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즙 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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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개판이네

이 사건을 다룬 지식채널e#

1 개요

1964년 12월 7일 대한민국의 65학년도 서울특별시 전기(前期) 중학 필답 고사 정답 발표 이후 발생한 사건. 중학교 입시가 있던 시절, 출제자들의 삽질이 모여 만든 희대의 병크이자 한국 교육계의 흑역사.

2 논란

당시 국어, 산수, 사회, 자연 20개의 문제에서 복수의 정답이 나왔다. 뭐 이렇게 복수 정답이 많이 나와 특히 자연 18번 문제가 가장 큰 논란이 되었다. 링크 영상의 56초 부분 참조.

자연 18번

※다음은 을 만드는 순서를 차례로 적어 놓은 것이다.
1.찹쌀 1kg가량을 에 담갔다가
2.이것을 쪄서 을 만든다.
3.이 밥을 물 3L와 엿기름 160g을 넣고 잘 섞은 다음에 60도의 온도로 3~6시간 둔다.
4.이것을 엉성한 삼베 주머니로 짠다.
5.짜 낸 국물을 조린다.

18.위 3과 같은 일에서 엿기름 대신 넣어도 좋은 것은 무엇인가?
<정답 - 디아스타아제>

2000년대 초반 MBC에서 방영했던 <타임머신>에서 그당시 실제로 시험을 보았던 분을 인터뷰했다. 그분은 "당시 객관식으로 디아스타아제와 무즙이 있었는데, 지우고 다시 쓰고 지우고 다시 쓰다 시험지에 구멍이 나서, 따로 답을 디아스타아제라 겨우 쓰고 시험을 마쳤다. 나중에 답을 알고보니 같이 시험을 봤던 몇몇 친구들집에서는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라고 했다.

을 만드는 과정 중 당화 작용을 하는 물질을 '디아스타아제'라고 발표했으나, 학부형들이 '무즙' 역시 정답이라고 항의가 빗발쳤다. 이는 무즙 안에 디아스타아제가 들어 있어서 진짜로 을 만들 수 있기 때문.(...) 거기다 당시 초등학교 교과서에 '무즙에도 디아스타아제가 들어있다'라는 내용이 나왔던 것. 출제자의 의도는 다당류를 단당류로 분해하는 재료가 아닌 순수한 성분을 고르라는 의도였나 본데 예시를 엿기름으로 들어놓고 답은 성분으로 갖다 놓았으니 이건 뭐… (후에 과거 재연 프로그램에서 당시 이 문제를 풀었던 경험자를 만나보았는데 이 문제를 접했을 때 교과서에서는 무즙은 디아스타제와 비슷하다고 해서 헷갈렸다고 한다.) 이제껏 무즙을 이용해 을 만들어온 학부모들은 디아스타아제가 무엇인지 알 리도 없고 항의하는 게 당연하다. 심지어 어떤 학부모는 직접 무즙으로 엿을 만들어 와서 꺼내보이기도 했다.

3 사실

무엇보다도, 해당 문항의 의미를 엄밀히 따져보면 사실 '무즙'이 정답이고 '디아스타아제'는 오답이라고 보는 것이 옳기 때문에 이 파동이 더욱더 심해졌다. 만약 디아스타아제라는 답을 원했다면 해당 문항 자체가 '엿기름의 어떤 성분 때문에 당화 작용이 일어나는가'와 같은 형태였여야 한다. 그런데 문항에서 물은 것은 '엿기름 대신 넣어도 좋은 것' 이었다. 이 경우, 엿기름 대신 무즙을 넣어서 엿을 고을 수 있으니 당연히 무즙은 정답이어야 한다. 이에 비해 '디아스타아제' 라는 대답은? 일단 엿을 고을 때 순수하게 디아스타아제만을 분리해서 첨가물로 사용하는 경우가 별로 없으니 엿기름 대신 디아스타아제가 들어있는 다른 재료를 넣는다고 하면 모를까, 디아스타아제 자체를 재료로 보고 디아스타아제를 넣는다고 대답하기는 다소 어렵다. 또한 무엇보다도... '엿기름 대신 디아스타아제를 넣는다'라고 한다면, 그건 엿기름은 디아스타아제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아닌가!? 엿기름이 당화 작용을 하는 원리 자체가 엿기름에 디아스타아제의 작용 때문인데 엿기름 대신 디아스타아제를 넣는다고 말한다면 이는 논리적 모순이다. 즉, 엿기름과 무즙, 디아스타아제에 대해 모두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디아스타아제가 아니라 무즙이라고 대답하는 것이 옳았다는 이야기. 문제를 내고 검토를 해 보기나 했는지 심히 의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4 결과

곤란해진 출제위는 이 문항을 백지화해 모두 점수를 주겠다고 발표하자, 경기중학교[1] 지원자 학부모 30명은 서울시 교육 위원회에 몰려와 극렬 항의했다. 그러자 서울시 교육 위원회는 처음 결정을 번복하여 당초 정답대로 처리하겠다고 발표했다. 결국 이대로 채점이 완료돼 합격자를 발표했다.

이것은 재판으로 번져 1965년 2월 25일 서울 고법 특별부는 학부형 42명이 제기한 '입학 시험 불합격 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해당 중학교가 내린 입학시험 불합격 처분을 취소하고 합격자임을 확인한다'고 판결했다.

이 과정에서 당시 서울 교육감이 무즙으로 엿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못 한 모양인지 "무즙으로 엿이 만들어진다면 무즙을 답으로 쓴 아이들을 구제해 보겠다."라는 말을 무심코 내뱉자 학부형들은 진짜 무즙으로 엿을 만들어 고물까지 묻혀 왔는가 하면, 찬합에 무즙을 가득 갈아오는 등 각종 증빙자료(…)를 챙겨왔다.

승소한 학생들은 일단 다른 중학교에 다니다 교육법 시행령 상으로는 불가능한 학기 중 경기중학교로 전학을 갔고, 이 틈을 타 일부 부유층 및 사회 지도층 자녀 15명이 부정 입학을 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결국 김규원 서울시 교육감, 한상봉 문교부 차관 등이 사표를 냄으로써 수습됐지만 갈팡 질팡한 입시 제도와 일부 고관 대작 부인들의 치맛바람이 어울려 유례 없는 입시 혼돈이 빚어졌다.

5 여파

이렇게 엿을 만들어서 먹으라고 한 데서 먹어라라는 말이 생겨났다는 설이 널리 알려져 있는데, 한겨레신문에서 2001년부터 운영하던 디비딕[2]이 그 설의 원류이다. 디비딕에서는 상식의 오류나 재미있는 소재 등을 활용한 책도 출간했는데, 거기에도 "엿 먹어라"의 어원이 무즙파동이라고 실려 있었다. 하지만 이는 민간어원인 것이 사실은 그 전부터 엿 먹으라는 말은 있었고 옛날 광대패 사이에서 생긴 성적 은어라는 설이 유력하다. 직역하면 여자 잘못 만나서 욕좀 보라는 의미이며 여기서 '엿'은 남사당패의 은어로 여성의 성기를 뜻한다. 생긴 건 반대인데 [3]

어쨌건 이 사건을 계기로 중학교 입시가 존폐 논란에 휩싸이다가 창칼 파동 사건이 헤드샷을 날리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으며, 경기중학교를 비롯한 명문 33개 중학교들은 1971년폐교되거나 평범한 교명으로 강제 변경을 당했다.(예: 부산중학교→초량중학교, 경남중학교→토성중학교, 부산여자중학교→은하여자중학교, 경남여자중학교→수정여자중학교 등.) 경사났네 경사났어 왠지 바뀐 이름이 더 비범한데!

그래서 중학교는 지금까지도 시·도의 지명의 이름을 딴 네임 스쿨이 별로 없으며, 그나마 현재 소수의 중학교들이 시·도의 지명을 쓰고 있지만(특히 부산지역) 이 부류에 속하는 중학교들은 1971년에 폐교 대신 평범한 교명으로 강제 변경 당하여 폐교를 면했던 학교들이 1990년대 이후에 다시 교명을 원상복귀하거나 폐교 이후에 다시 재개교한 케이스다.

6 여담

수필가로 유명한 장영희 서강대 영문과 교수도 이때 중학교 입시를 치렀고, '무즙'으로 답을 쓴 한 사람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의 소아마비로 인한 신체장애 때문에 체력장 점수를 포기하는 불리한 조건에서 입시를 치렀으며 당시 지원했던 중학교의 커트라인을 고려할 때 모든 문제를 맞혀야 했던 상황이었다. 다행히도 그해 커트라인은 이전보다 1점 낮아서 장 교수는 간신히 합격할 수 있었다.
  1. 과거 명문이었던 남자중학교. 1971년 폐교.
  2. 세계 최초의 질답형 지식검색 서비스이며 베르나르 베르베르개미(소설)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추후 엠파스 지식인이 되었다가 네이버 지식인에 밀려 사라졌다.
  3. 허영만식객, 엿 편에 보면 이 두 설 모두를 언급하고 있다. 물론 그는 '엿'이 욕으로 쓰이는 현실에 대해 개탄하고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