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오스카르 다비드 수아소 벨라스케스 (Óscar David Suazo Velázquez) |
생년월일 | 1979년 11월 5일 |
국적 | 온두라스 |
출신지 | 산 페드로 술라 |
포지션 | 스트라이커 |
키 | 182cm |
프로 입단 | 1997년 CD 올림피아 입단 |
소속팀 | CD 올림피아(1997~1999) 칼리아리 칼치오(1999~2007) 인터 밀란(2007~2011) SL 벤피카(임대)(2008~2009) 제노아 CFC(2010) 칼치오 카타니아(2011~2012) |
국가대표 | 57경기 17골 |
온두라스 출신의 전 축구 선수.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였다. 흐긴 흑인 특유의 빠른 몸놀림과 드리블, 뛰어난 골결정력을 갖추었으며, 공간 지각 능력과 테크닉, 제공권 장악 능력 뛰어나다.
카를로스 파본 등과 함께 여러모로 온두라스 축구를 대표하는 선수 중 하나.
1997년 CD 올림피아에서 데뷔했으며, 1999년 오스카르 타바레스 감독의 눈에 띄어 이탈리아 세리에 A의 칼리아리 칼치오으로 이적해 유럽 무대로 진출하였다. 입단 첫 시즌에는 13경기에 출전해 1골을 넣으며 적응기를 가졌는데, 정작 팀은 17위를 기록해 시즌 종료 이후 2부 리그로 강등되었다. 그런데 이것이 전화위복이 되었는지 세리에 B로 강등된 팀에서 주전 자리를 수월하게 차지할 수 있었으며, 113경기에 출장해 40을 넣으며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특히 2003-04 시즌에는 45경기에 출장해 19골을 득점했으며, 팀이 2위를 차지해 1부 리그로 승격하는 데 기여했다.
팀 입단 이후 세리에 A에서 맞는 두 번째 시즌인 2004-05 시즌에는 주전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었으나, 비록 지안프랑코 졸라나 마우로 에스포시토, 안토니오 란젤라 등에게 밀려 후보로 활약하면서도 22경기에서 7골을 득점해 좋은 활약을 보였다. 2005-06 시즌에는 다시 주전으로 복귀한 뒤 37경기에서 22골을 득점하며 득점 랭킹 3위에 오르는 놀라운 활약을 보였으며, 시즌 종료 이후 카카와 함께 '세리에 A 최우수 외국인 선수'에 선정되었다. 2006-07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의 세비야 FC,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의 관심을 받았으나,[1] 마시모 첼리노 구단주의 만류로 결국 팀에 남아 주장 완장을 차며 과거 주전 선수였던 에스포시토, 란젤라와 함께 호흡을 맞추어 36경기에서 14골을 득점하며 득점 랭킹 공동 11위에 올라 팀이 17위를 기록해 가까스로 1부 리그에 잔류하는 데 공헌하였다.
시즌 종료 이후 "칼리아리를 사랑하지만 좀 더 강한 팀에서 뛰고 싶다"라는 말과 함께 공식적으로 이적을 선언했으며, AC 밀란, 인터 밀란, AS 로마, SS 라치오 등이 물망에 올랐다. 당초에는 이들 중 아드리아누의 대체자를 구하던 인터 밀란으로의 이적이 유력했으나, 며칠 뒤 갑자기 더비 라이벌인 AC 밀란이 인터 밀란보다 높은 이적료를 주고 영입을 확정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2] 당연히 인터 밀란 측에서 가만히 있지 않았으며, 수아소 또한 인터 밀란으로의 이적을 원했기에 결국 구단은 1200만 유로와 로베르트 아쿠아프레스카의 공동소유권을 받고 수아소의 인터 밀란으로의 이적에 합의했다.[3] 입단 이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평가전에서 2골을 넣어 팀의 3:2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해 한껏 구단의 기대를 자아냈지만, 막상 2007-08 시즌이 시작되자 부상으로 컨디션 난조를 겪으며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에르난 크레스포, 훌리오 크루스와의 주전 경쟁에서 밀렸다. 설상가상으로 PSV 에인트호번과의 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팔꿈치로 상대 선수를 가격했다는 이유로 레드카드를 받아 퇴장당했으나, 경기 후 비디오 분석 결과 고의성이 없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이후 11월 제노아 CFC와의 경기에서 데뷔골을 터뜨리며 팀의 4:1 승리에 일조했으며, AS 리보르노 칼치오와의 경기에서 두 골을 득점하며 팀의 2:0 승리를 이끄는 등 주로 교체로 출전하면서도 27경기에서 8골을 기록하며 나름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하지만 시즌 종료 이후팀의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한 주제 무리뉴의 팀 구상에서 선택받지 못했고, 이에 수아조는 다른 팀에서 주전으로 뛰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일단은 본인이 이탈리아에 남고 싶다는 바람에 따라 여름 이적시장에서 이전에 영입을 시도했던 AS 로마와 UC 삼프도리아, US 팔레르모로의 이적설이 제기되었으나, 결국 수아조는 "다른 리그에서 뛰더라도 더 많은 출전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빅 클럽이 좋다"는 의견을 내비치며 임대 후 완전 이적 형식으로 포르투갈 리그의 벤피카에 입단했다. 2008-09 시즌 초반에는 12에 출전해 4골을 득점하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쳤으며, 겨울 이적시장에서 아스톤 빌라, 에버튼 FC, 뉴캐슬 유나이티드 등 프리미어 리그의 팀들로부터 관심을 받기도 했다.[4] 하지만 스포르팅 CP와의 경기에서 왼쪽 무릎에 부상을 입어 시즌 아웃 상태가 되었으며, 결국 벤피카로의 완전 이적에 실패한 채 인터 밀란으로 복귀하였다.
복귀 이후 맨체스터 시티의 관심을 받기도 했으나,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로의 진출을 원한다고 밝히며 영입 제의를 거절하였다. 하지만 결국 다른 팀으로 이적하지 못한 채 2009-10 시즌을 맞이했으며, 이전보다도 더 기회를 잡지 못하며 겨울 이적시장때까지 리그에서 단 1경기 출전에 그쳤다. 겨울 이적시장이 열리자 번번히 거절당한 AS 로마와 AS 리보르노 칼치오가 영입을 시도했으나,[5] 수아소는 6개월 임대로 SS 라치오로 임대 이적한 세르지오 플로카리의 공백을 메우려던 제노아 CFC를 택했다.[6] 입단 이후 두 경기 만인 AC 밀란과의 경기에서 비록 팀은 2:5로 패했지만 데뷔골을 터뜨리는 등 나름 분전했으며, 이후에도 나름 좋은 활약을 보이며 한 때 임대 기간 종료 후 완전 이적 이야기까지 나왔다. 하지만 매우 저조한 득점력을 보이며 완전 이적에 실패했고, 결국 시즌 종료 이후 인터 밀란으로 복귀했다.
2010-11 시즌이 시작되기 전 자신을 기용하지 않던 무리뉴가 레알 마드리드로 떠나 다시금 기회를 잡는 듯 했지만, 장기 부상을 장하는 등 악재가 겹쳐 결국 시즌이 끝날 때까지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시즌 종료 이후 구단과의 계약이 만료되어 FA가 되었으며, 자신의 친정팀인 칼라아리 칼치오로의 복귀를 추진했다. 입단이 성사되는 듯 싶다가 마시모 첼리노 구단주의 마음이 바뀌어 무산되었으며, 이후 칼치오 카타니아와 1년 계약을 맺어 이적에 합의해 등번호 9번을 달게 되었다. 1년동안 뛰었으며 시즌 종료 후 은퇴하였다.
1999년 온두라스 청소년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으며, 'FIFA 청소년 월드컵'에 출전해 자신의 존재를 세계에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2000 시드니 올림픽에 출전해 나이지리아와 오스트레일리아를 상대로 두 골씩을 득점하는 놀라운 활약을 보였으며,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성인 국가대표팀에도 뽑혔다. 2001년 코파 아메리카 당시에는 국가대표팀 명단에 포함되어 대회 3위에 오르는 영광을 맛보았으며, 2003년 골드컵에서도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다.
2006 FIFA 월드컵 지역 예선 당시에는 5골을 기록했으나, 팀이 약체였던 탓에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이후 2010 FIFA 월드컵 지역 예선 당시에는 4골을 넣어 팀의 본선 진출에 기여하였다. 물론 본선에서도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출전하였지만, 팀이 약체였던 탓에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결국 16강 토너먼트에는 오르지 못했다.
여담으로 위건 애슬레틱 소속으로 뛰고 있는 엔드리 토마스가 사촌이며, 2005년 이탈리아 국적의 부인을 둔 덕에 이탈리아 시민권을 갖고 있기도 하다.- ↑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수아소의 플레이 스타일이 자신들의 전설적인 선수인 드와이트 요크를 연상시킨다고 평가했다.
- ↑ 칼리아리가 인터 밀란과 처음 협상할 당시 1000만 유로 외에 로베르트 아쿠아프레스카와 마르코 안드레올리의 소유권을 요구했는데, 인터 밀란 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도 구단주가 수아소의 인터 밀란으로의 이적을 승인하며 수아소가 인터 밀란의 메디컬 테스트를 받으며 이적이 유력해보였는데, 며칠 뒤 갑자기 AC 밀란이 1400만 유로를 제시하며 수아소를 하이재킹하는 상황까지 벌어진 것.
- ↑ 구단주가 수아소의 의견을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덕분에 이탈리아 최고의 더비 라이벌간의 이적 시장 신경전이 대단했지만...
- ↑ 당시 에버튼은 야쿠부 아이예그베니가 부상으로 시즌 아웃된 상태였고, 뉴캐슬 유나이티드는 마이클 오언의 계약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 떠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 ↑ 당시 로마는 재정 상태의 어려움(...) 때문에 영구 이적 대신 임대료 없이 시즌 종료때까지 영입하는 방법을 택했다.
- ↑ 이 때 인터 밀란이 라치오로부터 고란 판데프를 영입했다. 즉, 3구단 간의 트레이드였던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