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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치
FC 아우크스부르크 No.22 | |
지동원 (池東沅 / Ji Dong-won) | |
생년월일 | 1991년 5월 28일 |
국적 | 대한민국 |
출신지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 추자도 |
포지션 | 스트라이커, 쉐도우 스트라이커, 윙어, 공격형 미드필더 |
신체 조건 | 187cm, 77kg |
주로 쓰는 발 | 오른발 |
프로입단 | 2010년 전남 드래곤즈 |
소속팀 | 전남 드래곤즈 (2010~2011)[1] 선덜랜드 AFC (2011~2014) FC 아우크스부르크 (임대) (2013) FC 아우크스부르크 (2014)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014) FC 아우크스부르크 (2015~) |
국가대표 | 37경기 / 10골 |
2010년 FA컵 득점상 | |||||
스테보(포항 스틸러스) | → | 지동원(전남 드래곤즈) 인디오(전남 드래곤즈) | → | 고슬기(울산 현대) |
1 개요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現 독일 분데스리가 FC 아우크스부르크 소속.
2 클럽 경력
2.1 데뷔 이전
전남 드래곤즈 유스팀인 광양제철고등학교 출신이나 원래 고향이 광양은 아니고, 제주도 추자도 출신이다. 제주에서 축구를 위해 유학을 간 케이스이며, 전남 구단에서도 적극적으로 스카우트에 나섰다.
2007년에는 레딩 FC로 축구 연수를 갔다오기도 하며 팀의 큰 기대를 받았으나[2] 당시 레딩에서 연수를 받던 한국선수 중 유일하게 지동원만이 계약 제의를 받지 못하고 K리그로 돌아왔는데 2011년 현재 그때 멤버 중 지동원만이 국대 멤버가 되었다. 다만, 베스트일레븐 2011년 4월호에 나온 기사에 따르면, 선수 자신은 레딩 유학 시절이 제일 힘들었고, 그리 도움이 된 기억은 아니라고 한다. 이유는 출전 기회를 생각보다 잡지 못했기 때문. 정작 자신의 실력이 는 것은 광양 유스 생활 때라고.
2010년 K리그 신인 드래프트 때 유소년 우선지명 절차[3]에 의해 전남에 지명되었다.
아마추어 신분으로 치른 마지막으로 치른 경기는 2009 대교눈높이컵 전국고등축구리그 왕중왕전 - 풍생고와의 경기로, 초중고리그 개편 후 초대 왕중왕전이라는 특수성 덕분에 TV생중계가 되었고 진작부터 지동원의 소문을 들어온 다수의 축구팬들이 시청한 경기이기도 했다. 광양고 1년 후배인 이종호와 함께 투톱으로 나선 지동원은 연장전 어시스트를 포함해 2골 1도움의 활약을 펼치며 팀의 3-2 승리를 이끌었다. 이 경기를 본 몇몇 리그빠들은 지동원의 프로 성공을 확신했다카더라.
2.2 전남 드래곤즈
2010-11 시즌 39경기 11골
데뷔시즌인 2010시즌의 개막전부터 출장,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꾸준히 주전 출장을 하게 되었다. 만19세의 나이로 2010 시즌 종료때까지 총 29경기 출장, 13골 기록.
사실 데뷔 당시만 해도 지동원이 대단한 잠재력을 지닌 선수라는 것은 많은 언론에서도 인정한 바가 있었지만 이와 같이 한시즌만에 주전으로 출장하리라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2009 시즌 당시 전남은 저조한 득점력으로 고생을 하였고, 그 때문에 2010시즌을 앞두고 트레이드 등을 통해 선수들을 영입, 시즌 전에 보여준 전남의 공격진은 나름 ㅎㄷㄷ한 수준이었다. 용병인 슈바[4], 인디오[5]가 버티고 있으며 토종 공격수는 수원 삼성에서 실패했다가 경남 FC에서 갱생한 공격수 정윤성, 광주 상무 불사조에서 각성한 김명중까지 있었기에 신인이 이 공격진에서 잘해봐야 3~4번째 공격수에서 경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되었으나 시즌 종료 후 보여준 것으로만 보면 두말할 것 없는 전남의 No.1 공격수였다.
2011 시즌을 앞두고 산프레체 히로시마와 연습경기 도중 전치3주 타박상을 입었다. 결국 재활 때문에 3월 K리그 개막전에 출전하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가뜩이나 지난해 U-19, U-21, 대표팀, 리그를 오가면서 혹사를 당한 터라 차라리 부상을 틈타 쉬는 편이 낫다는 말까지 나왔다(...) 관련 칼럼
K리그 개막전 지동원 출장 여부를 놓고 상대팀 전북 최강희 감독은 '진짜 부상이냐'며 농담섞인 도발을 했다.
부상 복귀후 조금씩 교체로 뛰기 시작하면서 페이스를 올리기 시작하였고, 후에는 선발로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곧 선더랜드 AFC로 이적해버렸다. 2011년 K리그 시즌 성적은 총 15경기 출장 3골.
2.3 유럽 무대로의 이적
아시안 게임과 아시안 컵 활약 이후 2011년 6월 1일 선덜랜드 AFC 이적설이 나왔다. 당초에는 뜬소문으로 취급하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전남구단이 인정하면서 사실 확정. 바이아웃 조항 탓에 낮게 책정된 이적료때문에 극구부인하면서 안 보낼려고 했는데 결국 대승적 차원으로 보내주겠다며 이적이 성사되었다.
그러나 너무나도 싼 이적료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논란이 많이 일었다. 이적료가 싼 선수의 경우는 구단의 손해가 별로 크지 않기 때문에 한두 번 돌려보고 조금이라도 아니다 싶으면 바로 내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적료가 비싼 선수들은 그래도 아까운 마음에 여러번 쓰기 마련인데, 물론 급이 전혀 다른 선수이긴 하나 그런 대표적인 예가 페르난도 토레스라 할 수 있다. 이에 김동완 해설은 바이아웃이 일종의 이면계약 형태라 당사자가 언급하지 않는 이상 모를 수밖에 없는 조항인데 이를 당당하게 밝히고 싼값에 가는거 자체가 에이전트가 능력이 떨어지는 거라며 차라리 바이아웃을 밝히지 말고 비싼값에 보내 선수 가치를 높이는 게 나았을 것이란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그 와중에 PSV가 끼어들고 샬케04의 위임장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에이전트까지 끼어들어 오퍼를 보내면서 영입 경쟁이 붙어 버렸고 지동원 측이 바이아웃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급해진 선덜랜드 AFC는 지동원을 뺏길수 없다는 듯이 기존에 불렀던 14억에서 3배에 이르는 38억의 조정안을 전남에 제출했다. 그리고 전남은 그 조정안을 수락해 순식간에 거상 반열에 올랐다.
마침내 한국시간으로 6월 30일, 선덜랜드 공식 홈페이지에 영입 오피셜 기사가 떴고 이적이 확정되었다.
2.4 선덜랜드
2.4.1 2011-12시즌
이적 이후 스티브 브루스 감독 아래에서 주전보다는 교체 카드로서의 활약이 많았지만 나름대로 출전 기회를 보장받으며 뛰었다.
2011년 8월 13일 벌어진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1라운드 리버풀과의 원정 경기에서 기안의 부상으로 후반에 교체출장하며 프리미어 리그에 데뷔. 경기 투입 이후 원톱 스트라이커 포지션에서 헤딩을 몇 차례 따내긴 했으나 긴장한 탓인지 경기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했고, 결국 팀은 1-1로 비겼다.
2011년 9월 10일에는 첼시와의 경기에서 0:2로 지고 있던 후반 38분에 교체출전. 주어진 시간이 짧았으나 후반 45분에 골키퍼와의 1:1 찬스에서 침착하게 밀어넣으며 데뷔골을 넣었다. 3번째 교체출전만의 데뷔골.
여담으로 지동원이 강팀 첼시를 상대로 기념비적인 1호골을 쏘는 동안 SBS 스포츠에서는 박주영의 출전을 노리고 아스날 FC와 스완지 시티의 경기를 중계한 탓에 시청자들은 해당 장면을 보지 못했다. 당연하게도유감스럽게도 그날 박주영은 출전하지 못했다.
그리고 생뚱맞게 국산찌라시들은 '지동원 인종차별 발언'이란 낚시질을 시작했다.
찌라시가 걸고넘어진 발언은 '90 minutes on the clock and all of a sudden Sunderland has a little chink of light here'인데, chink of light를 '틈새로 가늘게 새어들어오는 빛'-우리가 흔히 쓰는 말로 고친다면 마지막 희망의 불씨를 사른다 정도-이 아니라, '라이트 오브 스타디움의 동양인새퀴'로 해석한 것. 클릭수 올릴 껀수잡았다! 부왘을 울려라
그런데 또 황당한건 이 병크는 기자가 만들어낸것이 아니라 해외 반응 번역 사이트인 개소문닷컴의 번역물에서 비롯된 것이라는것. 개소문닷컴의 번역글이 오역을 한 것을 기자가 그대로 가져다 기사로 쓴 것이다. 그야말로 더블 병크.
9월 27일 노리치 원정에서 키어런 리처드슨의 골을 도와 1도움을 기록했으나 팀은 1-2로 패했다.
2012년 1월 2일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에서 후반 교체로 들어가 인상적이지 못한 경기를 펼치다가(팀이 수비적인 전술을 들고 나온 이유도 잇겠지만) 0-0 승부가 펼쳐지던 93분(로스타임 - 경기종료 4초전), 세세뇽의 패스를 받아 조 하트를 제치고 결승골을 넣으면서 팀의 극적인 승리를 이끌어냈다! 이 때 BBC해설은 "Total Shock, Shock on the field, Shock on the bench, Can't believe it Mancini.(총체적 쇼크입니다. 필드에도 벤치에도 쇼크네요. 만치니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하군요.)" 였으며, 스카이스포츠는 감독이 신나서 방방 뛰는 모습을 보며 "Happy new year, Martin O'neill, Happy new year Sunderland." 라는 말을 남겼다. 이 때 오프사이드 상황이었지만 기는 올라가지 않았고, 골로 인정됐다. 아마도 이 경기가 선덜랜드에서 지동원의 가장 인상적인 플레이인듯?! 그리고 현지 남성팬의 진한 키스를 받았다. 더불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도 받았다 주영이형, 저 프리미어 리거에요. 프리미어 리거는 이렇게 하는거에요
강팀과의 경기에서 두 골을 가져왔지만, 이 시즌 중반 스티브 브루스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경질되면서 차기 감독으로 마틴 오닐이 취임했고, 새 감독의 눈에 들지 못하면서 점점 출전기회를 잡지 못하게 된 결과 맨시티 경기 이후 별다른 활약 없이 시즌 21경기 출장, 2득점으로 조용하게 시즌을 마무리 짓는다.
2.4.2 2012-13 시즌
그야말로 벤치 신세. 마틴 오닐 감독의 구상에서 배제되어 선덜랜드에서 단 한 차례의 출전기회도 잡지 못했다. 결국 1월 이적시장에서 구자철이 뛰고 있는 FC 아우크스부르크로 임대를 가게 되었다.
2.5 FC 아우크스부르크(임대)
2.5.1 2012-13 시즌
선덜랜드에서 단 한 차례의 출전기회도 잡지 못했고, 베스트 일레븐 잡지에서까지 어서 다른 팀을 알아봐야할 것 같다고 기고하는 등 그야말로 고난의 시즌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2013년 1월 이적시장에서 FC 아우크스부르크로 임대가 확정되면서 구자철과 함께 뛰게 되었다. 문제는 이 팀이 2012년 1승 6무 10패를 거두면서 강등권에 빠진 터라 잘못하면 QPR와 더불어 한국인 선수 3명이 강등팀에서 같은 시즌을 마무리할지도 모른다는 것... 둘 다 시즌 1승밖에 못 거두고 있다. 그리고 한명 추가요...
등번호는 27번이며, 첫 경기는 뒤셀도르프와의 경기. 놀랍게도 윙포워드로 출전하였다. 구자철과 함께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며 팀의 3:2 승리에 공헌했다. 특히 이날 경기에서 공격이면 공격 수비면 수비 모든 면에서 그동안 뛰지 못한 설움을 쏟아내는듯 경기내내 미친개마냥 뛰어다니면서 공격포인트는 올리지 못했지만 구자철과 함께 높은 평점을 받게된다. 이미 언론에서는 이 둘의 조합을 지구특공대라는 다소 쪽팔리는 명칭으로 부르고 있다.하지만 팬들은 검열삭제 특공대로 부른다.
2013년 2월 23일(한국시각)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SGL 아레나에서 열린 호펜하임과의 독일 분데스리가 23라운드 홈경기에 선발 출장하여 전반 45분에 드디어 분데스리가 데뷔골을 넣었다.
4월 15일(한국시각) 독일 분데스리가 29라운드 홈경기에 출장했다. 전반 27분 오른발 중거리 슛으로 선제골을 기록하고 이어 후반 9분 침투 패스를 이어받아 오프사이드 트랩을 무너뜨리며 왼발 슛을 날려 득점, 2:0 승리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4월 28일(한국시각) 독일 분데스리가 31라운드 홈경기에 출장했다. 팀이 2:0으로 앞선 후반 40분 역습 상황에서 오른쪽 측면에서 올라온 크로스를 논스톱 발리슛으로 연결 추가득점을 기록했다. 팀은 3:0으로 승리했고 지동원은 시즌 4골을 기록했다.
5월 18일 올시즌 분데스리가 34차전 마지막 경기 그로이터 퓌르트 홈경기에서 후반 75분 팀의 3번째 골이자 시즌 5호골을 기록했고 3:1 승리에 기여하며 극적으로 팀이 15위로 역전하면서 리그 잔류에 성공하게 했다.
임대 선수로서 좋은 활약을 보여줬기에 아우크스부르크 구단에서는 지동원의 완전 이적을 원했으나, 선덜랜드 측에서 요구하는 이적료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로[6] 그를 붙잡지 못했고, 지동원은 결국 시즌 종료 후 선덜랜드로 다시 복귀하게 된다.
2.6 선덜랜드 복귀
2.6.1 2013-14 시즌
망했어요.
한 때 박주영과 함께 국대 공격라인을 이끌 만한 선수였지만 지금은 박주영과 함께 팀내에서 입지도 제대로 잡지 못하는, 벤치워머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간간히 교체로 출전하는 것을 보면 그나마 대우는 박주영보다 나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마저도 지동원 본인이 출전하는 경기마다 부진을 거듭하여 공개적으로 비난을 받기도 했으니 딱히 옹호해줄 여지가 없었다. 그나마 파올로 디 카니오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을 때에는 교체로라도 출전 기회가 있었으나, 디 카니오 감독이 성적 부진을 이유로 경질되고 거스 포옛 감독이 부임한 이후에는 아예 출전 기회조차 잡지 못하는 등 안습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 거 없다 같은 시즌 선덜랜드로 임대를 온 기성용은 거의 주전급으로 출전하는 것과는 매우 대비되는 상황. 그런 와중에 홍명보 감독은 그를 국대에 뽑겠다고 언플을 날려 왕창 까였다.
그런데 선덜랜드의 주전 공격수 조지 알티도어 역시 출전하는 경기마다 각종 몸개그를 선사하며 거하게 삽을 푼 덕분인지(...) 20라운드 아스톤 빌라전에서 93일만에 선발 출전했다. 오랫만에 출전했기 때문인지 그다지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현재 팀의 에이스 수준으로 활약하는 기성용과의 호흡이 좋았다는 것뿐. 결국 7경기 출장, 무득점에 그치며 시즌 전반기를 마감한다.
2.7 FC 아우크스부르크 이적
2.7.1 2013-14 시즌
선덜랜드에서 주전 경쟁에 실패한 지동원은 2014년 1월 16일 FC 아우크스부르크로 완전 이적하였다. 이적료는 공개되지 않았다. 계약기간은 6개월이며, 6개월 뒤 계약이 만료되는 2014년 7월 1일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다시 이적한다고 한다.
사실상 아우크스부르크로의 이적은 임대인 셈. 그리고 2014년 1월 17일자로 도르트문트행 오피셜 기사가 떴다.[7]
분명 완전 이적하였고, 임대해온 것이 아닌데, 6개월 후에는 다시 또 다른 팀으로 이적한다는 희한한 상황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는데, 선덜랜드 AFC, FC 아우크스부르크,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3각 관계가 얽힌 이번 이적은 여타 보통의 이적과정과 조금 다른게 특징이다.
처음에 FC 아우크스부르크로의 이적이 6개월이라는 소식에 상당한 혼란이 왔으며, 금액이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축구 커뮤니티 사이트 사이에서 여러 루머가 돌았다. 그리고 아우크스부르크 행이 결정된지 얼마 되지 않아 독일의 유력지 키커와 빌트지에 따르면 14-15 시즌부터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 합류한다고 밝혀 논란이 진화되었다.
천천히 이번 이적과정을 살펴보다면 먼저 지동원의 선덜랜드와의 계약은 2014년 6월까지였다. 따라서 보스만 룰에 의거하여 지동원은 자유계약을 통해 이적료 없이 타 팀으로 이적이 가능한 사실상 FA의 상태였기 때문에 도르트문트 측에서 매우 군침이 도는 상태였다. 바로 작년만 해도 5m을 요구하던 선수를 공짜로 영입하거나(단, 공짜로 영입하게 되면 이적은 2014년 6월에 이적하게 된다) 아주 적은 가격에 영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처음에 도르트문트 측은 지동원에게 항간에 알려진 2.5m(한화 약 36억)을 제시하고 곧바로 영입하여 후반기에 지동원을 사용하려고 하였으나 여기서 한가지 변수가 발생한다. 바로 선수 본인이 곧바로 도르트문트로 이적하게 되면 주전 경쟁 심화 및 경기 감각의 저하를 우려한 것이다. 사실 레반도프스키가 이번시즌까진 도르트문트에 있기 때문에 지동원 입장에서는 굳이 바로 가서 선덜랜드시즌2에서 처럼 적응과 주전경쟁에 시간을 쏟다가 자칫하면 경기감각이 떨어져 월드컵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한 것이다.
이때 지동원과 아우크스부르크와 도르트문트 구단 간의 모종의 합의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지만 충분히 추측이 가능한 것으로, 우선 각자의 입장을 보면 선덜랜드는 잉여 자원인 지동원을 처분하고 싶었지만 당연히 자유계약으로 풀어주는 것보단 이적료를 어느 정도 챙기고 싶어했고, 당장 공격 자원이 필요한 아우크스부르크는 지동원을 영입하고 싶었지만 구단 재정상 충분한 이적료를 준비할 수 없었으며, 도르트문트는 지동원을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영입하고 싶고, 지동원 본인은 이적은 하되 당장 주전 출장이 어려운 도르트문트로 이적하는 것보다는 경기를 좀 더 뛸수 있는 팀에서 경기 감각을 키운 후에 이적하고 싶은 상황이다.
바로 여기서, 먼저 도르트문트가 아우크스부르크에 이적료의 일정 부분을 지원해주어 그 금액을 선덜랜드에 지급해서 아우크스부르크가 지동원을 영입하게끔 하고, 아우크스부르크는 지동원을 후반기에 활용한 뒤 시즌이 끝나는 대로 바로 도르트문트로 이적시키며, 지동원은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후반기를 뛰며 독일 적응 및 경기감각을 유지하고, 도르트문트는 보스만 룰에 의거하여 자유계약으로 지동원을 영입한다는 것으로 추측하여 정리할 수 있다.
이 시점에서 아우크스부르크는 전반기를 7위로 마치면서 승격이후 가장 좋은 폼을 유지하고 있으나, 공격자원들의 득점력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따라서 작년에 임대 이적해와서 17경기 5골이라는 활약을 통해 눈도장을 찍어놨던 지동원의 영입으로 공격력 강화를 꾀할 수 있으며, 지동원 입장에서도 작년에는 구자철과 함께 있었다면, 올해는 홍정호와 함께 있을수 있기 떄문에 적응입장에서도 도르트문트보다 아우크스부르크가 좀 더 나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FC 아우크스부르크로 이적하면서 지동원은 경기 감각 유지와 꾸준한 출전을 보장받고,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는 보스만 룰에 의거하여 공짜로 영입하고, 선덜랜드 AFC는 적은 금액이지만 이적료(임대료에 가까운)를 챙기는 지동원, 아우크스부르크, 도르트문트, 선덜랜드 모두가 행복한 Win-Win 이적이었던 것이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처음에 알려진 아우크스부르크와 선덜랜드간의 계약에서 이적료는 비공개되었는데 아마 도르트문트가 돈이 없는아우크스부르크를 위해 대신 지급해주는 형식을 취했을 가능성도 높다. 독일에서도 유행하는 구매대행.
기사에 나왔듯이 지동원을 노리는 분데스리가 팀이 많았으며, 도르트문트측은 빠른 선점을 하기 위함일 가능성이 있다.
시즌 후반기 개막전 도르트문트전에서 70분에 교체투입되었다. 출전 2분만에 헤딩으로 동점골을 넣었다.클롭이 좋아합니다. 응? 시즌 1호 자책골[8]
지동원 개인으로서도 이 골의 의미가 남다른게 3달 전만해도 헤더 기회에서 피했다는 오명을 쓰면서 감독한테도 미움받고 현지팬들한텐 개까이다가 독일 복귀하자마자 그것도 작년 챔스준우승 팀을 상대로 헤더 골을 작렬시킴으로서 헤더에 대한공포심을 가지고 있다던가 피했다는 오명을 완전히 날려버렸다.
그리고 경기의 맨 오브 더 매치부터, 분데스리가 공식 홈페이지에서 선정한 '이 주의 선수' 자리까지 꿰찼다. 거기다 시즌 7번째로 첫 터치를 골로 만들엇다는 기록도 가지게 되었다 골 하나로 몇 개의 기록을 우겨먹는 거야.
하지만 이후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완벽하게 후보로 전락하면서 활약은 커녕 출전도 뜸해졌다. 결국 12경기 1골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2.8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이적
2.8.1 2014-15 시즌
한반도프스키라는 드립이 나올정도로 기대를 모았으나, 도르트문트가 아드리안 라모스와 치로 임모빌레의 영입에 성공하면서 공격수는 3순위, 2선에서는 경쟁자가 바로 마르코 로이스, 헨리크 미키타리안같은 쟁쟁한 선수들과 경쟁하게 되었다. 망했어요. 프리시즌에선 꾸준히 출장 기회를 얻어 활약했지만, [2]팀 훈련 도중에 부상으로 한달 아웃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챔피언스리그 엔트리에서도 탈락하면서 스멀스멀 그분의 향기를 풍기고 있다. 게다가 본인도 그렇지만 연이은 부상에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최악의 시즌을 보내고 있어서... 그러게 A매치 작작 좀 부르지. 결국 도르트문트 소속으로의 공식 경기는 한 경기도 뛰지 못한 채 다시 아우크스부르크로 이적하게 된다. 강등권 팀에서 챔스권 팀으로 이적.[9]
2.9 FC 아우크스부르크 복귀
2.9.1 2014-15 시즌
그렇게 원 소속팀인 도르트문트에서 기회를 잡지 못하던 차에 결국 아우크스부르크로 완전 이적이 확정되었고, 계약 기간은 2018년까지이며 2015년 1월부터 출전이 가능하다. 이렇게 되어 지동원은 아우크스부르크에 세 번씩이나 이적하는 희귀한 일을 경험하게 되었다. 아욱국 서포터들의 반응이 어떨지 2015년 2월 1일 호펜하임과의 리그경기에서 교체 출전하며 부상 이후 처음 리그경기에 출장하였다. 그후 도르트문트전에서 준수한 활약을 보여줬으나... 계속되는 경기에서 1:1찬스를 날리는것 보면 폼이 회복되려면 아직 갈 길이 먼 듯. 그 뒤로도 꾸준히 선발로 출장했지만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결국 벤치로 밀려났고, 주전 공격수 라울 보바디야가 복귀한 이후로는 아예 출장 기회조차 잡지 못한채 12경기 0골이라는 커리어 최악의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하지만 아우크스부르크에서는 과거 보여줬던,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넣었던 헤딩골 등. 그들을 강등에서 구원했던 모습을 기억하고 다음시즌을 기약하자는 모습인 듯 하다.
실제 지동원을 영입할 당시도 도르트문트에서 폼 다 망쳐놨다는 사실을 각오하고 영입을 했다고 대인배 끝판왕. 카가와에게 돌문이 있다면 지동원에겐 아욱국이 있다. 하지만 피사로 영입썰이 있다.
2.9.2 2015-16 시즌
10월 1일, 유로파리그 파르티잔과의 경기에서 코너킥 상황 때 공을 걷어낸다는 것이 그대로 골문으로 향해 자책골을 기록했지만 UEFA에서 파브리시오의 골로 정정했다.날아가버린 지동원의 데뷔골 이 때문에 무진장 까였지만 이 날 왼쪽 윙포워드로 출전했는데 킬패스와 정확한 패스를 밀어주는 등 나름 활약했으나 자책골 상황의 임팩트가 너무 커 묻혔다.
단 최악의 평점을 받던 2014-15시즌에 비해 장족의 발전을 했다 볼 수 있다. 한국인 재활공장 아욱국.
10월 28일 DFB-포칼 32강 SC 프라이부르크전에서 도미닉 코어의 패스를 받아 상대편 수비수를 제치며 상당히 먼 거리에서 굴러들어가는 환상적인 선제골을 넣어 시즌 1호골을 기록했다.
11월 6일 AZ 알크마르와의 유로파 리그 경기에서 40m드리블 돌파에 이은 골을 넣으며 본인 커리어 첫 유럽 대항전 골까지 기록했다.
하지만 리그에서는 12라운드 기준으로 8경기 0골을 기록 중이다. 컵 대회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11라운드 1.FSV 마인츠05전과 12라운드 베르더 브레멘전에 모두 선발로 출장했으나, 두 경기 모두 공격포인트 없이 물러났다. 폼이 올라오면서 얻어낸 기회를 확실히 잡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19라운드 기준으로 16경기 0골 0어시스트에 머물러 있다. 다른 2선 자원인 얀 모라벡, 하릴 알틴톱 등의 경기력은 더 심각한 상황이라 그나마 나은 지동원이 선발 기회를 많이 얻고 있긴 한데, 2년 가까이 리그에서 골이 없다는 건 진짜 심각한 상황이다. 먹튀 위험.
그리고 리버풀과의 유로파리그 32강 경기에서 교체출전하여 골을 기록할 뻔하였으나, 골대에 맞아버렸다.
결국 리그 21경기 0골, 컵대회 8경기 2골, 총 29경기 2골이라는 아쉬운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리고 시즌 후 아우크스부르크가 임대로 와서 좋은 활약을 보여준 알프레드 핀보가손을 완전영입함과 동시에 또한 일본 J리그 감바 오사카의 공격수 우사미 타카시까지 영입하면서 사실상 지동원은 팀 내에서의 입지가 정말로 위험해졌다.
2.9.3 2016-17 시즌
구자철과 함께 아우크스부르크의 에이스
우사미 타카시가 오긴 했지만. 포칼컵에서 우사미와 함께 벤치에 앉아 있는 상황에서 지동원이 교체되고 우사미는 그날 출장하지 못했다. 리그 6라운드 RB 라이프치히전에서 부드러운 터치 후 수비수 한명을 제치고 파포스트를 노리는 감각적인 왼발 슈팅으로 동점골을 넣었다. 이로써 50경기 무득점(979일) 기록을 끊어냈으나 FC 아우크스부르크는 후반전에 1골을 실점하며 라이프치히에게 1:2로 패했다.
7라운드 SC프라이부르크 전, 0:2로 끌려가는 상황에서 헤딩으로 공 방향을 돌려주며 팀의 추격골을 도왔으나 아우크스부르크는 결국 또다시 1:2로 패배했다. 분투하는 것에 비해 팀의 흐름이 너무 안 좋은 게 안타까울 정도. 이후 바이에른 뮌헨과의 포칼컵 경기에서 제롬 보아텡과 노이어를 뚫어내면서 골을 기록하면서 엄청난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팀은 결국 뮌헨에게 1-3으로 패배했다.
3 국가 대표 경력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3~4위 이란전에서 후반 막판 3분 동안에 2골을 몰아 넣으며 4:3 역전 승리에 큰 공을 세웠다. 그리고 K리그의 활약으로 국가대표에도 선발되어 2011년 1월 최종 엔트리에 들어서 아시안컵에 출장하며 활약했다.
2011년 1월 14일 대한민국vs호주 경기의 후반전에 교체출장한 유병수가 부족한 활약을 보여서 '염병라인'이라면서 욕을 먹고 있는 동안 지동원의 원톱은 전반전에 호주를 상대로 좋은 모습을 보여서 더욱 높게 평가받고 있다.
2011년 1월 18일 대한민국vs인도 경기에서는 구자철과 합작하여 2골 1도움을 기록했다.
2011년 3월 25일 온두라스 평가전에 후반 교체 멤버로 출전, 박주영의 골을 어시스트했다.
2011년 5월 대표팀과 올림픽팀 합류를 놓고 조광래 홍명보 두 감독이 대립을 펼쳤고, 급기야 조광래 감독이 항명파동을 일으키며 축구계의 곪은 고름이 터져 버렸다. 누가 봐도 이회택 기술위원장의 병크였으나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이 터지면서 이 일은 흐지부지 묻혀 버렸다. 그리고 지동원은 결국 올림픽 대표팀과 국가대표팀 양쪽에서 모두 뛰게 됐다. 지못미.
그런 식으로 마구 굴리다 이동국, 이천수를 망가뜨려 놓고도 아직 정신 못 차린 모양이다.
참고로 저 시기 지동원은 국대 혹사로 맛탱이가 가버린 이동국보다 더 긴 출장 시간과 경기 수를 뛰었다.;; 19살의 어린 선수가 청대, 리그, fa컵, 리그 컵 다 뛰다가 급기야 성인 A매치, 올림픽대표 양쪽에 불려나가게 된 것.
해외 진출 후 부상이 잦은 것이 이유가 있었다는 평이다.
비록 세르비아 평가전에서는 나오지 못했으나, 2011년 6월 7일 가나 평가전에서 풀타임으로 뛰며 1골, 1도움을 기록했다. 또한, 이후 2011년 레바논과의 A매치에서 2골을 추가하여, 통산 11경기 8골을 달성했다.
2012년 8월 5일 카디프에서 영국 단일 팀이라고 쓰고 잉글랜드+웨일스라고 읽는다.과 맞붙었던 런던 올림픽 8강전에 선발출장하여 전반 28분 선제 골을 터뜨려 한국의 올림픽 첫 4강 진출에 일조했다. 다만 해당 경기에서 헤딩슛 3개를 골대 바깥으로 날려버린지라 까고는 싶은데 선제골 때문에 깔 수도 없는 복잡 미묘한 심정을 팬들에게 맛보였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최종예선 최강희호에 뽑혔다. 다만 확고한 주전은 아니고 김보경 손흥민 등과 함께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더구나 박주영과 마찬가지로 리그에서 출장기회를 자주 잡지 못하면서 폼이 하락해 대표팀에서도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최강희 감독이 '더이상 실험은 없고 정예를 추려서 간다'고 공언했던 3월 26일 홈 카타르전에서 선발 출장했으나 후반 8분 이동국과 교체되었다. 이날 이근호와 이청용 그리고 후반 교체투입된 손흥민 세 윙포워드 경쟁자가 모두 훌륭한 기량을 보이면서 대표팀에서 입지가 많이 줄어들 모양새다.
그래도 꾸준히 주전으로 출장했던 덕분에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공언한대로 3월 평가전을 앞두고 김보경과 함께 오랜만에 대표팀에 합류했다. 그러나 활약상이 마음에 들어서 뽑은 것이 아니라 어떤 선수인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 뽑았다고 선을 그은만큼, 과연 얼마만큼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일단 오른쪽 발목 부상이 있어 3월 27일 우즈베키스탄전에는 결장했다. 원톱 이정협이 부상으로 전반전 빠졌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완벽하게 회복되지 않은 지동원을 넣지 않았고 31일 뉴질랜드전을 위해 아꼈다.
뉴질랜드 평가전에서 최전방 공격수로 출전했으나 좋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선발 명단 자체가 베스트와 거리가 먼, 실험적인 성격이 강했다고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이 요구하는 원톱으로서는 낙제점이었다. 대표팀에선 문전에서 싸워줄 원톱을 찾고 있는데 자꾸 측면으로 빠지며 동료에게 공간을 열어주는 지동원 특유의 스타일 때문에 공격 전개가 원활하지 못했다. 공미로 전환하면 좀 나아지려나?[10]
우즈벡전 이후로는 오랫동안 공백을 갖다가 쿠웨이트전과 자메이카 전을 앞두고 복귀했다. 쿠웨이트전에서는 오랜만에 국대에 합류했기 때문인지 초반에는 잘 적응하지 못하고 버벅거리는 모습을 보였으나. 대체로 후반전 짧은 교체 시간에 비해 괜찮은 활약을 펼치며 승리에 일조했다. 윙으로 합류했던 자메이카전에서는 특유의 공간 창출 능력으로 여러 차례 기회를 만들어냈고 전반전 정우영의 코너킥을 그대로 헤딩 슛으로 꽂아넣으면서 첫 득점자가 되었다. 이후로도 페널티 존에서 파울을 유도하여 기성용이 PK로 득점할 수 있게 해줬고, 황의조의 데뷔골도 어시스트 해주는 등 이영표 해설위원이 경기 MOM을 확신할 정도로 폼을 끌어올린 모습을 보였다.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 예선 수원에서 열린 카타르 전에서 득점을 기록하며 3:2 승리에 기여했다.
그러나 10월 11일(한국시간)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열린 이란 전에선 부진한 모습으로 팀의 패배에 일조했다. 그러나 일단 명장 슈틸리케가 전술상으로 이란 케이로스 감독에게 완패한 경기였고 한국 모든 선수들이 부진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지동원의 기용에 의문을 표하는 목소리도 커지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분데스리가도 안 보는 축알못들은 닥치라는 자칭 축구매니아들의 집단난동질도 커지고 있다
지동원 국가 대표팀 득점기록 | ||||||||||
일시 | 장소 | 상대팀 | 경기결과 | 대회명 | ||||||
2010년 12월 30일 | 아부다비 | 30px 시리아 | 1–0 | 친선경기 | ||||||
2011년 1월 18일 | 도하 | 30px 인도 | 4–1 (2득점) | 2011 AFC 아시안 컵 | ||||||
2011년 1월 28일 | 도하 | 30px 우즈베키스탄 | 3–2 (2득점) | 2011 AFC 아시안 컵 | ||||||
2011년 6월 7일 | 전주 | 30px 가나 | 2-1 | 친선경기 | ||||||
2011년 9월 2일 | 고양 | 30px 레바논 | 6-0 (2득점) | 2014 FIFA 월드컵 예선 | ||||||
2015년 10월 13일 | 서울 | 30px 자메이카 | 3-0 | 친선경기 | ||||||
2016년 10월 6일 | 수원 | 30px 카타르 | 3-2 | 2018 FIFA 월드컵 예선 |
3.1 통산 국가대표 기록
2016년 6월 16일 기준
연령 | 출전 | 골 |
U - 17 | 0 | 0 |
U - 20 | 9 | 6 |
U - 23 | 17 | 3 |
A 대표 | 36 | 9 |
종합기록 | 62 | 18 |
4 플레이 스타일
전남 유스 출신 다운 좋은 볼키핑 능력이 인상적인 선수로 공격수의 기본 소양 중 하나인 퍼스트 터치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스피드가 다소 부족하지만 나쁘지 않고 활동량은 괜찮은 편이며, 유연성도 뛰어나다. 전술 이해능력 자체는 나쁘지 않아서 중앙과 측면을 오가며 공격수 룰을 수행하는 편. 실제로 전남 시절이나 국가대표팀 발탁 초창기에는 공격수였으나, 크로스가 나쁘지 않고 발도 원톱 치고는 빠른 편이라 유럽 진출 이후에는 측면 공격수로 출장하는 경우가 많다. 거기에 감아차기, 아웃프론트 등을 가리지 않고 정확성과 파워를 겸비한 슛을 잘 날리는 편이지만 생각이 많은건지 준비동작이 길어 경기 중에 찬스를 놓치는 경우가 종종 화면에 잡힌다. 거기에 187cm에 77kg라는 건장한 체격을 바탕으로 한 몸싸움도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다. 즉, 황선홍 이래 나타난 전형적인 육각형의 능력치를 가진 선수인데 해외 리그 진출 후 그 능력을 제대로 키우질 못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선수. 공격수로서 골을 노리는데 집중 할 것인지, 미드필더로서 2선을 활발하게 누비며 1선을 지원할 것인지, 이 갈림길에서 본인의 스타일을 확실하게 만들지 못해 애매해져 버린 안타까운 선수라 할 수 있겠다. 멀티 포지션이 가능하다는 것은 분명 장점이지만 둘 중 하나를 자신의 색깔로 확실히 정하지 못한 것이 독이 된 셈. 왕성한 활동량으로 상대편 선수들을 지워버리고 골을 때려박던 전남 시절과 달리 해외 이적 후에는 그런 모습이 사라져버리고 애매한 모습만 남아서 지켜보던 팬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공격수로 나올 시에는 전형적인 가짜 공격수, 즉 펄스 나인 유형이다. 등을 지고 플레이하는 것을 선호하며, 공을 받기 전 중앙 수비수를 끌고 좌우측면으로 움직여서 공간을 창출하며, 공을 받았을 때는 드리블보단 패스 위주의 플레이를 한다.
아스날의 올리비에 지루의 플레이를 생각하면 되겠고, 한 차례 파문을 겪기도 한 박주영이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이러한 스타일을 보여줬었다.
사실 이적했었던 도르트문트의 스타일과 지동원의 스타일은 전혀 맞지 않았다. 위르겐 클롭 감독은 전방위적 압박, 순간적인 가속도, 골결정력이 뛰어난 전형적인 스트라이커를 선호했는데, 이는 지동원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애초에 말했다시피 지동원은 동료와의 연계, 공간 창출, 수비를 끌고다니는 능력이 뛰어난 가짜 공격수의 성격을 띄웠기 때문.
아마 도르트문트가 다시끔 강팀이 되고 상대하는 팀이 수비적으로 나오는 경향이 많아짐에 따라 상대 밀집지역에서 공간을 창출하기 위한 방안으로 영입했을 가능성이 있으나 도르트문트의 성적이 강등권을 헤맬 정도로 부진함에 따라 1군 경기에 장기간 부름받지 못하고 경기 출전을 위해 지동원은 아우크스부르크에 이적하게 된다.
5 기타
- 이름 때문에 별명은 지참치. 사실 마이너한 별명이었으나[11] 축구웹툰작가 와싯이 구자봉 이후 "캐릭터를 잡기 힘든데 참치탈이라도 씌워볼까"#...이후 빼도박도 못하고 참치 캐릭터가 되었다. 와싯 본인은 그리기 힘들다고 투덜대지만 웹툰에 등장하는 걸 보면 은근 귀엽다(...).#
- 별명이 참치라 그런지 회도 잘뜬다(...)#사실 추자도 수산인 아들이라서 잘뜬다고 한다.
- 부친이 추자도 출신인 이정협과 먼 친척 사이라고 한다.
- 더불어 많은 팬들이 언젠가 진짜 참치 CF를 찍을 재목으로 밀고 있다. 실제로 12시즌 맨시티 전에서 버저비터 결승골을 넣자 동원참치 트위터에서 축하 메시지를 날리기도 했다(...).
- 같은 시기에 맹활약한 인천의 유병수 덕분에 지동원 vs 유병수 떡밥은 2010시즌 K리그를 본 팬들 사이에서 꽤나 유명한 떡밥이기도 했다.
- 2011년 기준으로 유병수, 손흥민, 석현준과 더불어 향후 10년간 대한민국 대표팀의 공격진을 책임지리란 기대를 받는 유망주 중 하나이며. 그런 또래 경쟁자 중에서도 가장 앞서 있는 상태였으나 석현준이 엄청나게 포텐이 터지면서 국가대표에서는 밀리는 모양새다.
- '전남을 제외한 K리그 다른 팀으로는 이적하지 않겠다' 라는 발언 등으로 인해 전남 팬들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노상래의 재림 수준으로까지 칭송받는 존재다.
- 위의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전남을 정말로 사랑한다. 이적 당시 바이아웃으로 싸게 갈 수 있었음에도 바이아웃 포기 선언을 하여 전남에 큰 수익도 안겨줬고 본인 입으로 자신의 실력이 많이 늘었던 곳은 레딩이 아닌 전남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수시로 전남 홈페이지 게시판도 둘러보는 듯하다. 신년 기념으로 자기 명의로 글을 남기기도 했다.
- 2010년 12월, 황선홍 감독이 한 인터뷰에서 대한민국 차세대 스트라이커 감으로 지동원을 지목했다. 사실 황선홍 감독은 이전부터 지동원을 눈여겨 본 듯, 2010년 여름 박항서 전남 감독이 지동원 개인과외를 요청하자 수락했다! ㅎㄷㄷ 아쉽게도 박항서 감독이 사임하고 황선홍 감독이 포항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흐지부지 묻힌 듯.
- 여자 농구선수 김단비와 닮았다. 김단비가 자고 있는데 김단비의 아는 언니가 느닷없이 전화해서 "야 너 골넣었더라"며 놀리자 언니고 뭐고 달려갈뻔 했다는 일화가(...) 그래서 김단비와 '농구남매'라 칭하는 최진수와 도플갱어가 된다(...). 실제로 스포츠 관련 커뮤니티에서 사전 정보 없이 최진수와 김단비 사진을 올리면 최진수를 지동원으로 착각하는 상황이 종종 일어나곤 한다.
- 지동원 이름의 '沅' 자는 일본에는 없는 한자다. 그래서 지동까지만 한자로 쓰고 원은 카타카나로 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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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동원은 들어라[12] - 위르겐 클롭 감독이 지동원의 이름을 매우 마음에 들어하는것 같다.(...)
- 이선균하고도 닮았다(...)
- 2015년 12월 30일, 당해 시즌이 종료된 이후 결혼을 할 것임을 밝혔는데, 예비 신부는 2살 연상의 강지은씨로 알려졌다. 그런데, 그녀는 카라의 멤버였던 강지영의 큰 언니다!! 강지영의 형부가 된 셈.[13]
- 풋볼 매니저에서는 상당히 괜찮은
의문의 중위권팀 핵심선수급능력치를 받아서, 가끔 EPL에서 스무 골씩 박아넣는 등 굉장히 좋은 모습을 보인다.여기서도 육각형이다도르트문트 이적 후에도 꽤 괜찮은 능력치를 받았으나, 이후 부진으로 인해 전반적인 스탯, 특히 슈팅(...)이 깎여나갔다.
- ↑ 2007년 광양제철고 입단
- ↑ 이때 같이 레딩에서 연수를 받았던 선수가 남태희와 김원식
- ↑ K리그는 드래프트제를 시행하고 있긴 하나 유스팀 활성화를 위해 자기 유스팀 선수 중 4명을 우선지명(1순위 대우)할 수 있다. 대신 3순위 지명을 못한다.
그냥 자유계약제를 하지 - ↑ 대전에서 뛰던 공격수. 2011시즌을 앞두고 포항으로 이적
- ↑ 조광래 유치원 시절 경남의 핵심공격수.
- ↑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500만 파운드로 이적료를 제시했을 때 그를 거절했던 것으로 보아, 적어도 이보다는 더 높은 액수로 추정된다.
- ↑ 도르트문트의 위르겐 클롭 감독 말로는, '골 못 넣는 공격수를 키우는 것도 재미있지 않겠느냐'(...) 라고 했다고.
- ↑ 이 날 경기는 2:2로 끝났는데, 아우크스부르크의 또 하나의 득점은 도르트문트 선수인 스벤 벤더의 자책골이었다. 거기다 지동원의 득점까지 생각하면...
도르트문트만 네 골을 넣었는데 왜 경기는 비겼죠? - ↑ 실제로 이 시점에선 도르트문트는 리그 최하위를 다투고 있었기 때문에(...) 아우크스부르크가 리그에서 순위가 훨씬 더 높았다.
- ↑ 선수 본인의 폼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에 포지션을 바꾼다고 100% 나아지리라는 보장은 없겠으나 지동원의 성향을 고려하면 오히려 이쪽이 이득일수도 있다.
- ↑ K리그 팬들 사이에선 자주 쓰이던 별명이다
- ↑ 사실 본래 가사는 "Ji dong merrily on high, solely beat man city!" 이다. 번역하자면 "지동원에게 만세! 혼자서 맨 시티를 쓰러뜨렸다!" 정도. 즉 선덜랜드 소속으로 맨 시티를 이긴 지동원을 자랑스러워 하는 내용이지만, 국내에서는 몬데그린 때문인지 "지동원은 들어라, 손흥민 만세! 헤이!" 라는, 지동원을 놀리고 손흥민을 추켜세우는 듯한 내용으로 알려져 있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