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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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surréalisme) 1920년대

1 개요

초현실주의 - 네이버캐스트
초현실주의 - 어린이 지식백과

취리히에 있다 파리로 돌아온 다다이스트들은 파리 다다를 구성했다. 이들은 파리 다다란 이름보다 초현실주의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이는 이들이 말 그대로 현실을 뛰어넘은 초현실(surreal)을 다루는걸 추구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초현실은 프로이트 같은 정신분석학에서 영향을 받은 무의식(unconsciousness)의 세계를 말한다.

대중에게는 주로 살바도르 달리가 많이 알려져 있지만, 오늘날 미술사나 미술 평론 쪽에서는 달리보다는 다른 예술가나 이론가들을 더 높게 평가한다. 트리스탄 차라, 앙드레 브르통, 조르주 바타이유 등이 대표적.

2 특징

특히 비평가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의 영향이 크다. 브르통이 사실상의 수장이었기 때문. 브르통은 1922년 무렵 루이 아라공(Louis Aragon)과 함께 다다이즘(Dadaism)에 동조해 활동하다, 1924년 초현실주의 선언을 발표하고 따로 나간다. 브르통에게 있어 ‘초현실(surréalité)’이란 이성의 간섭 없이, 논리에 지배되지 않고 드러나는 ‘절대적 현실성’이었다. 브르통이 1924년에 발표한 『초현실주의 선언(Manifeste du surréalisme)』에서 사전적으로 정의한 ‘초현실주의’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초현실주의. 남성명사. 순수한 심리적 자동기술(automatisme)로서, 이를 통해 말로든 글로든, 그 외 어떤 방식으로든, 사유의 실제 작용을 표현하는 것. 이성에 의한 모든 통제가 부재하는, 미학적이고 도덕적인 모든 선입견에서 벗어난, 사유의 받아쓰기.

그 뿌리가 다다이즘에 기반을 두고 있다보니 초현실주의도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이 혼재된 양상을 보였다. 하지만 본래 초현실주의는 문학운동으로 출발했다. 브르통이 주요 멤버로 꼽은 이들은 문학가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가 초현실주의 하면 떠올리는 자동기술법(automatism)도 사실 문학적 방법에 가깝다. 브르통은 필리프 수포(philippe soupault)와 함께 1919년에 쓰고 1년 후 『자기장(Les champs magnétiques)』이라는 최초의 자동기술 창작물을 출간하기도 했다. 자동기술법은 브르통이 1차 세계대전 중 근무했던 병원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터득한 기법으로, 노이로제 환자들이 뱉어내는 독백과 같은 의식의 자유로운 흐름을 가능한 빠르게 받아 적는 방식이었다. 이것을 초현실주의자들은 종이 위에 글을 적거나 그림을 그리고 접어서 다음 사람에게 넘기면 앞의 글 또는 그림을 보지 못한 채 계속해서 이어 나가는 놀이를 하면서 자동기술을 적용했다. 또한 자다 깨서 몽롱한 상태로 자동기술을 하는 모습이 일종의 클리셰가 되고 무시받고 있는데, 이는 실제로 이루어진 일들이다. 물론 다른 멤버들은 잠에서 갓 깬 몽롱한 상태, 잠속에서 헤메인 기억의 조각들이 다 날아가기 직전의 상태까지밖에 도달할수 없었던 반면 초현실주의그룹 안에서도 독보적인 존재로 평가받던 로베르 데스노스(Robert Desnos)는 잠든 상태 자체로 시를 읊는 비범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그 능력 덕분에 브르통의 각별한 총애를 받았던 데스노스지만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면서 정치색을 띄게 되는 데스노스는 결국 브르통에게 그룹 축출을 당했고 둘은 그 이후로 치열하게 디스전을 펼치곤 했다.

하지만 브르통은 초현실주의 시인 피에르 르베르디(Pierre Reverdy)의 말을 인용하면서 초현실주의 미술이 '시적 효과'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생각했고, 자동기술법도 미술적으로 실현할 수 있을거라 여겼다.

이미지는 정신의 순수한 창조물이다…… 병치된 두 현실의 관계가 멀고도 정확할수록, 이미지는 보다 강력해질 것이며- 정서적으로 더 강한 힘과 시적 현실성을 얻게 될 것이다.

후안 미로, <어릿광대의 사육제>, 1924년~1925년

막스 에른스트, <프랑스의 정원>, 1962년

이런 생각을 가지고 브르통은 피카소(Pablo Picasso)나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 막스 에른스트(Max Ernst), 만 레이(Man Ray), 앙드레 마송(André Masson), 장 아르프(Jean Arp), 후안 미로(Joan Miro), 이브 탕기(Yves Tanguy) 등을 지지했다 이들 미술가들은 주로 콜라주(collage), 프로타주(frottage)[1], 데칼코마니(décalcomanie) 등의 방식을 사용해 의식의 검열 없이 이미지를 창출하려 했다. 에른스트로 대표되는 초현실주의 콜라주의 경우 전혀 다른 곳에서 가져온 이질적인 이미지들을 병치시킴으로써 매우 사실적이면서도 생경한 효과를 자아냈다. 이는 피카소처럼 여전히 회화적 재현 체계 안에 머물러 있는 입체파 콜라주와는 달랐다.

문제는 이런 미술가의 방식이 문학가들의 방식과 통하느냐 였다. 이에 대해 브르통은 의식의 개입을 최소화하면서, 즉 무의식과 상응하면서 현실과 마주하는, 그 속에 묻혀 있던 예기치 않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 문제라고 보았다. 브르통의 표현대로라면 이는 '경이(le merveilleux)'의 아름다움이다. 이는 프로이트가 언급한 운하임리히(unheimlich) 개념과도 연관이 있다.# 이 말은 보통 영어로는 언캐니(uncanny), 한국어로는 보통 '기이한 느낌', '두려운 낯섦' 정도로 번역한다.[2] 간단한 예를 들자면 기시감(déjà vu)이나 좀비 같은 것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전혀 상관없는 상황이나 때, 장소에서 이전에 경험했던 것 같은 어떤 느낌을 떠올리는 묘한 상황'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브르통이 예로 든 숟가락, 만 레이가 찍은 사진이다.

이와 관련해 브르통은 조각가 자코메티와 연관된 경험을 예로 들었다고 한다. 브르통은 자코메티에게 신데렐라의 구두를 조각해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했던 적이 있는데, 자코메티는 이를 거부했다고 한다. 이후 둘은 함께 벼룩시장을 방문했는데, 거기서 브르통은 손잡이에 신발이 달린 숟가락을 산다. 이를 본 순간 브르통은 그 숟가락에서 신데렐라 구두를 떠올렸고, 그 형태가 중복(double)되는 것에 '경이'로운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사고방식이 대략 이런 식인 것이다. '우연'을 강조하고, 그 우연한 상황에서 경험한 언캐니한 느낌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 느낌을 매개하고 표현하는 수단으로 우연히 마주친 ‘발견된 사물’(objet trouvé)을 작품으로 만들거나[3], 이미지를 중복(doubling)시키는 등의 전략을 활용했다. 위의 숟가락이나 콜라주, 데칼코마니 등의 기법을 떠올려보자. '발견한 사물'을 쓰거나, 이미지들을 쌩뚱맞게 매치시켜 '언캐니'함을 자아낸다거나, 중복된 이미지를 보여준다거나 하는 방식이 이런 배경하에서 이뤄진 것이다.

르네 마그리트, <이미지의 반역>, 1929년

물론 앙드레 브르통 중심의 주류파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무의식을 바라본 초현실주의 미술가들도 있었다.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가 대표적. 광고회사를 다니다 전업작가가 된 마그리트는 처음부터 자동기술법과는 전혀 다른 세밀한 재현에 기초한 초현실주의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4] 그림에는 일단은 살바도르 달리처럼 왜곡된 형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마그리트는 익숙한 일상의 이미지를 뚝 떼어내어 엉뚱한 곳에 가져다 놓고 낯설게 만드는 것을 강조했다.[5] 이렇게 해서 마그리트는 다른 초현실주의자들과 달리 전통적인 회화에 따라 사실적으로 그림을 그렸지만, 초현실주의 이미지의 범주를 넘어 보다 철학적이고 인식론적인 문제에 접근했다. 대표적으로 <이미지의 반역>에서 마그리트는 파이프를 그림으로 그린다. 이를 한국 속담으로 표현한다면 '그림의 떡'에 들어맞을 것이다. 우리가 보는건 사실 그림일 뿐, 진짜 파이프가 아니기 때문. 그렇게 보면 밑에 써놓은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말이 사실인 셈이다. 이와 같이 마그리트는 이미지와 대상물, 그리고 언어의 관계 체계에 대해 질문했다.

후안 미로, <Relief Construction>, 1930

역시 주류파가 아니었던 조르주 바타이유(Georges Bataille)는 브르통과 좀 다른 이론을 내세웠다. 바타이유가 내세운 개념은 비정형[6]이었다. 비정형 개념은 바타이유가 기존의 철학체계를 비판하고 당대의 초현실주의 예술의 미학을 정의하기 위해 제시되었던 개념이다. 바타이유는 서구의 인습적 세계관과 철학 속에서는, 인간의 지적 능력을 넘어 넘쳐흐르는 세계의 비합리적이고 성스러운 차원이 일종의 초과분처럼 간주되어 언어적 질서 외부로 삭제되어 왔다고 비판했다고 한다. 바타이유가 제시한 비정형은 수학적인 엄밀성과 언어에 의해 정의된 것 이상의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언어적 형태적 정의로부터 벗어나 끊임없이 ‘탈정의화’되는 과정을 의미한다고 한다.[7] 바타이유는 이런 비정형을 개념에 따라 초현실주의의 무의식을 성(性)이나 죽음과 같은 금기를 초월한 어떤 것으로 정의하기도 했다. 이런 바타이유의 이론에 따라 초현실주의 미술을 보게 되면, 초현실주의는 모호함으로 특징지어지게 된다. 예를 들면 미로의 <Relief Construction>을 보면서 '과연 저게 조각일까 회화일까?' '대체 뭘 표현하려고 한 걸까?'라고 느끼는게 지극히 당연하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딱히 정해놓고 만든게 아닌 '비정형'이니까.

3 영향

오늘날에도 초현실주의의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다. 하지만 초현실주의는 이성주의나 과학주의와 타협하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 재밌는 건 프로이트도 초현실주의자들을 싫어했다고 한다. 자신의 개념을 오독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나 뭐라나.사실 프로이트는 자동기술법을 조금 쓰긴 했지만, 이내 이 방법에 회의감을 느끼고 상담 쪽으로 진료 방향을 튼다. 반면 연배가 아래인 자크 라캉의 경우는 초현실주의자들과 절친했다고 한다. 정신분석학은 예술계에서 만큼은 초현실주의에 끼친 영향 때문에 아직도 영향이 크다.

이렇게 된 데에는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현대미술의 흐름과도 연관이 깊다. 사진의 등장으로 현실의 대상을 자연스럽게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것에서 멀어지기 시작한 현대미술에게 무의식의 세계는 큰 메리트일 수밖에 없었던 것. 게다가 세계대전으로 논리니 이성이니 같은 것에 회의를 느낀 예술가들에게 이런 경향이 더 심해진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지 모른다. 예술 자체가 사실을 따지는 분야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예술이론의 기초도 모르는 것이다. 예술은 어디까지나 감상자에게 어떤 을 주는 게 목적이다. 이미 수백 년 전에 임마누엘 칸트는 '취향은 사람마다 다 다르다. 유일하게 공통된 건 사람들은 모두 무언가를 좋아하는 취향을 하나씩쯤은 가지고 있다.'라는 취지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공통된 사실이나 진리 도출이 불가능한 분야가 예술이다. 단지 좀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경우가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을 뿐이다.
  1. 동전 위에 종이 올려놓고 연필로 문지르는게 대표적인 프로타주 기법이다
  2. 여담이지만 일본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가 이론화한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도 프로이트의 이 언캐니 개념을 따온 것이다.
  3. 프랑스어로는 ‘오브제 트루베’, 영어로는 파운드 오브제(found object)라고 읽는다. 마르셀 뒤샹의 경우 기성품(readymade)을 자주 활용했는데, 이것도 발견된 사물을 취하는 초현실주의 전략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4. 실제로 마그리트는 그리 자동기술법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그(마그리트)는 자동기술법의 자칭 무의식상태를 신용할 수 없다고 거부하였고, 지나치게 기계적이고 영매적인 과정의 최종결과가 그에게는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수지 개블릭. 르네 마그리트-
  5. 이렇게 사실적인 대상물을 전혀 엉뚱한 곳에 놓는 것을 데페이즈망(dépaysement)이라고 한다. 사실 콜라주 기법은 이 데페이즈망을 실현하는 방법중 하나로 볼수도 있다.
  6. 엥포름(informe). 영어로는 formless. 한국에서는 무정형이라고 많이 통용되지만 사실은 비(非)정형의 의미에 가깝다.
  7. 김원방, 조르주 바타이유에 있어 시각적 죽음과 현대미술, 유럽사회문화, Vol.4 No.-, 20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