槪念美術
conceptual art
1 개요
오늘날 현대미술을 난해하게 만드는 주범
이전 예술과 달리 완성된 작품 자체보다 그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나 아이디어를 예술이라고 생각하였다. 그 시초는 마르셀 뒤샹.
대표적인 개념미술 작가인 솔 르윗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개념미술에서는 생각이나 관념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측면이 된다. 예술가가 예술의 관념적 형식을 사용할 때, 그것은 모든 계획과 결정이 미리 만들어지고 실행은 요식행위임을 의미한다. 생각이 예술을 만드는 기계가 된다."
2 특징
대표 작가로는 솔 르윗, 조셉 코수스, 온 카와라, 소피 칼 등이 있다.
온 카와라, <오늘 연작 No.217. (TODAY Series No. 217.)>, 1966
한 예로, 온 카와라 같은 작가의 경우 50년 동안 그날의 날짜를 그림으로 그리는 짓을 3천번 반복했다.# 나는 여기 존재한다는 중2병? 것을 표현하기 위해 이런 작업을 한 것. 이 작가의 경우 아예 나이대신 '29,771일을 살았다'는 식으로 자기 수명을 표기했다고 한다. 이 정도면 근성이다?
개념미술은 작품 자체는 볼거리가 별로 없다. 볼품이 없다. 전시장에 들어가면 웬 쌩뚱맞은 물건이나 사진이 덩그라니 놓여있거나, 아니면 그런것조차 없고 글귀를 인쇄해 놓은 종이 한장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신 설명문 글씨가 깨알같고 두껍다. 그 작품과 관련된 썰이 굉장히 많고 풍부하고 어렵다.(...) 개념없다
호기심과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은 감상하는데 별 상관을 안한다. 어차피 눈에 보이는 빈곤한(...) 작품 자체는 그냥 관문에 불과하다. 중요한건 '그 작품이 대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생각하는 것'이다. 기존의 예술이 잘 정리된 보고서를 관객에게 떠먹여 주는 것이었다면, 개념미술은 알쏭달쏭 쌩뚱맞은 수수께끼 푸는 것과 유사하다.
당연히 이 개념미술의 최대 단점은 대중성이 없다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오늘날 대중은 대중매체에서 쏟아져 나오는 광고, 만화, 영화, 애니, 게임의 이미지에 쩔어있고(...), 그렇게 이미지가 넘쳐나가 떡칠하는걸 '제대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음식에 비유하자면, 오늘날 요리는 미국 요리처럼 기름지고 인스턴트의 맛이 강하다.아니면 영국요리처럼 '개념'없거나 그런데 누군가 갑자기 다듬지도 않은 생나물을 조금 접시에 가져다 내놓고 요리라고 주장한다면? 개념미술을 바라보는 대중의 관점이 딱 이런 식이다.
대신 장점은 삶이 풍부해진다는 것이다.(..?) 집에서 라면이나 끓여먹던 사람이 취미로 식물학을 공부해서 산에 나가 나물을 캐고 직접 요리를 한다고 생각해보자. 다른 패스트푸드 먹는 사람들의 눈에는 쓰레기처럼 보이는 것도, 그 사람의 눈에는 값진 약용식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개념미술도 마찬가지로, 이런 식으로 감상하고 해석하는데 익숙해지면 어느세 일상의 사소한 것들에도 감명을 받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사실 개념미술가들 중에는 이렇게 '소소한 일상을 재발견하자'는 모토를 들이미는 경우가 상당수이다. 자신의 연예 경험을 개념미술로 만드는 소피 칼 같은 경우가 대표적.
그리고 예술가 입장에서는 정말 작업할 맛이 난다. 당연한 게, 복잡하게 자르고 붙이고 그리는 과정을 할 필요 없이 생각만 하면 된다.(...) 예술의 중요 요건중의 하나가 경제성인데, 투입량에 비해서 산출량이 많아야 한다는 경제논리는 예술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예술가가 들이는 공력에 비해서 정작 예술가 자신의 만족도가 떨어진다면 그 예술은 좋은 예술이 아닌 것이다. 대신 관객들의 만족도가 떨어진다.(...) 왜 극사실주의 그림을 그리는 사람보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지 생각해보자. 그리고 사실상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예술이 되기 때문에, 개념미술은 정말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다.그러니까 관객들이 이해할 수 있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근데 사실 직접 해보면 제일 어려운 게 생각이란 걸 알게 된다. 점으로 그림을 그리고 좁쌀 하나까지 정교하게 표현하는 건 그냥 계속 하면 되는데 생각은 그게 아니다..
결과적으로 개념미술은 회화는 회화다워야 한다고 주장하며 추상을 실컷 밀어줬던 클레멘트 그린버그를 엿먹이고, 엿머겅 두번머겅 미술을 문학에 가까운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