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승총

(아르케부스에서 넘어옴)
근대 총기 발전사
장전방식전장식후장식
격발방식매치락휠락플린트락퍼커션 캡탄피
강선유무머스킷소총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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火繩銃, Matchlock gun. 화승(불을 붙이는 심지)을 이용해 점화하는 방식의 구형 전장식 총기. 영어인 Matchlock은 '화승(slow match)'을 사용한 발사구조(firelock) 뜻한다.

인간이 손으로 들고 다니면서 쓰는 화약식 개인 사격 병기의 시초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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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총(鳥銃) 역시 화승총의 일종(또는 동의어)이다. 항목 참조.

2 화승총의 발전사

화기의 발달은 대포에서 비롯되었는데, 처음엔 화력보다도 화약을 터트려 얻는 부차적인 효과인 소음과 불로 공포분위기를 조성해 적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김으로 적의 사기를 떨어트리면 기존의 냉병기로 무장한 기병이나 보병이 이를 추격해 때려잡는 양상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포가의 개량과 함께 야금학의 발전에 따라 대포의 주조기술이 발전하고, 또한 탄도학이나 포술등의 화기의 운용에 대한 고찰을 통해 위력을 높히고자 하는 학문이 생겨나면서 위력이 배가되어 중세에서부터 이어저 나온 축성술에 대한 전략이 변경되거나 주력군인 기병의 쇠퇴등이 일어나게 되었다.

대포가 발전하면서 무식하게 큰 크기를 좀 줄이고 공성용으로만 쓰던 포를 다른 용도로도 쓸 수 있게 되자, 당대의 군사전략가들은 당연히 이러한 화기를 보병을 대신하는 장거리 무기로 운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라는 의문을 품었고, 이를 처음 구현한 화기 역시 단순히 대포를 축소한듯한 외형을 지니고 있었다.

3 핸드 캐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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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덕후리인액터가 재현한 모습.

이름조차도 Handgonne, 즉 'Hand Cannon'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던 이 단순한 장비는, 처음 등장한 대포와 마찬가지로 형편없는 명중률과 위력, 그리고 조악한 기구등으로 인해 운용조차도 소리와 연기로 적에게 충격을 주는(…)용도로 쓴다. 거기다 리인액터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적을 보고 조준을 하면서 길다란 막대기를 치켜 들고 거기에 화승이 꺼지지 않게 곁눈질로 슬슬 보면서 또 화약접시의 화약이 날려가지 않게 신경써야 하는 등 눈이 3개에 손도 3개인 촉수괴물(…)이어도 모자랄 정도로 운용상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이다.

핸드캐논은 이런 운용상의 어려움 때문에 사라질 수도 있었으나, 곧 이어 혁신적인 발명으로 인해 주력무기의 위치를 차지하니, 이것은 바로 방아쇠의 발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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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방아쇠의 모습. 화승이 닿는 부위엔 Pan이라는 화약접시가 보인다. 그 위는 바람에 화약이 날아가지 않게 보호하는 덮개이다.

방아쇠의 동작 방식은 트리거 락(Trigger lock)과 스냅 락(Snap lock) 으로 나뉜다.
트리거 락은 항상 스프링의 힘이 용두(Cock)이거 말고와 방아쇠에 작용하고 있어서 방아쇠를 누른 만큼 용두가 고개를 숙여서 화승이 화약 접시에 닿는 방식이다. 방아쇠를 꾹 누를 때 손 떨림 때문에 명중률이 떨어지고 방아쇠 압력이 강하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나 당시 전장에서는 여전히 밀집대형을 유지하고 일제사격을 통해 탄막을 형성했기 때문에 명중률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고 오발사고가 덜해서 주류인 방식이었다.
스냅 락은 용두를 수동으로 젖히고 방아쇠를 누르면 스프링의 힘으로 화약 접시에 화승을 박는 방식이다. 방아쇠 압력이 약해서 오발사고가 나기 쉽고 화승을 화약 접시에 박을 때 충격으로 화승이 용두에서 튕겨져 나가거나 점화약에서 발생한 폭압 때문에 화승이 꺼지는 문제가 있어서 트리거 락에 비해 선호도가 낮았다. 그러나 명중률과 반응속도에서 트리거 락에 비해 유리했기 때문에 사냥용에는 종종 쓰였다.

후대에 나올 점화 방식에 비하면 매우 단순한 구조이지만 이 장치가 끼친 영향은 절대적으로, 16세기 중반에 발명된 개머리판과 합쳐져 명중률과 운용에 엄청난 진보가 일어나게 되었다. 또한 개머리판도 단순한 지렛대에서 벗어나, 스프링을 이용해 현재 볼수있는 소총의 형태와 비슷하게 변해갔다.

개머리판은 조준선을 시야와 일치시키고, 반동을 효과적으로 흡수할 수 있게 도와주었으며, 방아쇠는 점화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러한 도구의 발명은 총병이라는 병과를 탄생시켰다.

4 종류

초기형인 핸드캐논을 제외한 당시의 화승총은 머스킷(Musket)과 아르케부스(Arquebus)로 나누어진다.

아르케부스는 휘어진 총이라는 뜻으로, 대략 15~17세기경 사용되었다. 당시 표준 아르케부스는 대략 1m의 길이와 5kg의 무게에 50구경(13mm)이고 탄자의 무게는 19g으로 머스킷 대비 짧고 가벼운 총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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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킷은 아르케부스에 비해 무겁고 길고 큰 구경을 가진 총을 뜻한다. 당시 표준 머스킷은 1.4m의 길이와 7kg의 무게에 75구경(19mm)이고 탄자의 중량은 38g. 무거운 탄자와 총신의 길이 때문에 아르케부스에 비해 위력이 확연히 높지만 무겁고 화약을 많이 넣어서 경량화 되기 전에는 흔히 포크(Fork)라고 부르는 단각대를 받치고 사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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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핸드 캐논과 비교해보자. 극과 극이 무언지 깨달을수 있다.


아르케부스와 유사한 중국 명나라 때의 노밀총(魯密銃).@ 중동 지역에서 전래된 화승총을 중국에서는 노밀총이라 불렀다.

머스킷과 아르케부스가 공존하던 시대에는 방탄 흉갑을 입고 권총과 아르케부스를 튕겨내는 병사들이 있었기 때문에 갑옷을 확실히 관통할 수 있는 머스킷을 아르케부스보다 높게 쳤다. 거기다 용병은 아르케부스대비 몸값을 2배가량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아르케부스는 점차 도태되고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7~10kg에 달했던 머스킷이 아르케부스 수준으로 가벼워지자 아르케부스는 사라지고 머스킷만이 남아서 발전하게 된다. 같이 읽기

5 득세

초반 불신받던 병기인 화승총은, 1525년 프랑스프랑수아 1세와 합스부르크가의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5세이탈리아 지배권을 두고 벌인 파비아 전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8천명의 플레이트 아머로 무장한 기사가 포함된 23,500여 명의 군대는 3천 명의 스페인 총병대를 포함한 23,000여 명의 군대와 격돌하게 되는데, 스페인 총병대는 프랑스 기병대의 후미를 교란, 수십회의 일제 사격으로 기병대를 흩어버리는데 성공한다. 이로써 보병과 기병간 유기적인 운용을 하지 못한 프랑스군은 크게 패주해 반나절 사이에 전멸하고 만다.

이로써 화기는 냉병기를 제치고 주력 병종으로 자라나기 시작한다. 검술이나 기마술 또 궁술은 배우기 어렵고 훈련기간이 길어 먹고 살만한 계층이되어야 익숙해 질 수 있지만 화승총은 농사짓던 농노들을 징집해 단기간에 훈련시켜 전력화 할 수 있다. 그래서 총을 든 값싼 다수의 농민병이 비싼 말을 탄 고도로 훈련된 소수의 기사들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5.1 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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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창병과 같이 움직였는데, 사격을 하는동안 창병들이 기병대의 견제를 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었다.

사격대형은 느린 사격속도를 보안하기 위해, 여러 열로 된 대형에서 선두열이 발포하고 마지막줄로 가면 다음 열이 발포...를 무한 반복하는 방식으로 이루어 졌다. 이를 Counter March(뒤로 행군)라고 한다. 이는 진형의 전진속도는 매우 느렸으나 대형이 매우 촘촘하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기병에 대해서도 창병이 보호를 해주기 때문에 유리하였다.

5.2 사격방법

화승총을 사용하는 병사는 흔히 12 Apostle, 혹은 단순히 Apostle, 즉 12사도(총기) [1]라고 부르는 한번에 발사할 수 있는 정량의 화약이 들은 카트리지를 밴들리어라는 밴드에 달고 다녔다.

왜 12사도냐 하면, 그 당시는 탄의 무게가 기준이어서 1파운드의 납을 가지고 총알을 얼마나 만드느냐에 따라 총알의 크기를 계산했기 때문이다.[2][3] 표준 머스킷의 경우 1파운드(453g)의 납으로 38g의 총알을 12개 만들었다. 그러나 반드시 12개일 필요는 없고 15개를 만드는 바스타드 머스킷, 8개를 만드는 헤비 머스킷도 전부 12사도라고 불렀다.

뭐...구구절절한 설명보다는 동영상을 보시라.

설명도 같이 듣고 싶다면 이 영상을 보자.

보시다시피 장전이 매우 느렸기 때문에 보통은 12사도를 다 쓰는 경우는 없었고 당시 병사들도 5발 이상 쏘면 꽤 험한 격전을 치른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물론 예외는 있어서 뭐든지 튕겨내는 스페인 테르시오에 속한 병사라면 12발 다 쏘는 일도 곧잘 일어나곤 했다.

6 단점

기념비적인 업적을 주구장창 이야기 했으니 이번엔 신나게 까보자.

  • 화승을 점화하면 꺼지지않게 계속 일정시간마다 뽑아줘야 한다. 그래서 화승총병은 팔이나 모자에 여분의 화승을 줄줄 감고 다니는 것이 일반적 모습. 영화 알라트리스테를 보면 화승의 불똥을 살리기 위해 가끔씩 후후 불어주는 모습이 잘 표현된다.
  • 사격 중에도 화승 관리는 계속 주의해야 한다. 발사 시에 화약접시에 고개를 처박은 화승이 폭발압에 불이 꺼지는 경우도 있었다! 이때문에, 숙련된 사수는 반 접기라고 해서 화승 끈의 양쪽 끝단 모두에 불을 붙여두고 있다가 한쪽이 꺼지면 다른 쪽으로 붙이는 기법을 쓰기도 했다.
  • 화승이 타는 냄새가 솔솔 나기 때문에 매복에도 불리하다. 화승의 불똥이 어둠 속에서 보인다는 문제도 있다.
  • 이미 불이 붙어있는 화승을 상시 휴대하기 때문에, 약간의 불똥에도 위험한 화약고 같은 곳에서 화승총을 들고 경계 근무를 설 수 없다! 이런 임무에는 보통 휠락이 사용되었다.
  • 총을 쏘려면 먼저 화승에 불부터 붙여야 한다. 화승에 점화하기 위해서 횃불이나 모닥불을 피우고 거기에 화승 불을 붙이는 선결 조건이 필수다. (아니면 부싯돌이라도 졸라게 튕겨서 화승 불 붙이던지) 즉, 플린트락처럼 야간 습격을 받았을때 화승총을 꺼내들고 대응사격 하는 것은 불가능. 전투 중이라면 화승을 아주 긴 놈으로 혹은 여분을 갖고 다니면서 불 붙은채로 관리할 수 있지만 비전투 상황에서는... 비상용, 호신용으로 갖고 다니다가 급하게 뽑아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 이런 임무 역시 휠락이 차지했다.
  • 비가 오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하지만 비가 오면 거의 못쓰게 되어버린다는 단점은 이후의 수발식 머스킷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화승을 사용하지 않는다 해도 비가 오면 화약 접시의 점화약이 젖어 못쓰게 되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은 퍼커션 캡의 개발 이후. 때문에 화승총만의 문제라고 보기가 애매하다. 사실 총 이전의 사격 무기인 활 종류도 비 오면 엉망이 되어버리니 피장파장이긴 하다. 그렇다고 화승총처럼 아주 못 쏘는건 아니었지만….
  • 후대 플린트락 시대에서도 종종 벌어진 일이지만, 가끔 고문관급 병사들이 총알 넣는 꼬질대를 빼지 않고 사격을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연하지만 이때 총들은 꼬질대 없으면 장전을 못한다. 실제 총알 안 넣고 화약만 장전한 체 사격 훈련을 했는데, 방심하고 병사들 앞에 있던 교관이 발사된 꼬질대에 관통상을 입는 사고도 있었다.(...)어쩌면 고의적일 듯. 이를 고증하기 위해서인지 개그로 풍자하기 위해서인지 찰튼 헤스턴과 크리스토퍼 리가 출연한 영화 사총사에서 위그노 군에 잡힌 로슈포르가 총살을 당할 뻔 할때 총알과 함께 꼬질대가 날아오는 장면이 있다.

7 9К32/SA-7 스트렐라의 북한식 명칭

북한에서는 보병 휴대용 대공 미사일을 이렇게 부르기도 한다. '화승'도 아니고 '총'도 아닌데 어째서? 러시아어 스트렐라가 화승총이라는 의미여서 그렇다. 이 '화승총'이라는 어휘는 북한에서 생산되는 휴대용 대공 미사일의 총칭이다.

8 여담

여담으로
GTA조선의 배경지인 한국민속촌대장장이에게 등짝을 보여주면 화승총준다 카더라(...)
물론 믿으면 곤란하고 그런거 안보신다 카더라(...)

실제로 등짝 얘기하려다 그냥 갔다고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한국민속촌에서 답글이 올라왔는데(...)

조선의 화승총은 오버테크놀로지라고 한다

  1. 예수님의 12사도 할때 그 사도가 맞다. 숫자가 딱 12로 맞아떨어진지라…. 아시아에서 개발되었으면 12간지라고 불렀겠지
  2. 현재도 산탄총의 구경은 아직도 이렇게 계산한다. 가량 12게이지 산탄이라고 하면 1/12 파운드짜리 납탄 지름과 같은 구경을 뜻한다
  3. 반대로 대포는 포탄을 만드는 데 몇 파운드의 납을 쓰느냐가 포탄 크기의 기준이었다. 이 역시 2차대전까지 중 '~파운더'라는 식으로 쓰이던 명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