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히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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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日新聞(あさひしんぶん)

저 마크를 두고 일본어 언사이클로피디아에선 자위대와 아사히신문이 츤데레(...) 관계라서 같은 문양을 쓴다고 주장한다.

1 개요

홈페이지

일본신문. 일본의 신문들 중 제일 진보적인 편이라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좋다. 물론 혐한을 비롯한 일본 극우들이 가장 싫어하는 신문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요미우리 신문에 이어 2번째로 많이 팔리는 신문이며, 요미우리 신문이 보수 정론지라면 아사히 신문은 좌익 성향의 정론지라 할 수 있다. 참고로 아사히 신문의 뒤를 이어 3위를 달리는 마이니치 신문중도좌파계열.[1]

일본의 단카이 세대들의 리버럴함을 드러내는 신문이라 보는 평가도 있다. 단카이 세대는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와 비슷한데 1960년대 학생운동이 활발하던 시기 학창시절을 보내 진보적인 성향이 강한 편이다. 그들이 사회에서 물러나면서 일본의 우경화가 심해진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어 페이지, 한국어 트위터 계정, 한국어 페이스북 계정도 운영했으나 2015년 서비스가 종료되었다.

2 특징

이런 점에서 한국에서 조중동의 독주를 견제해주는 신문인 한겨레경향신문과 비교되곤 했었지만,[2] 2000년대 중반부턴 한국인 기준으로는 특히 영토 문제나 외교관계에선 예전보단 보수 노선으로 가는 듯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메이저 언론 중에서는 가장 진보적이다.[3]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적 페미니스트 우에노 치즈코[4]에게 상도 주었다는 점을 보면 전혀 보수적이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애시당초 영토 문제 이런건 어느 나라나 예민한 문제라...

또한 요미우리 신문도쿄에서 창간되었고 간토 지방을 대표하는 신문이라고 한다면, 아사히 신문은 오사카에서 창간된 킨키 지방을 대표하는 신문이라 볼 수 있다. 코시엔 대회도 아사히 신문 주최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런 아사히 신문도 2차 세계대전 때는 전쟁을 독려하고 찬양했던 흑역사가 있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바로 다음날부터 논조가 손바닥 뒤집듯이 바뀐 탓에 이런 역사를 아는 사람들에겐 아사히 신문이 평화 운운하면 가식 쩌네염이라고 비웃음을 받기도. 그러나 그 당시에는 군국주의에 대해 해당 신문에서 비판을 하면 군부(혹은 정부)에서 바로 폐간조치를 내렸던 시절이기 때문에 시대 환경 상 어쩔 수 없었다.[5]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제의 압박에 못이겨 친일을 한 지식인처럼 위와 같은 행보에 면죄부를 줘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없는 노릇이긴 하다.

좌익성향인 탓에 2ch 등지에서는 아사삐(アサピー)나 빨갱히(アカヒ)라는 멸칭으로 자주 불리며, 극우성향으로 추정되는 범인에 의해 일어난 아카호타이 사건을 당하기도 했었다. 또한 사원의 70%정도가 재일 한국인이라는 근거없는 소문이 있는지라 우익단체가 본사 앞에서 '조선인 물러가라!'며 시위를 벌이기도 한다.(...)

제5공화국 시절에는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취재를 통해 당시 벌어진 학살에 대해 상세히 보도했고, 결국 악의적이고 근거없는 유언비어를 유포한다는 이유로 1980년 7월 서울지국의 설립허가를 취소당하고 특파원이 추방당하기도 했다. 개소리 집어쳐! 뭐가 유언비어라는거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부턴 다시 상당히 진보색이 짙어지고 있다. 특히 아베가 총리가 된 이후부턴 아베 정권을 비판하는데 주력하는듯 한데, 오죽하면 이에 대해 아베 총리가 2014년 2월 5일 참의회 예산위원회에서 아사히 신문을 직접 거론하며 '아베 정권 타도가 사시(社是)인 신문이라고(들었다). 그런 신문이라고 생각하면서 읽고 있다'고 원색적인 비난을 날려 논란을 낳기도 했다. 아베 정권 비판과 함께 가장 자주, 크게 논점으로 다루는 것이 평화헌법의 유지와 탈(脫)원전이다.

때문에 2010년대 들어 일본 극우 세력들에게서 받는 위협의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데, 당장 아베 신조를 포함한 극우 정치인들은 아사히가 '한국의 거짓말'을 세계에 퍼트려 수많은 일본인들의 명예와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고 압박하고 있으며, 아사히 신문사를 테러해야한다는 극우 단체들의 협박과 물리적인 위협 또한 증가하고 있다. 상술한 전례가 있듯 그냥 말장난 정도로 치부하기엔 찜찜한 건 사실. 뉴욕 타임스 사설에선 이를 역사 수정주의자들의 광기라고 표현했다.

3 트리비아

  • 케이온! 해설 기사를 실은 전력이 있다. 까는 기사를 실었다고 뭇 덕후들이 분노했지만, 딱히 까는 기사가 아니라는 의견도 만만치는 않다. 메이저 일간지에 저런게 올라온게 어디야
  • 격월로 만화 잡지인 네무키를 발행하고 있다. 원래는 자회사인 '아사히 소노라마'에서 발행하였으나, 실적 부족으로 자회사를 없애고 현재는 아사히 신문 출판에서 발행한다.
  • 2014년 1월 22일, 사설에서 안중근 의사를 영웅이자 테러리스트라면서 팔레스타인의 아세르 아라파트나 동티모르의 사사나 구스마오[6] 같은 사람이라고 지적해 파문을 일으켰다. 아사히 신문 사설의 취지는 한일 양국의 역사 인식의 간극이 깊은 만큼 서로의 주장만 앞세우지 말고 다양한 시각을 인정하고 접점을 찾아나가자는 어찌보면 상식적인 주장이었지만, 똑같은 사설인데도 일본에서는 영웅이란 단어를 썼다고 우익들에게 까이고, 한국에서는 테러리스트라는 단어를 썼다고 까였다. 어찌되었든 양국 다 나머지 한 쪽 단어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듯. 이는 양국의 자칭 애국자들이 감정에 근거한 판단을 주로 하기 때문에 그렇다.
  • 2014년 사죄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와 관련된 아케가미 아키라가 올해의 뉴스를 다루는 방송을 테레비 아사히에서 했다. 자신 또한 관련되었는데 괜찮냐는 게스트의 말에, 뉴스를 다루는 것이니 문제가 없다며 그대로 다뤘는데, 두가지의 요시다에 대한 문제였다. 첫번째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책임자인 요시다 소장의 당시 행동, 생각한 방식 등 모든걸 담은 일지를 일본 정부에서 비공개를 했지만, 아사히 신문이 입수해 밝힌 것. "후쿠시마 원전 직원의 90%가 F1[7]에서 F2[8]로 도망쳤다."에 대한 기사를 보도하였으나, 이 기사엔 "이동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니, 차를 준비해둬라"라는 말이 빠져 있었다. 따라서 직원이 잘못 이해하여 이동한 것을 그냥 도망간 것이란 부정확한 사실을 보도하게 되었고, 문제가 된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이에 대한 수정과 태도가 나빴던 것이었다. 두번째는 요시다 세이지일제 강점기 성노예 강제 연행 인정 기사를 보도한 사건이었다. 키무라 아사히 신문 사장이 32년 간 한일 문제를 생각하여 묵혀둔 기사를 자신이 사장이 되어서 보도하겠다고 생각했었고, 결국 보도된 이 기사를 증거가 없다며 수정하라고 했고, 또 수정과 태도가 문제가 되었다(...) 이에 이케카미 아키라가 월 1회 연재해오던 칼럼에 수정과 태도가 이상하다며 비판했고, 이를 마감 전에 아사히 신문이 수정해달라고 했으나 거절하여 연재까지 그만두게 되었다. 이케가미 아키라는 이 사건에 대해 "요시다가 책을 낸 뒤 들어온 강제 연행의 진실에 대한 질문에 '아니. 하지만 넣는다면 가계도 안정되지 않겠느냐'냐는 대답을 했다. 그는 작가도 칼럼니스트도 아닌 뭣도 아닌 사람이다. 확실히 성노예[9]일본군에 있었다고 일본 정부도 인정하지만, 강제 연행된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며 끝까지 아사히 신문을 비판했다. 그리고 오랜 기간이 지난 후 취소한 것에 관해 배상책임이 없다는 법원의 1심 판결이 나왔다.#
  • '천성인어(天声人語)'라고 불리는 오피니언이 있는데 일본어 공부하는 사람들이 학습 자료로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 내용은 여러 가지 소재를 다루고, 일본 정부의 행보에 대해서는 대체로 비판적인 편이다.
  • 아사히 신문의 한국어판 뉴스인 아사히 아시아 안테나(AAA)가 2012년에 서비스를 시작하여 꽤 괜찮게 독자를 모았으나 한국어판 서비스를 2015년 8월 31일까지만 제공한다고 공지가 나왔고 9월 1일부터 신규 기사가 올라오지 않고 중단되었다.페이스북 공지 아사히 아시아 안테나 홈페이지에는 이와 함께 9월 30일에는 서비스가 중지될 예정이라고 공지하였다. 중국어판은 계속 제공되는데 한국어판이 중단된다는 점에 대해 아쉬움과 의문이 서비스 제공중단 공지의 리플에도 꽤 나왔다. 이에 관한 독자의 소회를 그것은 알기 싫다 145a회에서 소개하기도 했다. 2016년 이후 시점에서 정기적으로 아사히신문 번역문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아사히신문의 기사를 인용보도 형태로 복제한 TV아사히의 기사를 정기적으로 가져오는 JTBC 디지털뉴스룸 계정을 구독하거나, 아사히신문 필진이 참여한 허핑턴포스트 일본판 기사를 번역한 한겨레신문의 한국어판 허핑턴포스트를 구독하는 방법 밖에 없다.
  1. 다만 인권, 언론의 자유에 관한 문제라면 아사히보다 더 강경한 논조로 이야기하는 경우도 많다.
  2. 하지만 정작 교류관계는 동아일보-아사히신문, 경향신문-산케이신문. 이런 이유는 2001년 세무조사 사건 이전에는 동아일보진보성향에 가까웠고, 경향신문은 군사정부 시절 대표적인 친정부 언론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두 신문사가 성향이 다른 것을 감안한다면 아이러니... 후새드... 문화방송 또한 성향이 비슷TV 아사히가 아닌 후지 테레비(...)와 교류협력을 맺고 있어 2000년대 후반까지는 의아함을 자아냈다. 사실 이것도 2010년대 들어 MBC가 정부에 의해 급격히 보수화되자 이제는 그런 거 없다.
  3. 사실 아사히보다 좌측에 있는 신문들이 있기는 있으며 나름대로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언론도 있다. 도쿄신문, 홋카이도 신문, 주니치 신문이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일본은 전국신문이 5개 정도인데 이들 신문은 전국적인 유통망을 가진건 아니기에 어쨌거나 전국신문사 중에서 좌측이다.
  4. 이 사람은 일본에서 "여성혐오를 혐오한다"의 저자이자, 남성혐오라는것은 절대 존재할수 없다는 희대의 망언을 한(...) 레디컬 페미니스트다
  5. 이는 다이쇼 데모크라시 이후 국민들의 자유를 억압하기 위해 만들어진 치안유지법의 효과가 매우 크다.
  6. 동티모르에서는 독립 투쟁을 통해 건국 영웅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7. 당시 사고가 난 원전
  8. 약 20~30km 떨어진 원전.
  9. 방송 내에서 말한 명칭은 위안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