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주의

서양 미술사의 시대, 사조
고대 미술
(5세기 이전)
선사 미술메소포타미아 미술이집트 미술
그리스 고졸기 미술그리스 고전기 미술헬레니즘 미술로마 미술
중세 미술
(5세기~16세기)
비잔틴 미술로마네스크고딕
르네상스매너리즘바로크로코코
근대 미술
(17세기~19세기)
신고전주의낭만주의아카데미즘
모더니즘리얼리즘인상주의후기인상주의
라파엘 전파미술공예운동아르누보상징주의
현대 미술
(1880~1970)
분리파표현주의다리파청기사파데 스틸바우하우스
추상회화야수파입체주의미래주의다다이즘초현실주의
기하학적 추상러시아 아방가르드구축주의절대주의생산주의
나치 시대의 예술사회주의 리얼리즘
추상표현주의미니멀리즘
팝 아트옵아트키네틱 아트해프닝
서정적 추상엥포르멜아르테 포베라상황주의
동시대 미술
(1970년대 이후)
포스트모더니즘행위예술대지예술개념미술설치예술
제도비평페미니즘 미술소수자 미술탈식민주의 미술신표현주의
전유미술극사실주의
키네틱 아트플럭서스비디오 아트사운드 아트미디어 아트

목차

개요

미래주의(Futurism) 1909 ~ 1916
미래주의 - 네이버캐스트
미래 조심

미래주의는 이탈리아에서 등장한 모더니즘 미술사조이다. 그 등장부터가 특이한데, 필리포 마리네티(Filippo Marinetti)가 1909년 2월 5일 <라 가제타 델레밀리아(La gazzetta dell'Emilia)>에 미래주의 선언을 출판하고, 이후 프랑스의 <르 피가로(Le Figaro)>(1909년 2월 20일)에 광고를 냄으로서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즉, 미술가가 나는 이런 예술을 하겠다 언론에 광고를 내고 시작된 미술사조라는 것.자뻑이 엄청났던 듯하다 그만큼 자신들이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는 자부심이 대단한 사조기도 했다.

미래주의는 회화, 조각, 건축, 의복, 실내장식, 영상,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실험적인 작업을 시도하였다. 대표적으로 미래주의에 참여하였던 예술가들로는, 미술 분야에서는 움베르토 보치오니(Umberto Boccioni), 카를로 카라(Carlo Carrà), 지노 세베리니(Gino Severini)가 동참했고, 음악 분야에서는 작곡가 루이지 루솔로(Luigi Russolo)가 이 운동에 참여했다.

이들 미래주의자들은 보통 속도와 역동성, 신기술 및 기계주의 등에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한마디로 기술문명덕후들 이들이 기술문명덕후가 된 배경에는 이탈리아의 전통 미술과 당시 이탈리아의 시대상이 있다. 알다시피 이탈리아는 서양미술사에서 빠질 수 없는 예술의 고장. 고대 로마 미술과 르네상스 미술을 빼고 서양미술사를 논한다는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러나 18세기 바로크 이후로는 프랑스에 문화의 주도권을 빼앗기게 되었다. 여기에 영국과 프랑스는 산업혁명을 바탕으로 한창 잘나가고 있는데 반해, 이탈리아는 아직 산업화가 이뤄지지 못해 상대적으로 경제가 뒤쳐져 있었다. 당시 이탈리아는 이를 만회하고자 빠른 공업화를 추진하고 있었고, 이것이 당시 신세대들에게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그에 대해서 열등의식을 품었던 미래주의자들은 당대 이탈리아의 미술이 전통적인 예술적 가치와 조형의식 때문에 퇴보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이들은 심지어 미래주의적인 시도를 의복과 요리에 대해서도 했을 정도로 이탈리아의 전통 미술에서는 볼 수 없었던 해프닝적인 행위를 통해 과거의 미적 취향과 예술제작 과정을 타파하고자 애썼다. 또한 산업도시와 자동차, 기차 등 산업혁명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새로운 도상들을 작품에 담았다. 미래주의자들은 심지어 사모트라케의 여신상보다 달리는 기차가 더욱 아름답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보치오니, <공간에서 연속성의 독특한 형태>, 1914

대표적으로 보치오니는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공간에서 연속성의 독특한 형태>에서 기계적이며 기하학적인 조각품을 만들기도 했다. 언뜻 보기에도 보치오니의 작품은 마치 로봇이나 스포츠카와 같은 느낌을 준다. 아마 이러한 시도와 움직임들이 이후 이탈리아 디자인 산업의 발달과도 연관이 없지 않을 것이다.

자코모 발라, <줄을 단 개의 역동성>, 1912

그리고 사진이나 영화 등 당대에 새롭게 등장한 기록매체를 회화로 재현하고자 노력하기도 하였다. 자코모 발라는 <줄을 단 개의 역동성>에서 당시의 활동사진을 회화로 표현하기도. 참고로 이 당시에는 아직 대중에게 잔상효과가 알려지지 않았던 시기였다. 근데 좀 웃긴다. 발발이 같다

문제는 이게 도를 지나쳐 정치적 무정부주의와 젊음과 폭력을 옹호하는 수준까지 나아갔다는 것. 이들은 반문화, 반전통, 반역사를 주장하면서 박물관과 미술관에 있는 옛날 작품들을 파괴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이런 미래주의자들의 혼돈! 파괴! 망가! 부정과 파괴의 중2병스러운 사상이 훗날 파시즘과 연관된건 어찌보면 필연이었던 셈. 파괴의 미학을 빨던 이들 미래주의자들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즉각 군에 입대하였고, 제군, 나는 전쟁이 좋다 그러다 1916년 보치오니는 말에서 떨어져 죽었고, 같은 해 미래주의 건축가 산텔리아 또한 트레에스테를 방어전에서 28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이후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하에서 일어난 2차 대전에서도 당연히 좋은 결과는 없었고 이렇듯 두차례의 거대하고 치열했던 전쟁들을 통해서 전쟁의 실상을 체험한 예술가들이 환멸을 느끼고 이것이 미래세계다라며 결국 미래주의에서 이탈하게 된건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 중2병 탈출

러시아에서도 미래주의 경향의 예술 운동이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러시아 아방가르드 부분 참고. 산업화가 덜된 나라들에서 미래 기계문명을 예찬하는 운동이 발전하고, 정작 산업적으로 선진국이던 영국이나 프랑스 등에서는 과거회귀적인 미술공예운동이나 비공업적인 제3세계에서 대안을 찾는 원시주의 경향이 나타난건 아이러니하다. 어쩌면 산업화되고 도시화된 사회의 실상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