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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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삼성 블루윙즈 No.29
곽희주 (郭熙柱 / Kwak Hee-Ju)
생년월일1981년 10월 5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강원도 강릉시
포지션수비수
신체 조건184cm, 77kg
프로 입단2003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
소속 클럽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3~2013)
FC 도쿄 (2014)
알 와크라 SC (2014~2015)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5~)
국가 대표 경력6경기 0골
종교불교
수원 삼성 블루윙즈 역대 주장
송종국
(2008)
곽희주
(2009)
이운재
(2009)[1]
최성국염기훈
(2011)
곽희주
(2012)
김두현
(2013)
2004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나드손
FW
모따
MF
김동진
MF
따바레즈
MF
김두현
MF
김대의
DF
산토스
DF
유경렬
DF
무사
DF
곽희주
GK
이운재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주년 레전드
18
박건하
13
산드로
14
서정원
22
고종수
29
곽희주
7
김진우
3
이병근
1
이운재
11
데니스
12
나드손
K리그 최고의 수비수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수원의 곽희주를 꼽겠다. 왜냐하면 가장 많은 골을 넣은 나를 꼼짝 못하게 하니까. 인간적으로는 훌륭한 선수이지만, 경기장에서는 무서울 정도로 거칠다. 마치 인생의 마지막 경기를 뛰는 것처럼…

- 데얀(FC 서울)

1 클럽

장애를 극복한 수원 블루윙즈의 Forever Legend.
수원 삼성의 중앙 수비수 겸 좌측 풀백. 또는 햄보칼 수가 없는 축구 선수

수원을 가슴에 품은 영원한 BLUE LEGEND 곽희주의 마지막 경기 수원팬들이 그의 등번호인 29번과 그의 얼굴 가면을 이용한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광운대학교를 졸업하고 2003년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입단한 김호의 아이들 1세대 멤버 중 하나.
수원 입단 이후 국내에서 계속 수원에서만 뛴 선수

김호 감독 시절부터 백업 수비수로 기회를 부여받았으나 그의 포텐이 터지게 된 계기는 2004년 차범근 감독의 부임이었다. 사실 곽희주는 2003년 말, 잠시 축구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구단의 전지 훈련 중에 무단 이탈하게 된다.[2] 하지만 차범근 감독이 부임하면서 곽희주 선수 특유의 파이팅을 보며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 2004년부터 수원의 주전 수비수로 도약시키게 된다.

2004 시즌 초반, 수원 수비진의 초토화(조-조 라인의 부상, 김영선의 부상 등)로 인해 팀의 수비에 송송 구멍이 뚫리던 시기에는 수원 수비의 공적으로 인식되어서 수원 팬들로부터 먹을 욕 안 먹을 욕 다 먹었지만, 여름 시즌이 지나갈 때즈음부터는 단단한 벽이 되어서 2004 시즌 말에는 K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될 정도였다. 특히 2004년 여름에 있었던 FC 바르셀로나와의 평가전에서, 판타스틱 4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는 모습을 보이며 수비에 임해 무실점으로 막아내 승리를 이끌기도 했다.

플레이 스타일은 '파이터'로 끈적끈적한 대인 마크에 강하다. 신인 시절부터 한번 공격수가 보이면 계속 압박하고 달려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그런지 데얀이나 이동국처럼 K리그 전설급 스트라이커들에게 유독 강한 모습을 과시해 왔다. 중앙 수비수 치고는 발도 빠른 편. 다만 라인을 조절하거나 하는 부분에서는 다소 부족한 모습을 보여서 마토이싸빅, 조성환과 같이 수비 라인을 리드해줄 수 있는 수비수와 짝을 이루어야 좋은 활약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3]

축구장에서의 모습과 달리 매우 조용하고 온화한 성격이며 낯을 심하게 가리는 편이라고 한다. 현재까지 수원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활약하며 선후배들로부터 인망을 받고 있고 부드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2009년과 2012년에 팀의 주장을 맡아 활약하였다.[4][5]

2011년 들어 중앙 수비수 경쟁자로 마토황재원이 들어와서 이 두 명에게 밀릴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윤성효 감독이 곽희주의 멀티 플레이 능력에 주목, 팀 내에서 중앙 수비수, 측면 수비수, 수비형 미드필더 등 수비 보직과 관련한 다양한 포지션을 맏길 것이라고 밝혔고, 실제로도 서울과의 경기 때 3백의 오른쪽 수비수로 서서 활약하기도 했으며 가끔 수비형 미드필더 정도 위치로 올라가서 1.5선에서 수비를 해 주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2013 시즌이 종료된 후 계약이 만료되어 FA 자격을 얻었지만 수원의 운영비 삭감 정책의 후폭풍을 맞아 결국 재계약에 실패했다. 팬들은 '리얼 블루'마저 팀을 떠나게 한다는 것에 분노하고 있는 분위기이긴 하다.라는 말은 명백한 오보이자 팬들의 오해이다. 곽희주는 팀이 2008년 이후 우승을 하지못하는 것에 대한 고민과 부담감 그리고 미안함이 너무 컸고, 구단의 미래를 위해서 그리고 선수시절의 마지막 새로운 도전을 위해서 스스로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실제로 곽희주는 2013년 시즌이 종료된 후에도 구단의 자원봉사 활동에도 참여 하였고, 시즌 종료 후 치뤄진 그의 결혼식은 수원 삼성의 단장님이 곽희주 선수의 부탁으로 직접 주례를 보았다. 이후 수원 구단에서 그를 버렸다는 기사가 나가자 다음날 직접 그런 일은 절대 없다라며 직접 반박하는 인터뷰가 실린 기사가 나오기까지 했다.)

2014 시즌 자유계약으로 FC 도쿄로 이적하였다. 그러나 컵대회 2경기만 출장하였고, 9월 4일 소속 구단과 계약을 해지하였다. 9월 16일 카타르 스타스 리그알 와크라와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2015년 3월 24일 다시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돌아왔다!!!!!! 플레잉 코치로 수원과 1년 계약을 체결하였다.

선수 은퇴 후에는 스카우터를 꿈꾸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평일 원정 경기에서 처음으로 선발 출전해서 복귀 헤딩골을 작렬시키며 4-3 승리에 일조했다.

2016년 4월 30일 열린 슈퍼매치에서는 후반 36분 골 찬스를 맞은 서울 아드리아노의 유니폼 상의를 잡고 늘어지다가 여의치 않자 달리는 선수의 발목을 손으로 잡는 비신사적인 반칙을 범했다. 규정대로라면 퇴장까지도 나올 수 있었지만 실제 판정은 경고에 그쳤고, 만약 퇴장이 나왔다면 곽희주는 본인의 리그 통산 300번째 경기에서 엄청난 불명예를 안을 뻔 했다. [기사] 결국 연맹 상벌위 결과 퇴장성 반칙에 해당됨이 인정되어 출전정지 2경기 사후징계를 받았다.작년 염기훈에게 살인태클을 하고 광중에게 쌍욕을 한 김진규는 단 한경기도 징계를 안 받았는데 이후로 당연히 FC서울팬들에게는 조롱의 집중 포화를 현재까지도 맞고 있다.


6월 18일 상암에서 열린 슈퍼매치에서는 동점 헤딩골 세레머니로 4월 30일에 범한 반칙 퍼포먼스를 재현하였다. 수원 팬들에게는 그간의 불명예에 대해 쿨하게 잘 넘겼다는 평을, FC서울 팬들에게는 "아직도 정신 못차렸구나"라는 평을 받는다. 경기에 앞서 이 날 FC서울의 수호신은 "희주야 발목잡지말고 갈길 가"라며 곽희주를 조롱하는 걸개를 걸었기 때문에 곽희주도 그걸 본 듯. 결과적으로는 곽희주의 동점골이 FC서울의 승리를 날리고 발목을 잡아버렸다.[6]
그런데 최근 8월 슈퍼매치에서 실제로 격투기축구를 시전하다가 윤일록의 얼굴을 발로 찬 뒤 착지 실수로 인해 혼자 부상당했다
반달이 아니라 실제가 되어 버렸습니다 [움짤] 1타 3피에 이은 조원희 팀킬

곽희주는 결국 시즌아웃.


2 국가대표

국가 대표와는 별 인연이 없는 편인데 2005년에 국가 대표로 뽑인 이후로 별로 선발되지는 못하고 있다. FM에서는 맨날 발탁되지만...


3 여담

  • 선천적으로 한쪽 눈이 잘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축구하는 데 그닥 불편하지 않아서 방치했고, 성인 시절 고치려 했으나 그 때는 이미 늦은 때... 신경병이었는데 십년넘게 방치해 신경이 손댈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이 이유군대면제 처리되었지만 본인에게는 흑역사.
  • 고등학교 때 축구부가 완전히 문제아들의 집단이라 그만둘 뻔한 위기에 처했으나[7] 다행히 좋은 사람을 만나 대학 진학에 성공했다고 한다.
  • 어렸을 때 축구를 가르쳐 주겠다는 사람이 홀연히 나타나 시작했으나... 그가 사기꾼이었다[8]. 당시 가족이 금품갈취를 당하는 등 고생이 심했다고...
  • 한 때(2003년) 도저히 프로에서 버티지 못해(각종 이유가 있겠지만, 차범근 당시 수원 감독과의 불화가 가장 컸던 걸로 추정) 팀을 무단 이탈했다. 당시 충청 대천에 있는 바닷가로 내려가 하룻밤을 보낸 후, 위치 추적을 이용한 코치 한 명에게 설득당해 여기까지 왔다고 한다.
  1. 시즌 도중 선임.
  2. 왼쪽 눈 실명, 오른쪽 눈 시력 0.7이라는 핸디캡 때문에 경기 중 불편함이 너무 심해서 축구에 대한 회의감을 느꼈다고 한다.
  3. 원래 대인 수비형 센터백 & 조율형 센터백 조합이 가장 시너지가 좋은 구성이기 때문에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4. 수원의 주장은 선수들의 투표로 선출되며 임기는 1년이다.
  5. 2009 시즌 당시 수원이 최악의 부진을 보이자 그에 부담감을 크게 느껴서 주장 완장을 다시 이운재에게 넘기기도 했다.
  6. 본 문서에도 FC서울 팬이 곽희주를 추악하고 더러운 선수라고 반달을 시도한 적이 있다.
  7. 당시 어느 정도였냐면, 일반 학생들도 축구를 못하게 하려고 학교 운동장 곳곳을 중장비로 팠다고 한다.
  8. 전과도 수두룩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