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베어스 No.68 | |
성영훈(成榮勳 / Young-hoon Seong) | |
생년월일 | 1990년 6월 24일 |
출신지 | 서울특별시 |
학력 | 서울구암초 - 덕수중 - 덕수고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2009년 두산 베어스 1차 지명 |
소속팀 | 두산 베어스(2009~현재) |
두산 베어스 등번호 22번 (2009~2010) | ||||
홍성흔 (1999~2008) | ➡ | 성영훈 (2009~2010) | ➡ | 홍성흔 (2013~ ) |
두산 베어스 등번호 27번 (2014) | ||||
김상현 (2013) | ➡ | 성영훈 (2014) | ➡ | 김명성(2015~ ) |
두산 베어스 등번호 18번 (2015) | ||||
김동주 (1998~2014) | ➡ | 성영훈 (2015) | ➡ | 김강률(2016~) |
두산 베어스 등번호 68번 (2016~) | ||||
김민혁 (2015) | ➡ | 성영훈 (2016) | ➡ | - |
목차
1 소개
대한민국의 프로야구 팀 두산 베어스 소속 투수. 이자 등번호 컬렉터 민간신앙 두산 팬들의 전설의 포켓몬
2 고교시절
2000년대 서울이 배출한 최고의 투수라고 불리던 성영훈은 이미 덕수중학교 시절부터 묵직한 직구로 스포츠신문에 단독기사가 실릴 정도로 촉망받는 선수였다. 일반적으로 최고구속이 140km/h 초반만 나와도 파이어볼러 소리를 듣는 고교야구무대에서 152km/h의 공을 뿌리던 성영훈은 당연 주목받는 대상이었다.
당시 고교 최대어로 150km/h 중반에 달하는 빠르고 묵직한 직구와 날카롭게 휘어지는 슬라이더는 초고교급으로 평가받았다. 텍사스 등 몇몇 메이저리그 구단은 지난해 말부터 성영훈 영입 의사를 타진하기도 했으나, 성영훈은 연고 팀인 두산과 총액 5억 5,000만 원[1]에 입단 계약을 체결하였고, 이는 역대 고졸신인 계약금 중 다섯 번째로 높은 금액이었다.
1차 지명을 나름 성공적으로 마무리지은 성영훈의 마지막 고교시절은 화려했다. 제42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서울고와의 준결승 전에서 8.1이닝을 노히트로 막으며 승리 투수가 됐고. 이튿날 열린 경기고와의 결승전에서도 7이닝 무실점의 역투로 덕수고의 사상 첫 대통령배 우승을 이끌었다.
제23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 대한민국 U-18 야구 국가대표팀로 선발되어 당시 대표팀의 에이스로서 3승(대회 1위), 1.32방어율, 36탈삼진(대회 1위)을 기록하며 대회 MVP로 선정되었다. 결승전에서 감기몸살에 걸린 상태에도 완봉승을 찍을정도로[2] 국내뿐 아니라 세계무대에서도 동년배들 사이에서 절대적인 실력을 보여주었다.
입단 기념으로 두산 홈경기에서 시구를 하기도 했다. 기사 당시 시구를 원바운드로 했는데 그 뒤 싸이월드에 남긴 말이 선예도 스트라이크 던지는데... 였다(...)[3] 관련 포스팅
3 프로 입단후
3.1 2009년
2009년 4월 8일 한화전 2:2 동점, 7회 2사 만루상황에서 프로 데뷔 첫 등판을 하게 된다. 첫 상대한 타자 윤재국에게 밀어내기 볼넷을 주어 팀의 결정적 패배로 이어졌지만 이 후 디아즈를 삼진으로 잡아내며 1.1이닝 2탈삼진 1볼넷으로 데뷔전을 치뤘다.데뷔전 기사 이후 팔꿈치 통증을 호소하며 결국 프로 데뷔 첫 해를 별다른 활약상 없이 마감지었다. 한편, 성영훈은 12월 국제야구연맹(IBAF)에 올해의 주니어 선수로 선정되었다.관련기사
3.2 2010년
프로 첫 해를 재활로 보낸 성영훈의 구속은 줄어들었다. 하지만 중간계투로서 조금씩 제 역할을 해 주면서 그의 프로 생활은 탄탄대로일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야구 인생에 시련이 닥쳤다.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0년 준플레이오프 엔트리에 들지 못했고, 팀은 2연패 뒤 3연승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이두환을 대신하여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 엔트리에 합류했다.[4]
팀이 시리즈 전적 2승 1패로 이기던 2010년 10월 11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 4차전에 등판했는데, 이날은 성영훈 본인에게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일 것이다. 팀이 스코어 7:2로 끌려가던 5회초 2사 만루상황에서 5번째 투수로 등판한 그는 첫 타자 김상수를 중견수 플라이로 잡아냈다. 그리고 여전히 스코어 7:2인 6회초 1사에서 2010년 플레이오프 시리즈 내내 미쳐있던 박한이를 삼구삼진으로 잡으며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삼구삼진 영상
그렇게 호투를 하다 여전히 스코어 7:2인 7회초 1사 후 6번타자 조영훈과의 대결에서 2구째 공을 던지고서 오른쪽 팔꿈치 인대가 끊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그는 한 이닝은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3구에 이어 4구째를 던지는 순간, 또다시 팔꿈치에서 '뚝'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기나긴 시련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성영훈은 바로 김창훈으로 교체되었고, 김창훈이 조영훈에게 볼넷을 내줬지만 7번타자 진갑용을 우익수 플라이, 8번타자 신명철을 포수 파울플라이로 아웃시켜 성영훈의 실점은 없었다.[5]
성영훈은 이날 1⅔이닝 21투구수 1몸에 맞는 공 1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8:7로 패했다.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3경기 2이닝 1볼넷 1몸에 맞는 공 1탈삼진 1실점 1자책점 평균자책점 4.5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탈락했다.
데뷔 때부터 지속적인 팔꿈치 통증을 호소하였지만 당시 지정 병원에서는 '아무 이상이 없다', '정신적인 부분이다'라고 진단 결과를 내렸다. 그의 부상은 덕수고 시절의 혹사와 구단의 부주의함으로 일어난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게 각광받던 고졸 유망주는 팬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미국에서 수술대에 올랐다. 그리고 이듬해 2011년 공익근무요원으로 군복무를 하였다.
3.3 2011~2012 시즌
미국에서 토미존 수술을 받고 병역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악구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하였고, 복무 2년차부터 다시금 공을 잡기 시작했다. 복무 중에도 2군에서 재활을 하며 복귀를 위한 준비를 했다.
3.4 2013 시즌
2013년 1월 2일 소집 해제되었다. 2013 스프링캠프에 합류했지만, 어깨 부상으로 재활군에 머물렀다.
3.5 2014 시즌
시즌 후 마무리 훈련 명단에서도 제외되고, 오랫동안 마운드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보니 두산 팬들도 성영훈을 포기하는 듯. 그래도 후에 노경은처럼 터져 주기를 바라고 있다 아니면 서동환이 되거나 아니 그래야 할 것이다. 5억 5천이나 받았는데(...)
이후 등번호를 김동주가 방출되면서 공석이 된 18번을 달게 되었다.
3.6 2015 시즌
2015년에도 시즌의 절반이 지날 동안 출전하지 않으며 민간신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10년을 마지막으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무려 4년 반 동안 2군에서 공 하나라도 던지는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기 때문.
일본에서 검진 결과, 수술받았던 부위가 잘못되어 재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재활 중이라고.
2015년 6월에는 어깨 인대 손상도 발견되어 어깨에도 칼을 댔다고 한다......
3.7 2016 시즌
호주 스프링캠프 명단에 포함되었다(!!!) 다만 부상 부위가 완전히 회복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제 볼 수 있겠지... 그렇겠지... 하도 안 보였기 때문에 살아있는지라도 보고 싶다며 팬들은 선수단 출국 당시 공항 기사사진을 기대했으나 김강률과 함께 일찍 따뜻한 곳에 가서 재활하고 있으라는 뜻으로 호주에 먼저 가 있다고 한다.
지난 6월에 어깨 수술을 받아서 '16시즌 후반기에나 복귀 가능하다는 기사가 나왔다. 민간신앙은 계속된다 팬들은 후반기라도 복귀할 수 있다는 게 어디냐며 제발 터지기를 기원하는 중이다. 두산의 2009년 드래프트 동기들이 '15시즌 단체로 대활약하며 페넌트레이스 3위와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는데[6], 정작 그 해의 드래프트 대상자 중 일언반구의 이견도 없었고 "안 터지면 이상하다", "21세기 서울이 배출한 최고의 투수다" 등의 소리까지 들은 최대어였던 1차 지명자가 고교 시절 혹사로 인한 부상 때문에 몇 년간 경기에서 공을 던지지도 못하고 있었으니(...)[7]
파일:NoFxOxw.jpg
게다가 2015년 시즌을 이끌었던 동기들 중 드래프트 당시 대졸신인이었던 분을 제외하면 전부 2008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 우승멤버다. 농담이 아니라 두산 2009년 드래프트의 마지막 퍼즐이 1차지명 성영훈인 셈. 기나긴 재활에도 불구, 구단이 육성선수 전환도 시키지 않고 쭉 데리고 있었던 걸 보면 확실히 포텐 하나는 역대급이 맞긴 하다. 이번 시즌엔 제발 1군에서 볼 수 있길 바랄 뿐... 두산의 미래 '에드먼턴 키즈', 그들의 특별한 우정
5월 들어 두산의 2008 에드먼턴 키즈에 투수 홍영현까지 추가되면서 성영훈을 찾는 팬들이 점점 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홍영현이 1군 1승을 거두고 나서 인터뷰에서 성영훈이 빨리 복귀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 이후로 현역 데뷔가 슬슬 현실화되고 있다. 상기한 홍영현을 비롯하여 친구들이 본격적으로 공석에서 성영훈을 언급하기 시작했고, 구단에서도 거의 생중계하다시피 재활 근황을 알리며 시즌 후반기에 불펜으로 등판을 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기나긴 재활을 끝내고 5월 28일 kt와의 퓨쳐스리그에서 6회 주자 없는 상황에 등판해서 직구로만 10개의 공을 던지고 내려갔다. 결과는 1K 1BB 인데, 놀라운 점은 어깨에까지 칼을 댔고 재활만 6년 가까이 했음에도 최고 구속이 148km/h을 찍었다는 것. 확실히 물건은 물건이다..
6월 4일자 화성 히어로즈 전에서는 삼진 1개와 뜬공 2개, 3자 범퇴로 이닝을 메조지었다. 최고 구속은 143km를 마크했다. 직구 제구는 좋았지만 변화구는 조금 지켜봐야 한다는 평이 다수.
너무 오랜 재활 끝에 마운드에서 공을 던져서 나타날 수 있는 여러 부위 근육에 통증이 있다고 한다. 애초에 예상이 내년이었고 건강하기만 하면 바로 즉전감 수준의 재능을 갖췄다는게 다시 한 번 증명된 해이니 모든 두산팬들은 믿음을 잃지 말고 또다시 민간신앙을 이어가자!
4 통산 기록
4.1 주요기록
- 2008년 23회 세계청소년선수야구선수권 예선전 : 호주전 승리투수 8⅓이닝 6피안타 14탈삼진 1실점 비자책
- 2008년 23회 세계청소년선수야구선수권 8강 : 대만전 9이닝 완투승 3피안타 10탈삼진 4실점
- 2008년 23회 세계청소년선수야구선수권 결승전 : 미국전 9이닝 완봉승 7피안타 9탈삼진 무실점
5 대표경력
5.1 아마시절 수상경력
6 기타 사항
원더걸스 멤버 선미의 열렬한 팬으로 '선미덕후'로 불린다.[8] 선미가 원더걸스 활동을 중단했을 당시에 매우 안타까운 심정을 밝혔을 정도. 오죽하면 선미가 솔로로 컴백하면 성영훈도 살아나지 않겠냐는 소리가 나왔을 정도였다. 재활이 길어지면서 덕심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불확실했으나.... 최근 원더걸스 컴백이 확정되자 인스타그램에 원더걸스의 wishing on a star를 멜론 어플로 듣는 것을 인증한다던지, 글러브와 모자에 선미를 써놓는다던지 여전히 덕후 인증을 하고 있다.- ↑ 두산의 계약금 최고금액은 김명제의 6억 원이다.
- ↑ 문제는 이게 결코 미담이라고 할 수 없는게, 이종운/평가 부분에 자세히 나와있다.
- ↑ 선예는 2007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시구를 했다.
- ↑ 원래는 김승회, 이두환 대신 김성배, 이용찬이 플레이오프 엔트리에 들었으나 이용찬이 음주운전 파문으로 여론이 좋지 않자 이용찬 대신 성영훈으로 교체되었다.
- ↑ 김창훈이 볼카운트 1스트라이크3볼 상황에서 올라와 조영훈에게 볼넷을 내줬기 때문에 조영훈은 성영훈의 책임 주자였다. 따라서 김창훈이 조영훈을 홈에 불러들였다면 이는 성영훈의 실점이 되는 상황이었다.
- ↑ 두산 2차지명 1라운드 허경민은 3루 주전을 차지하고 커리어하이를 찍은 동시에 단일 포스트시즌 최다안타 기록 수립, 2라운드 박건우는 정규시즌 대타, 백업으로 쏠쏠했고 포스트시즌에서 대폭발, 5라운드 정수빈은 한국시리즈 MVP, 6라운드 유희관은 정규시즌 다승 2위(18승), 롯데 2차지명 3라운드였던 허준혁은 땜빵 선발로 시작해서 실질적 5선발로 뛰었다. 이 중 한 명이라도 없었으면 정규시즌 3위와 한국시리즈 우승은 불가능했다.
- ↑ 성영훈 뿐 아니라 2016년 드래프트 1차지명으로 두산에 입단한 선린인터넷고 이영하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에서의 혹사 영향으로 토미 존 서저리와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1픽 잔혹사세청 개새끼 해봐 세청 개새끼 - ↑ 두산 팬들 사이에서는 그냥 덕후라고만 해도 그건 성영훈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