슐레지엔

(실레지아에서 넘어옴)

독일어: Schlesien(슐레지엔)
영어: Silesia(실레지아)
폴란드어: Śląsk(실롱스크)
체코어: Slezsko(슬레스코)

주기(州旗)주장(州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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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레지엔의 위치
국가독일 -> 폴란드 / 체코슬로바키아/독일[1]
주도(州都)브레슬라우

1 개요

1945년까지 독일의 동부였던 지역.

보통 슐레지엔이라고 부르지만 간혹 영어식 표현인 실레시아를 쓰기도 한다. 폴란드어로는 실롱스크.

프로이센 왕국 산하의 행정구역 중 하나로 독일 제국 시기까지 존재했으나, 1차대전 패배 이후 상부 슐레지엔 주와 하부 슐레지엔 주가 분리되었고, 상대적으로 폴란드인들이 다수 거주했던 상부 슐레지엔 지역의 동부(이 지역은 핵심 산업지대이기도 했다)는 주민투표를 거쳐 신생 폴란드에게 할양됐으며, 이러한 조치는 독일 내부의 강력한 반발을 산다. 이후 폴란드 침공을 거쳐 1939년부터 1944년까지 일시적으로 다시 슐레지엔이 하나로 통합되기도 했으나 다들 알다시피 2차대전나치 독일의 패배로 끝났고 이후 스탈린은 아예 슐레지엔 전체[2] 를 폴란드에게 넘겨주어버린다.

이에 대해서 독일 내에서 항의의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1990년 독일 통일 과정에서 독일이 구 영토를 영구적으로 포기할 것을 명시했기 때문에 슐레지엔 지역이 독일로 다시 반환될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라고 봐도 무방하다.

2 역사

2.1 근대 이전

약 기원전 1세기 무렵에 이미 고대 게르만족이 이 곳에 거주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었으며 중세 이후로는 슬라브족들이 이곳에 거주한다. 9세기 이후로는 폴란드 왕국의 영토이다가 13세기 무렵부터 소위 동방식민운동이라고 불리는 독일인들의 이주가 시작되면서 서서히 게르만화가 이루어진다. 상대적으로 독일과 가까웠던 탓에 슐레지엔은 빠르게 게르만화가 이루어져서 이미 13세기 후반에 이르면 독일인들이 수적으로 우위를 점하게 된다.[3]

동방식민운동 이후로는 보헤미아 왕국의 영역이었다가 16세기 중반 합스부르크 가문이 보헤미아 왕국의 왕으로 추대되면서 보헤미아의 일부였던 슐레지엔 역시 자연스럽게 오스트리아의 세력권으로 포함되게 된다. 하지만 1740년 마리아 테레지아가 왕위에 오르자 당시 프로이센의 왕이었던 프리드리히 대왕살리카 법을 근거로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을 일으키면서 슐레지엔 일대는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테레지아의 대관식 직후 기습적인 침공을 감행했던 프리드리히 대왕는 성공적으로 슐레지엔 전역을 차지하는데 성공했고, 1742년 무렵이 되면 슐레지엔의 대부분이 사실상 프로이센 왕국의 영토로 들어오게 된다. 대찬 여장부였던 테레지아가 그리 쉽게 슐레지엔을 포기할 리가 없었고, 곧바로 반격을 감행하지만 끝끝내 슐레지엔을 수복하는 것에는 실패하고, 1745년 이 일대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해야만 했다.[* 여담이지만 프로테스탄트가 다수였던 하부 슐레지엔 주민들은 내심 가톨릭을 신봉했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통치에서 벗어나 프로이센 왕국의 호엔촐레른 가문의 통치를 받게 된 것을 기뻐했다고 카더라....

이처럼 슐레지엔을 두고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이 수 차례 전쟁을 일으킬 정도로 충돌한 것은 이 곳이 그만큼 알짜배기였기 때문이다. 슐레지엔은 철과 석탄이 풍부한 지역으로 이를 바탕으로 한 상공업이 크게 발달해서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직전에는 오스트리아 세금 수입의 20%를 책임지는 요충지였다.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모두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던 곳이 슐레지엔이었다.

2.2 프로이센과 독일 제국

이후 7년 전쟁을 거치면서 슐레지엔은 확고부동한 프로이센의 영토로 승인을 받았으며 나폴레옹 전쟁빈 회의를 거치면서 작센 왕국에게서 일부 지역을 떼어받아 그 규모가 더욱 커지게 된다.[4] 이후로도 슐레지엔은 프로이센의 일부로 독일 연방독일 제국에 참여했으며 특히나 각종 철과 석탄이 풍부했던 지역의 장점을 십분활용해 산업 혁명 시기에는 성공적으로 산업화를 이끌어낸다.[5] 그덕에 인근의 폴란드와 포젠, 포메른, 동프로이센 지역에서 일자리를 찾아 많은 사람들이 슐레지엔(특히 산업이 발달한 상부 슐레지엔)으로 이주했고 20세기 초반 무렵에는 루르 공업 지대 다음가는 독일 내 경제권으로 성장하기에 이른다.

2.3 바이마르 공화국과 나치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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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부 슐레지엔 주의 깃발. 한편 하부 슐레지엔 주는 분리되기 전 상징을 그대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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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부 슐레지엔의 분할. 노란색은 독일, 짙은 청색은 폴란드, 하늘색은 체코슬로바키아.

1919년에 슐레지엔 주 오펠른 관구를 떼어 "상부 슐레지엔"(Provinz Oberschlesien. 주도-오펠른)" 주로 분리시키고, 나머지 지역은 "하부 슐레지엔(Provinz Niederschlesien. 주도-브레슬라우)"이 되어 분리된다.[6] 하지만 1차대전이 독일의 패배로 끝나면서 슐레지엔에도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1919년에 훌트신 지역이 체코슬로바키아로 편입되었고, 상부 슐레지엔 전역에서 폴란드 정부의 사주를 받은 폴란드계 주민들이 무장봉기를 일으키고 이에 반대하는 독일의 준군사조직들과 곳곳에서 충돌을 일으키면서 그야말로 개판 오분 전의 상황으로 치닫고 만다. 결국 1921년 주민 투표를 거쳐 상부 슐레지엔이 독일과 신생 폴란드로 분할되었다.(폴란드로 넘어간 땅의 면적은 비록 작지만, 카토비체 같은 알짜 산업지대가 넘어가버렸다) 폴란드로 넘어간 지역은 실롱스크 주가 되었으며, 자치의회를 갖는 등 당시 폴란드 유일의 자치주였다.

1939년 폴란드 침공 직후 히틀러는 다시 상부 슐레지엔을 합병하여 독일령으로 삼는다. 그렇지만 전쟁은 독일의 패배로 끝났고 연합국 사이의 합의에 따라 전후 독일과 폴란드 사이의 국경이 오데르 강과 나이세 강으로 정해짐에 따라 이 국경선 외부에 위치했던 슐레지엔은 고스란히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에게 넘어갔다. 당초 미국과 영국은 오데르-나이세 선이긴 한데 동쪽에 있는 글라처나이세 강(Glatzer Neiße. 폴란드어로는 니사 크워즈카 강(Nysa Kłodzka))을 새 국경으로 만들려고 했으나,[7] 소련의 반대로 실패했다.

비록 20세기 초의 전성기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상부 슐레지엔은 2차대전 당시에도 독일의 주요 공업 지역 중 하나였고, 비스와-오데르 대공세 당시 독일군은 미친 듯한 페이스로 밀려오는 소련군을 피해 황급하게 후퇴하느라 슐레지엔의 공업 지대를 손 하나 까닥 못해보고 온전한 상태로 남겨놨고, 6년에 걸친 전쟁으로 인해 국토가 황폐화된 폴란드에게 상부 슐레지엔은 귀중한 선물이 되어줬다.[8] 또한 주데텐란트의 경우에서도 보이듯이 영토만 할양하면 이 일대에 잔존할 독일계 소수민족들이 다시금 분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슐레지엔에 거주하던 독일인들 역시 싸그리(...까지는 아니다. 후술 참조) 독일 본토로 추방시켜버리고 폴란드인들을 이주시킨다.

2.4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강제로 이주된 독일인들은 전후 서독 사회에서 '추방민 연합회'라는 정치 단체를 결성, 쪽수를 바탕[9]으로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콘라트 아데나워를 위시로 한 서독의 초기 정치인들 역시 기민당, 사민당 할 것 없이 오데르-나이세 선의 승인을 거부하면서 국경의 변경을 논의할 여지를 만들어놨었다. 하지만 1969년 취임한 빌리 브란트 총리가 오데르-나이세 선을 실질적으로 승인한데다가 1990년 헬무트 콜 총리가 통일 과정에서 전승국들에게 동프로이센과 슐레지엔을 포함한 구 영토를 포기할 것을 약속하면서 완전히 슐레지엔은 폴란드와 체코의 영토로 확정지어진다. 그리고 종전 직후 강제로 민족의 대이동을 시켜버린덕에 독일인들의 흔적은 빠르게 사라졌고, 게다가 공산국가의 지배를 받으면서 심하게 낙후되어버린 탓에 애초에 독일이 되찾을 염두도 못내고 있는 판국.[10][11] 뜻밖의 신의 한수

그러나 대규모의 추방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상부 슐레지엔 지역에는 독일계들이 꽤 거주하고 있다.[12] 이 지역은 독일인이라 할지라도 폴란드와 같은 가톨릭 신자들이 다수였고, 독일인과 폴란드인의 정체성이 모호했기에 독일계가 잔류한 경우가 종종 있으며 남은 독일인들은 정당도 설립해서 폴란드 의회에 의석도 확보하고 있다고 다만 의석을 확보하고있다고 해도 폴란드 전체에서 독일계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낮기 때문에 1석에서 2석 정도를 얻는게 고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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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폴레(Opole) 주 부근의 독일인 분포 (2002년)
2006년부터는 독일계 비중이 20% 이상인 자치체는 폴란드어/독일어 이중언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제1언어는 폴란드어지만. 폴란드 민족주의자들에게 독일어 부분 표지판만 테러를 당하는 일이 있다

한편 독일에 남은 슐레지엔 흔적으로는 1994년부터 14년간 존재했던 작센 주의 니더슐레지엔 오버라우지츠 군이 있었고, 1909년 창립한 축구클럽 황백(黃白) 괴를리츠가 슐레지엔의 상징을 달고 있다.

3 같이보기

  1. 훌트신(Hultschin/체코어 Hlučín) 지방이다. 1차 대전 이후 편입되었으며 체코슬로바키아가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할된 이후에는 체코의 영토로 편입. 저지 슐레지엔의 일부가 독일에 귀속되었으나 독자적 행정은 불가능하여 작센으로 편입됨.
  2. 정확히는 아주 쬐끔은 작센의 일부로 남아있다. 근데 정말 쬐끔이라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전쟁 전 행정구역으로 따지면 호이에르스베르다 군 전체와 로텐베르크 군 서부, 괴를리츠 군 서부 지역이다.
  3. 여담이지만 이 때 유일하게 폴란드인들이 수적으로 우위를 점했던 게 바로 개요항목에서 언급한 상부 슐레지엔 일대. 이 일대는 이후로도 거의 700년 가까이 폴란드인들의 수적 우위가 유지된다. 특히나 19세기 중후반부터 독일제국이 노골적으로 폴란드인들을 깔아뭉개고 독일인들을 우대했던 것을 생각하면 흠좀무한 생존력.
  4. 라이프치히 전투 이후로 누가봐도 전세가 기울었음에도 작센 왕국은 눈치 없이 그쯤이면 눈치가 없는게 아니라 미련한 거다. 나폴레옹을 편들었고, 그로 인해 강대국들에게 찍혀서 꽤 많은 영토를 뜯기고 만다.
  5. 아닌게 아니라 프리드리히 대왕이 이 지역을 그리 집요하게 탐낸것이 바로 이 철과 석탄 때문이었다. 물론 이 시기는 아직 산업화가 시작되기 한 세기 전이지만 그래도 이미 이 시점에서 슐레지엔은 각종 수공업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던 곳이었던 것.
  6. 이 두 주는 1938~1941년 한때 다시 합쳐지기도 한다.
  7.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주도 브레슬라우를 비롯한 슐레지엔의 절반은 독일이 건질 수 있다.
  8. 스탈린도 애초에 이걸 고려해서 슐레지엔을 폴란드에게 넘겨준 것이다. 물론 그보다도 폴란드 침공 당시 폴란드에게서 강탈한 구 폴란드 동부 영토를 돌려주기 싫었던게 더 큰 이유였겠지만...
  9. 동프로이센과 슐레지엔에서 이주된 독일인들을 합치면 1000만이 훌쩍 넘는다. 물론 이 1000만이 모두 추방민 연합회를 위해 투표를 하지는 않았겠지만
  10. 당장 구동독 지역의 경제 수준을 끌어올린 것도 쉽게 진행되지가 않아서 통일 독일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구동독 지역보다 면적이 2배 가까이 되고 경제 수준은 더 뒤떨어지는 지역을 개발시키는게 쉽겠는가.
  11. 그래도 가끔 독일인 실향민들이 늘그막에 고향을 찾아서 이 지역으로 이주해가는 경우는 있다고 한다. 독일 정부 역시 그것까지 막지는 않는다고.
  12. 2011년 기준으로 오폴레 주에는 78,595명의 독일계가 거주하며, 주 인구의 7.73%를 차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