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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터키의 외교관계를 설명하는 항목. 곰과 이리.
터키는 오스만 제국 시절부터 전통적으로 남하정책을 추진하는 러시아 제국와 대립 관계에 있었던 역사적 경험에서 러시아 - 소련의 위협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두 세력의 기나긴 투쟁의 역사에 관해서는 러시아-튀르크 전쟁, 크림 전쟁, 제1차 세계대전 등의 항목을 참조하라. 터키의 한국전쟁 파병은 그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으며, 더하여 냉전 구도에서 확실하게 미국측에 서려는 의도도 있다. 그래서 한국전쟁에서는 아시아 대륙 반대편에서 벌어진 일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영국, 캐나다 다음으로 많은 군대를 파병했다.
터키는 서아시아 국가중에 소련의 전세계 앞마당화(…) 공세를 가장 강력하게 맞받아친 나라였는데, 소련이 요구하기를....
1. 흑해 입구의 해협을 공동관리할 것 2. 이를 위해 터키 영토에 소련 기지를 건설하게 해줄 것 3. 영국과의 협력을 그만두고 소련과 우호적인 협정을 체결할 것 4. 터키 영토 일부를 할양할 것[1] |
....등을 골자로 한 요구를 해 오자 협의 자체를 전면거부하고 터키 내 18만명의 예비군에게 언제든지 비상동원령을 내릴 것을 준비하는 한편, 총리인 사라츠 오울루가 직접 만약 소련이 터키의 독립을 침해할 경우 승산이 적더라도 전면전을 불사하겠다는 전쟁드립을 날려대며 뻗댔다. 이후 미국이 대대적인 개입에 들어가며 소련은 데꿀멍.
참 비범하기도 하고 이렇게 보면 양대 초강대국이었던 소련에 겁먹지 않은 터키가 대단한 나라인것도 같지만... 사실 역사상 러시아 제국의 팽창으로 가장 많이 피해를 본 나라가 바로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다. 16세기부터 시작한 러시아-튀르크 전쟁은 400년간 13차례나 치러졌다. 제대로 된 바다를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였던[2] 러시아의 최종 목표는 이스탄불을 넘어 지중해로 진출하는 것이었고 수도가 이스탄불인 터키로서는 절대 용인할 수 없는 것이었다.
표트르 대제 시절 까지만 해도 터키는 러시아의 국력을 압도했으나, 표트르 대제 이후 러시아가 급진적인 서구화를 시작하며 점점 성장하자 터키는 계속 러시아에게 조금씩 털린다. 구소련에 포함되었던 중앙아시아나 우크라이나, 크림 반도 등등은 모두 오스만의 번국이거나 속령이었지만, 러시아 제국이 성장하면서 족족 빼앗긴다. 크림 전쟁이 되어서야 영국과 프랑스의 힘을 빌려 겨우 러시아의 남하를 일단 저지하지만, 크림전쟁 이후 벌어진 제12차 러시아-튀르크 전쟁에서 참패하여 크림 반도와 우크라이나를 빼앗기게 된다.
일반적으로 오스만 제국의 몰락은 1683년 2차 빈 포위의 패전과 헝가리 상실 이후로 수세에 들어갔다고 보지만, 사실 18세기에도 헝가리 상실 이후 오스만 제국은 추가적인 오스트리아의 남하 시도는 성공적으로 저지하고 여전히 지역 강대국의 위치를 유지했다. 이런 오스만의 국력을 본격적으로 허리를 부러뜨리며 대내외적으로 확실하게 오스만 제국이 약체화가 되었다는 걸 알린 건 알렉산드르 수보로프가 맹활약하며 크림 반도와 우크라이나 남부를 영구히 상실한 1774년의 쾨즉 카이나르카 조약이었다.
오스만 제국의 쇠퇴의 첫 테이프를 끊은게 오스트리아 쪽이라면 그 허리를 아예 부러뜨려버린 건 러시아였단 소리. 오스만 입장에서도 사실 오스트리아와는 헝가리와 크로아티아 일대를 상실한 이후 별로 크게 국경 변동이 없었던 반면, 유럽의 병자 소리 듣고 다니던 19세기 중 제국을 가장 집요하게 괴롭히고 충돌했던 건 러시아 쪽이었다. 게다가 체르카스인 대학살이나 크림 타타르인 강제 추방, 발칸 속주 독립 이후 집중적인 약탈과 학살을 겪으며 비참한 꼴로 남아 있는 오스만 영토로 몰려 온 무하지르 난민들을 통해 러시아의 악랄함을 속속히 전해 들었으니 19세기 오스만 측 자료에서는 천하무도한 무슬림의 학살자 러시아 야만인들 같은 소리를 많이 접할 수 있다.
이후 최종전이라고 할 수 있는 제1차대전의 캅카스 방면 전역에서 러시아가 우세했지만, 두 제국 모두 멸망 크리를 맞게 되었고.. 이후 생긴 후계국인 소련과 터키 공화국은 둘다 서방에선 개쌍놈 취급..
이래서 한동안 외교적으로 고립되었던 소련과 터키는 동병상련으로 사이좋게 지낸다. 터키와 소련은 서로 상대를 외교적으로 인정해준 첫번째 국가였다. 터키가 제2차 세계대전 때 우크라이나를 떼어준다는 나치 독일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것은 바로 이때 소련과의 의리 때문인 것도 같다.[3]
그러나 이 와중에 둘이 으르렁거리던 것도 많은데 터키의 친척민족쯤 되는 아제르바이잔을 강제합병하던 소련이 친터키적인 아제르바이잔 인사들을 마구 학살하거나 터키로 추방했기에 이스마트 이뇌뉘 터키 대통령이 스탈린에게 항의하던 일도 있다. 이와 별도로 터키의 국민 감정도 완전히 풀리지 않아 핀란드의 만네르헤임 장군이 소련과의 전쟁에서 연전연승하자 터키인들은 쾌재를 불렀다.
1952년 터키가 NATO에 가입하며 두 나라는 다시 적대관계로 돌아서게 된다. 터키는 소련과 직접 국경을 맞대고 있는 사실상 유일한 NATO 국가[4]였으며, 강대한 소련군을 제1의 가상적군으로 두게 된 터키군은 이를 막기 위해 육군이 비대해진 기형적 구조를 가지게 된다.
소련 붕괴 이후 아르메니아와 영토분쟁을 벌이던 아제르바이잔에게도 러시아가 아르메니아 편을 들어주면서 아제르바이잔을 같은 튀르크계로 더 옹호하던 터키에선 반러 움직임이 거세기도 했다. 한편 터키와 아제르바이잔과 철천지원수인 아르메니아는 친러성향이 강해졌다. 한편 터키 서쪽 유럽 방향으로 눈을 돌려보면 터키의 제1원수 그리스, 그리고 역시 터키와 그리 친하지는 못한 불가리아도 일단 서방진영으로 분류됨에도 불구하고 같은 정교회 계열 국가라고 은근히 러시아와 친하게 지내려는 성향이 있어서 터키를 사방에서 견제하고 있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것이 러시아 결혼정보업체에서 조사를 했는데 러시아 여성이 가장 선호하는 국가의 남성으로 터키 남자가 뽑혔다는 점이다. 또 터키 남성들 역시 러시아 여자나 우크라이나 여자에 환장하는 경향이 있는데[5] 러시아와 터키의 좋지 않았던 과거사에 비춰 보면 참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구소련권 여성들 중에서는 터키 날씨가 좋아서(...) 터키 남성과 국제결혼 하러 오는 경우도 있다. 옆동네 그리스 남성과의 국제 결혼의 원인 중에도 '날씨'가 이유 중 하나로 손꼽힌다.
터키는 범튀르크 세계의 큰형님 노릇을 하고 싶어하는데, 중국의 통치하에 있는 위구르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튀르크계 국가는 러시아(옛 소련)의 영향권에 있었고 이쪽 지역은 지금도 러시아의 영향이 꽤 크기 때문에[6] 중앙아시아 쪽에서도 은근히 두 세력의 주도권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2015년 11월 24일에 터키군이 러시아 전투기(Su-24)를 격추시켰다. 터키의 입장은 전투기가 터키 영공을 침범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역사적으로 사이가 좋지 않은 두 국가 사이가 더 나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
11월 25일, 러시아의 발표에 따르면 터키 전투기의 경고 방송이 없었으며 러시아 공격기가 격추당한 곳은 터키 영공이 아닌 시리아 영공이었다. 즉 러시아 입장에선 터키가 시리아 영공에 있는 자국의 전투기를 격추시킨 셈이다 #. 자세한 내용은 2015 러시아 공군기 Su-24 격추사건 항목 참고. 관계가 악화되고 있음에 따라 터키에 대한 제재착수도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에르도안이 11월에 일어났던 러시아 공군기 격추사건에 대해 2016년 6월 27일에 공식적으로 사과하면서 관계정상화를 보이고 있다.##
2016년 7월 20일, 위키리크스에서 터키의 여당인 정의개발당의 메일에서 문서를 유출한 결과 터키와 러시아, 시리아가 대 테러 전에서 협력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미국 입장에서는 동맹이지만 10여년 넘게 집권 중인 에르도안을 탐탁치 않게 여긴 반면, 러시아는 독재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국가이기에 2015 러시아 공군기 Su-24 격추사건을 계기로 양국의 관계는 그동안 심각했지만 외교부와 정치인들이 물밑 접촉을 하면서 러시아와 시리아의 중간 지점이자 중동과 유럽으로 가는 첫 관문인 터키에 손을 내민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유럽 연합, NATO 입장에서는 앞마당을 내준 격이라 발칸 반도와 남부 유럽, 중동은 우크라이나 내전보다도 유사시 더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푸틴이 현 상황을 좋아합니다
게다가 이번 터키 쿠데타가 미국의 사주로 일어났다는 설이 터키 내에서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으며, 에르도안의 정적을 보호하고 있는 미국 입장에서는 사실상 러시아에게 터키를 빼앗긴거 아니냐는 추측이 많다(...) 오바마 의문의 1패 터키 외무부에 따르면 터키 쿠데타 진압에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은 러시아 라고 한다. 첩보장비를 통해 터키 군부의 쿠데타 움직임을 사전에 포착했고 이를 터키 정보부에 알려줘서 에르도안 대통령이 기습당하기 전에 피할수 있게 해주고 쿠데타를 진압할 기회를 주었다는 것이다. #
다음달 (2016년 8월)초에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러시아에 방문해 푸틴을 만날 계획이라고 하니 사이가 더욱 밀접해질것으로 보인다. 끼리끼리 논다고... 중국의 약진, 핵 협상 성공으로 경제재재가 풀린 이란(+내전 중인 아사드의 시리아)까지 가세하여 러시아는 유사시 서유럽과 중동에 군사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활로를 완벽하게 확보한 셈이다. # 오바마 피꺼솟 그리고 러시아와 터키는 흑해 해저 가스관건설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군사, 정보협력에 합의했다.##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서 한류가 유행하는 것처럼 러시아에서는 터키 드라마를 많이 수입해 시청는데 러시아 여성들이 주 시청자들이다.
경제 관련 터키스트림 관련 기사 [1]- ↑ 소련이 요구한 영토는 카르스, 아르다한, 아르트빈의 3개주로 과거 터키 영토였다가 러시아가 1878년 전쟁으로 점령해 1921년까지 점령하고 있다가 1920년에 반오스만 제국 튀르키예 공화군이 카르스를 쳐들어가 소련군을 물리치기도 했다. 국토가 넓고 적이 많은 소련으로선 터키 쪽에 총력을 다할 수도 없어서 소련과 터키 공화국 성립을 계기로 반환했던 곳. 즉 줬던 거 다시 뺏기. 그런데 이 땅들은 역사를 거슬러올라가면 터키인이 오기 전부터 아르메니아의 전통적인 영토였는데 이 당시 아르메니아는 소련의 일부. 우습게도 이 때 이 영토를 소련이 가졌더라면 나중에 구소련이 붕괴되면서 저절로 아르메니아가 고토를 회복했을 가능성이 컸다...
- ↑ 지도상으로 보면 러시아도 바다와 접한 영토가 상당히 많아보이지만 따지고보면 북극해는 백해 쪽 일부를 제외하면 내내 얼어있는 부분이 많아서 항해가 힘들었고 발트해나 흑해는 큰 바다로 나가려면 여러 강대국 앞바다를 허락받고 지나야 하는 반쪽짜리 바다, 카스피해는 호수에 불과했고 동해와 태평양은 그나마 러시아가 차지한 열린 바다였으나 동유럽 본토에서 너무 멀고(그래서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만들었다) 그나마도 최남단 블라디보스토크마저도 완전한 부동항은 아니다.
- ↑ 의리 때문이 아니라 1차대전때 독일을 주축으로 한 동맹군에 가담했다가 피본 기억이 있고, 또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유훈 때문이다. 아타튀르크는 죽기전 1차대전보다 더 큰 전쟁이 일어날것이며 히틀러의 편에 서지 말것을 당부하였다. 자세한 건# 참조
- ↑ 노르웨이-소련 국경은 길이가 짧고 북극권 안쪽에 있어서 충돌 위험성이 터키-소련 국경보다 훨씬 적었다
- ↑ 당장 오스만 제국 시절에 하렘에 넘쳐나던 러시아, 우크라이나 여성들만 보아도 터키 남성들의 슬라브 출신 여성, 그 중에서도 특히 러시아 출신 여성에 대한 애호는 그 역사가 아주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건 동양권도 다르지 않다 - ↑ 타지키스탄을 제외한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아제르바이잔이 튀르크계 국가이다. 이 나라들은 독립한 지 20여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러시아어만 알아도 살 수 있을 정도로 러시아의 영향력이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