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맘루크 왕조의 술탄
الملك الظاهر ركن الدين بيبرس البندقداري
al-Malik al-Zahir Rukn al-Din Baibars al-Bunduqdari
(알 말리크 알 자히르 루큰 알 딘 바이바르스 알 분두크다리)
1223 ~ 1277[1]
맘루크 왕조의 제5대 술탄. 바이바르스, 또는 바이바르스 1세.
승리왕
당대 최고의 전쟁영웅
전성기의 몽골군 및 십자군을 무찌른 명장이자 살라흐 앗 딘(살라딘)급 평가를 받는 이슬람의 영웅.
1.1 생애
킵차크계 튀르크인으로, 젊었을 때 몽골군의 포로가 되어 노예가 된다. 바이바르스는 키가 크고, 밝은 금발에 갈색의 피부와 눈동자가 파란색이었지만 선천적으로 한 쪽 눈이 기형(애꾸눈)[2]이어서 노예로서는 아무도 사가려 하지 않았으나 마술(馬術)이 뛰어나서 아이유브 왕조의 귀족이 사가, 후에 술탄의 경호대장으로까지 승진하게 된다.
1250년, 제7대 십자군 원정시의 만스라 전투에서 루이 9세를 격파하고, 그를 포로로 사로잡았다.
1260년에 몽골군이 육박하자, 이집트 술탄 쿠투즈와 손을 잡고 9월 3일의 아인 잘루트 전투에서 몽골군을 대파, 사령관 키트 부가까지 전사시키면서 대승하였다. 바이바르스가 몽골을 막아낸 건, 온전히 그의 공만은 아니다. 그가 아인 잘루트 전투에서 공을 세운 건 맞지만, 아인 잘루트 전투 자체는 바이바르스의 전임자인 술탄 쿠투즈의 지휘하에 이루어졌다.
이집트로 개선하는 도중에 바이바르스는 술탄 쿠투즈를 살해하는데, 이는 이전에 쿠투즈가 바이바르스의 군단장이었던 아크다이를 살해하였던 데에 대한 보복이자, 쿠투즈가 자신의 존재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던 데에 대한 선조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바이바르스는 쿠투즈를 대신하여 카이로로 돌아와, 술탄에 즉위한다.
1277년 봄에 아나톨리아의 몽골군을 격파하고 일 한국의 왕 아바카와 대결하고자 하였으나, 아바카는 이를 피하고 도주한다. 바이바르스는 그를 쫒지 않고 다마스쿠스에 개선하게 되는데, 이 직후에 복통을 일으키고 약 2주 후인 7월 1일에 사망하였다. 그의 급작스러운 사망원인에 대해서는 독살이라는 설이 있으나[3] 과도한 음주[4]가 원인이라는 설도 있어, 정확한 원인은 수수께끼에 싸여 있다.
그는 죽을 때까지 30회 이상을 출병하였다고 한다.
그의 사망 후, 아들들(바라카흐, 솔라미시)이 뒤를 이어 술탄에 즉위한다. 바이바르스는 생전에 바라카에게 제위를 물려주고자 하였었고, 이를 위해서 바라카를 부하인 칼라운의 딸과 결혼시켜서 그 기반을 다졌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아들들은 아버지만한 능력을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곧 폐위되고 만다.
실력주의 사회였던 맘루크 왕조는 결국, 바이바르스의 동료이자 부하, 그리고 바라카의 장인이었던 칼라운이 술탄의 자리를 계승하였다.
1.2 의의
이집트로 몰려오는 십자군들을 격파하고[5] 일 한국의 아바카 칸의 군대를 물리쳐 몽골군의 서진을 막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바이바르스는 세계사에서 중대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게 몽골군 본진이 아니라 파견된 군대 정도라고 까는 사람도 있지만, 본군이 아니라 그 휘하 몽골군을 이겨본 사람도 별로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바이바르스를 얕볼순 없다. 아바카 칸이 본격적으로 시리아를 침공한 1281년에는 바이바르스는 죽고 없었는데, 이때도 맘루크는 방어에 성공했고 이후 일 칸국은 이슬람으로 개종하며 평화가 찾아왔다.
한편으로는 킵차크 한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이슬람교를 몽골인들에게 전파하는데 도움을 주었으며, 카이로에서 다마스쿠스까지 연결되는 전령 시스템(역전제)과 문화진흥에 관심이 많았다. 이 역전제(하리드망)는 바이바르스의 역작으로, 유민족 통합과 정보의 신속한 전달에 이바지했다.
1.3 성격과 평가
바이바르스는 상대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뛰어났으며, 신앙심 깊고 금욕적인 성격에, 부하를 지극히 아꼈으므로 이상적인 군주였다. 또한 '세계를 일곱 바퀴나 돈 사나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열정적인 인물이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외교면에 있어서는 상당히 비정한 정치가였다. 기독교도에게 맹목적인 증오를 보였고, 학살하다가도 필요하면 협정을 맺고 다시 뒤통수를 치곤 했다. 용맹한 사자 같다가도 꾀많은 여우같기도 한 바이바르스의 실리적인 면모는, 아직 낭만적인 영웅주의적 정치관에서 깨어나지 못한 유럽인들에게 매우 효과적이었다. 물론 본질적으로는 동로마 제국이 거의 망했고, 서유럽은 더 이상 관심이 없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지만.
하지만 부작용도 꽤 있어서 적에 대한 무차별적인 학살과, 전투전에 한 약속을 전혀 지키지 않는 잔인한 면으로 악명이 높았고, 외교적으로도 몽골군과의 협상을 일방적으로 깨버리는 등의 위태위태한 행보를 보이며 사방에 적을 만들었다.
훌라구가 대칸의 후계문제로 주력군을 후방으로 빼고, 이후 일 한국이 킵차크 한국과 지속적으로 심각한 분쟁을[6] 겪지 않았다면 큰 낭패를 보았을 가능성이 높다.
1.4 그 외
여러 매체에 은근히 자주 나오는데, 아랍권에는 영웅담인 '바이바르스 이야기(Sirat Baybars)'가 존재하며, 코난의 작가 로버트 E. 하워드도 바이바르스가 등장하는 단편을 쓴 적이 있고, 해롤드 램이라는 작가는 그의 소설에서 아라비안 나이트의 술탄은 사실 하룬 알 라시드가 아니라 바이바르스라고 설정하기까지 했다.
코에이의 칭기즈 칸 시리즈에도 등장한다.
첫 등장은 3편인 원조비사의 시나리오 3으로 다들 전체적으로 찌질한 능력치인데 혼자 전투력 A를 자랑한다. 그것도 모자라 징기스칸 4에선 시나리오 2의 최강군주. 시나리오 3에서는 재야로 등장한다.
전투력은 시나리오중 최강이며, 내정이나 전투나 어느 것 하나 밀리는 게 없다.특히 연사, 화전을 가지고 있다. 일러스트도 지나치게 멋진 감이 있다. 이 남자 때문에 시나리오 2의 맘루크는 최강진영.
2 트리니티 블러드의 등장인물 바이바르스
이름의 유래는 1.
진인류제국의 귀족으로 칭호는 하르툼 남작. 황제 아우구스타 블라디카 직속의 친위대 금군병단(예니체리)의 금군병단장(예니체리 아스)을 맡고있다.[7] 참고로 트리니티 블러드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흑인 캐릭터.[8]
첫 등장은 R.O.M. 3권(국내판 5권)으로, 교황청의 사자인 아벨 일행과 함께 귀국한 이온 포르투나를 체포하기 위해 휘하의 예니체리를 이끌고 포르투나 가문의 저택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때 이온에게 적용된 죄목은 친할머니이자 제국서열 2인자인 모르도바 공 미르카 포르투나 살해용의 및 국가반역죄. 이온일행이 도망친뒤에서 계속해서 뒤를 쫒으며 위험한 상황을 많이 만들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황제의 밀명을 받아 강경파의 쿠데타 조사 및 체포를 위한 페이크였다.
무기는 일곱개의 칼날에서 눈에는 보이지 않는 진공의 칼날을 만들어내는 척수를 부수는 자(즈 아르 피카르). 가문이 아닌 금군병단장에게 대대로 전해지는 유산(디바이스)이다.
코믹스판에선 아스타로셰 아슬란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설정도 추가되어 나왔으며[9], 잠깐 지나가는 에피소드에선 이온과 대련을 하다 영감을 얻은 미르카에게 고양이 귀가 씌워지기도 하는 등 개그캐릭터의 면모가 좀 엿보인다.
금군병단장으로서의 위엄이 뿜어져 나오는 근엄한 외모에 성격도 올곧고 강직하여 맡은일엔 최선을 다한다. 제국내에서도 그의 명성이 잘알려져있어 함부로 대하지 않는듯. 단, 상관인 모르도바 공작 미르카 포르투나에겐 꼼짝을 못하는듯 하다. 특히 미르카가 웃으면 공포에 떨기도.
- ↑ 또는 1278년이라는 설도 있다.
- ↑ 백내장이었다고 한다. 다만 금발벽안이라고 그가 유럽계 백인은 아니다. 크림 반도에 살았던 슬라브인과 대거 혼혈된 킵차크계 튀르크인으로, 러시아 공국들을 털어먹거나 중앙아시아에서 용병으로 일하면서 살아가던 민족이었다.
- ↑ 일설에는 정적을 독살하려고 준비한 독주를 실수로 자신이 마시고 죽었다고 한다(...)
- ↑ 말젖술(馬乳酎)였다고 한다.
- ↑ 단 3차 이후 십자군 원정은 크게 약화되었다. 군사적인 부분은 물론 보급문제까지.
- ↑ 일 한국과 킵차크 한국의 대립은 네스토리우스교와 이슬람이라는 종교적인 차이까지 겹처 아예 맘루크와 킵차크 한국이 동맹을 맺을 정도로 심각했다.
- ↑ 제국의 직계로는 삼품관에 해당된다.
- ↑ R.O.M에서는 거의 유일한 흑인 캐릭터이며, R.A.M에선 위그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보슈라는 단역 흑인 캐릭터가 있다.
- ↑ 제국편 후반에 머리를 단발로 자른 아스타로셰에게 '이게 더 좋아'라고 생각하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