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대의 무덤 양식
거석을 이용한 대표적인 무덤양식이자 석조 구조물. '고인돌'이란 명칭은 고- + -이-(수동) + -ㄴ(과거) + 돌의 형태로 만들어진 순우리말이다. 풀이하면 '故人돌', '돌을 괴어서 만든 것', '괴인 돌'이다.[1] 한자어로도 비슷한 의미로 支石墓(지석묘)라고 한다. 돌 괴어서 만든 무덤. 영어로는 dolmen이라고 하는데, 고인돌의 재료와 용도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공교롭지 않을 수가 없다. dol로 만들어서 men을 묻는 데 쓴다는 거지
당시 거석을 옮길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었던 군장 집단의 등장을 알려주는 유물이며, 신석기시대 이래 유행한 거석 숭배 문화와 연관성을 찾는 경우도 있다. 대한민국 등 동아시아의 경우에는 대체로 신석기시대 후기에서 청동기시대 사이에 나타나나, 유럽과 아프리카 등지의 고인돌은 그보다 앞선 기원전 4000 ~ 5000년의 건축물로서 존재한다. 현재 인정받는 세계 최고(最古)의 고인돌은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에 존재하는 고인돌이다.
의미가 확장되어 선사시대의 대명사처럼 쓰이기도 하는데 사실 이는 아래 항목을 비롯하여 선사시대를 중심으로 한 게임에서 비롯된 바 크다. 한반도에서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정의에 따라 선사와 역사 두 시대의 경계선에 놓여 있기는 한데… 따지자면 선사시대 쪽에 가깝다.
전세계 고인돌의 40%는 한반도에 위치한다.
1.1 용도와 제작법
고인돌 밑에는 무덤이 있는데 왠지 '무덤'보다 '거석 구조물'의 인상이 더 강하다. 대개 위에 돌널무덤 형식으로 방을 만들어 사람을 매장하고 그 위에 굄돌과 고인돌을 쌓는다. 다만 전부 무덤방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묘표석, 제단 등으로 만들어진 고인돌도 있다. 기사 사진
몇몇 아주 운두가 높은 고인돌들은 대체 어떻게 만들었는지 의아해지는 조합을 이루지만, 실은 간단한 원리로 만들어진다.
알기쉽게 어린이용 학습백과(출처(zum 학습백과)로 설명해보면,
받침이 되는 돌을 세우고,
그 받침이 덮힐 정도로 완만한 흙 경사로를 만들어,
통나무 굴대 같은 것을 깔아 인력을 동원해 경사로로 끌어올려 올린 뒤
흙 경사로를 파내면 끝.
현존하는 고인돌들의 접접면을 봐도 그 당시 끼인 흙 층을 발견할 수 있다. 전세계적으로 발견되는 선사시대 거석 유적들도 거의 대부분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다. 마법이나 초고대문명설 같은 게 아니다! (참고로 저 그림에는 큰 오류가 있다. 고인돌이 만들어지던 시대는 이미 원시인같은 생활은 벗어난 뒤기 때문에 저런 타잔같은 옷과는 거리가 멀었다. 비단 저 그림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교육용으로 제작된 많은 고인돌 그림의 사람들이 원시인으로 묘사되고 있고, 심지어 지역에서 하는 고인돌 축제에도 당연한 듯 타잔 옷을 입고 재연하는 걸 보면 고정관념, 편견이라는 것이 참 무서운 것이다.) 일하느라 웃통 깐거지 뭘[2]
21세기에 들어서서는 상대방의 옥수수를 털어 고인돌을 세우는 기법도 나타나는 듯 하다.
1.2 한국의 고인돌
유네스코 세계유산 | ||
파일:Attachment/unesco-worldheritage.png | ||
이름 | 한글 | 고창, 화순, 강화의 고인돌 유적 |
영어 | Gochang, Hwasun and Ganghwa Dolmen Sites | |
프랑스어 | [3] | |
국가·위치 | 대한민국 전라북도 고창군 전라남도 화순군 인천광역시 강화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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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재유형 | 문화유산 | |
등재연도 | 1997년 | |
등재기준 | (iii)[4] | |
지정번호 | 977 |
한국에서는 청동기시대에 많이 만들어졌는데, 전 세계 약 6만여기의 고인돌 중 남북한을 합쳐서 약 3만여 기 정도가 한반도에 있다고 한다. 때문에 일부 동네에서는 집을 지으려고 보니까 무지막지한 돌덩이가 막고있고 치우기도 너무 크고 해서 그냥 안에두고 지은 뒤 알고보니 고인돌이더라하는 집도 더러 있다 ( 세상에 이런일이 등에 더러 소개되곤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남한의 고인돌은 대부분 전라남도 지방에 집중되어 있다(고대에는 한반도니 하는 경계가 구체적으로 확정되지 않았으므로 이렇게 보는게 더 정확하다는 견해도 있다). 지역별로 보자면 강원도에 338기, 경기도 502기, 충북 189기, 충남 478기, 전북 1597기, 전남 1만 9068기, 경북 2800기, 경남 1238기, 제주 140기로 거의 대부분의 고인돌은 전남에 집중되어 있다.[5] 최근 춘천 중도에서 대규모 유적지가 발굴되어 여기에 101기가 더 추가되었다. 여기에 북한이 주장하는 고인돌 수를 합하여 3만여기라고 하는 것. 그리고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산수리에, 세계에서 제일 크다고 추정되는 고인돌이 있다. 그런데 가로 길이가 8.75m에 이르는 황해도 은율군 고인돌에 비해 15cm 정도 짧다고 하니, 율촌면의 고인돌은 남한 최대의 고인돌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여수시 율촌면 산수리 왕바위재 고인돌(가로 8.6m, 세로 5.8m, 높이 2.1m)
참고로 서울에도 고인돌이 꽤 있었다고 한다.하지만 도시 개발이 급속히 진행되는 과정에서 고인돌이 거의 멸실된 것으로 보여진다. 정릉동, 개포동(4기), 개포동 대모산, 우면동, 양재동(6기), 원지동(16기), 고척동 등에서 존재하였으며 그중 원지동 고인돌은 1984년에 16기가 관련유물과 함께 발견되었으나 보호시설물과 안내판의 설치, 문화재지정등 아무런 보호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는 대부분 멸실된 것으로 보인다. 서울 외에도 적극적 보호를 하지 않는 이상 멸실되는 경우가 많다. 농경지에 위치한 경우 경작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구석으로 치워버리거나 조경용으로 판매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 크기가 크다보니 꽤 비싼값에 사간다고 한다. 또한 잘 다듬은 돌은 집 지을 때 주춧돌 등 석재로서도 가치가 있기 때문에 역사시대에 이미 석재로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크다. 충청, 경기도 일대의 주거 유적은 많이 나오는데 분묘유적이 적기도 하고...
과거에는 석붕(石棚)이라 불렀으며 많은 관심을 끌고 있었으나 실증주의적 고고학이 대두하기 전까지는 흥미의 대상이었을 뿐 체계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여기에 더해 연대 자체가 오래된 점, 탁자식 고인돌의 경우, 매장부가 지상으로 드러나 있어 도굴이나 유실의 위험이 큰 점 등 여러 이유로 유물 등이 잔류하는 경우가 적기 때문에 연구하기에 아쉬운 점이 있다. 다만, 무덤의 수효 자체가 많아 자잘한 발굴은 계속되는 중.
고인돌이 동네사람들이 취미생활로 만들 수 있는 물건은 아니기 때문에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고고학적으로 한반도 남해안에 있었던 세력이 진나라(秦) ~ 전한 초기의 중국과 교류한 흔적이 나오므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밖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특히 전남(특히 영산강 인근) 지역의 경우 고인돌 → 독무덤 → 장고형 무덤(전방후원분)으로 이어지는, 묘제마다 떡밥인 양식으로 이어지는 지라 의미가 더 깊다. 정확히 말하면, 전남 지역의 역사는 5세기 중엽까지 삼국사기 - 삼국유사에서는 공백 상태인 반면(삼국사기상 3세기의 일인 포상팔국의 난에 대해 삼국유사에서 나주에 위치했다는 보라국/발라국을 언급하는 것 정도밖에 없다), 최근에는 진서 장화전의 '동이마한신미제국', 일본서기의 '침미다례(심미다례)'와 근초고왕의 남정을 중심으로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여기에 고고학적으로 5세기까지 독자적으로 유지되던 영산강 유역 독무덤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이 지역을 흔히 알려진 '마한'으로 묶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심하다.
물론, 이스터 섬의 모아이 사례에서도 보듯이 큰 돌로 뭐 좀 만들어놨다는 것 하나만으로 엄청난 고대문명이 발전해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전남에서 모헨조다로 유적처럼 목욕탕이나 하수도시설이 나오면 모를까 2000년 유네스코가 강화군, 고창군, 화순군 지역의 고인돌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남한 최대의 고인돌(강화도 부근리의 고인돌(사적 137호)은 뚜껑돌만 해도 길이 7.1미터, 폭 5.5미터, 높이 2.6미터에 달하는 흑운모 편마암으로 추정무게 80톤으로 남한 최대의 것이다. )을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 800명 규모의 장정이 있는 집단이 있어야 한다는 구상이 나온다. 해외 학자들의 연구와 실험에 의하면 둥근 통나무 위에 약 1톤 무게의 돌을 올려놓고 옮기는 데에는 약 10명의 성인 남자가 필요하다고 추정한다고 한다. 800명이면 현대의 군대로 따지면 2개대대(8개중대)정도의 규모 관련 논의
그러나 최근 지리학계의 연구에서는, 고인돌이 대부분 산비탈에 위치한다는 점(혹은 과거 비탈이었던 곳), 장축의 방향이 대부분 경사방향과 일치한다는 점을 들어 풍화현상에 의해 지표에 노출된 거석들이 솔리플럭션 현상에 의해 자연스럽게 산정부에서 산록부로 미끄러져 내려오고, 이 경우 돌을 옮길 필요 없이 산의 하단을 약간 파내서 굄돌을 괴기만 한다면 손쉽게 고인돌을 만들 수 있어서(가족수준이 취미로 만드는 것도 가능) 한반도 고인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반식 고인돌은 이와 같이 축조되었을 거라는 학설이 나오고 있다.
당시 트랜드가 고인돌이고 옆동네에 질 수 없다는 이유로(...) 많이 만들었다는 그럴 듯한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1.3 고인돌 종류
- 탁자식 고인돌
굄돌의 밑둥을 지하에 파묻고, 그 위에 덮개돌을 잘 다듬어서 얹은 형태이다. 무덤방이 지상에 드러나있기 때문에 다른 형태의 고인돌에 비해 유물이 적은 편이다. 본래는 굄돌과 함께 두 판석이 직사각형 꼴의 무덤방을 이루고, 덮개돌이 그 뚜껑 역할을 하는 형태이다. 두 굄돌과 덮개돌은 치울 수 없지만 양쪽의 긴 두개의 마구리벽만 치우면 손쉽게 무덤방이 드러난다. 이와는 반대로 다른 형태의 고인돌은 무덤방을 찾기 위해서는 일단 덮개돌을 치워야 하기 때문에 유물이 많다. 과거에는 북방식이라 불렀으나, 남쪽에서도 이와 같은 양식이 발견되며 더는 북방식이라 부르지 않게 되었다. 북한에서는 주요 유적지의 이름을 따서 오덕형 고인돌이라 부른다.
- 기반식 고인돌
지하에 무덤방을 만들어 놓고 네 개의 굄돌 위에 거대한 덮개돌을 올린 형태이다. 탁자식처럼 무게 중심을 맞출 필요가 없으므로 좀 더 다양한 형식을 보이지만 그 가운데 일부가 마치 바둑판과 비슷하다하여 바둑판식 고인돌이라 부르기도 한다. 과거에는 남방식이라 불렀으나, 북쪽에서도 이와 같은 양식이 발견되며 더는 남방식이라 부르지 않게 되었다. 북한에서는 주요 유적지의 이름을 따서 심촌형 고인돌이라 부른다.
- 개석식 고인돌
지하에 무덤방을 만들어 놓고 굄돌 없이 바로 덮개돌을 얹은 형태이다. 대체로 각각 북쪽과 남쪽에 분포하는 탁자식과 기반식 고인돌과 달리, 전국적으로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 뚜껑식 고인돌이라 부르기도 한다.
- 위석식 고인돌
무덤방이 지상에 드러난 형태이다. 다만, 탁자식과는 다르게 여러개의 굄돌이 이글루 벽돌마냥 다닥다닥 붙어서 무덤방의 벽을 이루고 있다. 대체로 6 ~ 8개 가량의 굄돌로 이루어져 있는데 현무암을 사용한 것들도 있다. 무덤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바다에 위치하여 바다에서 죽은 이의 넋을 기리거나, 바다의 풍랑이 적고, 고기가 많이 잡히길 기원하는 목적으로 추정된다.. (제주도의 모든 고인돌이 위석식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는 제주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므로 제주식 고인돌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제주도와 인접한 중국 지역과 멀리 인도네시아에서도 비슷한 형식이 발견된 바 있다. 고창군, 부안군과 그외 호남지방에서도 이런 위석식 고인돌이라 부를 수 있는 형태의 고인돌이 발견되는데, 제주도에 비해서 굄돌이 어느정도 간격을 두고 서로 떨어져 있는 형태이다.
- 탑파식 고인돌
무덤방 위에 두 개의 덮개돌이 겹쳐져 있는 형태.
- 굴석식 고인돌
바위 안을 파내어 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덮개돌을 씌운 형태. 주로 캅카스에 많다.
- 경사식 고인돌
무덤방을 덮는 덮개돌을 두동강내어 반쪽은 무덤방 위에 그대로 걸쳐놓고 나머지 반쪽은 무덤방 벽면에 기대어 놓거나 무덤방 옆으로 밀어놓은 형태.
- 묘표식 고인돌
덮개돌 아래에 중앙무덤방이 있으며, 이 중앙무덤방을 중심으로 그 주변을 돌아가면서 4기의 무덤방이 '卍'자형으로 배열되어 하나의 덮개돌 아래에 모두 5기의 무덤방이 이루어진 형태.
이곳에 들어가면 고인돌에 관한 많은 정보들을 접할 수 있다. 고인돌사랑회
2 고전게임
고인돌(게임) 문서 참고.
3 고전 벽돌깨기 게임
Goindol. 대한민국의 선아전자산업이라는 회사에서 1987년 8월에 출시한 게임. 장르는 알카노이드와 비슷한 벽돌깨기 게임이다. 물론 2번 문단과는 아무 관계 없다. 스테이지 중간에 원시인으로 보이는 캐릭터가 튀어나오는데 뭔가를 마구 던져 게임을 방해하는지라 상당히 귀찮다.
좌측 상단과 우측 상단의 숫자를 쳐 돌려서 일치시키면 보너스 스테이지로 넘어가며, 마치 스페이스 인베이더처럼 슈팅을 하여 벽돌을 제한시간 안에 격파하는 방식이다.
총 100 스테이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100 스테이지를 모두 클리어하면 잠깐의 엔딩이 나오고 다시 첫번째 스테이지로 무한워프된다. 처음 시작할 때 잔기를 5개 주지만, 각 스테이지의 난이도는 매우 높은 편이라 노컨티뉴로는 스테이지 10도 넘기기 어렵다.
4 만화가 박수동의 성인만화
1974년 선데이서울에 연재를 시작했으며, 구석기 시대를 배경으로 성적 코드를 넣은 만화로 코미디를 잘 그려냈다. 몇 가지를 보자면,
주인공이 바다에 빠졌는데 상어가 나타났다. 여자들이 구하려고 했지만 이미 늦어서 상어가 다리를 뜯어먹었다고 절규한다. "어디를 먹혔냐? 라이트? 레프트 아니면 센터?" 라는 여자들 질문에 "센터"라고 답변하자 ,그냥 여자들이 가버린다. |
주인공이 젊은 아리따운 아가씨를 만나서 동굴로 데려간다. 이웃들이 쳐다보자 "나는 그것 때문에 산다!" 라고 외친다. |
밤길을 잃은 주인공이 어느 동굴에 하룻밤을 머물다 갈 수 없냐고 간청하자 홀로 사는 여인이 허락한다. "절대로 저를 건드리면 안됩니다!" 강조하는 여성에게 알겠다고 하여 한방에서 잠을 잤다. 다음날, 그 여성은 정말 예의바르다면서 포장한 선물을 하나 준다. 길을 가던 도중에 이게 뭔가하여 포장을 풀어보니 큼직한 가위가 들어 있었다. |
꽤 인기가 많아서인지 소년 고인돌이라는 만화도 그렸는데 이건 박수동 화백의 감추고 싶은 작품이 되어버렸다. 2000년에 OVA로 나오기도 했으나 알려지지 않았고 지금은 찾아보기도 어렵다.
롯데삼강의 아이스크림 스크류바나 빠삐코같은 광고에 여기 등장인물들이 나온 바 있다.- ↑ 고인돌의 '고인' 부분의 기본형이 되는 '고다'는 사전에는 '괴다'의 경남 사투리라고 나온다.
- ↑ 여담으로 소수설이기는 하지만, 통나무를 굴리고 끈을 썼다는 증거가 없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통나무를 깔자면 당연히 그것을 벨 수 있는 도구가 있었어야 하고 끈으로 당겼다면 그 정도의 인장력을 견딜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기술들이 있었는지 어떤지 지금으로서는 전혀 알 수가 없다는 것.
- ↑ Sites de dolmens de Gochang, Hwasun et Ganghwa
- ↑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
- ↑ 왜 전라도에 많냐고 물으신다면 현대에는 워낙 문명의 혜택을 받는 사람이 많아 잘 모르겠지만 옛날에는 전라도가 최고의 곡창지대였으며 가장 살기 좋은 곳이었다. 아주 간단한 이유. 현재에도 전라도는 최고의 곡창지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