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동부 프로미 No. 6 | |
두경민 | |
생년월일 | 1991년 9월 22일 |
국적 | 대한민국 |
출신학교 | 양정고 - 경희대학교 |
포지션 | 포인트 가드 |
신체사이즈 | 183Cm, 75Kg |
프로입단 | 2013년 드래프트 전체 3번 (동부) |
소속팀 | 원주 동부 프로미 (2013~) |
1 소개
원주 동부 프로미 소속의 농구 선수. 대학생 때는 김종규-김민구와 함께 이른바 경희대 Big3를 형성하면서 경희대학교 농구부의 전성시대를 이끈 선수다.
부친인 두일호씨가 농구 감독이었지만, 농구에 대한 흥미도 적고 부친의 반대도 겹치면서 중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농구를 시작했다.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당연히 기량 발전은 적었고, 졸업 무렵에는 연계 학교인 배재고에서 입학을 거부하는 바람에 간신히 집 근처인 양정고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것도 꼴찌인 양정고의 사정 + 농구 감독 출신인 부친의 간곡한 부탁 덕분이었다.
1.1 2013 ~ 2014 시즌
그런데 꼽사리로 들어간 선수가 대학교 2학년이 되면서 갑자기 기량이 급격하게 늘었다. 이미 1학년부터 팀의 주축 가드였던 김민구가 자신의 백코트 파트너로 두경민이 가장 편하다고 한데다가 본인의 돌파와 슈팅력이 몰라보게 향상된 것이었다. 그 결과 센터 자리의 김종규와 함께 경희대를 이끌면서 경희대 농구부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쩌리 중의 쩌리였던 선수는 급기야 유력한 로터리 픽의 후보로 꼽혔다. 물론 아무래도 경희대 빅3 중에서는 가장 존재감이 덜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김종규와 김민구를 못 잡으면 그 다음은 무조건 두경민이라는 것이 대세였고, 결국 2013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3번으로 원주 동부 프로미에 입단했다.
동기인 김종규와 김민구와 다르게 국가대표 발탁이 유니버시아드와 같이 2군 정도에만 그쳐서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에 국가대표와 소속팀을 오가면서 뛰지 않아 혹사를 덜 당해 즉시 전력감으로 데뷔가 가능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다만 전국체전 출전 관계로 프로 데뷔가 좀 늦어졌는데, 2013년 10월 25일 KT와의 홈 경기에 처음 데뷔해서 2쿼터에만 14점을 넣으면서 총 18점을 넣으면서 화려한 데뷔에 성공했다. 더불어 양동근과 스타일이 비슷하여 두동근으로 불렸다.[2]
하지만 개인기록은 좋지만 팀은 12연패. 두경민 합류전 4승1패였던 동부가 두경민 합류후 11연패를 하게되었다.[3]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이기지 못하자 패배를 부르는 사나이라고 불리는중. 슛팅력이 좋아 득점력은 좋고 스피드가 있고 파이팅이 있어서 디펜스도 최상급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1번으로써 패스, 시야, 리딩은 평균이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결정적으로 클러치타임에 극도로 약해 4쿼터나 경기 막판에 역귀짓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두역귀라는 별명도 붙었다. 그런데 마침내 동부가 12연패를 탈출했는데 아이러니하게 2분 정도 밖에 뛰질 못했다.
이후 동부가 연패 가도를 다시 달리는 동안에도 거의 출장 기회를 잡고 있지 못하고 있다. 같이 BIG3로 분류받던 김종규나 김민구, 심지어는 울산 모비스의 이대성과 비교해 봤을때도 상대적으로 적은 출장기회를 받고 있다.
1.2 2014 ~ 2015 시즌
기회를 어느정도 받았지만,2년차 징크스답게 지난해보다 조금 더 안좋은 활약을 펼쳤다.
1.3 2015 ~ 2016 시즌
등번호 6번[4] 을 새로 달고 시즌을 출발한 두경민은 박지현이 체력 부담이 큰 상황에서 주적인 자원으로 쓰이고 있다. 물론 결정적인 순간에 공을 발에 튀기는 등(...) 역귀짓을 하는 것은 여전하지만, 리딩 능력도 많이 향상되어 보인다. 11월 1일 현재 3점 슛 1위를 달리며 슈팅력도 많이 향상되어 보인다. 특히 동팀 가드인 허웅과 케미가 잘 맞아서 국농에서 가장 기대되는 파트너이기도 하다.
2년차까지 줄곧 문제였던 패스와 코트 비전에서 상당히 개선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이전과 달리 지공 상태의 흐름에서 답답한 모습은 많이 줄어든 편이다.덕분에 출전시간은 많아졌다.
예전보다는 훨씬 더 성장했지만 중요할 때 항상 경기를 말아먹는다. 오리온과의 6강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는 외곽을 버리는 지역방어를 선택했던 오리온에게 클러치 역귀에 걸맞지 않게 빅엿을 날리는 3점슛을 4개나 성공시켜서 21점차까지 벌어졌던 경기를 턱밑까지 추격하는데 성공했지만, 공격을 보조해줄 다른 선수들의 기량 미숙 및 경험 부족으로 1차전을 내주었다. 2차전부터는 1차전때의 활약상을 기대하게 한 것이 무색할 정도로 외곽 공격에서 답답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3차전에서 수많은 3점 오픈 찬스를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9개를 던져 한 개도 성공하지 못하는 대굴욕을 남기고 말았다. 그리하여 두09라는 별명이 추가되어 버리는 참사가 발생했다.
2 플레이 스타일
본격 프로농구판 김주찬[5]
KBL에서 제일가는 양날검
포지션은 등록상 가드이지만 무늬만 가드이지 플레이 스타일 자체는 2번~3번, 즉 스윙맨에 가깝다. 양동근도 그런소리를 많이 듣던 포인트가드이지만 두경민의 경우는 좀 더 심하다. 장점이라 하면 역시 슈팅능력으로 3점슛 성공률이 45%에 달할정도로 슈팅에 능하고 스피드도 빠르며 파이팅 넘치는 수비가 장점이다. 하지만 단점도 있는데 1번으로썬 치명적인 약점인 좁은 시야와 1번이라 하긴 민망한 패싱능력 두가지이다. 그리고 1~3쿼터에 날아다니다가도 4쿼터만 되면 역귀가 되는 클러치에 약하다는 점도 약점이라면 약점이다.
사실 경희대 시절에도 두경민이 포인트 가드를 본 일은 거의 없고 리딩은 김민구가 전담하다시피 했다. 타고난 슛팅력에 비해서 시야가 워낙 좁기도 하고 최부영감독이 대학 4년동안 두경민을 해결사롤로 키우면서 포인트 가드로써의 경험을 별로 쌓지 못했고 사실상 전문슛터로써의 롤로 가르친탓도 크다. 프로에서의 플레이를 보더라도 포인트 가드는 고사하고 슈팅가드의 플레이라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다는게 중론. 사실상 두경민의 프로 첫해까지의 플레이는 단신 스몰 포워드라고 보는게 옳다. 리딩능력이 없고 슛 능력만 특화된 단신 슛터로는 정인교 & 조성원 & 김병철 & 전형수[6]등을 들수 있는데 두경민 역시 이런 사례로 볼수 있겠다. 두경민 본인은 2번 포지션엔 욕심이 없고 1.5번 포지션이 되기 위해 매진하겠다는 각오를 밝혀서 포인트 가드도 볼수 있는 선수가 되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다. 죽어도 포가 연습 안한다고까지 했으면 동부팬들 피꺼솟 그러나 이와 비슷한 사례로써 대학시절 순수 슛터에 가까웠고 포인트가드완 인연이 없었던 박경상이 프로에서의 생존을 위해서 포인트 가드로써 연습을 하고 있지만 애를 먹고 있다는 사례를 보더라도 포인트 가드는 타고난 운동능력보다 시야와 센스가 타고난게 더 중요한 포지션이라는걸 보여주고 있다. 더군다나 두경민은 그 박경상보다도 시야가 좁고 BQ까지 딸리는 터라 향후에 1번 포지션도 볼수 있을지는 미지수인 상황.
오죽하면 디시인사이드 농구 갤러리에서 일부 팬이 '두경민 향후에 포인트 가드 맡을수 있겠음?' 하면 이구동성으로 ㅋㅋㅋ를 댓글로 남길 정도로 동부팬은 물론 타팀팬들조차 두경민의 포인트가드 겸업 가능성을 거의 없다고 볼 정도이다.
운동능력과 스피드 & 체력만큼은 엄청난 수준이라 김영만 감독이 2014년 부임후 체력훈련때 동부의 다른 선수들을 가볍게 제쳐버리고 1등을 먹기도 했다. 이것때문에 선배 선수들이 놀랐을 정도로 체력과 스피드는 타고 났다. 그러나 농구 센스와 시야가 워낙 좁고 BQ가 딸린다는 근본적인 약점에다가 수비력은 최악의 수준을 보여서 매치업 상대에게 족족들이 3점을 얻어맞는 상황을 만들곤 한다. 물론 동부의 슛팅가드진이 전반적으로 수비력은 내놓은 수준이고 이광재 & 최윤호등도 절망적인 수비력을 보이고 있는 탓에 두경민 혼자만의 책임은 아닐수도 있겠지만 본인의 수비력 자체도 문제가 있는 감은 있다. 새 시즌을 앞두고 이광재도 팀을 떠났고 선수단 개편이 있었으니 만큼 2014 ~ 2015시즌이 두경민의 터닝 포인트가 될수 있을듯 하다. 다만 동부가 앞으로의 신인 지명에서 주사위 행운이 몆년간 이어져서 레귤러급 신인을 계속 지명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두경민이 1번 겸업을 그때까지도 못한다면 백업요원으로 전락할 위험성도 있다. 당장 2,3번자리도 박지훈 & 최윤호등의 경쟁자가 있고 상황에 따라서는 박지현 & 안재욱등의 투 포가 시스템을 가동하는 전술도 나올수 있는데 투 포가 시스템일 경우 단신인 두경민이 함께 뛰기가 어렵다는 근본적인 맹점이 있다.[7]
국제 대회를 마치고 두경민의 자신있는 플레이가 재평가 되면서 다시한번 팬들이 기대를 하게 되었다. 나름 준수하게 활약하다가 부상으로 잠시 쉬게 되었다.
15-16시즌부터는 허웅 과 호흡을 맞추며 거의 1번으로 활약했다. 팀 내 베테랑가드인 박지현 이 체력조절을 하면서 기회가 많아지고 초반 패싱능력과 페이스 조절이 힘들었던 적도 있으나 갈수록 발전하는 모습이 없지 않다. 데뷔 초 보여준 3점포 실력도 때때로 보여주고 있는편. 정규시즌만 해도 이런 장점이 적중을 해서 동부의 외곽 옵션으로 자리를 잡는 듯 했다. 하지만 클러치 상황에서의 슛이 떨어지는 약점이 결정적으로 작용하여 6강 플레이오프 스윕의 원흉으로 찍히기도 했다.
3 기타
파워 트위터리안이기도 하며 성격은 참 밝고 명랑하며 진심 솔직한면이 있다. 속된말로는 깝을 잘친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는데 어쨌든 이런 긍정적인 성격을 팀의 캐미스트리에 좋은 점으로 접목시킬수 있다면 분위기 메이커가 될수 있을듯 하다. 다만 트위터를 좀 너무 많이 하는 감은 있다. 자칫 트위터에 글씨 한 번 잘못쳤다가는...
- ↑ 등록상 가드이지만 밑에서도 나오다 시피 두경민의 플레이는 포인트 가드 와는 전혀 거리가 먼 스타일이며 심지어 슈팅 가드 스타일도 아니라는게 농구 관련 커뮤니티의 중론. 그래서 반 농담으로 스몰 포워드 소리를 듣는다.
- ↑ 실제 비슷하다. 둘다 슛이 좋고 수비가 좋다는 장점이 있지만 리딩, 패싱력은 좀 약하다는것도 공통점이다.
- ↑ 물론 두경민의 책임이라고는 할 수 없다. 딱 그시기에 주성타가 빠진게 컸다.
- ↑ 6번은 15ㆍ16시즌 군입대한 박병우 의 14ㆍ15시즌 등번호였음.
- ↑ 롯데시절의 뇌주찬을 생각하면 된다
- ↑ 단 전형수는 포인트가드를 아예 안본건 아니었다.
- ↑ 이러한 약점이 15-16 플레이오프에서 결정적으로 작용하였는데, 포가 한 명만 빼고 190 중반 이상의 신장을 가진 고양 오리온을 상대로 수도 없이 많은 미스매치가 나온 탓에 수비에서 상당히 비효율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고, 시리즈 내내 주도권을 단 한 번도 잡지 못한채로 0승 3패로 스윕을 당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