.
또한 동시에 흥행작인 투캅스와 이후 작품인 1994년작인 마누라 죽이기가 각각 해외영화 표절 시비에 휘말리게 된다. 투캅스는 1984년작 프랑스영화 마이 뉴 파트너, 마누라 죽이기는 동년도에 개봉했던 역시 프랑스 영화 탱고의 표절이라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여하튼 비난을 받았어도 서울관객 34만으로 흥행만은 성공했다.
2000년대 들어 만든 공공의 적의 불량형사 강철중은 설경구의 능청스러운 연기와 각본의 힘을 얻어, 그의 작품 세계를 넘어 한국 영화계에서도 기억될 만한 명 캐릭터로 남게 된다.
충무로에서 거의 수십년째 떠돌아 다니던 실미도의 시나리오를 강우석 사단이라 불리는 배우들과 스태프들을 모두 총출동 시켜 거액의 제작비를 들여 제작, 흥행에 성공시켜 멀티플렉스 극장의 도래와 함께 한국영화 최초로 천만을 돌파한다.
실미도의 성공 때문인지 21세기 들어 내놓은 그의 영화인 공공의 적 속편, 한반도 등이 이어질수록 점점 영화 완성도가 촌스러워진다, 구려진다, 마초적이고, 국가주의적이다라는 평단의 비난을 맞게 된다. 과거 그의 영화에 우호적이었던 분위기와 급변해버린 상황. 그리고 소품도 점점 후져진다
이에 감독으로서 전력을 쏟아넣겠다는 각오로 만든 2010년 작 이끼가 연출 방향성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기존의 마초스러움을 버리기 위해 노력했다는 평을 듣는다. 이끼는 원래 다른 영화처럼 강우석 본인은 제작자로서만 기능하고 연출은 다른 사람으로 하려는 작품이었으나, 계획이 바뀐 경우. 본인은 '(억지로 잡고 했지만) 이런 스타일에는 안 맞고 지쳤다'라며 다음 이야기는 야구를 소재로 한 밝고 감동적인 영화가 될 거라고. 그 공언대로 청각장애인 학교 야구팀을 소재로한 "글러브"가 개봉했는데 그럭저럭 호평을 받았다.
공공의 적 2012를 만든다는 이야기가 들렸는데 2013년까지도 나오고 있지 않다. 2012년에 크랭크인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일각에서는 설경구가 타워에 집중한 탓에 늦어지는게 아니냐는 말도 있다. 결국 공공의 적 2012 대신에 "전설의 주먹"이라는 바키를 연상시키는 영화를 만들어서 2013년 4월에 개봉 예정이다. 여담으로 전설의 주먹은 강우석 감독의 20번째 장편 영화로 임권택 감독 이후로 많은 장편 영화를 만든 감독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물론 임권택 감독 따라잡으려면 아직도 80편 더 만들어야 합니다 평생 목표가 50편 정도의 영화를 감독하는것이라고...
2013년 작인 전설의 주먹은 평은 나쁘지 않으나 흥행이 완전 기대이하이다. 다시 공공의 적 1편의 작가를 재영입하여 강철중의 속편을 만든다는 이야기가 있다.
2016년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감독했는데 고증 오류라느니 개봉 전부터 말이 많다. 결국 흥행도 실패하고 있다. 자세한 건 항목 참고.
4 작품 성향
그의 영화들은 한국적인 소재와 배경을 취하며, 대중적이고 오락적인 경향을 띠곤 한다. 데뷔 후 90년대까지 내놓은 영화들이 평적으로나 대중적으로나 높은 평가를 받았다면, 그 이후로 나오는 그의 영화들에 대해서는 국가주의적이다 마초적이다, 촌스럽다는 식의 비판이 커진 상황. 허나 본인은 국가주의적이라는 비난만큼은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 실제로 그의 영화에서는 "이래야 마땅하다"라는 정서보다는 "이것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라는 정서가 더 드러난다.
그리고 그의 영화에서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결코 선하지만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이 특징이며, 그런 주인공들의 소시민적이거나 구질구질한 면모, 혹은 그런 자기 안위 위주였던 인물들이 "그래도 이런 것까지는 두고 볼 수 없다"는 최소한의 상식선의 무너짐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는 것이 일종의 공식화된 경향이 있다. (예: 투캅스의 안성기와 박중훈, 공공의 적의 설경구) 예를 들어 강철중은 뇌물도 받고 이런저런 자잘한 위법행위나 월권행위도 꽤 많이 저지른다. 물론 거기까지는 캐릭터라고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문제는 그러면서 은근슬쩍 "큰 악행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애교로 봐줘라"는 듯한 뉘앙스가 언뜻언뜻 묻어난다는 비판이 있다.
또한 사회의 잘나가는 지배계층, 인텔리들에 대한 불신과 위선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게 드러나 있다. (예: 공공의 적 시리즈에 나오는 모든 악역들) 즉 레미제라블 컴플렉스가 작품을 불문하고 전반에 깔려있으며, 딱히 숨기려 하지도 않는 듯하다.
영화마다 은근히 러닝타임이 길다. 공공의 적이 138분, 공공의 적2가 148분, 이끼가 163분(!), 전설의 주먹이 153분 등으로, 웬만하면 140분이 넘어간다.[4] 보통 배급사에서는 상영횟수를 늘려 관객수를 더 모으는 것을 선호하여 상영시간이 짧은 것을 선호하는데 반해, 충무로에서 기획/제작자로서 영향력이 커서 그런지 상영시간에 대한 제약이 크게 없는 듯하다.
5 필모그래피
5.1 연출
연도 | 제목 | 관객수 | 흥행 |
2016 | 고산자, 대동여지도 | 97만명 | 실패 |
2012 | 전설의 주먹 | 174만명 | 실패 |
2011 | 글러브 | 188만명 | 손익분기 |
2010 | 이끼 | 355만명 | 성공[5] |
2008 | 강철중: 공공의 적 1-1 | 430만명 | 성공 |
2006 | 한반도 | 388만명[6] | 실패 |
2005 | 공공의 적2 | 391만명 | 성공 |
2003 | 실미도 | 1108만명 | 성공 |
2002 | 공공의 적 | 303만명 | 성공 |
1998 | 생과부 위자료 청구 소송 | 서울관객 14만명 | 손익분기[7] |
1996 |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일곱가지 이유 | 서울관객 9만명 | 실패 |
1996 | 투캅스 2 | 서울관객 63만명 | 성공 |
1994 | 마누라 죽이기 | 서울관객 34만명 | 성공 |
1993 | 투캅스 | 서울관객 86만명 | 성공 |
1992 | 미스터 맘마 | 서울관객 22만명 | 성공 |
1991 | 스무살까지만 살고 싶어요 | 서울관객 2만4천명 | - |
1991 | 열 아홉의 절망 끝에 부르는 하나의 사랑 노래 | 서울관객 6천명 | 실패[8] |
1991 |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 서울관객 4만2천명 | - |
1990 | 나는 날마다 일어선다 | 서울관객 2만9천명 | - |
1989 |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 서울관객 15만명 | 성공 |
1988 | 달콤한 신부들 | 서울관객 2만명 | - |
5.2 기획, 제작[9]
연도 | 제목 | 구분 |
2013 | 깡철이 | 기획 |
2012 | 주리 | 제작 |
2011 | 로맨틱 헤븐 | 제작 |
2010 | 퀴즈왕 | 기획 |
2010 | 주유소 습격사건 2 | 제작 |
2009 | 백야행 - 하얀 어둠 속을 걷다 | 제작 |
2009 | 김씨 표류기 | 기획 |
2009 | 용서는 없다 | 제작 |
2008 | 모던 보이 | 제작 |
2008 | 신기전 | 제작 |
2008 | 뜨거운 것이 좋아 | 제작 |
2007 | 싸움 | 기획 |
2007 | 궁녀 | 기획 |
2007 |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 | 기획 |
2007 |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 기획 |
2007 | 황진이 | 기획,제작 |
2007 | 아들 | 기획 |
2006 | 거룩한 계보 | 기획 |
2005 | 오로라 공주 | 기획 |
2005 | 사랑니 | 제작 |
2005 | 혈의 누 | 기획 |
2004 | 꽃피는 봄이 오면 | 공동투자 |
2004 | 귀신이 산다 | 기획 |
2004 | 달마야 서울 가자 | 공동제작투자 |
2004 | 아라한 장풍대작전 | 기획 |
2004 | 바람의 전설 | 기획 |
2004 | 그녀를 믿지 마세요 | 기획 |
2003 | 천년호 | 기획 |
2003 | 불어라 봄바람 | 제작 |
2003 | 거울 속으로 | 기획 |
2003 | 나비 | 기획 |
2003 | 선생 김봉두 | 기획 |
2002 | 광복절 특사 | 기획 |
2002 | 밀애 | 기획 |
2002 | 재밌는 영화 | 기획 |
2002 | 피도 눈물도 없이 | 기획 |
2002 | 공공의 적 | 제작 |
2001 | 킬러들의 수다 | 제작 |
2001 | 신라의 달밤 | 기획 |
2001 | 선물 | 기획 |
2000 | 불후의 명작 | 제작 |
2000 | 순애보 | 기획 |
2000 | 주노명 베이커리 | 제작 |
1999 | 자귀모 | 기획, 제작 |
1998 | 실락원 | 기획, 제작 |
1998 | 생과부 위자료 청구 소송 | 제작 |
1998 | 투캅스3 | 제작 |
1997 | 올가미 | 제작 |
1997 | 홀리데이 인 서울 | 제작 |
1996 | 투캅스2 | 제작 |
1995 |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 | 제작 |
1994 | 마누라 죽이기 | 제작 |
1994 | 손톱 | 기획 |
1993 | 투캅스 | 제작 |
1992 | 미스터 맘마 | 제작 |
- ↑ 현재에도 암산실력은 어디 안 가서 영화제작비 경비를 그 자리에서 바로바로 계산 해낸다고.
- ↑ 영화를 찍을 때도 머리 속에 이미 영화가 완성되어 있어서 원하는 장면을 찍으면 배우의 요구에 상관없이 다음 촬영장소로 카메라를 옮겨 놓는다고 한다.
- ↑ 그리고 얄궂게도 이미연은 여고괴담 1편에서 여교사로 나와 그 학생이 선생이 되었다는 우스개가 나왔다.
- ↑ 2015년, 러닝타임이 140분에 가까운 상업영화는 암살과 대호가 유일했다.
- ↑ 강우석 감독 본인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경상비도 못찾았다고 인터뷰했지만 인터뷰 성향상 우스개소리일 가능성도 있다. 일단 언론에 손익분기를 넘긴건 물론이고 흥행에 성공했다고 되어있다.
- ↑ 손익분기는 450만, 게다가 영화 특성상 국내 관객들에게만 어필이 되는 영화였다.
- ↑ 강우석 본인이 인터뷰에서 증언
- ↑ 힐링캠프 강우석 편 참고
- ↑ 기획, 제작으로 참여한 영화가 상당한데 이것은 강우석이 1993년 강우석 프로덕션(시네마 서비스) 설립 직후 꾸준히 영화 기획,제작에 참여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