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시/행정

구미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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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미시의 도시형성의 역사

1.1 개요

구미시 지역은 매우 특이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크게 보면 원도심인 송정동(구미시청 소재지)과 부도심인 인동동과 양포동 정도로 구분할 수가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통적인 도시구조와는 확연히 다르다.

보통의 도시들은 서울이나 대구, 대전과 같이 도시의 핵심(도심)을 중심으로 하여 방사형 등의 모습으로 확산된다. 하지만 구미는 도시의 핵심(공단)을 중심으로 하여 발전하였고 동시에 방사형과 같은 기본적 도시의 구조로 발전하지 못했다. 이러한 현상은 몇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다.

첫째로는 도시 계획의 실패로 이야기할 수 있다. 사실상 모든 원인이 이로 귀결되는 중요한 요인이기도 하다. 처음 구미시가 형성되었을 때에는 순전히 구미 강서 안으로만 도시 계획이 잡혀있는 상태였고, 현재 구미국가산업단지 1단지가 있는 곳을 공단으로 조성하고 나머지 서편 일대를 모두 주거지로 조성하면서 현재와는 달리 주거지와 공단이 분리돼 있는 형태였다. 동시에 공단 지역이 도시의 에 위치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예상외로 도시가 발전하면서 구미국가산업단지 역시 성장하게 되었고, 이는 구미 강동 지역으로 주거지가 확대되면서 기존의 도시 계획이 모두 철폐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결국 이러한 결과는 공단 지역이 도시의 핵에 위치하게 되는 결말을 가져오게 된다.

둘째로는 이러한 공단지역의 성장에 인하여. 라고 볼 수 있다. 알다시피 구미시는 오로지 공단 지역에 의존하는 산업 도시이다. 이러한 이유로 공업 단지가 성장하며 주변으로 확대되면서 자연스럽게 대다수의 노동자로 이루어진 주민들을 공단의 주변으로 거주하게 해야 하는 이유가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기존의 원평동 및 송정동, 형곡동 등 몇 동네를 제외한 모든 시가지가 이러한 이유로 준공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공단지역의 성장은 두 가지의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우선적으로 1공단과 달리 나머지 공단들은 더이상 주요 위치에 착공 및 준공이 불가능하였다. 1공단의 경우 대규모 국가적 사업의 일환으로 착공되어, 당시 구미시에서 가장 큰 농업 생산지역이었던 낙동강 평야 일대를 모두 개간하여 준공되었다. 그러나 2공단부터는 그러한 대규모 움직임이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주로 산업단지가 산 속이나 저렴한 임지를 중심으로 조성되게 되었다.[1]

이는 국가적으로 관리되는 절대 농지를 더이상 공업단지로 유치할 수 없다는 정부의 판단에 앞선 것이었다. 즉, 이러한 이유로 위치상 입지가 불리한 곳에 위치한 공단들을 따라서 많은 주거지 역시 상대적으로 입지가 좋지 못한 곳에 착공이 되었다.[2]

이러한 파급효과는 결과적으로는 구미시의 도로망과 시가지가 굉장히 불안정하게 설계되는 원인이 된다.

셋째로는 인프라의 확장적 한계로 볼 수 있다. 애초에 공업단지와 주거단지의 입지가 좋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뒷받침해줄 인프라 역시 절대적으로 좋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아직까지도 구미의 발전에 발목이 되는 부분에 해당한다.

아직도 구미시는 시 전체를 통합하여 아우를 수 있는 상권이 존재하지 않으며[3] 동시에 각 시가지가 서로 통합되지 못하고 독립적으로 움직이게 되면서 시의 방향성 및 정체성마저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즉, 다르게 말하여 구미시가 도시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셈.

결국 이러한 인프라의 한계는 아직도 외지인들이 구미를 방문하면 에게? 이게 40만명 넘는 구미 맞어? 라는 말이 나오게 되는 원인이다. 또한 이러한 인프라의 한계는 구미시가 대구광역시 등으로 인구가 유출되는 원인.

별개로 이러한 입지가 불리한 공업단지와 주거지를 최대한 빠르게 이어주기 위하여. 공업단지와 주거지는 주로 몇 개의 도로에 의존하여 착공되었다. 이러한 경우 확실히 노동자들의 편의성과 접근성을 향상시킬 수는 있으나, 반대로 몇 개의 도로에 의존하게 되니 당연히 도로는 쉽게 정체된다. 심지어 70년대~80년대 쓰던 도로를 아직까지 유지하고 신설하지 않는 탓에 시가지는 확장하는데 기존의 도로들은 이를 커버해주지 못하는 상황까지 연출되고 있다.

1.2 구미 1기 신도시

  • 구미 1기 지구 : 송정동, 형곡동, 신평동, 비산동, 공단동,

구미 1기 지구는 주로 구미시로 승격하며. 구미국가산업단지 1공단이 삽을 뜨게 되면서 신도시의 일환으로 체계적인 도시 계획 안에서 형성된 주거지이다. 그러나 송정동과 형곡동의 경우 그러한 도시 계획의 혜택을 보게 된 지구에 해당하나.

반대로 신평동과 비산동과 공단동의 경우 단순히 노동자들의 편의에 맞추어 공업 단지의 옆에 주로 기업 기숙사 주택의 일환으로 집단 형성되었다.

원평동과 도량동 그리고 지산동은 구미시가 승격한 뒤 차츰 확장되며 발전하였는데, 지산동의 경우는 원래 마을 주민들이 살던 곳이라 크게 발전하거나 하는 등의 변화는 없었으나, 원평동의 경우 구미역이 새롭게 개축하고 본격적으로 영업에 들어가며 새롭게 발전하며 각광받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 지역들은 기존의 주민들이 위주되어 크게 시가지의 형태로 발전하지는 못하였다.

1.3 구미 2기 신도시

  • 구미 2기 지구 : 임오동, 도량동 . 원평동 .

1기 지구가 구미시의 승격과 공단의 형성 초기로 구미시의 출범과 거의 같이 하였다면, 2기 지구는 구미시의 발전과 함께
유입되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새롭게 개발된 지역들을 뜻한다. 1공단이 크게 확장하며 기존의 주거지가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였고, 이에 공단과 밀접한 임오동이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동시에 구미의 원도심에 가까우며 상업중심지에 해당하던 원평동이 포화상태에 이르자, 인근 지역이 개발되기 시작하였는데 원평동에 인접한 도량동이 이에 해당하였다. 주로 원평동이 주택이나 작은 개별 아파트가 중심으로 개발되었다면 도량동은 아파트의 형식으로 집단적으로 개발되었다. 이러한 모습은 1기 지구인 신평동이나 비산동과 얼추 비슷하다.

1.4 구미 2.5기 신도시

  • 구미 2.5기 지구 : 진미동, 인동동,양포동(일부)

구미 2.5기 지구는 칠곡군 인동면의 편입과 함께 구미 2공단이 형성되기 시작한 때를 기점으로 한다. 1공단에 이어 2공단이 새롭게 준공되며 구미의 시가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바로 낙동강을 건너 만들어진 2공단에 의해 그 주변이 개발되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진미동과 인동동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 이 주변에는 인동 장씨 등 꽤 많은 마을주민들이 살고 있었던 지역이라, 쉽게 말해 사람 사는 모습은 갖춘 지역이었다. 하지만 2공단이 건설되며 차츰 도시의 구조를 갖춰가게 된다. 하지만 2공단 자체가 1공단에 비해 작고 그리 큰 영향력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크게 주변이 변화하지는 못했다.

1.5 구미 3기 신도시

  • 구미 3기 지구 : 상모사곡동, 광평동, 고아읍 원호리, 칠곡군 북삼읍, 칠곡군 석적읍

구미 3지구는 구미 3공단이 계획되기 시작하며, 동시에 폭발적인 인구증가현상에 대처하기 위하여 본격적으로 도시개발정책이 구미시 전역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을 때 생성된 시가지를 뜻한다. 3공단이 형성되며 사실상 농어촌지역(구 선산군)을 제외하고 대형으로 개발할 택지는 대부분 사라졌다고 보아도 무방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3기 지구에 건설된 지역들의 특징은 낙후된 지역을 새롭게 단장하였거나, 기존의 주거지에서 산과 산 사이의 좁은 지역을 파고들며 개발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징은 원호리를 보았을 때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산과 산사이 좁은 지형을 따라 일렬로 주택단지가 형성되어 있다. 더불어 원호리와 고아리는 시내 행정동 지역이 아니라 고아읍에 속한 곳이었다. 즉 개발택지를 시내동지구에서는 찾기 어려워졌다는 점도 시사하고 있다. 또한 경부고속도로에 가려져 별다른 개발계획이 없던 상모사곡지구 역시 개발에 착수하게 된다. 앞서 말했다시피 경부고속도로에 의하여 단절된 지역이기 때문에 상당히 교통편이 불편하며, 이 때문에 3기 지구중 가장 개발속도가 둔하였으며 개발은 현재까지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동시에 인구가 증가하며, 이 시기에 드디어 김천을 압도적으로 제치며 경북 서부권 제 1의 도시로 발돋움하게 된다. 즉 구미 자체의 도시기능이 강화되기 시작하였는데, 이러한 모습으로 구미 중앙부에 위치하여 1공단 옆에 존재하던 광평동에 각 종 대형마트과 같은 시설들이 입지하게 된다. 구미 3지구의 가장 큰 변화는 바로 3공단에 의한 구미 강동지역(낙동강 건너) 이 개발이 시작되었다는 점, 강동지역은 차세대 구미의 성장동력으로 성장하기 시작하였고 엄청난 속도로 개발이 진행되었다. 즉 신 시가지로서의 모습을 갖추었으며 구미 강서지역에서 강동지역으로 넘어오는 구미대교를 건너면 전혀 다른 분위기와 풍경을 보여주게 된다. 3공단은 각종 대기업이 유치되며 엄청난 효과를 창출하였고, 자연스럽게 칠곡군 북삼읍과 석적읍에까지 개발 열풍이 들어가게 된다.

1.6 구미 4기 신도시

  • 구미 4기 지구 : 선주원남동, 도량동, 양포동

구미 4기 지구는 구미 4공단과 같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때부터는 단순히 공단에 의존하여 시가지를 형성하기 보다는, 자체적 연담화를 시도하려는 노력이 시도되었다. 이러헌 성과로는 선주원남동과 도량동이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동시에 4공단의 영향으로 양포동 일대가 개발된다.

1.7 구미 4.5기 신도시

  • 구미 4.5기 지구 : 구미시 전체

사실상 현재진행형인 상태로, 현재 구미시에서 추진하는 신도시가 바로 이 시기에 해당한다. 4.5기 지구는 두 가지 이유에서 형성되었는데, 첫째로는 구미 확장단지의 영향 그리고 구미 5공단의 배후지역을 미리 형성할려는 과정에서 기존의 시가지를 연담화하고 강화하는 경우로 볼 수가 있다.

또한 구미 4.5기 신도시의 특징으로 구미시 위기론과 지방 부동산 경기의 급상승에 맞물려 시에서 정책 주도적으로 부동산을 전폭 지원하면서 움직이는 여러 택지 지구를 뜻한다.

4.5기 신도시의 경우 일부 대표적인 지역을 제외한다면 대부분 시가지가 이러헨 혜택을 보고 있는 경우이며. 주로 기존의 노후화된 시가지를 재건축-재개발 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런면에서 기존의 시가지를 재정비하고 연담 및 연계하여 도시 기능을 강화하는데에 주 목적이 있다.

이러한 구미시의 결정은 작년 3월 안건 상정되고 12월 결정적으로 통과된 구미시 2020년 도시 관리계획 및 재정비안에 따른다.

그고아읍의 경우 기존의 오로리 에덴 아파트와 봉한리 금류 아파트 일원이 재정비 대상으로 선정됐으며, 또한 구운 초등학교 일대 지역의 자연 녹지 지역이 해제되었다.

산동면의 경우 두 지역이 재정비 대상으로 선정되었는데. 하나는 확장단지와 5공단 사이의 적림리 일대가 그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동시에 확장단지 역시 대표적인 이 시기의 신도시에 해당한다. 산동면의 두 지역의 경우 기존의 4공단과 새롭게 시행된 5공단 사이의 도시 인프라 및 기능을 강화하는데에 그 목적이 있다.

거의동의 경우 기존의 양포동과 연계한 택지지구로 개발중인 상태이다. 또한 고아읍의 문성과 원호리 그리고 선산읍 교리는 5공단의 배후이면서도 기존의 시가지와 연담한 택지지구로 볼 수 있다.

동시에 상모 사곡동과 구평동의 경우 최근 발표된 택지지구로써. 사곡동의 경우 기존에 허허벌판이었던 구미 주안교회 뒷 편의 벌판이 그 사업대상으로 선정되었으며. 상모동의 경우 구미 상모교회와 상모 고등학교의 산 방향 건너편이 사업대상으로 선정되었다. 구평동의 경우 구평 3지구 택지 조성 사업 [4] 에 맞물리며 그 동안 1지구와 2지구 사이 공터로 유지되던 지역을 불바위지구 라는 이름으로 사업을 진행하기로 결정되었다.

이 역시 기존의 약화된 상모 사곡동 및 구평동의 불완전한 시가지를 연담화하고 기능을 강화하는데 목적이 있다.

마지막으로 인의동의 인동 중학교 주변의 공터들이 모두 사업 대상에 선정되었다. 또한 구포동의 가라골 지역 역시 사업 대상에 선정되었다.

1.8 구미 5기 신도시

  • 구미 5기 지구 : 해평면, 선산읍, 산동면

구미 5지구는 일명 하이테크밸리인 5공단과 함께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사실 아직 5공단이 준공이 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여기에 속하는 대다수 지구는 아직 개발의 삽조차 뜨지 못한 게 사실이다. 우선은 이때부터는 기존의 구미시자체적으로 형성된 시가지와 관련이 없는 지역에 형성될 계획이다. 즉 행정동이나 법정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농촌지역이 그 해당지역들이다.

그나마 선산읍의 경우 교리를 중심으로 일부 도시가 형성될 예정이기는 하다. 산동면의 경우 확장단지가 존재하는 소재지역이기는 하나, 워낙 행정구역이 넓어 직접적 관련은 없을 전망이다.

구미시 도시계획과 발전은 구미공단의 형성과 함께 시작되었고, 꾸준히 그러한 흐름을 보여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구미와 공단을 빼놓고는 이야기가 불가능하다.

2 구미시의 특징

도시는 결국 인구에 비례한다. 흔히 과거 전쟁에서 국가의 힘이 곧 국가의 인구라고 했던 것처럼. 결국 도시학적으로 그 도시가 발전할려면 인구론적인 측면을 고려하는 것은 필수요소에 해당한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결국 도시는 그 땅에 존재하는 인간 공동체에 불과하며. 그 인간 공동체가 커지기 위해서는 그 공동체의 구성요소. 즉 인구가 증가하여야한다

구미시는 전통적으로 약세 지역이었다. 바로 옆 선산인동 이라는 비교적 큰 고을이 존재하였음에 비하여 현 구미시의 전신인 구미읍 지역은 한 마디로 깡통 동네였다.

그러나 구미시는 정말 인구도 없고 그렇다고 마땅하 성장 자원 또는 기반이 있는 것도 아닌. 한 마디로 촌구석에 불과한 동네에 도시를 형성하고 공단을 지음으로써 한 순간에 이 일대가 경북 제 2의 도시로 성장하게 된다. [5] 범 정부적 주도아래 이러한 인위적으로 형성되는 신도시는 성공적은 모델이 되었고. 그 뒤를 이어 많은 산업 도시가 정부의 주도하에 탄생하게 되는 결과가 된다. 어떻게 보면 구미시는 6.25 전쟁 이후 기존의 도시를 재건하는 등을 제외하면 거의 1세대 신도시에 해당하는 셈이다.

흔히 사회 공동체를 생물에 비유하여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인간이 모여 만들어진 도시 역시 비슷하다. 일정 수준의 인프라와 복지. 기반시설을 제공하게 되고, 조건만 충족한다면 도시는 세포처럼 스스로 확장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나. 오히려 구미시의 경우 시가지의 자연스러운 확장이 아닌 시 차원에서 계속하여 택지를 조성하여 확장하는 형상이다.

이걸 달리말하면 계속하여 신도시의 형태로 도시가 확장한다고 볼 수가 있는 것인데. 매우 이례적인 경우로 구미시가 굳이 이런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네가지로 요약이 된다.

첫째로는 구미시를 둘러싸고 있는 개발 제한 및 자연 보존지역이 너무나 많기 때문. 애초에 분지 지형이기에 개발할 수 있는 공간이 그리 마땅하지가 않다. 그러나 개발할 수 있는 공간들마저 개발 제한지역이거나 자연 보존지역에 걸려 개발을 할 수가 없는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 대표적으로는 낙동강 상수원 보호구역과 절대 농지.이렇다보니 개발을 하더라도 민간적 또는 개인적으로 확장하기에는 제한이 생기며. 하더라도 막대한 비용이 수반되기 때문에 오히려 개발 하기 위한 일대를 시 차원에서 집단적으로 택지로 조성하여 밀어버리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게 된다.

둘째로는 도시 계획의 부재다. 구미시의 도시 계획은 여러 차례 변경되었다. 그러다보니 일관성 있는 도시 계획이 불가능한 것. 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초기 구미시의 조성 당시에 있다. 당시에는 경부고속도로의 서쪽으로는 주거지역 그리고 그 동편으로는 공업단지로 하여 시가지와 공업 지역이 확연히 구분되어 계획되었다. 그러나 의외로 폭발적으로 도시가 성장하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이를 수용하기 위하여 기존의 계획을 수정하고 변경하는 등으로 임시방편으로 도시가 확장되었기 때문.

이런 도시 계획의 부재는 도시가 기능을 수행하는데 한계가 발생하고 시민들은 인프라의 부족으로 거주하는데 한계가 발생하게 된다. 동시에 도시 전체가 통합되지 못하고 따로 놀게되는 원인이 된다. [6]

셋째로는 도시 계획의 부재에 따른 인구 수용 불가능 문제이다. 폭발적인 인구 증가를 대처하기 위하여 주택 문제를 민간적 또는 개인적으로 해버리자니 도저히 감당히 불가능했던 것. 그러다보니 집단적인 택지를 조성하게 된 것. 이러한 예로 위에서 말한 1기부터 5기까지의 신도시 구분을 들 수가 있다. 구미시는 늘 구미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하고 여기에 대한 유발 및 고용 인구를 예상하고 거기에 맞춰 수용할 택지 단지를 추가로 조성하는 식으로 도시를 팽창해왔다.

넷째로는 시민의 대다수가 근로자라는 점에 기인한다.

달리 말하자면 오랫동안 시에 정착하여 거주할 인구가 아니라는 점. 그러다보니 자연스러운 도시의 팽창이 거의 불가능한 것이며. 정착 인구가 부족한 점은 도시의 기능과 인프라가 타 도시에 비하여 열등하기에 일어나는 문제이다. 이는 다시 2번의 문제로 돌아가는 논지이기도 하다. [7]

또한 근로자 인구가 많기에 공단과 주거지역을 빠르게 연결할 필요가 있었다. 즉 접근성을 향상 시켜야 할 이유가 있던 것. 그러다보니 도로축을 중심으로 개발하는 선형 도시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네 가지의 원인이 합쳐지는 재밌는 도시 환경이 연출된 것.

3 구 구미시 지역

3.1 구 선산군 구미읍 지역

국회의원 선거구는 갑(甲)구이다.

3.1.1 공단1동, 공단2동

공단1동 주민센터는 한국폴리텍6대학 구미캠퍼스 뒷편, 공단2동 주민센터는 구미파라디아아파트 건너편 한일빌딩 뒷편에 있다.
관할 법정동은 공단동이다. 인구는 10,927명(공단 1,2동 포함. 2015년 11월 통계.)
국가산단 1단지가 공단1동과 공단2동에 걸쳐 있지만 지금은 많이 쇠퇴해서 낙후되었다. 공단동이 조성되기 전에는 자연부락이 전무한 모래벌과 전답만 있었다. 인구 증가로 1990년 1월 1일 공단1동과 2동으로 분동되었다. 공단1동에 있는 공단본부라는 지명은 한국산업단지공단 대경권본부가 이 동네에 있어서 유래되었다. 공단2동에 주거지가 있는데 오래된 아파트가 많고 한창 산업화 초기 때 개발된 곳이라 이제는 재개발 필요성이 매우 필요한 곳이다. 그나마 1공단 혁신재생산업 선정으로 많은 부분에서 개선이 이루어질 예정이라 기대해 볼 만하다.

3.1.2 광평동

주민센터는 광평푸르지오2차아파트 옆에 있다. 인구는 5,090명(2015년 11월 통계)
관할 법정동은 광평동, 송정동(일부)이다. 구미시민운동장, 박정희체육관이 있는 곳으로 홈플러스 구미점과 이마트 구미점이 있다. 1990년대에만 해도 한적한 동네였지만 1998년 집중호우+상수도관 파열[8]로 이 동네가 수몰되었었다. 그 후 복구와 재개발을 하면서 예전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상권이 탄탄하기 때문에 최근 개발제한이 풀리며 새롭게 주거지로서 개발되고 있는 지역이 되었다.

3.1.3 도량동

주민센터는 도산초등학교 앞에 있다. 인구는 31,490명(2015년 11월 통계)
법정동과 행정동이 일치하며 1995년 3월 1일 도산동이 지산동과 도량동으로 분동되면서 생긴 동네다.
특징으로는 주공아파트가 드럽게 많은데 1주공부터 해서 5주공 5단지까지 총 8개 단지가 있다. 이유는 1, 2주공아파트가 붙어있기 때문이다. 구미고등학교, 구미여자고등학교가 있는 생활 주거지로 상권은 약하지만 시내 접근성이 좋다. 구미고, 구미여고 이 두 고교가 구미 제일의 고교라서 나름대로 입지는 있다. 덕분에 도량1동 지역은 PC방은 전멸 공식적으로 동은 하나지만 관습적으로 1, 2주공과 4주공사이에 있는 산을 경계로 비공식적으로나마 도량1동과 도량2동으로 구분한다. 두 동은 빈부차가 꽤 있는데 도량2동은 주공 아파트나 그 외 고가 아파트 단지가 많다. 그래도 최근데 주공 1단지 재개발에 착수하여 아파트 착공 중에 있다. 그리고 도량2동 지역에 롯데리아있는 반면에 도량1동 지역에는 패스트 푸드점 하나도 없다가 2013년 8월 15일 구미고등학교 사거리에 맥도날드가 오픈했다.

3.1.4 비산동

주민센터는 GS창대주유소 옆에 있다. 인구는 4,774명(2015년 11월 통계)
법정동과 행정동이 일치한다. 소규모 중소기업이 많은 지역으로 낙동강을 끼고 있고 금오공과대학교로 향하는 산호대교가 여기에 있다.

3.1.5 상모사곡동

주민센터는 사곡초등학교 서편에 있다. 인구는 30,526명(2015년 11월 통계)
관할 법정동은 사곡동·상모동·임은동(일부)으로 면적에 비해 인구가 적어 1999년 3월 2일 상모동과 사곡동이 합동했다. 주민의 60%가 공단근로자이고 상모, 사곡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인구증가와 개발잠재력을 내재하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가 상모동에 있어서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온다. 또한 이 곳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도로의 도로명박정희로다.#

경부선위험한 간이역사곡역도 이 곳에 있다.

3.1.6 선주원남동

주민센터는 선주중학교, 선주고등학교 인근에 있다. 인구는 47,796명(2015년 11월 통계)
관할 법정동은 남통동·봉곡동·부곡동·선기동·수점동·송정동(일부), 원평동(일부)이다. 이중에서 봉곡동·부곡동·선기동·수점동은 구 선주동, 남통동·송정동(일부)·원평동(일부)은 구 원남동에 속했다. 선기동은 조선 초까지 선산의 전신 일선현(一善縣) 고을의 중심지였다.

1999년 3월 2일 선주동과 원남동을 합동했다.

꽤 많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으며 부곡동에는 구미대학교가 있으며 김천시와 가깝다. 구미시선거관리위원회, 법무부 구미교정교화원, 통계청 구미출장소 등이 있다. 봉곡지구 대규모 택지개발사업이 완료되었고 수점동 집단시설지구 개발사업이 추진되고 있어 향후 도시 인접 최적의 주거환경이 조성될 전망이다.

봉곡동이 새롭게 개발되며 형곡동의 명성을 뺏고 있는 상태이다. 시에서도 공무원들을 적극적으로 이쪽으로 이사하기를 권장하고 있는데 그러다보니 학교당 봉곡동에 거주하는 교사가 상당히 많은 편. 하지만 교통면에서 최악의 지역이며 시내버스가 30분~1시간당 거의 한 대꼴로 잇는 실정이다. 심지어 고속도로도 바로 앞을 지나가지만 IC가 없어 빙 돌아가야하는 상태. 그래서 현재 북구미IC 유치를 주장하고 있는 상태다.

3.1.7 송정동

주민센터는 시청부근 LIG빌딩 옆에 있다. 인구는 18,923명(2015년 11월 통계)
관할 법정동은 송정동(일부)이다. 구미시청, 구미경찰서, 구미교육청, 구미우체국, 한국전력 구미지점 등 중요 기관과 주요 보험사의 지사가 몰려있는 구미시의 중심부다. 즉 구미의 원도심.
전신주가 모두 지중화되어 있어서 전신주가 없다. 대대적 재건축과 재개발이 예정돼 있는 곳이 많고 새롭게 개발되는 곳도 있어 기대되고 있다.

3.1.8 신평1동, 신평2동

신평1동 주민센터는 구미영무예다음아파트 옆, 신평2동 주민센터는 신평초등학교 건너편 누리공원에 있다. 인구는 7,067명(신평 1,2동 통합. 2015년 11월 통계)
관할 법정동은 신평동이며 1978년 2월 15일 이전에는 신평3동까지 있다가 신평1동, 신평2동을 신평1동으로 합동하고 신평3동을 신평2동으로 개칭하였다. 신평2동의 경우 추가로 공단동(일부), 원평동(일부)도 포함한다. 신평1동은 오래된 주거 지역으로 상권은 쇠퇴했지만 시내 방면으로 접근성이 매우 좋다. 신평2동은 롯데마트 구미점이 있는 곳으로 광평동 바로 옆이다. 금오공과대학교가 이전하기 전에는 나름 꽤 상권이 강했었다. 옛 금오공과대학교 자리에는 구미시종합비즈니스지원센터, 모바일융합기술센터가 입주한 상태다.

3.1.9 원평1동, 원평2동

원평1동 주민센터는 금오시장 옆, 원평2동 주민센터는 제2구미교네거리 인근에 있다. 인구는 9,494명(원평 1,2동 통합. 2015년 11월 통계)
관할 법정동은 원평동으로 1963년 1월 1일 구미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6개 동으로 나뉘었다가 1978년 2월 15일 구미시로 승격되면서 1동에서 5동을 합하여 현재의 행정구역인 원평1,2동으로 편제되었으며 6동은 선주원남동에 편입되었다.[9]
원평1동에 구미종합버스터미널이 있는데 왠지 모텔 등의 숙박시설만 즐비하다. 원평2동에 구미역이 있으며 2번가가 있는 시내 상권의 중심지지만 사실 구 인동면 지역이 새롭게 개발되며 잠시 중심상권의 명성을 잃기도 하였으나, 최근 문화로(2번도로)의 차없는 거리 지정과 1번도로의 대중교통전용지구 예정 등으로 다시 그 명성을 찾은 상태다. 이전에는 구미의 광역권으로 꼽히던 김천시와 상주시에서 이제는 구미시내가 아닌 좀 더 멀어도 대구광역시로 가자는 풍토가 생겼었다. 거기에 구미시민에게도 외면받은 시내였으나, 이제는 사람으로 붐비며 다시 외지에서도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는 모양새다. 특히 금오산 벚꽃축제가 열리는 때에는 시내에도 외국인들을 자주 접할 수 있다.

3.1.10 임오동

주민센터는 삼성SDI 구미사업장 옆에 있다.인구는 21,166명(2015년 11월 통계)
관할 법정동은 오태동, 임은동(일부)로 1983년 2월 15일 칠곡군 북삼면 오태동이 편입되어 임오동이 되었다. 독립운동가 왕산 허위 선생의 출생지로 칠곡군 북삼읍과 애매한 경계를 맞대고 있는 오태동이 있는 동네다. 오태동의 어느 아파트는 반은 구미, 반은 칠곡으로 행정구역이 나눠져 있고 같은 동네에서도 엘리베이터를 기준으로 갈라져 있어 여러 불편 사항이 있다. 이것은 상술했다시피 오태동이 1983년 북삼면에서 편입한 동네라 이렇다(…). 이것은 진미동 관할하에 있는 시미동과 칠곡군 석적읍도 마찬가지다.

3.1.11 지산동

주민센터는 지산초등학교 옆에 있다. 인구는 2,927명(2015년 11월 통계)
관할 법정동은 지산동, 양호동(일부)로 1995년 3월 1일 도산동이 지산동과 도량동으로 분동되면서 생겨났다. 도농통합 이전에 선산군과 경계를 이루는 지역이었다. 낙동강에 낀 넓은 논밭이 인상적인 동네지만 시내로의 접근성이 좋다. 하지만 아무런 생활기반시설이 없는 상태. 사실 시내동지구로 쳐주나마냐로 각종 논란이 많은 지역으로[10] 심지어 주변의 고아읍 원호리, 문성리와 같은 농촌지역보다도 아무 것도 없는 상태. 이는 기형적인 구미 도시의 발달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 지역이 인구 3000명이 안된다는 것이 이 사태를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3.1.12 형곡1동, 형곡2동

형곡1동 주민센터는 형곡지구대 옆, 형곡2동 주민센터는 형곡중앙시장 옆에 있다. 인구는 36,975명(형곡 1,2동 합계. 2015년 11월 통계)
관할 법정동은 형곡동으로 1978년 2월 15일 구미시 승격으로 신시동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1990년 1월 1일 다시 형곡동으로 환원되다. 1995년 3월 1일 인구 증가로 형곡1동과 형곡2동으로 분동되었다.

형곡1동은 송정동 옆에 지어진 주거 상업지역으로 상가와 아파트가 많다. 위성사진으로 구미시 전경을 보면 육각형 형태로 주거지역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 보이는데 그곳이 이 곳이다. 2동은 사곡상모동과 금오산으로 넘어가는 도로가 있는 지역이다. 형남중, 형곡중, 형곡고 등 학교가 많아서인지 주변에 학원이 많다.[11] 금오산 도립공원이 있다.

전형직인 구미의 학원도시로 손꼽힌다. 각종 기반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서 왠만한 생활은 동 내에서 가능하며, 이 때문에 독립적인 생활권을 이룬다. 시내와도 가까워 이래저래 생활이 편하기도 하다. 시청과도 걸어서 10~15분, 자가용으로 구미 공단과 15~20분, 시내와도 대중교통으로 빠르면 10분이내로 가능하며, 각종 학원가가 줄비하며 뒤에는 금오산이 있어 관광거리도 있으니 구미에서 지가가 가장 높은 지역이며, 동시에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여도 가장 부자동네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기도 하였다. 하지만 신도시 지역이 하나 둘 개발되며 차츰 뒤로 밀려났으며 이제는 전반적 리모델링이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 하지만 살기에는 여전히 모자랄게 없는 지역이다. 참고로 구미라는 말은 거북이의 꼬리를 뜻하며 형곡동은 거북이의 육각형 모습을 계획하여 개발된 지역이다. 즉 계획도시.

3.2 구 칠곡군 인동면 지역

1914년 칠곡군에 편입되었다가 1978년 구미시가 승격될 때 구미시로 편입되었다. 국회의원 선거구는 을(乙) 지역구이다.

3.2.1 양포동

주민센터는 구미4공단우체국 옆에 있다. 인구는 46,418명(2015년 11월 통계)
관할 법정동은 구포동, 금전동, 거의동, 옥계동, 양호동(일부)이다. 구포동은 국가산단 2단지가 있으며 옥계동은 주거지 겸 작은 상업지구. 국가산단 4단지가 있어 구미의 신흥 주거지인 곳이다. 양호동은 신평2동에 있던 금오공과대학교가 이전한 곳이다.

3.2.2 인동동

자세히는 인동 참조.

주민센터는 인의초등학교 뒷편 산 중턱에 있다. 인구는 57,661명(2015년 11월 통계)
관할 법정동은 구평동, 신동, 인의동, 황상동이다. 조선시대 인동군의 중심지였으며 현대 들어 이마트가 들어서는 등 최근 상권이 발달하고 있다. 구미 시내와는 생각보다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생활권이 다른 편이다. 대부분 외부인들은 인동을 찾으러 오면 고생하는 곳으로 정작 인동이라는 법정동은 없다. 위에 언급한 법정동들을 합한 곳이라 인동만 보고 오는 사람들은 엄청 헤멜 수밖에 없다. 사실 옆동네 양포동과 진미동 또한 구 인동면 지역이라 단순한 행정동이기보다는 생활권으로서의 개념에 더 가깝다. 쉽게 말하면 대구광역시칠곡, 성서, 월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여담으로 '인동 장씨'의 본관인 '인동'이 바로 이 곳으로, 인의동 인동초등학교 뒷쪽에 인동 장씨 종가가 있다.

그리고 우편물 배달지의 지옥이기도 하다. 급격하게 발달하면서 지번이 엉망으로 마구 섞여있는 곳이 많은데, 구평동과 인의동이 특히 심해서 비슷한 번지도 많아서 정확히 동과 번지를 쓰지 않으면 반송되기 일수다. 특히 인의 푸르지오와 구평 푸르지오는 예전에 번지를 쓰지 않고 그냥 푸르지오만 쓰다가 아파트끼리 서로 우편물이 뒤바뀌어 왔다갔다 하고 택배도 서로 바뀌어 배달되는 등 문제가 많았다. 지금도 적기는 하나 그런 일이 있다.

이 곳의 주민센터의 위치가 의외로 괴랄하다. 이전에는 인동정류장 쪽에 있었는데 인구 수에 비해 동사무소가 협소하고 낡아서 신축이전한 위치가 언덕 꼭대기로 주민센터로 가려면 상당히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가야 한다. 차량이 아니면 노약자들에겐 방문 자체가 상당히 힘겨울 정도이다. 제대로 나 있는 도로를 따라가면 시간이 좀 걸린다. 산을 타는 샛길로 간다면 상당히 시간을 아낄 수는 있는데 이게 동네 토박이가 아니면 절대 알 수 없는 골목길을 통해서 가야 한다.
심지어 명목상으론 버스도 3-1번 하나 밖에 안 지나가는데 일단 주민센터 건물 코앞까지 올라오지만 하루에 5번 밖에 없다. 이것도 버스가 적다고 민원이 들어가서 증차한거다. 결국 민원인은 자차를 타고 오거나 택시를 쓰는 수 밖에 없다.

3.2.3 진미동

자세히는 인동 참조.

주민센터는 인동네거리 옆에 있다. 인구는 21,433명(2015년 11월 통계)
관할 법정동은 시미동, 임수동, 진평동이다. 이곳은 반이 공업지역이고 나머지는 주거지와 상업지역이다. 이 중 진평동이란 동네의 번지가 아주 엉망이다. 구번지, 신번지, 블록번지, 도로번지(신주소) 등 4가지 번지가 아주 환상적으로 엉켜있는 동네라 여기서 4가지 번지 중 하나만 잘못 써도 주거지에 대한 우편물은 안드로메다로 반송된다. 그러므로 우편 발송인을 아주 엿먹이는 동네이기도 하다. 동네 자체가 체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평지에서 산을 타고 지어진 전형적인 달동네 형태라서 그렇다. 게다가 바로 앞에 도로가 뚫리면서 급격한 개발이 이뤄진 바람에 이런 현상이 훨씬 심해졌다. 하지만 인동도서관 뒷 편의 산을 지나면 그러한 난개발 현상이 싹 사라지고 깔끔한 신도시 모습이 드러난다. 이 부분은 산비탈 부분을 깎아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평동 먹자골목이 이곳에 위치하여 유흥상권이 크게 발달했다. 그리고 시미동은 칠곡군 석적읍을 낀 국가산단 3단지 지역이다. 임수동에는 조선시대 인동군의 흔적인 인동향교가 있다.

4 구 선산군 지역

이들 지역은 국회의원 선거구의 을(乙)구에 속한다.

4.1 고아

읍소재지는 관심리로 읍사무소는 고아우체국 옆에 있다. 인구는 33,339명(2015년 11월 통계)
그러나 읍소재지인 관심리보다 구미시 도심부와 가까운 문성리가 더 발전했다. 고아농공단지가 있다.
916번 지방도를 통해 김천시 아포읍과 접한다.

4.2 선산

읍소재지는 완전리로 읍사무소는 선산파출소 옆에 있다. 인구는 14,735명(2015년 11월 통계)
구 선산군의 중심지였지만 선산군과 구미시가 통합된 이후 쇠퇴하고 있다.[12] 동부리에는 구미시청 선산출장소[13], 선산시외버스터미널이 있고 이문리에는 김재규중앙정보부장의 생가가 있다.

4.3 도개면

면소재지는 궁기리로 면사무소는 도개초등학교 건너편에 있다. 인구는 2,408명(2015년 11월 통계)
면 전체가 낙동강 인근에 있다. 68번 지방도를 통해 군위군 소보면, 25번 국도를 통해 의성군 단밀면[14]과 접한다.

4.4 무을면

면소재지는 송삼리로 면사무소는 무을우체국 인근에 있다. 인구는 2,092명(2015년 11월 통계)
금오민속박물관이 있다. 상주시와 가까우며 연휴가 되면 상주시로 가는 차량행렬이 몰린다. 68번 지방도를 통해 상주시 공성면, 913번 지방도를 통해 김천시 감문면과 접한다.

4.5 산동면

면소재지는 적림리로 면사무소는 산동파출소 옆에 있다. 인구는 3,718명(2015년 11월 통계)
국가산단 4단지가 옥계동과 인덕리에 걸쳐 있으며 구미 확장단지가 모두 산동면에 위치한다. 동시에 구미 5공단이 개발되고 있으며 적림리에는 배드타운이 형성될 예정이다.
경운대학교, 산동농공단지, 의우총[15]이 있다.
대구광역시 시내버스 칠곡3번이 대구 북구 칠곡2지구, 칠곡군 동명면 및 가산면에서 경운대학교까지 하루 9회 정도 운행되고 있어 구미시에 대구지역 시내버스가 운행되는 몇 안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2012년 구미 불산가스 누출 사고가 4단지에서 발생해 헬게이트가 열리고 말았다.

아파트는 중흥건설의 구미확장단지 중흥S-클래스 에코시티가 2017년 입주 예정이다.

4.6 옥성면

면소재지는 주아리로 면사무소는 옥성삼거리에 있다. 인구는 1,943명(2015년 11월 통계)
중부내륙고속도로 선산 휴게소, 옥성자연휴양림이 있다.

4.7 장천면

면소재지는 상장리로 면사무소는 오상중학교 인근에 있다. 인구는 3,592명(2015년 11월 통계)
중앙고속도로가 지나가지만 나들목은 없다. 칠곡군 가산면과 인접해 있다. 임천리에는 구미디지털산업지구가 있다. 대구광역시 시내버스 칠곡3번 경운대행이 상장리를 경유한다.

4.8 해평면

면소재지는 월호리로 면사무소는 해평중학교, 경북생활과학고등학교[16] 옆에 있다. 인구는 5,167명(2015년 11월 통계)
고려시대에는 해평현이라는 독립된 행정구역이기도 했지만 1415년 선산도호부로 통합되었다.
도리사, 낙산리 고분군, 의구총[17]이 있다.

일선리에는 1987년 임하댐 건설로 인한 수몰민들[18]이 이주한 이주단지와 문화재단지가 있다. 군위군 소보면과 인접해 있다.
  1. 만약 1공단처럼 범국가적 차원의 움직임이 가능했다면, 공단들은 지금의 위치가 아닌 1공단의 위의 지산동 일대의 지산들에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2. 가장 대표적으로는 황상동 및 옥계동(옥계동 우체국 및 양포 파출소가 위치한), 구포동 등이 그러한 경우이다.
  3. 문화로 상권 역시 구미시가 확장하면서 유동인구 및 소비층을 조금씩 잃어가면서 이제는 상권의 입지도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4. 구평 영무예다음의 뒤로 구평 초등학교와 학서 저수지까지
  5. 물론 이에 대한 논란도 많다. 일종의 특혜다 라는 주장도 많다. 사실 특혜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앞 날은 모른다지만 만약 구미국가산업단지가 구미가 아닌 다른 도시에 만들어졌다면 어떨까? 오히려 아무런 기반이 없던 구미시에 비해 더 큰 대도시가 됐을까? 아니면 오히려 쪽박을 쳤을까? 에 대한 물음에 답은 없다.
  6. 단순히 구미시 내의 생활권은 구미시의 통계 자료에 의하면 1개의 대 생활권 . 3개의 중 생활권 그리고 12개의 소 생활권으로 이루어진다고 파악되어있다.
  7. 애초에 도시의 기능과 인프라가 불가능하게 설계되어 버린 탓.
  8. 집중호우가 오던 날 무리하게 상수도관 공사를 하다가 파손해 버렸다.
  9. 구미시 원평동 홈페이지. 이전 설명에서는 구미시 승격당시 원평 1~5동이 생겨났다고 적고 있었으나 홈페이지 설명에는 위와 같이 설명되어 있다.
  10. 일단 이곳은 선산군 구미읍에 속한 동네였다.
  11. 이 지역에 구미여상을 제외하면 고등학교가 없었는데 형곡고가 2009년 개교했다. 문제는 형남초, 형남중, 형곡고 모두 금오산 아래에 있고 아래에서 약 500m를 올라가야 한다. 시내버스가 다니기는 한데 40번을 제외하면 모두 하루 1회 운행이다.
  12. 근데 신기하게 치킨집은 많다.
  13. 1995년 구미시와 통합 전에는 선산군청이었다.
  14. 단밀면 낙정리에서 낙단대교만 건너면 상주시 낙동면이 나온다.
  15. 삼강행실도에도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로 조선시대 현재의 인덕리에 김기년이라는 농부가 살고 있었다. 그는 암소를 데리고 밭을 갈고 있었는데 호랑이가 소를 습격했다. 김기년은 괭이로 호랑이에게 덤볐으나, 호랑이에게 물려 중상을 입었다. 이에 그의 소가 뿔로 호랑이를 찔러 죽였다. 하지만 김기년은 그 상처로 인해 앓다가 죽었는데 소는 주인이 죽자 아무것도 먹지 않다가 굶어 죽었다. 이에 감동한 마을 사람들이 소의 무덤을 만드니 이것이 의우총이라고 한다. 왠지 다소 이야기가 비슷한 의구총과 세트로 취급되고 있다.
  16. 개교 초기에는 해평고등학교였었다.
  17. 전래동화로도 유명한 이야기다. 조선 인조 때 신양리에 사는 아전 김성발이 개를 한 마리 키웠는데 개가 몹시 영리했다. 김성발은 개를 데리고 이웃 마을에 갔다가 거하게 취하고 오는 길에 말에서 떨어져 잠이 들었다. 그런데 주변에 갑자기 큰 불이 나서 위급한 상황에 처하자 그의 개는 낙동강에 뛰어들어 몸에 물을 적시고 끄고 다시 이를 반복해서 마침내 불을 껐다. 하지만 힘에 부쳤는지 죽었고 김성발이 정신을 차린 후에 주변에 불이 났다가 꺼진 흔적과 개의 몸에 있는 검댕을 보고 감동했다. 이에 무덤을 만드니 이것이 의구총이라고 한다.
  18. 대부분 전주 류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