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2016년 기준으로 대한민국에서 사용하는 동전들.
출처

징징이주워야 하는 것.

1 개요

금속으로 만들어진 화폐의 일종으로, 주화땡전이라고도 한다.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는 짤짤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과거에는 주요 화폐 중 하나였으나, 무겁고 제조비용이 많이 들어가므로 지폐가 만들어진 이후에는 거스름돈 등의 자잘한 거래에 사용된다. 2012년 현재 한국에서는 소매액의 기본이 지폐인 1000원을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 그야말로 '잔돈'으로 취급되지만, 외국의 경우 기본적으로 통용되는 소액 화폐가 동전인 경우도 꽤 많다. 무게 면에서는 상당히 불리하지만, 튼튼하고 오염에 강하다는 면에 있어서는 지폐보다 뛰어나다. 의외로 중요한 부분인데, 지폐가 사용할 수 없을 만큼 찢어지거나 오염되는 사례는 무시할 수 없다. 지갑을 실수로 세탁기에 바지와 함께 넣어버린다든지.

과거의 동전은 동전을 구성하는 금속에 상당하는 가치를 가져 서로 다른 금속을 사용하는 동전 간의 교환비가 유동적이었으나 현재의 동전은 그 가치가 공권력에 의해 보증되어, 동전을 구성하는 금속의 가치가 동전이 나타내는 가치와 다를 수 있다. 대한민국의 경우 2006년 새로운 십원이 나오기 전 십원 하나의 제조원가는 38원이었다.

근대 이전의 동전은 여러 금속을 복잡하게 섞어 합금으로 만들어 주조하기가 매우 힘들었기 때문에 금, 은, 구리 등 값나가는 재료를 그대로 찍어내어 만드는 일이 많았다. 이런 동전의 테두리를 약간씩 갉아내어 새로운 동전을 만들거나, 아니면 그대로 모아 팔아먹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자 동전 옆면에 흠을 새기고 테두리에 턱을 만들게 된다. 니켈 합금으로 만들어져 위폐 생산이 거의 불가능해진 현대에 와서도 이것은 그대로 남아 있다.

더불어 국내외 은행에서 타국 동전을 환전해주는 일은 거의 드물다. 우리나라는 KEB하나은행 중 구 외환은행 지점에서만 가능하며 매입시 50%, 매각시 70%로 쳐 준다.

2 종류

2.1 금화

으로 만든 동전이자 화폐단위.

고대부터 은 귀한 광물로 인식되었기에 자연히 금이 통화가 되었다. 금은 균질(均質)로 세분이 가능하고 화학적으로 매우 안정되어 있으며, 또한 그 아름다움 때문에 고대로부터 모든 사람의 소유욕을 자극하였다는 등의 이유에서 화폐로서의 역할을 하기에 가장 적절한 금속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화폐로서의 금은 이미 BC 20세기경에 이집트·바빌로니아에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주조화폐로서의 금화는 BC 7세기경에 그리스의 식민지 류디아에서 처음으로 주조된 것으로 전하여진다. 그후 그리스의 각 도시, 남(南)이탈리아, 소(小)아시아 방면으로 전파되어 갔으며, 로마 제국에서도 4세기에 들어서 콘스탄티누스 1세 때 주조된 솔리두스(solidus)는 질이 좋아 넓은 지역에 걸쳐 사용되었고, 1,000년 이상이나 유통되었다. 13세기 이후 피렌체에서 주조된 플로린(florin), 베네치아의 두카트(ducat), 1489년 영국 헨리 7세 때 만들어진 1파운드 금화인 소브린(sovereign) 등, 금화는 이탈리아·영국·프랑스 등 유럽 각지에서 근대적인 통화로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19세기에 들어서 각국이 금화본위제를 채용한 결과 금화는 유일한 본위화폐로서의 위치를 확립하였다. 한국의 경우에도 금화가 주조되었는데, 1882년(고종 19) 금화와 은화의 통용이 결정되어 1888년 주조, 유통을 시도한 바 있다. 그 뒤, 이러한 금화의 전성시대는 세계적으로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종말을 고하였다. 모든 나라가 금본위제를 지양하여 금화를 정부가 흡수하려 하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대전 종료 후의 금본위제 복귀도 사실은 금지금본위제의 채용으로 볼 수 있으며, 금화는 사실상 통화로서의 유통이 중지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당장 특수목적용이나 콜렉터용으로 만들어지는 금화는 아직도 많으며, 해당 금화를 시중에서 화폐로 사용하더라도 그 가치를 공권력으로 보증하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다. 예를 들어 1달러 금화는 지금도 미연방준비제도에 가져가면 1달러 지폐로 바꿔준다. 참고로 금본위제는 폐지되어서 반대로는 안된다. 물론 실제로는 액면가에 비해서 금의 가치가 더 높은 경우가 많고, 금값이 계속 상승하고 있고, 금화 자체의 희소가치가 있어서 실제 화폐로써 사용할 일은 없을 것이다. 1달러 금화는 2016년 7월 기준 금시가로 50달러가 넘는다(...). 한국에서도 각종 국제대회와 1988년 서울에서 열린 제24회 올림픽경기대회, 8·15광복 50주년 등을 기념하기 위하여 제작된 바 있다. 오스트리아 조폐국은 두카트 금화를 제작한다고 한다.

재료의 가치가 높고, 전 세계 어디서든지 귀금속으로 취급되는 금이므로 굳이 국가의 공권력이 없더라도 금 자체의 가치와 재료값만 따져서 중량단위로 세계 각지에서 통용될 수 있다. 그래서 가치보존 및 투자의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때문에 자국 화폐를 믿지 못하는 부유층의 경우 현금대신 금화(내지 금괴)를 자산으로 보유하는 경우가 많다. 요컨대 현대 국가의 화페 체계가 붕괴하더라도 금은 귀금속으로서 가치를 유지한다.

또한 부유함을 알기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상징이기 때문에, 전근대를 다루는 픽션들을 보면 금화가 쓰이고 있다. 부자집에 보면 꼭 금화를 잔뜩 쌓아놓은 금고 같은게 있거나 아니면 해적의 보물상자는 대부분 금화로 가득 차 있는 등. 게임에서나, 그런 게임들의 영향을 받은 양판소들의 경우 아예 대놓고 화폐 단위를 '골드'라고 쓰는 경우도 심심찮게 보인다. 게다가 알기 쉽게 전달하기 위해서인지 지름이 500원 짜리보다도 큼직큼직하게 그려지는 경우도 부지기수.

하지만 역사적으로 고증을 따지면 꽤 우스운 일. 사실 애초에 금으로 된 걸 동전 마냥 싸게싸게 쓰는 거 자체가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긴 한다(...). 어쨌든 자세히 따지면, 실제 중세 시대에 기축 통화로 쓰인 금화는 베네치아와 스페인에서 유통했던 두카트와 피렌체에서 시작해서 플랑드르 지역으로 전해진 플로린이다. 두카트는 3.5g 정도의 순금, 플로린은 3~5g 정도의 금으로 만들어졌다. 실제로 보면 손톱 정도의 크기에 불과하다. 일단 금을 가치 기준으로 삼으면 두캇은 2015년 9월 기준 15만원 정도. 하지만 돈의 가치는 재료의 가격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걸로 가치를 추산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애초에 플로린이 더 금의 함량이 많은데 두카트의 가치가 2배 정도 높았다. 사실 이 정도만해도 동전마냥 쓰는 건 말이 안된다

어쨌든 베네치아 공화국에서 발행했던 베네치아 두캇을 단위로 놓고 보면,

피렌체의 부를 상징하는 메디치 가문의 전성기 재산이 20만 두캇
지중해 최고의 부를 자랑하던 1500년대 베네치아의 국고수입이 연간 115만 두캇
1423년 베네치아의 수출과 수입 총액이 연간 1000만 두캇
1423년 베네치아에서 집세를 제외한 연간 생활비가 15-20 두캇

이것에다가 위키백과의 플로린 항목과 해당 항목의 링크하고 있는 중세의 물가지표를 참고하면 가치 계산이 된다.

이걸 고려하고, 원달러 환율을 1200원 기준으로 계산을 하면 1두캇의 가치는 약 80~90만원 정도. 게다가 상단 링크처럼 중세의 물가는 현대와 비교하면 상당히 낮았기 때문에, 순금화 1장의 가치는 엄청난 수준이다. 간단하게 비유하면 금화 정도되면 일상 생활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 대형 상거래를 위한 수표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양판소에서 금화를 뿌리고 다니는 것은 현대로 치자면, 슈퍼에서 과자사고 100만원짜리 수표로 계산하는 꼴이다.

한편 일본에서는 에도 시대 즈음에 코반(小判)이나 오반(大判)이라는 금화를 만들었는데 이 금화는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상당히 길쭉한 타원 모양이다. 포켓몬의 나옹 이마에 붙어있는 그거다. 한국에서 오방떡으로 불리는 오반야끼(大判焼き) 이름의 유래이기도 한데, 정작 오방떡/오반야끼는 그냥 동그란 원형이고 오히려 한국의 계란빵이 오반 형태에 가깝다.

2.2 은화

으로 만든 동전이자 화폐단위.

금보다는 못하지만 은도 귀한 금속으로 대접받았고, 자연히 화폐단위가 되기도 하였다. 금화와 마찬가지로 지폐가 탄생한 뒤로 시중에서 유통하는 용도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시대에 따라 차이가 나지만, 일반적으로 금화는 고액결제에 쓰였고 일상적인 결제에 쓰인 화폐는 은화였다.

여담으로 은화의 흥망성쇠는 금은비가(金銀比價 금과 은의 교환비율)와 금본위제도에 영향을 받았다. 기술력이 뒤진 과거에는 자연에서 금을 얻는 것보다 은을 얻는 쪽이 힘들었는데, 신대륙 은광에서 막대한 양의 은이 유럽으로 유입되면서 금은비가가 안정세를 보였으나 금본위제를 채택하면서 은의 가치가 떨어졌다.

은화 자체도 금화와 마찬가지로 폐지되지는 않았다. 역시 콜렉터용 은화도 아직 나온다. 그러나 금화와는 달리 은이라는 금속이 거래용보다는 세공용등의 다른 용도로 전환된지 오래기 때문에 귀금속임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공권력이 없으면 비교적 박한 가치를 가지며, 경우에 따라서는 거래가 불가능한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정부나 국가가 멸망테크를 타거나 쪽박을 찰 경우 당연히 금 다음의 서열을 가지는 것이 은이다.

금화보다 가치가 떨어지는 화폐라는 인식과 이미 금조차 발에 채이는 금속(...)으로 여겨지는 양판소의 설정상 서브컬쳐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무협물에선 은 결제가 일반적인데, 이는 중국의 세제가 부터 은으로 세금을 받기 시작하면서 은표라고 하는 일종의 어음이 통용되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때 참전한 명군(明軍)은 조선 현지에서 군량을 구매하기 위해 은화를 싸들고 왔는데 당시 조선에서는 상품화폐경제가 발달하지 않고 은이 화폐로써 통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약탈에 가까운 방법으로 군량을 조달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2.3 동화

구리를 주 성분으로 한 동전이다. 청동이나 황동이 재료인 것도 동화로 취급하기도 한다. 한국백원 주화오백원 주화같은 백동화도 일종의 동화.

원래는 동전이 동화의 다른 이름이었다. 상평통보같은 엽전도 동전의 일종. 역시 중국등 여러 국가에서 화폐로 사용되었으나 구리가 귀금속이 아닌지라 가치는 낮지만, 그래도 시장에서 거래가치를 인정받으며, 지속적으로 그 가격이 상승하고 있고 여러가지 쓸모가 많기 때문에 의외로 많은 양이 필요하므로 화폐로서는 많은 수량이 필요한 데 비해서 국가에서 지속적으로 만들기에는 비용이 가치를 초과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한민국의 십원이 바로 이런 경우다. 이래서 항상 시중에서 필요로 하는 양보다 모자란 사태가 많이 발생했다. 그런데 일단 가치가 높은 금속이다보니 동전에서 구리를 뽑아내서 팔아먹는 꾼들이 생겼다.창조경제 문제는 이게 화폐훼손에 해당하지만, 2010년 당시에는 이런 수법이 적발된게 처음이라 이들을 처벌한 법이 없어서[1] 그 후로 이런식으로 화폐를 훼손하면 처벌을 받도록 법이 바뀌어 버렸고 법이 바뀐 후, 실제로 처벌받은 사례가 2014년에 발생하였다.[2]

원래 동화는 가치가 낮고, 이에 따라 액면도 낮게 설정되므로 지폐가 대중화된 뒤에도 소액 결제 등의 명목으로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앞서 말한 이유로 인해 공권력을 이용해서 구리 대신 다른 재료를 사용한 동전으로 서서히 대체중이다.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빈도는 은화와 비슷한 수준. 사실 금화가 80% 가량이고 은화와 동화가 각각 10% 내외이다.

2.4 철화

을 주 성분으로 한 동전이다.

철을 재료로 하기 때문에 무겁고 녹이 잘 슨다. 게다가 철은 다른 용도로 쓸 곳이 많은 데 반하여 일반 거래용의 가치는 0에 가깝기 때문에 국가가 수시로 개입하지 않으면 가치가 금속조각 수준으로 떨어진다. 그래서 스파르타에서는 자국의 화폐를 타국에서 통용되지 못하게 해서 자국민의 사치를 막으려는 의도로 일부러 철막대기를 화폐로 삼았다. 당연히 이런 화폐는 외국에서 받지 않으므로 스파르타인은 억지로 검소하게 살 수 밖에 없었다.

다만 철을 사용하여 검소하게 되는 스파르타와 반대로 고대 한반도의 가야 에선 철 자체를 화폐처럼 무역이나 일상에 거래로 사용했지만 오히려 타국에서 원하였기에 오히려 융성해지기만 했다.물론 이경우는 가야 철이 아주 질이 좋았고 스파르타와 가야의 각자의 처지와 상황이 다른 탓도 있었다.

그래서 동화를 철화로 바꾸어보려던 노력이 수시로 실패했다는 기록이 세계 각지에서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도 최초로 철을 화폐처럼 사용한것은 위에서 말한 가야지만 화폐로 만들어 사용한 것은 고려 성종 4년(996년) 때인데 건원중보 엽전 형태의 철화를 발행시켰으나 너무 제한된 곳에서만 유통되었고[3]인민들은 옷감과 쌀을 교환 하는 것을 선호 하자 목종때 강제로 건원중보를 사용하게 하다 반발을 사 취소시킨 적이 있다. 조선 세조 때 화살촉5.45구경 탄환 형태의 철화 팔방통보(八方通寶)를 보급하여 평시에는 돈으로 쓰다 전쟁이 나면 모아서 화살촉으로 쓰려고 시도한 적이 있으나 이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그리고 미국에서도 1943년에 1센트 주화를 스틸로 한해만 발행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1943년인데도 동으로 발행된 주화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전년도에 사용되지 못하고 남은 소전을 그대로 사용해 나온 결과라는 것이 대부분의 정설이다. 물론 1944년에도 동일한 이유로 보이지만 반대로 스틸로 발행된 1센트 주화가 존재한다.그리고 혹시 위키러 가운데 1943년도의 동화 1센트나 1944년도의 스틸 1센트를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진심으로 축하한다. 전자의 경우 한화로 2천만원은 거뜬히 나가며, 후자라도 5백~1천만원은 너끈히 넘어간다. 물론 여기서의 가치는 콜렉터용으로서의 가치다.은행에선 1센트.

2011년 현재는 니켈화에 밀려서 사라진지 오래인 유물이다. 굳이 발행할 이유가 없고, 단점만 많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 잘 슨다는 것.

중국의 현행 1위안 동전은 껍데기만 니켈화고, 사실 속은 철화다(...). 오오 대륙의 기상 오오 사실, 1943년의 스틸 1센트도 위에 아연으로 코팅했으니, 1위안은 아직까지 남아있는 얼마 안되는 예시라고 할 수 있겠다(...).

2.5 니켈화

니켈로 만든 동전이다.

니켈은 특수강을 만들때 들어가는 등 산업용으로는 매우 유용한 희귀금속이며, 산업용의 가격은 매우 높지만, 화폐로 만들어서 시중에 유통하기 위한 가치는 엄청나게 떨어진다.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하면, 산업용으로 니켈을 대량구매하면 엄청난 가격이 매겨지며, 산업용의 대량 단위로는 판매 및 유통이 어느 정도 자유롭지만, 일반인이 동전 몇 개 수준의 니켈을 얻어서 판매하려고 하면 판매부터 잘 이루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설령 구매하려는 사람이 있더라도 순도 등을 따지면서 가격을 심하게 깎아버린다는 뜻이다. 따라서 철화처럼 산업용의 가치와 개인간의 거래용 가치가 분리되며, 일반 거래용의 가치가 0에 가깝게 때문에 국가의 공권력이 없으면 아무도 니켈화를 화폐로 사용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철화와 달리 잘 부식되지 않으며, 순수한 니켈로 동전을 만들 필요가 없이 기존의 동전에 니켈을 약간만 첨가해서 합금을 만들어도 동일한 효과를 거둘 수 있으므로 세계 각국에서 많이 사용된다. 또 캐나다 같은 니켈 생산 대국의 경우 순도 99.9% 니켈로 만드는 비범한 짓을 하기도 했다.

일례로 한국에서는 구리와 섞어 만든 백동 동전이 유통되고 미국의 5센트 동전을 니켈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역시 백동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백동화는 동화에도 속하고 니켈화에도 속한다.

2.6 대한민국에 있는 동전

대한민국 주화
액수1원5원10원50원100원200원500원
무늬무궁화거북선다보탑벼이삭이순신고려청자두루미
  • 일원 주화 - 공식 화폐지만 액면이 너무 작아서 실제로는 통용되기 힘들어서 은행간 거래에서만 주로 사용된다.
  • 오원 주화 - 일원 주화와 동일한 비운을 겪고 있다.
  • 십원 주화 - 제조비용이 많이 들어가서 신규 형식으로 교체되었다.
  • 오십원 주화
  • 백원 주화
  • 150원 주화 - 한국조폐공사 화페본부에는 동전이나 지폐를 반입할 수 없기 때문에 150원짜리 동전을 구매하여 사용한다. 10원 주화보다 약간 작으며 아무 무늬도 없다.
  • 200원
  • 오백원 주화 - 일반 통용 동전중 최고 액면 동전.
  • 780원
  • 1000원 - v실제 기념주화로 발행되었다.

3 여담

3.1 동전 던지기

보통 한 면이 나올 가능성이 50%의 확률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무언가를 할 것인지 그렇지 않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용도로 종종 쓰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양 면의 부조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무게중심 등의 차이로 인해 50%로 귀결되지는 않고, 동전의 형태에 따라 편차를 보인다고 한다. 이는 지면에서 회전하고 있을 경우 특히 그러하며, 특정 동전의 경우에는 한 면이 80%가 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된 레퍼런스를 알고 있는 위키러는 추가바람.

그밖에 다른 의미의 던지기가 있는데, 바로 사람이나 물건을 향해 던지는 것... 기껏 동전 던지는게 뭐 대수냐 싶지만, 이건 호신술의 하나로 취급될 정도로 위험성이 대단하며 호신술 서적에 단골로 등장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물론, 10원이나 50원 짜리로 호신술에 써먹기엔 무리가 있지만, 중량급(?)인 백원이나 오백원 짜리를 스냅을 걸어 던질 경우 잘못 맞으면 단순히 피멍이 드는 것 부터 시작해서 살이 패인다. 운이 나빠서 눈에 맞으면 그대로 실명이다.그러니까 친구한테 음료수 뽑아오라면서 동전 던지지 말자.

3.2 기타

이런 동전들의 총집합이 민트세트이다.

몇몇 뮤지션들은 피크대용으로 피킹하기도 한다.혹은 피크를 다 잃어버렸거나 실제로도 피크와는 다른 음색이 나기 때문에 그 점을 노려 피킹할 수도 있다. 다만 현의 수명이 떨어지기 쉬우므로 가급적 자제하자.

마술의 도구로도 자주 쓰인다.
플레잉 카드보다 구하기도 쉬우며 간단하게 보여주기도 편해서 길거리 마술로 매우 좋은 도구로 쓰이고 관련 도구들도 많은 편

로마 시내의 트레비 분수는 관광객들이 동전을 던져 넣는 명소로 유명하다. 달라란 분수대를 비롯하여 여기저기서 패러디 내지 모방되기도 한다.본격 관광객 삥뜯기

1976년 신안 앞바다에서 발견된 송나라 시대 무역선에서 무려 3톤이나 되는 송나라 동전이 나왔다. 동전 갯수로만 쳐도 850만개 이상이 나와 중국이 보유한 동전보다 한국에 중국 동전이 더 많다고 이전 문서에 적혀있었지만 착각이다. 850만 개의 동전이 어마어마한 숫자이긴 하지만 송나라 때 만들어진 동전의 숫자를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착각한 것이다. 송나라는 중국 역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로 동전이 많이 주조된 왕조로 송나라 당대에 주조된 총량은 대략 1500억에서 2천억 개 정도로 추정된다. 때문에 이후로 수없이 녹여지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무진장 많이 남아 있어 송나라 동전은 연대로 보면 무척 오래되었는데도 불구하고 희소성이 없어서 골동품으로서의 가치가 거의 없다. 옥션에 가보면 알것이다. 천년전 유통되던 동전이 현재 무려 4000원!문화대혁명 당시 무수한 금속 문화재와 같이 중국 동전들도 녹여버렸지만 그래도 무지무지 많이 남아있고 또 땅만 파면 몇 톤씩 나오지만 T-34? 학계에서조차 "또 나왔냐?" 하는 식으로 별로 신경도 안 쓴다. 그래서 한국 신안 무역선에서 나온 동전 850만 개도 가치로 따지면 그냥 구리 3톤과 별 차이가 없다.[4]

간혹 밀린 월급을 동전으로 지불하는 악덕업주의 사례가 나올 때도 있다.# 이 기사에 나온 사례의 경우 10원 주화 18,000개를 받았고, 동전 무게만 무려 70kg에 달했다고 한다.[5]

다른 모든 것들이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연도별로 수집용으로 모으는 경우가 많다.#

키보드에 끼워서 매크로처럼 쓰는 경우도 있다(...).
동전을 집어던지면 스티로폴 박스를 뚫을정도의 위력은 나온다

4 참고

  1. 처벌을 받긴 했지만 다른 법(폐기물관리법 위반법)으로 처벌받은 것이다.
  2. 왜 이러나 싶을수 있는데, 동전을 저런식으로 날려먹으면 국고 즉 세금(...)으로다시 찍어내야하고, 그 동전의 가치보다 비용이 1.2~8배 이상 더 많이 들어간다(...)
  3. 주로 귀족들이 사용했으며 개경이나 서경등 중요 지역의 식당,술집,시장에서 만 유통
  4. 그리고 신안선이 중요한 이유는 용천청자이지 동전 문제가 아니었다.
  5. 다만 이 사례에서는 동전으로 월급을 지불한 사장에게도 속사정이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