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한민국 1000만 관객 영화 | ||||
없음 | → | 실미도 (2003, 11,081,000명) | → | 태극기 휘날리며 (2004, 11,746,135명 ) |
1 개요
대한민국 최초의 천만 영화
백동호의 소설 실미도를 원작으로, 강우석감독이 제작하여 2003년 12월 24일 개봉되었다. 국내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이면서도 역사에서 흑역사로 남아야 했던 실미도 사건을 재구성하여 큰 주목을 받았다. 2004년 청룡영화제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수상.
2 영화 줄거리
북한군 124부대 31명의 무장공비가 청와대 앞까지 침투했다 무산된 '1.21 김신조 사건'에 대응하여 박정희 정부의 중앙정보부가 계획한 보복조치로 대한민국 공군 산하 특수부대가 새로 창설되었다. 사형수, 무기수, 일반 제소자들이 포함된 사회 밑바닥 계층을 포섭, 작전성공 시 모든 형벌 취소 및 전과기록 말소 등 정부로부터 새 삶을 보장받는 조건이었다.
1968년 4월에 만들어져서 '684부대'로[1] 불렸던 이 부대는 김신조부대와 똑같이 31명으로 구성됐으나 훈련도중 사고, 탈출, 처형 등으로 7명 사망, 결국 24명이 최후까지 살아 남는다. 그들의 목표는 단 하나, 북파되어 주석궁에 침투해 '김일성의 목을 따오는 것'이었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지옥훈련을 통해 단 3개월만에 북파 가능한 인간병기가 되었다.[2] 부대가 창설된 지 4개월만에 첫번째 실전명령이 떨어져 바닷길로 북에 침투를 시도하지만 상부의 저지로 중도무산된다. 이후 3년 4개월간 '출정의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그들의 긴긴 기다림은 시작된다.
이때 점점 예비군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인다.
그 사이 남북한의 상황은 처음 실미도 부대를 창설할 때와는 전혀 다르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남북 화해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하고 중정부장이 교체되는 등 급격한 변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구 시대의 유물'이자 '유령부대'가 되어버린 실미도 684부대[3], 결국 그들을 제거하라는 상부의 명령이 떨어진다. 그러나 인간병기로 길들여진 실미도 특수부대원들에게 담당 기간병들은 속수무책이었고[4], 단 십여분만에 실미도를 접수한다.
특수부대원들은 인천으로 상륙, 송도외곽에서 시내버스를 탈취, 서울특별시로 향한다. 이 사건은 언론에는 공비의 공격으로 보도된다. 전군 비상경계령이 발동된 가운데 이들은 자신들을 포위한 대한민국 육군 보병 및 특전사 병력들과 교전 끝에 대방동 유한양행[5] 앞에서 전원 자폭이라는 최후를 선택한다.
3 등장 인물 소개
언론 시사회(2003/12/11) 사진으로 영화내용이 워낙 논란거리가 많기 때문에 배우들보다는 강우석 감독에게 질문이 쏟아졌다고 한다. |
- 최재헌 준위(교육대장/안성기[6]) - 공군 특수부대 준사관으로, 대원들을 선별하여 부대를 조직하고 훈련시킨다. 북한 지역을 20번 드나든 베테랑 요원이며, 한국전쟁에서 가족이 몰살당한 과거가 있다.[7] 부대를 정리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받고 조돈일 중사, 박상근 중사와 함께 어떻게 할 것인지 회의를 하기 전에 강인찬에게 일부러 물을 떠오라고 시킴으로써 일부러 계획을 알려주었고 부대원들이 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반란이 일어나자 권총 자살한다. 일본판 성우는 소프트판은 츠카야마 마사네, 테레비 아사히판은 니시다 켄.
- 조돈일 중사(교관/허준호) - 일명 '
좆조 중사'로 부대원들을 혹독하게 훈련시킨다. 훈련과정에서 주먹을 굉장히 많이 휘두르는 등[8] 피도 눈물도 없는 악인으로 보이지만 사실 츤데레였는데, 부대 해체 및 부대원들의 제거 명령이 내려오자 부대원들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다. 훈련 기간동안 박상근 중사와는 자주 갈등을 일으켰는데, 부대 해체 명령이 내려온 이후 둘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된다. 반란이 일어났을 때는 부대 해체를 막아달라는 청원을 하기 위해 공군본부에 올라가 있어서[9] 부대원들과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씹을 것 좀 사다달라"는 근재의 부탁에 실없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알았다고 대답하고, 이후 진짜로 사탕 등 군것질 거리들을 사가지고 오다가, 소식을 듣고 대방동 포위 현장으로 달려와 지프에서 내리며 사탕봉지를 떨어뜨리는 장면에서 많은 관객이 눈시울을 적셨다고 한다. 마지막에는 진압군의 대대장양반에게 찾아가서 "쟤들 무장공비 아닙니다. 버스 안 병력, 제 부하들입니다. 제가 어떻게든 설득해올테니까 제발 살려주십시오."라고 필사적으로 애원하지만 거절당했고, 결국 부대원들이 자폭하는 장면을 눈 앞에서 봐야 했다. 모티브가 된 인물은 당시 실제로 반란 때 출장가서 살아 남았던 유일한 소대장이었던 김방일 예비역 준위. 일본판 성우는 소프트판은 나카무라 히데토시, 테레비 아사히판은 타니 아츠키.
- 박상근 중사(교관/이정헌[10]) - 조 중사와 계급은 같지만 설정상 군번으로는 2년 후배라고 한다. 기독교인이며 유부남으로 한 달 후면 태어나는 아기가 있다. 조 중사와는 대조적인 성격의 교관으로, 욕설이나 손찌검을 하는 장면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부대원들을 유화적으로 대했으며 구름다리 훈련 도중 부대원 한 명이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항상 혹독하기만 한 조 중사와는 갈등의 골이 깊어진다. 하지만 실미도 부대원을 정리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받자 갑자기 태도를 바꾸며 그에 따라 부대원들을 죽이려다가 분노한 부대원들의 총격을 받고 벌집이 되어 사망한다. 그간 부대원들에게 그렇게 잘 해주던 사람이 조금도 망설이는 기색 없이 돌변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 내지 위화감을 느꼈다는 의견이 많았다. 사실 처자식을 둔 젊은이 입장에서 위험을 감수해가며 부대원들을 보호하는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어려웠겠지만, 그래도 남은 기간동안 어떻게든 부대원들을 살려보려고 노력한 조 중사에 비하면 다소 비겁하고 냉정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부대원 말살 지시에 이의를 제기한 기간병들을 후려패며 그 유명한 대사인 "나다운 게 뭔데!"를 하기도 한다. 일본판 성우는 소프트판은 사쿠야 슌스케, 테레비 아사히판은 미야우치 아츠시.
- 강인찬(3조 조장/설경구) - 조직폭력배 행동대장으로 살인미수 혐의로 사형 판결을 받은 후 684부대에 스카웃된다. 아버지는 그가 중학생 때 월북해버렸는데, 그 이후 '빨갱이' 아버지를 뒀다는 이유로 은연중에 온갖 멸시와 불이익을 받으며 살아왔고,[11] 북에 가고자 하는 이유도 그런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 때문이다.[12] 다만 홀로 남은 어머니를 매우 걱정하고 있으며, 언제나 어머니의 사진을 간직하고 다닌다. 일본판 성우는 소프트판은 테라소마 마사키, 테레비 아사히판은 타카가와 유우야.
- 한상필(1조 조장/정재영) - 사형수[13] 출신. 거칠고 험한 성격이며, 강인찬과는 기싸움을 하다가 나중에는 친구가 되는 인물. 설정 상 강인찬보다 2살 형이다. 일본판 성우는 소프트판은 야마지 카즈히로, 테레비 아사히판은 세키 타카아키.
- 조근재(2조 조장/강신일) - 극중의 대사로 미뤄보아 조직폭력배의 보스 내지는 중간보스였던 것으로 보인다. 등장 인물 중 유일하게 사투리(동남방언)을 사용한다. 다른 부대원들보다 나이가 많고[14] 큰형님과 같은 의젓한 모습을 보이는 대인배이다. 무술 실력도 상당한 것으로 묘사되는데, 자신에게 달려드는 상필을 펀치 한방에 넉다운 시켰다. 자신을 담당하고 있는 21세의 어린 기간병과 각별한 우정을 쌓았는데,[15] 반란 중 어쩔 수 없이 그를 쏜 후에는 죽어가는 그를 끌어안고 오열하다가 박상근 중사의 총에 뒤를 맞고 사망한다. 조장 중 유일하게 부대 밖으로 나가기 전에 죽은 인물이다. 일본판 성우는 소프트판은 츠지 신파치, 테레비 아사히판은 이와사키 히로시.
- 원희
고자?(부대원/임원희) - 개그 캐릭터. 특히 인두로 몸 지지기 훈련(?)중의 모습이 압권이다. 그러던 어느 날, 고자드립과 섹드립[16]을 하며 안절부절하다가 썰물이 빠지는 시간을 이용해 화장실을 핑계로 평소 붙어다니던 대원 1명과 함께 섬을 탈주, 옆동네 무의도에 있는 학교에 들어가 여교사를 강간하다가[17] 결국 발각된다. 기간병들이 학교를 포위하자 함께 간 대원과 같이 죽기로 하고 원희가 먼저 공범을 찌른다. 2년간 살인 기계로 길러졌으니 단칼에 사람을 죽이는 건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공범이 죽고 원희도 자살하려 하나, 그 때 인찬을 포함한 각조 조장들이 들이닥쳐 자살을 막는다. 결국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전 부대원이 각목 구타(...)를 당하는 장면을 기둥에 팔다리가 묶인 채 두 눈으로 지켜보게 되는데, 죄책감에 괴로워하다가 나중에는 폭주, 난 그래도 했다. 니들은 아직도 못 해봤지?라는 식으로 어그로를 끌고 적기가를 부르다가[18] 인찬의 각목 일격에 맞아 죽는다.[19] 일본판 성우는 소프트판, 테레비 아사히판 둘 다 타카기 와타루.
- 박찬석(부대원/강성진) - 구름다리를 건너는 훈련 도중 오른쪽 다리를 크게 다치면서 퇴출될 뻔 하지만 잡일이라도 도맡아서 할 테니 남게 해 달라고 애원했고,[20] 근재 역시 옆에서 거들어주면서 결국 급양병으로 남게 된다. 동생들을 혼자서 밥 먹여 키웠기에 요리 실력 하나는 끝내준다고 한다. 이 외에도 뱀술 만들기 능력자이기도 하다. 반란 중 화장실에서 자신을 담당했던 기간병을 쏘는 척하면서 죽이지 않고 살려주었다.[21] 부상당한 몸으로 죽지도 않고 버스 탈취 시점까지 동행하지만 버스 안에서는 가장 먼저 죽는 인물. 일본판 성우는 소프트판, 테레비 아사히판 둘 다 후지와라 케이지.
- 원상(부대원/엄태웅) - 3조 부대원 역할. 입소 당시 '언제는 안전장치 달고 사시미 뜨러 다녔냐'라는 대사로 미루어보아 조폭 혹은 칼잡이 출신인듯. 일본판 성우는 소프트판은 이토 켄타로, 테레비 아사히판은 故 단 토모유키.
- 31명의 훈련병과 기간병등은 오디션으로 모집한 신인배우들로 총 5,000여명의 지원자가 몰렸다고 한다. 단역의 경우 1~2회 정도 촬영하는것이 보통이지만 부대원으로 등장하는 단역 배우들은 주연배우와 같은 90회 이상의 촬영을 하였다.
4 영화와 실제의 차이
영화는 실미도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제작되었으나, 실제 사건 내용과 다른부분이 많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흥행을 목적으로 하는 상업영화인 만큼 실제 사건 그대로라고 오해하면 곤란하다. 영화 스스로도 현실과 영화의 차이점을 인정했다.
- 부대원들의 출신 성분 - '범죄자'나 '밑바닥 인생'을[27] 주로 포섭한 것으로 나오지만 이런 식의 '범죄자들로 이루어진 부대'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극적인 효과를 위한 영화적 장치일뿐이다. 실제 북파공작원으로 모았던 사람들은 대부분이 평범한 청년들이었다. 시골의 순박한 청년들도 있었고[28], 운동선수나 서커스단 단원, 운전기사 등의 특이한 이력을 가진 인원도 있었다고 한다.[29] 이 때문에 부대원을 범죄자 출신으로 묘사하였다고 해서 유족들의 항의를 받기도 하였다.
- 다만 영화상의 부대와 비슷한 성격의 부대가 실제로 존재하긴 했다. 1.21사태 이후 창설된 보복부대(공군 산하 실미도 부대, 해군 산하 장봉도 부대, 육군 산하 선갑도 부대) 중에서 육군 선갑도 부대는 안양교도소에서 착출된 인원으로 부대원들을 구성했다. 물론 김일성 사살 계획이 유야무야되었다고 해서 이들이 살해당하는 일은 없었고, 부대 해체 이후 부대원들은 그대로 다시 교도소로 돌아갔다. 그런다고, 대한민국 공군이 졸지에 형벌부대 운영한다란 착각은 지워지기 힘들어졌다.
- 부대원 선별 - 영화에서는 교육대장(안성기)가 직접 교도소를 찾아다니며 대원들을 스카웃하는 장면을 보여주지만, 실제로는 중앙정보부(혹은 공군측)의 모병관이 신체능력이 우수한 자원을 물색하여 입대를 설득, 유도했다.
- 입대사유 - 영화에서는 재소자나 사형주를 주로 소집하였기 때문에 사면(赦免)을 목적으로 입대한 것으로 묘사하지만, 실제 부대원들은 재소자가 아니었으므로 입대사유 또한 다르다. 장교후보생에 준하는 대우와 작전 성공시 상당한 보수, 장교로 임관 기회 부여, 남자로써의 공명심(功名心) 등을 이유로 입대한 것으로 밝혔다.
물론 국가의 사기였지만.
- 교육대장 외 2명의 중사 교관 - 교관은 공군 자체의 특수전 이수자로 오키나와의 미군기지에서 특수정보수집 및 정글전 훈련까지 이수한 정보 특기자들이었다. 실제 계급은 부사관이었지만 실미도에 부임할 때는 공군 소위계급으로 임관 하였으며 작전이 성공할 경우 정식 임관할 예정이었다.
- 사용 장비 - 영화에서는 AK47 소총 등을 사용한 것으로 묘사되지만,[30] M1 카빈, M3 기관단총, PPS-43 기관단총 등을 사용하였으며 1일 500발의 실탄 사격을 하였다. 후에 뉴스에서 실미도 영화에서 사용된 AK47은 소품이 아닌 진짜 총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 훈련중 인원 손실 - 영화에서는 구름다리 훈련 도중 1명이 사망, 그리고 1명이 부상을 당해 취사병으로 보직을 변경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 구름다리 훈련 중 사고를 당한 인원 2명은 부상만 당하였고 2명 모두 작업병 등으로 부대에 남았다. 수영훈련 중 1명이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이 유일한 훈련 중 사망자이다.[31]
- 즉결처형자의 수 - 영화와 비슷한 방식의 즉결처형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다만 인원 수와 처형 내용 등은 차이가 있다. 생존자의 증언으로는 익사 1명, 즉결처형 6명으로 알려저 있으나, 국방부 공식 문서에는 익사 2명, 도주 중 체포돼 즉결처분 2명, 자살 3명이라고 기록돼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 출동 - 영화에서는 (사망, 부상당한 인원을 제외한)부대원 전체가 배를 타고 침투하던 도중 갑작스럽게 작전[32] 중지 명령을 하달받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부대원 중 최정예 9명을 선발하여 비행정을 이용해 침투할 계획이었고 작전 중지 명령이 내려진 건 출발 직전이었다.
- 작전 취소이유 - 영화에서는 7.4 남북 공동 성명과 중앙정보부장의 교체 등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었다는 것을 이유로 언급하지만, 미국의 인가 없는 작전 실행에 대한 염려 때문이라는 음모론도 있다.[33]
- 교관과의 관계 - 영화상에는 2명의 교관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나오지만, 실제로는 자원해서 남기로 한 김방일 소대장 외에 특수전 교육을 받은 교관은 모두 전출되고 부대 성격과 무관한 일반 장교가 부임하였다. 즉, 영화상의 교관과 부대원간의 관계는 모두 영화적 상상에 의한 허구이다.[34]
- 조중사의 육지 방문 - 영화에서는 부대 해체를 중지해달라는 청원을 이유로[35] 본부에 출장을 간 걸로 나와 있지만, 실제로 조중사의 모델이 된 김방일 소대장은 인천으로 부상당한 어민의 문병을 갔다 돌아오는 길에 약혼자의 친척들을 만나기 위해 하루 늦게 복귀한 것이다.
- 부대장의 사망 경위 - 영화에서는 교육대장(안성기)이 권총으로 자살하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자고 있던 부대장을 당번병이 망치로 때려 살해했다. 이 부분이 문제가 되어 실제 교육대장의 유족이 영화사를 상대로 고소하기도 하였다.
- 버스 탈취 후 행적 - 영화에서는 버스 탈취 후 바리케이트를 세운 진압군과 한차례 교전 후 서울로 향하지만 당시 실제 684부대원이 탈취한 버스에 타고 있었던 고 우문국 화백의 증언(기사)에 따르면 버스 탈취 후 석바위에서 버스가 펑크나자 뒤에 오는 다른 버스를 탈취하여 탑승하였으며, 탑승하자마자 진압군이 사격을 가했다고 한다. 이후 차 내에서도 어디를 향할 것인지 의견이 분분했다고 한다. 또한, 영화에서는 버스에 타고 있던 민간인들을 내보내고 자폭하지만, 실제로는 그냥 다 같이 자폭했다. 때문에 출근하던 시민들이 하루아침에 저세상으로 동행하고 말았다.
- 버스 자폭 이후의 부대원 근황 - 영화에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지만[36], 실제로는 6명이 현장에서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 생존자 전원은 중상을 입은 상태였는데, 그 중 상태가 심각했던 2명은 후송 도중 사망했고 최종적으로 4명이 살아남았다. 그러나 이 4명도 결국 군사재판에서 1, 2심 모두 사형을 언도받고 1972년 3월 10일 사형이 집행되었다.
- 부대원 2명 탈출 후 강간 - 실제 사건 당시 탈출한 인원은 생존자 증언으로는 3명, 국방부 공식 문건에는 4명이었다. 실제 피해자는 보건 교사가 아니라 마을 처녀 2명이었다. 2명은 각각 당시 20세, 17세의 자매였으며 지금은 가정을 꾸리고 정상적으로 살고 있다고 한다.
- 부대상징물의 위치 - 인골(人骨)로 장식한 '우리의 신조'는 영화에서는 교육대장(안성기)의 사무실 벽에 있지만 실제로는 체력단련장 옆에 있었다.
5 이야기 거리
허준호는 영화 실미도에 2번이나 캐스팅 되었다. 2000년 김호선 감독이 제작한다고 했을 때 출연 제의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역할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부대원이 주인공인 영화이지만 명령대로 따른 교관들을 대변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조중사역을 선택했다고 한다.
영화내용이 주로 북파부대원들의 훈련내용인 만큼 체력적으로 힘들 수 밖에 없었는데, 출연자 모두 많은 운동으로 준비를 단단히 했다고 한다. 특히, 가장 고령인 안성기는 영화 출연제의를 받을 때부터 꾸준히 운동을 했는데 이미 이 사람은 이전부터 근육질을 꾸준히 유지했었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37]
영화 제작발표회 당시 영화 성공기원 고사를 겸해 실미도 부대원 추모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영화가 완성된 이후에도 영화 완성을 기념하며 실미도를 찾아 위령제를 지냈다.[38]
영화의 주 무대가 되는 '실미도 부대' 세트장은 10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완공되었다. 섬에서 섬에 위치한 산으로 촬영장비를 옮기는데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CH-47 헬리콥터를 이용하였다고 하는데 사실은 삼성항공에서 임대중이었던 Mi-26이었다.이건 실미도 DVD의 스페셜 에디션 DVD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링크 .애당초 CH-47이 세계최대의 헬기일 리가 없다. 물론 영화 관련 언론에서는 전부 시누크라고 베껴표기하였다.
촬영이 완료되자 무허가 건물임을 이유로 관광지 가능성을 무시하고 모두 철거해 버렸다.이 무슨 뻘짓이란 말인가 무슨 짓이긴? 탁상행정의 결과물 짓이지. 만약 무인도라는 이유로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놔두었다면 지금쯤 엄청난 관광명소가 되었을 것이다. 영화는 한국영화 최초로 천만관객을 동원하면서 관광객이 몰려왔으나 세트장이 죄다 철거되어 뭐 볼 게 있어야지...지금은 촬영장이었음을 알리는 안내판만 남아 있다. 이 일로 인해 인천지역 관광수입 증대에 타격을 주었다는 이유로 인천시 중구 부구청장이 직위해제 되기도 하였다. 관광지 만들어놓고 법적 이유로 다 때려 부순격 그야 세트장을 자기가 만든 게 아닌데 자기 승진에 도움이 되겠어? 승진에는 도움안됐지만 강등에는 도움됐다.
버스 탈취 장면에 사용된 버스는 영화 스피드에 사용된 것과 같은 것으로, 각각 2억원을 들여 2대를 특수제작하였다. 또, 버스운전사역의 연기자는 영화의 무술감독이었다.
주연과 조연이 모두 남자라서 여자의 비중은 사실상 없다. 그나마 비중이 있는 배역으로 강인찬의 어머니와 강간당한 국민학교 여교사가 등장하지만 둘 다 대사는 없다. 그런데 버스 안의 인질중 어머니역의 연기자가 여자배역 중에서는 유일하게 대사가 있다.[39] 2005년 추석특집으로 MBC에서 방영하였는데 이 장면 때문에 명절날 부모님을 비롯해 많은 친척이 모여 함께 TV를 보던 시청자들은 간담이 서늘해졌다고 한다.
박중사의 갑작스런 인간성 변화는 감독의 의도였다고 한다. 다만, 감독 스스로도 이것을 관객이 이해해줄 지 의문이었는데 감독의 딸이 인상깊게 보았다는 평을 하자 그대로 간 것이라고 한다. 또 박중사가 최초로 폭력을 쓰는 장면에서 폭행당하는 조교 역할은 실제 박중사(이정헌)의 대학 후배였다고 한다.
교육대장(안성기)의 시계가 시대배경과 다르게 요즘 물건이라 옥에 티.
강원도-부산광역시-인천광역시-실미도-제주특별자치도-부안군-파주시에 이르는 7개월간의 장거리 로케이션을 감행해야 했다. 또한, 수중침투 장면은 지중해 몰타 MFS 스튜디오, 겨울 훈련 장면은 뉴질랜드에서 해외촬영 되었으며 각각 7억원, 5억원에 이르는 경비가 소요 되었다.[40]
명대사로는 나를 쏘고가라[42]와 비겁한 변명입니다[43]가 있다. 마이너 하지만 내가 왜 이름이 없어?! 나 한상필이야~!!도 꽤 유명하다.[44] 촬영 전에는 부대원들의 대사를 북한 사투리(서북 방언)로 하려고 했지만 취소되었다.
역대 한국 개봉영화 최초로 전국 1천만 관객을 넘긴 영화이다. 최종 관객 집계는 전국 1108만 관객으로 2024-12-05 07:26:55 현재 역대 흥행 14위이자 한국 영화론 13위이다.[45] 또한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자 전국에 실미도 바람이 불어 실제 실미도 사건에 관한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당시 영화 관람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돼있던 중년남성들을 극장으로 향하게 만들어 화제가 됐다. "'실미도'에 천만 불러들이나-중년남성 관객이 움직이다 실제로 당시 극장에서는 40~50대 중년남성 관객들이 숨죽인채 몰래 폭풍눈물을 흘리고있는 진풍경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영화 촬영에 사용된 소품용 총기가 밀반입된 실제총기로 밝혀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영화 소품용 총기는 공포탄만 발사되고 실탄은 발사할 수 없도록 총구에 초크라는 부품을 영구적으로 고정해서 총구를 좁혀야 하는데, 해당 총기들은 초크가 빠질 수 있는 상태여서 불법이었다는 것이다.
조용필이 부른 테마곡인 '태양의 눈'도 꽤 좋은 노래이다. 다만 가수 실력이 실력인지라 실미도라는 사건에 맞게 매우 장중하면서도 빠와가 넘치는 노래인지라 고음부가 꽤 많다. 이로 인해, 해당분야에서 전설로 평가되는 중학교 동창들이 한 영화에 관계되는 희소성이 생겼다.
북한 군가인 적기가를 부르는 장면이 등장한다. 북한 군가라지만 1880년대에 영국 노동가요에서 출발, 1920년대 일본 사회주의자들을 거쳐 조선인 사회주의자들에게 퍼진 꽤나 유서깊은 노래이기도 하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남한 운동권 학생들에게서도 제법 불려지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당시 가사는 북한 군가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이 걸 보다 나름 대학시절 추억에 잠겼다고 내 입으로 말 못해[46]
MBC에서 방영했을 때에는 적기가를 무음처리하여 방영했다. 실제로 북파되면 북한군으로 위장하기 위해 북한군의 군가를 배웠다. 또한 제식훈련도 국군식과 북한식 2가지를 함께 배웠다. 이 장면이 문제가 되어 부대원들이 공산주의를 찬양하는것으로 묘사했다고 하여 유가족에게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47]
아무래도 이 영화가 다루는 사건이 상당히 민감해서인지, 법적분쟁이 많이 일어났다. 대법원 판결1,고등법원 판결,다른 문제로 판결
OST 중 가장 유명한 곡인 '684부대'.
OST 중 작곡가 이지수가 만든 1968년 1월 21일이 한스 짐머가 작곡한 영화 The Rock의 OST 중 하나인 The Chase란 곡의 일부분을 표절했다.#
실미도의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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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록의 OST(1분 39초 부터 들어보자.)
실제로 들어보면 대충 들어도 상당히 유사함을 알 수 있다. 알려지지 않은 영화도 아니고 대히트한 헐리웃의 영화 OST를 표절하여 천만관객이나 동원한 영화에 삽입한 건 흑역사 중의 흑역사. 다만 영화 OST, 특히 BGM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 많은지 그냥 묻혔다(...) 뭐 물론 일반인들은 두 영화를 여러번 감명깊게 보지 않은 이상 브금이 닮았다는 걸 눈치채기 어렵지만...
어디가 표절이라는건지 모르겠다
일본에서는 1년 뒤인 2004년 6월 5일에 개봉했으며, 일본판 타이틀은 SILMIDO 실미도(SILMIDO シルミド).
공무원단기학교 한국사 강사 신영식이 단역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원균옹호론을 강의에서 박정희 정권 피해자라고 하는데, 정작 이 영화는 실미도 사건의 주범인 박정희를 사실상 미화하는 형국이란 점에서 한국공군이 이젠 그 조장으로 모시려는 노백린의 외순주로서도 무슨 생각을 할까란 의문이 든다.- ↑ 1968년 4월 창설되어 684부대로 칭하게 되었으나, 7월 7일에 정식 창설되었다.김일성 암살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목적으로 하는만큼 행운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행운의 숫자 7이 겹치는 7월 7일에 다시 정식으로 창설되었다.
- ↑ 그래서 기간병들이 훈련병과 달리기에서 밀리는 장면도 나온다.
- ↑ 점점 푸대접화하는게 영화가 진행될수록 드러난다. 특수부대원들이 실미도에 갓 들어왔을 때 식사는 그야말로 푸짐하게 쌓인 쌀밥에 반찬 역시 양도 많고 한사람당 삶은 닭이 한마리씩 돌아갈 정도(6~70년대라는 시대상에 맞게 연병장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식사를 하는 공군 기간병들과 간부들에게 배식된 것들은 보리밥에 똥국, 김치와 나물류가 전부다.)로 어마어마한 양과 질을 보여줬으나, 화해무드가 조성된 이후부터 특수부대 분대장이 급양병에게 짜증을 내며 밥을 더달라고 할 정도였다. 물론 하릴없는 작전지연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있겠지만 급양병 曰 "뒷사람도 먹어야지..." 발언과 다른 특수부대 분대장의 "내가 좀 덜먹을테니까 더 줘라" 라는 발언을 생각하면 보급이 부대 창설 초기보다 줄었는게 확실하다.
- ↑ 극중 훈련 장면에서 이런 변화가 드러나는데, 훈련 초반의 구보 장면은 기간병들이 앞서 뛰어가고 특수부대원들은 기진맥진하면서 제대로 뛰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중반 이후에는 아예 완전군장에 총기 휴대하고 뛰는 특수부대원들을 T셔츠 차림의 기간병들이 간신히 쫓아간다. 게다가 중반부 작전이 취소된 후에 사격 훈련을 하는데 대충 쏘는데도 머리, 가슴, 거시기(...)를 백발백중으로 맞추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애초부터 이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투입된 이들도 공군에서 고르고 고른 특수부대 출신들임을 감안하면 더 무섭다. 그리고 기간병들이 선제공격을당했다는 점과 이들의 무장은 M1 카빈이었을때 특수부대원들은 AK 47을 들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해야한다.
- ↑ 당시에는 오늘날 현 본사라 해도 바로 옆이기에 사실상 엮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 ↑ 극중에서 교육대장이니 그러려니 하겠지만 안성기는 실제로도 장교출신이다. 학군 12기 예비역 육군 보병중위.
- ↑ 이것 때문에 중앙정보부 오 국장은 최재헌 준위에게 부대원들을 살려두려는 것이 사적인 복수를 위한 것이 아니냐고 몰아가기도 한다.
- ↑ 특히 원희가 조돈일 중사에게 많이 얻어맞았다.
- ↑ 열렬한 부대 해체 찬성파였던 박상근 중사가 최재헌 준위에게 출장이라는 핑계로 반대파였던 조돈일 중사를 공본으로 쫓아내 두자고 건의한 것이다.
- ↑ 주연급 인물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유명세가 덜한 배우라서 잘 모르는 경우가 많지만, 가수 '소찬휘'의 (예비)남편이었다. 2014년 결별했다.
- ↑ 최재헌 준위는 그의 사형 판결에 대해서 애초에 아버지가 저지른 일만 아니었으면 무기징역 정도로 그쳤을 것이라는 말을 한다. 인찬의 이런 배경을 두고 작중에서는 대놓고 연좌제를 언급하기도 한다.
- ↑ 그래, 뼛속까지 빨갱이 아니면, 끼고 살던 마누라 퍼질러놓은 자식새끼가 어떻게 살건지 한번만이라도 생각했다면, 그렇겐 못하지. 그 새끼 찾아가서, 머리통에 구멍내서! 빨갱이 피는 어떻게 따는건가 내 눈으로 꼭 볼거야. 그거 볼려면, 죽을 수도 없고 물러설 수도 없어! 알어? 그래, 독종이라서 죽어지지도 않더라. 차라리 죽여주고나 가지. 지가 목숨 바쳐 충성하는 위대한 수령 아바이, 모가지 따서 그 새끼 얼굴에 들이 댈려면 나 평양 가야되! 알어?"
- ↑ 초반에 교수형 당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극장 개봉당시에는 교수형 집행당시 교도관이 교수대 밑에서 몰래 그가 죽지 않도록 다리를 받치고 있는 장면이 있었다. 비디오로 나오면서 편집된 듯.
- ↑ 가장 나이가 많은 듯 하다. 실제 부대원중 가장 나이많은 대원은 38세였다.
- ↑ 이건 다른 부대원들과 기간병들도 차이는 있지만 마찬가지여서 자신을 담당한 통신 막사의 병장 기간병을 죽이기 싫다고 한 부대원도 있었고, 기간병들 역시 자신이 담당한 부대원을 각자 처리하라는 명령에 계속 이의제기를 했다. 교전이 일어난 후 부대원들이 바다로 도망치는 기간병들을 쏘면서 욕설과 함께 미안하다
X발는 말을 읊조리는 장면도 있었고... 아예 기간병을 죽이지 않고 숨는 모습을 일부러 못 본체 하거나, 부상만 입혀 전투 불능으로 만드는 식으로 살려준 부대원들도 있었다. 물론 실제로 살아남은 기간병들은 바다로 도망치거나똥통 같은 데에숨어서 살아남았다. - ↑ 숫총각인데다가 여자도 없는 무인도에서 몇 년을 있다 보니까 발정이 난 듯 하다. 작전이 취소된 이후 군기와 긴장도 어느 정도 풀려있는 상태였을 테니 더더욱.
- ↑ 원희가 잡힌 뒤 교육대장이 공개적으로 부른 죄명은 '탈주', 민간인 강간', '명령 불복종' 이었다.
- ↑ 이때 작렬한 명대사로
적토팔았어젖도 빨았어가 있다(...) - ↑ 그런데 원희가 어그로를 끌고 있는 동안 보여졌던 인찬의 표정과 인찬에게 당하고 나서 미소를 지으며 죽은 원희의 모습을 볼 때 빨리, 편히 보내주기 위해 일부러 죽인 것 같기도 하다.
- ↑ '여기서 다시 감방으로 쫓겨가서 오늘 매달리나 내일 매달리나 걱정하면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조 중사님!' 이라는 대사를 하는데, 이로 미루어보아 사형수 출신인듯 하다.
- ↑ 실제로 화장실 밑으로 들어가 목숨을 건진 기간병 김태수씨가 모티브인 듯하다.
- ↑ 실제 부대원들의 평균 나이는 30세였고, 가장 어린 대원은 21세였다고 한다.
- ↑ 이 배우는 부패정치인 전문배우이다. 여인천하에서의 윤임이라든지 스포일러라든지, 또는 시티헌터의 이경완도 있고...
그런데 불멸에서는 도라에몽한테 능욕당한다. - ↑ 실미도 사건이 간접적으로 그려진 야망의 전설에서도 만악의 근원으로 등장한다. 거기서는 탈주한 실미도 부대원에게
응징살해당한다. - ↑ 재미있게도, 심영 역의 김영인도 드라마 그녀가 돌아왔다 1화에서 육군 중령 역을 맡은 적이 있다.
- ↑ 그 의사양반 실존 모델로 강하게 추정되는 인물이 백인제 박사인데, 그 수제자로 유명한 인물은 장기려 박사이다. 헌데, 80년대 이후 주변인들의 증언에서 빼먹지 않고, 많은 관련을 맺고 있는 이가 유한양행 창업주 유일한회장 여동생인 유순한이다.
- ↑ 오라는 곳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갈 데가 있는 것도 아니고...하는 대사를 통해 부대원들이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한 인생'이었다는 인상을 심어준다.
- ↑ 충청도 옥천의 한마을 청년 7명이 중정(혹은 공군)에서 설득하여 소집한 것으로 밝혀젔다. 입대 사실을 비밀로 했기 때문에 모두 행방불명 상태였다고 한다.
- ↑ 적지에 침투한 후 일어날 수 있는 여러가지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실제 부대원들이 버스를 탈취해 서울을 향해 가던 중 버스기사가 도망치자 버스운전 경험이 있던 부대원이 대신 운전하였던 것으로 미루어봐도 임기응변을 위해 여러 방면의 이력이 있는 인원을 소집한 것은 설득력이 있다.
- ↑ 사실 정확히 말하면 영화에서 사용된 것은 중국제 AK-47인 56식 보총이다. 이는 영화에 사용된 총들이 미국에서 들어왔기 때문이며(밑에도 나와있지만 사실 실총이었다.), 소련, 러시아가 냉전 때 미국에 무기를 수출하지 않았기에, 미국 영화에서 사용되는 AK-47도 대다수가 중국제나 동유럽제이다.
- ↑ 수영을 잘하던 인원이었고 폐에 물이 차있지 않았다.
- ↑ 작전의 정식 명칭은 '오소리 작전'이다.
- ↑ 김일성 암살에 성공하면 북한에게 전면전의 명분을 주는 것으로, 이미 베트남 전쟁을 치르고 있던 미국에게 또다른 전쟁은 늘어나는 전비와 전투병력 부족으로 인해 부담으로 작용하게 된다. 실패하더라도 푸에블로호 피랍사건 승무원 귀환협상에서 불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 ↑ 소대장 1명이 잠깐 육지에 있던 사이 탈출한 정황은 일치함.
- ↑ 부대원 정리를 반대한 조중사를 제외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 ↑ 조 중사의 절규 직후에 이어지는 결말부에서 중앙정보부 정보요원이 타자 치는 장면을 통해 빠르게 언급되긴 한다. 자폭 당시 묘사만 놓고 보면 전원 사망한 것처럼 보이지만, 타자 내용은 실제 생존자가 있었던 현실을 반영해서인지 간략하게 두 줄 정도가 언급된다. "탈주범들은 대부분 현장에서 폭사하였고 생존자는 현장에서 체포, 군법에 의거 군 특수범으로 분류되어 사형집행."
- ↑ 그가 액션배우가 아니라서 그런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그의 윗몸을 봤더라면 상당수 근육질을 자랑했다. 이는 80년대 후반부터 운동을 시작하여 꾸준히 유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90년대 중순에는 일본 영화 잠자는 남자(眠る男)에서 제목처럼 종일 잠만 자는 남자로 대사없이 나온 적도 있는데, 당시 감독(오구리 코헤이)에게 근육질 몸매를 호평받은 적이 있다.
- ↑ 이때는 바람이 너무강해 배가 섬에 들어갈수 없어 섬이 보이는 곳에서 지냈다.
- ↑ 우는 아이를 달래며 조용히 해와 겁을 먹으며 우리 안 죽일거죠라는 대사가 있다. 물론 그 외 검열삭제당한 여교사의 신음 소리(…)와 버스에 있던 인질 중에 여학생(참고로 이 여학생을 맡은 배우가 탤런트 정유미다.) 비명 지르는 소리는 있다. 참고로 이 여교사 역을 맡은 배우는 정지연으로 전형적인 단역배우다. 그런데 인터넷을 찾다보면 아직도 연관 검색어에 실미도 여교사, 실미도 간호사 등이 있다.
- ↑ 부대원역의 70명 이상의 인원이 모두 함께 이동한 것이다.
- ↑ 여담이지만 이 장면을 찍을 때 스텝들이 가짜 폭탄이라 전혀 뜨겁지 않을 거라고 하며 배우들을 안심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현시창배우들은 전원 상의탈의 상태였기 때문에 폭탄이 터지자마자 앗 뜨거!를 외치며 달려나갔다고 한다.(...) 눈밭에 구르는 장면도 사실 없었는데 등을 식히기 위해서 다들 굴렀다고(...) - ↑ 국내 한 TV예능프로그램에서 홍경민이 성대모사를 한 후 더욱 유명세를 탄 대사이다. 사실 당시 홍경민의 성대모사는 웃겨야겠다는 부담감 때문인지 안성기의 원래 목소리와는 거리가 먼 지나치게 희극투의 괴이한 목소리가 나왔고 홍경민 본인도 바로 "아 이건 아닌데"라고 중얼거렸으나 그게 그거대로 빵 터져서 좌중을 뒤집어놓는 바람에 한동한 본 대사보다 더 유행했다.
- ↑ 원래 시나리오에는 없는 대사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펴낸 2003 한국 시나리오 선집에 실미도의 오리지널 시나리오가 실려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 ↑ 외치면서 허공에 소총을 갈기는 장면이 꽤나 인상적이다.
- ↑ 참고로 외화는 아바타가 2009년에 처음으로 1330만 명으로 천만 관객을 넘겼으며 이후 2014년에 1028만명을 불러들인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두 가지 경우 뿐이었으나 이후 어벤저스 2랑 인터스텔라가 외화로서 1000만 관객을 넘겼다.
- ↑ 감독의 말에 의하면 원래는 김일성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하려고 했으나 많이 순화해서 적기가로 바꾼 것이라고...감독은
예술과 정치도 구분 못하는 무식한 작자에게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조치 당했지만 이적의 인식이 없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적기가는 전세계 공산주의자들의 혁명 찬양가이다. - ↑ 훈련병을 살인범, 사형수 출신으로 묘사했다고 명예훼손 소송도 함께 걸렸으나 무혐의 처리 되었다. 감독이 참고한 자료에서 훈련병중 일부가 전과자였음을 밝히고 있어 전체를 살인범으로 묘사해도 할말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