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지도

1 개요

七支刀 / 六叉の鉾

일본 덴리 시(天理市)의 이소노카미 신궁(石上神宮)에 전해져 오는 철제 . 1953년 일본 국보 고고자료 제15호로 지정되었다.

검이라고는 하지만 상당히 기괴한 모양(?)의 잔가지가 특징. 길이 74.8cm. 도신에는 한반도 금관문화의 금상감 기법으로 '62개의 황금문자를 수놓은, 당시로서는 상당한 고급 기술이 들어간 도검이다. 구조적으로도 그렇고, 실제 무기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의례용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긴 일반적인 모양이었더라도 저 정도의 역사와 의미를 가지는 보검을 그냥 무기로 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설에는 라기보다는 창의 일종인 ''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아무래도 베는 것은 힘들어 보이니. 이름하여 '육차모(六叉矛)'라라고 부르는 이도 있다. 그러나 육차모라는 이름도 적절하지는 않다. 형태상으로는 전혀 '모'로 분류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모'와 '창'의 차이는 '모'는 나무로 된 대(손잡이)를 날에 끼우는 것이고 '창'은 창날의 슴베를 나무로 된 대에 박아서 고정시키는 것인데, 칠지도는 손잡이를 끼워넣을 투겁이 아닌 손잡이에 끼워넣을 슴베가 달려있으므로 '모'로 볼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더구나 그 슴베의 형태도 창날보다는 칼날 쪽에 가깝다. 무엇보다도, 칠지도에 새겨진 명문에 칠지도(七支刀)라는 이름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실제 사용할 일이 없는 상징적인 물건이니 만큼, 모양이 실용적이지 않다고 해서 검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은 곤란할 듯.

신검 전설에 소개된 칠지도 본문. 저 책 자체가 일본 책이라 아래 해석과 다르다.

칠지도 자체는 일본에 딱 하나만 있지만, 한반도에서도 비슷한 양식으로 만든 보검들이 일본인 사학자들에 의해 발굴되었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경제 사정이 나아지고 고고학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지면서, 칠지도가 만들어진 기술과 같은 기법으로 만든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1]

학계에서는 고대 한반도의 금관 문화에서 나온 물건으로 본다. 실제로 원삼국 시대 한반도 국가들에서 만들어진 금관 문화랑 발달상의 특성이 비슷하다. 특히 신라 금관의 장식을 보자. 매우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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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기사:일제때 출토 미공개 유물 15만점 박스째 보관
일제시기 부여 군수리 사지에서 발굴된 철제 칠지상 철기. 문화재청 부여 군수리 사지 페이지에는 칠지도가 발굴되었다고 나오는 데 이것을 말하는 듯 하다.

2 역사적 분쟁

몇 개의 글씨가 훼손되었기에 이를 둘러싸고 한국과 일본 간에 의견차가 있다. 일본에선 백제 근초고왕이 일본에 바쳤다 하고, 한국에선 백제의 근초고왕이 당시 태자였던 근구수왕을 외교 사절로 보내서 하사했다고 한다. 왕위 계승자를 사절로 보낸 점도 있어서, 쌍방의 견해가 상당히 충돌하는 편이다.[2]

일본 역사학계에서 근거로 주장하는 《일본서기》가 내용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덴노 중심주의와 일본 중심주의적 기술이 너무 많은 문서라,거의 선전용 근거로 사용하기에는 여러 모로 불안한 감이 있다. 사실 일본서기는 한일 고대사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서 중 하나이며, 우리나라 학자들도 종종 참고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그 시대에 만들어진 역사서는 전혀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일본서기만큼 삼국시대에 대해 자세한 내용을 서술한 문건은 없기 때문이다. 허나 문제는 일본서기는 당시 야마토 정권의 공식적인 프로파간다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측면에서 객관적인 기록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예컨대 칠지도가 몇 년도에 일본으로 들어왔는가에 대한 기록이라면 특별히 의심할 이유가 없는 한 일본서기가 좋은 참고자료가 될 수 있지만, 일본에게 '하사한' 것인지 '바친' 것인지와 같은 종류의 정치적 입장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서기의 신뢰도는 바닥을 친다. 문장으로만 쓰고 보면 정말 사소한 차이인데, 내용 면에서는 안드로메다급 차이를 보인다(…). 특히 양국 학계에서 해석의 차이로 쟁점이 되고 있다. 아래 해석은 그 중 하나.

四年月十六日丙午正陽造百練鋼綱七支刀○○百兵宣供供候王○○○○作 /

先世以來夫有此刀百濟王世子奇生聖音故爲倭王旨造傳示後世.
태□(泰□) 4년 □월 16일 병오일 정양(정오)에 무쇠를 백 번이나 두들겨서 칠지도를 만든다. 이 칼은 백병을 ○○. 마땅히 공손한 후왕에게 어울린다. ○○○○가 만들었다. /
선세(先世) 이래 이런 칼이 있던 적이 없는데, 백제 왕세자가 성음(佛法)을 얻으므로 왜왕 지(旨)를 위하여 만든다. 후세에 길이 전하라.

전지왕 대에 고구려의 남하를 막기 위해 전달되었다는 설도 있다. 다만, 전지왕은 고구려에 대해 수성적인 입장을 취했으며, '병오 정양'이라는 표현도 단지 '양기가 강한 때에 만들었으므로 좋은 칼이다'라는 의미에 불과하므로 (즉, 정말로 태화 4년 11월 병오일에 만들어지진 않았을 가능성이 크므로) 신빙성은 낮아 보인다.

여기서 "마땅히 공손한 후왕" 이 부분이 한국 사학계 측에서 중요시하는 주장이며 동시에 일본 학계에서는 대놓고 무시하는 문장인데, 후왕의 '후(侯)'는 보다 하위에 있는 신하를 지칭하는 명하로 보통 '제후'와 같은 낱말에 쓰이는 자이다. 하지만 일본 사학계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잘 다루지 않고 넘어간다. "우리 덴노는 왜왕이나 후왕 따위가 아니양! ㅜㅜ" 일부 일본 학자들은 이 빼도박도 못하는 후왕 부분을 어떻게든 넘기기 위하여, 백제가 아닌 동진에서 만들어서 백제-일본으로 하사됐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일본 위키백과는 이 설을 정설로 서술하고 있지만(…). 아래 항목을 보자. 보면 알겠지만, 현대의 논쟁이야 어찌되었든 백제 왕실 측에서는 일본 왕실에 후왕이라는 호칭을 사용한 모양이다.

2.1 칠지도는 중국에서 만들어서 일본에 하사했다?

일본에는 당시 일본이 백제보다 주도권을 가졌고, 칠지도는 중국 동진에서 만들어서 그것을 백제로 통해 일본에게 하사했다는 형식이었다는 주장이 있다. 일본 위키백과는 이 중국전래설을 정설로 서술하고 있다. 1966년 구리하라 도모노부(栗原朋信)의 <칠지도의 명문에 대한 일해석>에서 주장한 일명 동진하사설인데, 백제와 일본 사이에 뜬금없이 중국를 끼워넣은 이유는, 백제가 중국 동진의 연호를 쓰고 있다는 주장에서 시작되었다.

  • 주작주장의 시작
문장에 태□(泰□)를 태화(泰和=太和)라고 보고 동진의 연호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백제가 동진의 연호를 쓰는 동진의 속국이며, 칠지도는 중국의 동진 왕조가 백제왕에게 왜왕을 통하여 하사하라는 명령을 받아 전달한 물건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설은 근거가 없는 점은 물론이고, 단순히 일본의 우위 주장을 위한 무리한 해석에 가깝다. 泰○四年를 중국 동진의 연호 太和 四年(A.D 369년)"이라고 주장하는데 ‘太’와‘泰’가 엄연히 다른 글자임에도[3] 일본학자들은 동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백제 무령왕릉과 그 묘지석의 발견으로 백제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고 있었음이 밝혀졌다.(다만 여기는 간지로 되어 있다) 즉, 한국에서 고대사 연구가 미적했던 70년대 이전에 일본에서 만들어낸 일본 중심적 학설 중 하나라는 이야기. 이래서 역사학이 중요하다.

  • 비현실적인 이유
동진이 백제로 하여금 일본에 하사하도록 지시했다면, 중국 쪽 기록에도 일본에 대한 하사 기록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거 없다. 중국이 만들었다면 칠지도 자체에도 중국이 주체로 언급되어야 되는데, 그런 사실을 의미하는 문구는 커녕 중국을 암시하는 문자가 하나도 없다. 또한 중국에서는 비슷한 양식이 출토된 적이 없으나, 한반도에서는 칠지도의 근간이 되는 원삼국시대의 금관양식이 지속적으로 출토되고 있다.

무엇보다 연호만으로 중국에서 만들었거나, 하사했다는 근거는 너무나 부실하기 짝이 없다(...). 있다는 것들도 한자 해석 문제를 통한 60년대 일본학자의 주장일 뿐 한 마디로 중국에서 만든 것도 아니고, 중국에서 덴노에게 하사한 것은 더욱 아니라는 이야기.아니 애초에 백제 태자가 언급되는데 중국에서 칼을 만들었다 한들 일본에 하사한 주체는 백제잖아 항목 상단의 원삼국 시대 유물들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그냥 당대 양식만 보면 답이 나오는 문제다.[4][5]

그리고 현실적으로 위 주장을 받아들이면 후왕이라는 호칭 등 일본과 중국이 어느 정도 교류가 있었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몇 백년 뒤에 쇼토쿠 태자가 "해 뜨는 나라의 천자"라는 외교문서를 보냈다가 수 양제가 일본 사신을 죽이니 살리니 할 정도의 초특급 외교적 결례가 설명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서 전문적으로 알고 싶은 위키러가 있다면, 2009년 나온 학술논문 石上神宮 七支刀에 대한 一考察을 참조하기 바란다. 위키 본문의 내용은 해당 논문의 내용을 극히 압축해 놓았으며, 간단히 알아보고 싶다면 여기참조.

3 각종 매체에서의 칠지도

모양이 특이하고 일본 고대사의 한 아이콘이 된 것 때문인지, 일본에서는 여러 매체에서 빈번하게 등장하기도 한다.

헬게이트 런던에도 나온 바 있고, 어느 온라인 게임에서는 불 속성의 검으로 나오기도 했다. 물건너의 여러가지 게임이나 매체에서 뭔가 굉장한 무엇인가로 등장한다. 신화의 캐릭터가 사용하기도 한다.

3.1 한국

  • 리젠드의 주된 소재이기도 하다. 근데 단행본에 의하면 연재 당시 독자들의 반응이 가관이었는데, 칠지도의 실존 여부에 대해서 묻는 독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작가도 어이가 없었는지 단행본에 '칠지도는 교과서에도 나온다'고 명시했다. 실존여부를 묻는다고? 역사시간에 졸았나
  • 드라마 근초고왕의 마지막회에서 근초고왕이 왜국에게 칠지도를 하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 게임 바람의 나라에서 이벤트로 획득할 수 있는 기간제 무기로 나왔었으며 백제 업데이트 이후 퀘스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사실상 백제 전설무기급으로 등장한다.
  • 드라마 서동요의 오프닝에서는 무왕이 칠지도를 들고 있는 모습이 나온다.
  • 환빠 소설 퇴마록의 국내편 중 '초치검의 비밀'에서는 닭우에게 왜를 정벌하라고 하사한 칼이라는 설정이 나온다.
  • 만화 보물찾기 시리즈 중 일본에서 보물찾기의 주 소재는 바로 칠지도이다. 일본에서 찾아야 할 보물도 바로 누군가가 조각내어 잘 보존시킨 또 하나의 칠지도. 봉팔이는 이 칠지도를 야쿠자에게 넘겼다가 지팡이에게 매국노 소리를 듣는다.
  • 천년의 신화에서는 근초고왕이 들고 다니면서 적군을 썰어버린다. 다른 본영 국왕 영웅과 큰 차이는 없다. 순 외형 차이뿐. 하지만 남들이 밋밋한 그냥 검을 들고 다닐때 은근히 뽀대는 난다. 여기서도 검을 휘두르기 보다는 찌르는 공격으로 사용한다. 그리고 백제의 본영인 남당 입구 옆에도 한 자루가 놓여 있다.
  • 천년의 신화 2에서는 후손인 의자왕이 금색의 칠지도를 들고 다닌다. 근데 옆의 가지가 2개뿐이다. 뭐지 이건?
  • 임진록2+ 조선의 반격에서는 검을 사용하는 영웅 유닛이 장착 가능한 무기 아이템으로 '쿠사나기의 검'이라는 아이템이 등장하는데, 생긴 건 영락없는 칠지도이다.(뭥미?) 성능은 공격력을 45% 정도 상승시켜주는데...같은 검 아이템인 청홍검이 공격력 100% 증가 + 일정 확률로 일격필살[6] 이라는 멋진 옵션을 가지고 있어서 쿠사나기의 검은 버림받는다. 사실 이건 폭마혈도나 용비늘검 같은 개성 강한 몇몇 검을 제외한 대부분의 검들이 같은 처지...
도신의 양쪽에는 사슴뿔을 본뜬 가지가 3개씩 달려있고 도신의 양면에는 61자의 명문(銘文)이 금으로 상감되어 있는 붉은 빛의 무기.
길이 0.75m, 무게 1.3kg, 공격방식 불명
장착 시 강력한 2연타를 날릴 수 있는 스킬인 '홍련'을 쓸 수 있다. 그런데 후반에는 어척검도 생기고, 데미지는 다른 무기로 인해 강해져 있으므로 이내 버리는 무기가 된다.
  • 헬퍼에서 흑조가 카제모노에게 칠지도를 내려 존나나 워통거를 막는데 사용됐다. 워통거가 너무 먼치킨이어서 실패했지만.

3.2 일본

  • 그림노츠에서 나오는 레어 양손검으로 등장. 이름도 대놓고 칠지도다. 뭔 우연의 장난인지 캐릭터 체인지라는 요소를 공유하는 전국전승에서도 초기작 최종결전때 칠지도스러운 검이 사용되었다.
  • 디스가이아에서도 검 계열 무기 중 꽤 강한 축에 속하는 아이템으로 등장한다.
  • PS1판 닌자잠입액션게임인 '입체닌자활극 천추'에선 최종보스가 쓴다. 최종보스가 쓴 무기인 만큼 당연히 데미지가 장난 아니게 아프다.
  • 별의 커비 시리즈에서, 메타 나이트가 보검 갤럭시아라는 이름의 금색 검을 들고 다닌다. 초창기 삽화에는 칠지도였는데, 별의 커비 Wii에선 어째 옆날이 6개가 아니라 4개(…). 나머지 2개는 손잡이 위쪽에 있으니 상관없어!
그의 그림자(?)인 다크 메타 나이트도 비슷한 모양의 은색 검을 들고 있다.
  • 소년탐정 김전일의 천둥축제 살인사건 편에서 천둥 축제를 위해 번개를 부르는 도구로 17개의 나무에 설치되었다. 어?
  • 신라만상 쵸코에선 시리즈 초대 주인공인 '사이가'의 무기였던 이후로, 작중 주인공이나 주요인물들에게 쓰이고 있다.
  • 히미코전 코믹스에서 주인공이 각성하면서 소환하는 무기가 이와 비슷하게 생겼다.
  • 고전 인기만화 공작왕에서는 강력한 마물을 일격에 끔살시키는 아이템으로 한 차례 등장했다.
  • 다크 클라우드2에서 모니카가 사용할 수 있는 도검으로 등장한다. 영문판 이름은 7 Branch Sword. 그런데, 외형상으로는 갈퀴가 5개만 달려 있어서 칠지도가 아니라 육지도(...) 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무기 정보 링크
  • 파이널 판타지 11에서 플레이어가 사용 가능한 무기로 등장한다. 일본판 이름은 七枝刀, 영문판 이름은 Nanatsusaya 이며, 여기서 스샷을 볼수 있다.
  • 쿠루마다 마사미 선생의 풍마의 성검전쟁편의 적측의 성검중 한 자루로 등장.처음에는 압도적인 위력을 보이지만 쿠루마다 스토리 답게 주역 파워로 밀리면서 가지가 하나 둘 부러지면서 마지막에는 다 부러지고 사용자도 패배한다.
  • 2013년작 배틀물 에로게 환창의 이데아의 주인공 유마의 검이 영락없는 칠지도이다. 그리고 매우 크고 아름답다.
일본 매체에 자주 등장한다. 일본에 있고 일본 매체수가 한국 매체보다 압도적으로 많기도 때문일 수도? 외국에서 선물받은 거라도 국보는 국보니까
  1. 칠지도와 같은 기법이 나타나는 원삼국 시대의 환두대도 유물의 경우 무쇠, 금동(金銅)제를 가리지 않고 고루 출토되고 있다. 다만 겉모양이 칠지도와 똑같은 물건은 아니고, 특유의 금상감 기법이나 도검 제조법 자체가 동일하다. 링크 또 다른 링크
  2. 일본 학계에서는 칠지도를 보낸 사절이 무려 근구수왕(당시 태자)이라는 점을 강조하여 백제를 왜의 속국으로 인식하고 있고, 한국 학계에서는 격이 낮은 쇠로 만든 유물이며 후왕라는 문자를 들어서 왜가 백제의 제후국이었다고 있다. 어찌되었든 당시 백제와 왜가 상당한 우호를 가졌음은 분명하다.
  3. 太와 泰는 뜻이 서로 통하는 통자(通字)이긴 하지만, 엄연히 다른 글자다. 물론 어려운 한자를 쉬운 통자가 있으면 대체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칠지도의 명문이 그런 케이스에 해당하는지도 불명확한 부분이고, 그런 사례에 해당한다 해도 전근대 한국에서 외교와 관련된 부분에서 당시 동아시아 지역에서 사실상 표준으로 쓰이던 기년인 중국 연호를 쓴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4. 내부 소장파에서는 이 부분을 지적한 학자들도 제법 있었다고 하는데, 정작 현재는 일본 정부에서 해당 부분의 논의를 중단시켰다. 이러한 논의 중단은 한국에도 있으나, 주된 이유는 대체로 아무런 해결없이 의견만 분분하며 결론이 나지 않을 경우에 사용하는데, 정작 이 논의가 중단될 무렵에는 소장파 쪽으로 의견이 기울어가면서 결론이 나려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5. 물론 일본 측에서 당시 덴노에 대한 변명으로 다른 주장도 있다. 후왕 바로 다음에 나오는 한자들이 보이지 않기에 누구를 지칭하는지 알기 어렵다는 것. 그런데 한문은 한국어일본어와는 서기 방식이 반대라 그렇게 보면 해석이 꼬여 이 부분이 문장 전체가 큰 효력을 잃는다. 일본 측에서는 후왕을 단지 길상구로만 받아들여 '선량한 후왕'식으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근데 그래도 어쨌든 후왕이네 국내에 번역 소개된 책에도 이 설을 따르는 경우가 있다.
  6. 순간적으로 비정상적인 높은 공격력을 내는데, 유닛은 즉사이고(지상 유닛들 중 이 공격력을 넘어서는 체력을 가진 존재가 없다! 굳이 꼽자면 백설산삼 왕창 먹여서 체력을 다섯자리로 늘려놓은 영웅 정도...근데 그건 사실상 치트키 아니면 꿈의 플레이에서나 가능하다) 건물도 죽을둥 살둥 하는 처지로 만들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