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창모(가수)

  • 이 문서는 가수 구창모를 다룹니다. 다른 동명이인인 야구선수는 구창모로.

JszKNqzjHkk.jpg
리즈시절
36262839.3.jpg
현재
%EA%B5%AC%EC%B0%BD%EB%AA%A8.jpg

이름구창모(具昌模)
출생1954년 4월 27일, 경기도 인천시
본관능성 구씨 도원수파[1]
학력배재고등학교
홍익대학교 전자전기공학 학사
데뷔제 1회 TBC 해변가요제
종교개신교
직업가수, 기업인

1 개요

10대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록밴드 송골매의 리드보컬.
80년대 당시, 가창력 끝판왕으로 통했던 전설적인 보컬리스트.

1978년 tbc 해변 가요제에 홍익대 밴드인 블랙 테트라의 2기 멤버로서 출전해 데뷔, 이후 1981년에 배철수가 이끄는 밴드 송골매에 가입해 전성기를 누린 가수. 나름대로 수려한 외모와 부드러운 미성의 목소리로 많은 10대 소녀 팬들을 탄생시켰었다.

2

1954년 4월 27일 인천에서 태어났다. 종교개신교이다. 배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홍익공업전문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이후 홍익대학교 전자공학과에 편입하여 졸업하였다.

1978년 블렉테트라 2기 멤버로 TBC 제1회 해변가요제에 출전, 〈구름과 나〉라는 노래로 우수상을 받았으며, 1981년부터 1985년까지 송골매의 리드 보컬이었다. 송골매 탈퇴 후 발표한 〈희나리〉,〈아픈 만큼 성숙해지고〉,〈문을 열어〉 등의 노래가 인기를 끌었다. 희나리의 번안곡인 〈기허풍우(幾許風雨)〉는 홍콩 영화 《영웅본색》에 나오기도 하였다.(영화 시작 13분 쯤)

1991년 카자흐스탄 가요제에 간 것이 계기가 되어 중앙아시아에서 10년동안 사업을 한 바 있다.현재 건축회사 엠엔아이의 사장이며 방송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3 송골매, 그리고 배철수

배철수와는 1978년 해변 가요제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방에서 구창모가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활주로[2]로 출전한 배철수[3]가 지나가다가 우연히 이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엄청난 미성의 목소리여서 잊을 수가 없았다고. 이후 배철수는 그를 기억하고 있다가 송골매 2집을 준비하던 시기 그를 영입했다고. 그리고 그 뒤에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정말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4], '모두 다 사랑하리', '다시 한 번' 같은 곡들이 10대들 사이에서 크게 히트를 하면서 국민 밴드와 인기 아이돌로 거듭나게 된다. 지금으로 치면 아이돌 맞다 상상이 잘 안 간다면 2005년~2006년도 리즈 시절 버즈의 인기도를 생각하면 된다. 사실, 요즘 세대들을 위해서 어거지로 버즈와 비교를 한 것이고 그 이상의 인기도로 봐도 될 정도로 넘사벽급이었다.

활주로 멤버들을 주인공으로 영화까지 찍었으니 말 다했다. 배철수의 독특한 캐릭터와 담백한 창법, 구창모의 수려한 외모와 부드러운 미성 역시 크게 화제가 되었다. 인기가 얼마나 엄청났던지 이들을 주연으로 한 영화가 무려 세 편이나 제작되었다. 80년대 당시 이런 영화가 제작된 가수들이 조용필, 이상은 같은 가수들이었던 걸 생각하면 얼마나 인기가 많았는지 알 수 있다. 예능 프로, 광고까지 발을 뻗쳤을 정도로 인기가 대단해서 당시 음반사 사장이 보너스로 거액의 돈을 주기도 했다고. 이 인기는 구창모가 송골매 4집까지 계속된다.

하지만, 높은 인기에 구창모는 솔로 활동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침 다른 멤버들과 음악적으로 마찰도 잦아지게 되고 많은 스케쥴에 목상태도 안좋아지기 시작한다. 결국 갈등이 심화되어 1985년 송골매를 탈퇴하고 솔로로 데뷔해 희나리로 크게 인기를 얻는다.

배철수는 송골매가 롤링 스톤즈같이 오래가는 밴드가 되길 원했기에 이를 매우 안타까워 했다고. 게다가 구창모는 솔로로 잘나가는데 비해 송골매는 이전보다 흥행이 떨어져 상황이 좀 껄끄러워지기도 했다. 물론, 리즈 시절이었던 1981년~1985년에 비해 그렇다는 거지 인기도는 여전히 나쁘지 않았다. 후기에 모여라같은 곡이 히트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좀 서먹서먹했으나 이후 화해해 현재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구창모가 다시 방송 복귀를 하게 된 계기도 배철수 덕분이라고 한다. 또 더 늦기 전에 송골매 기념 공연이라도 하는게 소원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4 가창력

전성기였던 1981년~1985년도엔 비음이 많이 섞인 하이톤의 부드러운 미성의 목소리가 트레이드 마크였다. 게다가 팝적인 세련된 감각[5]과 보통 그런 여린 미성의 보컬들에겐 결여되기 쉬운 파워까지 갖춘 보컬이여서 가창력으로 정말 엄청난 유명세를 날렸다. 당시 평가는 '조용필을 제외하면 미성의 젊은 보컬들 중에서 최강'이라는 평이었다고. 흠좀무

당시 다른 보컬들과 비교되는 젊고 세련된 감각의 표현력은 정말 많은 극찬을 받아서, 위에 올려진 어쩌다 마주친 그대 영상의 댓글을 보면 '보컬이 쎄끈하다(...)','보컬이 세련됐다' 등등 젊은 층의 극찬도 많이 보일 정도로 지금 들어도 세련된 감각을 엿볼 수 있다.

음역대도 상당히 넓어서 당시 불렀던 곡들을 들어보면 고음역대 곡들이 꽤 많다. 부드러운 미성의 보이스이면서도 매우 힘있고 시원시원한 보컬을 들을 수 있다. 이런 느낌이 많이 산 곡은 대표적으로 송골매 2집에 수록된 다시 한번이 있다.

하지만...

폭발적인 인기에 스케쥴이 많아져 결국 혹사당해 목이 점점 상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서 배철수는 승승장구를 통해, 자신이 당시 너무 주먹구구식으로 행사 들어오는 건 다 받고 그래서 구창모가 목이 많이 상한 것 같다며 매우 미안해 했다. 하지만 구창모 본인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위에 배철수의 말대로, 고된 스케쥴에다 목상태도 점점 안좋아지기 시작했고, 결국 리즈시절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하이톤이면서도 시원시원하고 내지르는 보이스를 잃게 되었다.


리즈시절


솔로 시절


현재

보다시피 갈수록 목소리에 힘이 없어지고 톤도 낮아지는 걸 볼 수 있다. 팝적이면서도 시원시원한 록보컬에서 부드러운 발라드 보컬이 되어 버렸다(...)

물론, 김현식, 윤종신같은 가수들과 비교했을때 비교적 목소리 보존이 잘된 편이고 원래 기본기가 출중했던 가수인지라 여전히 좋은 가창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래도 전성기 시절 보여주었던 시원시원한 보컬은 이제 들을 수 없다는게 매우 아쉬울 따름이다.

록보컬로 시작해서 시원시원한 보컬과 미성의 보이스로 동년배 최강 소리를 들으며 아이돌적인 인기를 얻다 발라드 가수로 전향하고, 이후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목소리에 힘이 떨어져 갔다는 점에서 후배 이승철과 비슷한 케이스라는 평이 많다. 공교롭게도 당시 부활의 연습실이 과거 송골매 초창기 시절 연습실이었다고 한다.

차이점이 있다면 구창모는 송골매 시절 이미 경력이 꽤 긴 보컬이이었던지라 신인임에도 꽤 프로적인 모습을 보였고 빠른 템포의 정통 록음악에서도 좋은 평을 받았다면, 이승철은 데뷔 당시 경력이 얼마 안된 어린 보컬이어서 부활 1집땐 아직 아마추어적인 면이 남아있었고 빠른 템포의 곡이었던 인형의 부활같은 곡에서는 꽤 쓴소리를 들었다는 점이 있다. 실제로 당시 이승철의 목소리가 구창모의 목소리보다 훨씬 어리다. 변성기도 거의 다 안지났는지 쇳소리까지 나는 매우 어린 목소리였다.

5 여담

  • 얼굴이 꽤 동안이라 동안/목록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무려 1954년생이다!!!
  • 가창력이 뛰어나 잘 알려져있지 않았지만, 작곡에도 대단한 재능이 있는 것 같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가 무려 자작곡이다! 흠좀무.

6 음반

1978년 - 제 1회 TBC 해변가요제
1979년 - 블랙 테트라 1집 《열대어》
1982년 - 송골매 2집

이 음반에 수록된 〈어쩌다 마주친 그대〉·〈다시 한번〉·〈내 마음의 꽃〉을 작곡했다.

1983년 - 송골매 3집
1984년 - 송골매 4집
1985년 - 구창모 1집 《發》
1986년 - 구창모 2집 《飛》
1987년 - 구창모 3집 《感》
1988년 - 구창모 4집 - 《슬픈연정》
1989년 - 구창모 5집 - 《Kju:zik》

7 CF

1982년 해태제과 (매치매치바, 폴라포) - 당시인 음악 그룹 송골매와 함께 출연.
1984년 삼양식품 삼양 1분면 - 당시인 음악 그룹 송골매와 함께 출연.
1986년 롯데칠성 칠성사이다
1986년 쌍방울 SYT 캐주얼*스포츠 웨어

8 수상

1978년 - 동양방송 해변가요제 우수상
1981년 - 한국방송·문화방송 10대 가수상
1982년 - 한국방송 10대 가수상 최고 그룹사운드 부문
1985년 - 한국방송·문화방송 10대 가수상
1988년 - 문화방송 10대 가수상

9 영화

1982년 - 《갈채
1982년 - 《대학 얄개
1983년 - 《송골매 모두 다 사랑하리》
1983년 - 《대학 들개
1985년 - 《춤추는 청춘대학》

10 기타

동명이인의 야구선수와 만남을 가졌다. 평소에 친분이 있던 NC 다이노스김경문 감독이 자리를 주선했다. 배지헌의 브러시백
  1. 능성 구씨 29세손 '謨'자 항렬이다. 현재 이 나이대의 능성 구씨 사이에서 항렬이 상당히 낮은 편에 속한다. 가수 구준회의 증손자뻘, 야구선수 구자욱, 축구선수 구자룡, 구자철의 손자뻘, 펜싱선수 구본길, 축구선수 구본상, 양궁선수 구본찬의 아들뻘이다(...)
  2. 한국항공대의 밴드
  3. 드러머를 맡으면서 보컬까지 겸했다고 한다.
  4. 리프의 명곡으로 손꼽히며, 사실상 1980년대를 대표하는 최대 히트곡이다.
  5. 팝음악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스스로 많이 언급하기도 했는데, 실제로 당시 영상을 보면 팝송을 커버하는 영상도 꽤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