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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The Max의 멤버(생년월일 순) | 전 맴버 | ||
이수 | 전민혁 | 윤재웅 | 허정민 |
소속 | 325e&c [1] |
멤버 | 이수 ISU(본명: 전광철, 보컬, 기타[2])[3] 윤재웅 J.Yoon[4](본명: 윤재웅, 바이올린[5]. &베이스[6])[7] 전민혁 Minhyuk(본명: 전홍만, 드럼)[8] |
1 개요
버즈, SG워너비와 함께 남자들의 3대 노래방 대통령.
2 연혁
2.1 00~01: 들어는 봤어? 아이돌 록밴드 Moon Child
3인조 팝 록 밴드 그룹.[9] 현 멤버 이수와 전민혁은 같은 안양예고 졸업생으로 친구는 아니고 졸업 앨범에만 같이 등장한 동창... 이라고 라디오에서 말한 바 있지만 사실은 아주 친한 친구 사이로 안양예고 재학 시절 함께 삥도 뜯겼다고 한다.[10] 라디오에서는 '고등학교 시절 다들 댄스 연습하는 사이에서 두 사람만 악기를 맞추고 있다'고 했다. 웬만해선 결코 울지 않는다는 전민혁의 눈물을 유일하게 본 사람도 이수이다.
이수가 후에 오디션에서 합격했을 때[11] 전민혁도 함께 데려오면 안 되겠냐고 물어 두 사람은 후에 윤재웅,[12] 허정민[13]과 함께 문차일드(MoonChild)라는 4인조 록 밴드로 활동한다. 당시 멤버 발탁과 앨범 프로듀스에 신해철[14]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문차일드는 테크노 록을 지향하는 밴드 컨셉을 잡고 2000년 5월에 1집 'delete'의 타이틀 곡 'delete'로 야심차게 데뷔했으나 이 노래가 당시 대중들에게 크게 호응을 받지 못했고, 결국 후속곡인 '태양은 가득히'[15]로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예능 프로그램에도 종종 모습을 드러내면서 록 밴드라고 말은 했지만 완전한 아이돌 그룹으로 변모한다. 문차일드가 당시 출연했었던 '수상견문록', '정글스토리'는 최근의 '헬로 베이비' 같은 프로그램으로 아이돌들이 하는 프로그램이랑 흡사하면서 팬들에게 개인 방송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태양은 가득히'로 많은 사랑을 받은 후 여세를 몰아서 '귀천'이라는 노래로 계속 방송 활동을 나가면서 1집 활동을 마무리한다. 드림콘서트에도 출연한 바 있다.[16]
이후 방송 활동이 신비주의 컨셉처럼 완전히 뜸해져서 한동안 대중들 사이에서 잊혀지는 듯하다가 정준호, 김효진, 구본승 등 화려한 캐스팅으로 무장했었던 신비주의 뮤직비디오의 '사랑하니까' 노래의 주인공이 문차일드로 밝혀지면서 대중들에게 충격을 준다. 애초에 록 밴드로 컨셉을 잡았던 걸 잊지는 않았는지 락적인 느낌을 넣기 했지만 음방에서는 발라드로 완전히 변모해 버렸다.[17] 하여튼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문차일드는 급상승세를 다시 타게 되고 당시 MBC의 음악캠프(현 음악중심)에서 처음으로 1위를 차지하게 된다.[18] 후속곡 '공유', '내 그늘 안에서', '끝없는 사랑' 등으로 활동을 이어나가지만 소속사의 기대만큼 인기를 얻지는 못하고, 결국 당시 소속사가 망하게 되면서 문차일드는 해체와 비슷한 상황으로 되어버린다.
여담으로 윤재웅은 외모 덕택에 다른 가수 팬들에게(남녀 막론하고) 게이 취급을 당한 바 있다(...).
2.2 02~03: MoonChild THE MAXimum
그 이후 소속사가 망해버리고 그 당시 소속사의 실장이었던 백영묵이 그들을 스카웃해간 후 약 1년간 잠정기를 거쳐 팀명을 문차일드에서 M.C The Max(MoonChild to The MAXimum[19])로 변경하여 활동하게 된다.
평소 자신의 곡을 리메이크하는 것을 꺼려했던 요시키 곡을 번안했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대중들이 슬금슬금 주목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X JAPAN의 'Tears'를 번안해서 마침내 발표한 1집의 타이틀 곡 '잠시만 안녕'이 히트를 친다. 물론 그 전부터 이수의 가창력이 뛰어나다는 소리는 많이 들었지만 문차일드 시절만 하더라도 음방의 대부분을 립싱크로 소화해서 논란이 많았는데 첫방부터 폭발적인 고음으로 논란을 한순간에 잠재운다. 비록 1위는 하지 못했지만 대부분 음방에서 상위권에 랭크되며 2002년 11월부터 2003년 5월 말(!)까지 1집 활동을 하게 된다.
후속곡 고민을 하던 도중에 대구 지하철 화재 사건이 터져버려서 이 상황과 유사한 가사를 가지고 있는 '마지막 내 숨소리'로 후속곡을 정하게 된다. 이게 제대로 먹혀서 '마지막 내 숨소리'는 거의 추모곡 비슷하게 전국에서 불렸고 역시 많은 사랑을 받게 된다. 그리곤 '사랑하고 싶었어'로 1집 활동을 마무리한다.
본격적으로 엠씨더맥스가 가요계에 입지를 굳히는 단계가 되었고 스타셀프플레이어 등 방송 활동도 괜찮게 하면서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게 된다.
2.3 03~04: 하지만~ 없죠~
1집의 대대적인 성공과 함께 5월에 활동을 정리한 후 약 6개월만에 정규 2집을 발표한다.
본래 다른곡이 타이틀 곡이 될 뻔 했으나 이수의 강력한(!) 주장으로 타이틀 곡으로 선정된 '사랑의 시'는 여태까지와는 전혀 다른 곡 구성으로 대중들에게 충격을 준다. 처음에는 그렇게 반응이 오지 않다가 한 달 뒤부터 본격적으로 반응이 오더니 아예 돌풍을 몰고 오기 시작한다.
모든 노래방에서 "하지만~ 없죠옹~!" 이 들리면서 각종 음방에서 1위를 싹쓸이. 특히 음악캠프에서는 4주 연속 1위라는 놀라운 성과를 보이며 이제 엠씨더맥스라는 이름이 전국구로 알려지게 된다.
하지만 이런 성황 중에서도 한가지 논란을 빚게 되는데 바로 1집 '잠시만 안녕'부터 시작해서 2집의 '그대는 눈물겹다'[20], '사랑의 시', '낮달', 'Sixth sense' 등 대부분 수록곡이 일본 작곡가의 곡인 점이 꼬투리로 잡혀서 번안밴드라는 의혹을 받게 된다. 특히 1집과 2집의 타이틀 곡 모두가 리메이크 곡으로 오해를 받게 되는데 '잠시만 안녕' 같은 경우에는 확실한 리메이크 곡이 맞지만 '사랑의 시' 같은 경우에는 일본에서도 레전드 팝밴드인 안전지대의 브레인 타마키 코지의 곡 '쇼콜라'와 'カメレオン(카멜레온)'을 편곡한 것인데 말이 편곡이지 사실은 타마키 코지에게 곡을 받은 후에 동시발표하기로 했던 곡이다. 그러나 안전지대의 사정으로 며칠 먼저 쇼콜라가 발표되고 덕분에 '사랑의 시' 역시 본의 아니게 리메이크 곡으로 오해받게 된다.[21]
또한 후속곡 '그대는 눈물겹다'는 타이틀곡과는 정반대되는 특성으로 역시 많은 사랑을 받았고 'Sixth sense'로 마지막 방송 활동을 하면서 가장 핫했던 2집 활동을 마무리 짓게 된다.
2.4 04~06: 계속되는 흥행
1집에서는 엠씨더맥스라는 이름을 알리고 2집에서는 엠씨더맥스라는 장르를 만들었다면 3, 4집에서는 그 장르를 한층 더 깊게 파고든다.
3집 타이틀 곡 '행복하지 말아요'는 콘서트에서 먼저 공개되었는데 팬들은 공개되자마자 대박이라면서 탄성을 자아냈고 역시 당연하게도 대박을 친다. 각종 음방에서 1위를 차지하고 후속곡인 '이별이라는 이름' 역시 1위를 차지하고 바로 '해바라기도 가끔 목이 아프죠'로 후속곡을 교체시켜버린다. 이 노래는 싸이월드를 먹여살리는 데 큰 역할을 한다.
4집 역시 '사랑은 아프려고 하는 거죠'는 1위를 차지하고 후속곡 '아쉬워서'로 활동을 마무리하는데 이때 4집 활동을 빨리 접어버린다. 이유는 이제 밑에...
2.5 06~07: 소속사 문제, 그리고 '엠씨더맥스 2기'
원래 문차일드는 GM 소속이었다.[22] 그룹이 와해된 후 당시 GM 실장이었던 백영묵은 성공 가능성이 보이는 이수에게 "하고 싶은 음악을 하게 해줄 테니 내가 새로 만드는 회사로 가자"며 그를 불러냈고 이수는 나머지 멤버들의 의견을 물어 전민혁, 윤재웅과 함께 백영묵의 회사 유앤아이(현 파라마운트)로 가서 엠씨더맥스라는 이름으로 데뷔한다. 1집, 2집까지 그들의 Thanks to에서 '영묵이형'이라는 이름을 찾아낼 수 있다.
하지만...
조용필 리메이크 앨범 사건[23]부터 시작하여 조짐이 영 심상치 않았다. 2집과 3집의 잇단 성공으로 돈맛을 본 듯한 기획사는 엠씨더맥스를 조금 더 상품화시키기에 앞장선다. 4집 활동 중 백 사장은 이수에게 엠씨더맥스 탈퇴 및 단독 활동을 권유했지만 이수는 그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고[24] 앙심을 품은 백 사장은 엠씨더맥스를 없애버리기로 다짐한다.[25]
이후 백 사장은 엠씨더맥스 2기로 활동할 사람들을 모집했으며 온갖 기사들을 동원하여 엠씨더맥스 원래 멤버들은 끝났다는 식의 기사를 내보내고 심지어 '엠씨더맥스 걸즈'까지 만든다며 소동을 부렸다. 또한 2007년 2월, 2기 멤버들의 노래인 '미운오리새끼'도 발표한다. 엠씨더맥스는 제대로 뒤통수를 맞고 그 충격에 그 소속사를 나오기로 하고 새로 신설된 '비타민 엔터테인먼트'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자 백사장은 자기가 이미 엠씨더맥스 이름에 대한 상표권을 등록했고 '소속 계약 위반'이라며 소속사 측은 계약 위반 겸 엠씨더맥스의 이름을 뺏으려고 소송을 걸었으나 패소했고, 엠씨더맥스는 이수, 전민혁, 윤재웅 세 사람의 것이 되었다. [26]
이 일로 배알이 뒤틀렸는지 백 사장은 단독으로 '커튼콜'이라는 앨범을 발매하는데 엠씨더맥스 걸즈 멤버의 목소리가 들어가있다. 딱 한 곡, 타이틀인 '여대여'는 이수의 목소리인데 몇 년 전 이수가 연습 삼아서 녹음해본 곡을 기계로 비벼서 갖다 넣은 것이다. 진짜 엠씨더맥스의 앨범인 줄 알고 구입하는 사람들이 없도록.[27] 더 웃긴 건 '커튼콜' 앨범에는 그간 풀어두지 않았던 엠씨더맥스의 영상을 DVD 형태로 담아두었는데[28] 영상의 마지막은 '우리는 이제 끝납니다'라는 식의 메시지로 꾸며져 있다. 당연히 백 사장이 꾸민 일이었다.
지금 현재 파라마운트 소속사 홈페이지에는 소속 가수에 엠씨더맥스가 4집까지만 소개되어 있다. 더불어 엠씨더맥스 2기의 멤버가 될 뻔했던 한 멤버는 다른 가수의 멤버로 들어갔고 동방신기의 영웅재중을 닮았다는 언플을 날렸다가 동방신기의 팬들에게 악플 세례를 받았다.
한편 소속사를 비타민 ET로 옮긴 이후 음악프로 활동 외의 활동은 굉장히 줄어들었다. 심지어 소속사를 옮기기 전에는 왕성하던 라디오 활동마저도 거의 없어졌으니 나얼과 맞먹는 김범수, 박효신보다 더 극심한 신비주의 노선이라고 볼 수도 있다. 대신에 공연 횟수는 많이 늘어 대중보다 팬들과의 만남을 더 적극적으로 가지게 됐다.[29]
2.6 07~09: 사건사고, 그리고 군대
2007년 4월 18일, 거의 1년 6개월만에 엠씨더맥스의 정규 5집 'Returns'가 발매된다. 앞서 선보였던 'Returns'의 뮤비[30]는 세련된 편성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또한 기존의 발라드 색깔 뿐만 아니라 록적인 요소를 많이 추가하여 멤버들과 팬들 스스로 만족을 느꼈던 앨범으로 남는다.[31]
2007년 10월 30일. 이수가 게이라는 루머가 퍼져 그것에 대한 의사를 밝혔다. 물론 '말이 되냐, 이것들아. 불쾌하다'라는 식의 반응. 소속사의 언플일 확률이 높다. 그리고 이수는 자신이 게이가 아니라는 것을 2년 후 밝히게 된다. 아주 대대적으로.[32]
2007년 10월 31일. M.C The Max 멤버가 '내년 동반 입대'를 선언한다. 특히나 윤재웅의 경우는 美 시민권자이기에 안 갈 수도 있었지만 당당히 현역으로 입대하겠다고 밝히며 시민권을 버려 많은 사람들에게 용자로 인정을 받고 까방권도 획득했다. 그러나 콘서트 중 무대에서 추락하여 발목을 다치는 바람에 결국 공익 판정을 받고 까방권을 다시 빼앗겼다. 안습.
2008년 4월 8일. 이수가 솔로 활동을 선언한다. 이에 M.C The Max의 해체 논란, 팀 불화설이 잠깐 일었지만 이수는 "서로 좀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가기 위한 단순한 솔로 활동일 뿐이다" 라는 반응을 보였다.[33]
그 후 6집 'Via6', 스페셜 앨범 'Rewind&Remind'를 발표한다. 주로 음악 방송에 출연하면 후반부에서 자주 보이던 엠씨더맥스가 점점 초반부에서 보일 뿐만 아니라 노래도 몇 구간이 잘려서 나와 많은 팬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6집과 'Rewind&Remind'는 2012년 현재까지 완성도 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최고의 앨범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편 마지막 'Rewind&Remind' 앨범을 끝으로 멤버들은 모두 군 입대를 하게 된다.
2009년 6월 25일. 이수가 군 입대(공익 서울 적십자병원).
2009년 7월 27일. 전민혁이 군 입대(공군 군악대).
2009년 9월 17일. 윤재웅이 군 입대(공익 마포구시설관리 공단).
2.6.1 멤버 이수의 성매매 사건
해당 항목 참조
2.7 10~13: 데뷔 10주년... 또 다른 시작
2010년 11월 23일. 데뷔 10주년 기념으로 락밴드 부활과 함께한 디지털 싱글 '사랑합니다(김태원 작사, 작곡)'를 발표하였다. 세 멤버가 모두 군 복무 중인데 어떻게 앨범을 내고 활동을 할 수 있냐며 의문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 곡은 군 입대 전인 2007년 녹음했던 곡이다. 대중들의 반응은 '그런 일을 저질러놓고 무슨 염치로 활동하냐'라며 반대하는 사람들과 '이제 더 이상 엠씨더맥스의 노래를 못 들을 줄 알았는데 다시 듣게 되어 정말 다행이고 기쁘다'라며 환영하는 사람들로 나뉘었었다.
세 멤버가 모두 제대하는 시기인 2011년 하반기부터 컴백하여 활동할 예정이라는 말이 있었고 2011년 12월 29일과 30일, 31일 사흘에 걸쳐 콘서트를 진행하는 것으로 활동을 재개했다. 콘서트 도중 이수는 2012년 봄이 되기 전에 새 앨범을 발표한다고 했으나 2012년 2월 한반도 OST에 <태양의 그림자>라는 곡이 수록된 것 말고는 별다른 소식이 없었다.
그 후 2012년 10월 바이브, 이영현, 린 등이 소속돼 있는 뮤직앤뉴로 소속사를 옮겼다. 11월 경에 일본 콘서트와 12월 24, 25일 크리스마스 기념 콘서트를 했다. 크리스마스 기념 콘서트에 미발표 신곡 2곡을 공개했는데 '백야'와 '못한 말'이라는 곡이다. 콘서트 이후 엠씨더맥스 갤러리는 신곡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콘서트에서 녹화한 신곡을 공유&다운받고자 하는 갤러들로 넘쳐났다. 물론 원래는 콘서트에서 촬영 금지다 그리고 이걸 봤는지 뮤직앤뉴 소속사 사장이 나와서 동영상 촬영 배포를 하지 말 것을 언급했다. 가수보다 소속사가 인증을 더 빨리 한 갤러리 그리고 이 글에서 밝혀진 사실은 24, 25일에 불렀던 신곡들은 아직 미완성 곡이라는 것.
2013년, 같은 소속사 동료인 이수와 린의 열애설이 터졌고 열애설을 인정했다. 멤버 제이윤은 연예인 버전 짝에 출연하기도 했고 음악 방송 채널 등을 통해 그룹의 근황이 방송되기도 했다.
2013년 단독 콘서트로는 3월에 있던 Minimum&Maximum 콘서트, 10월에 있던 뮤직앤뉴 콘서트 등을 했고 김광석 다시 부르기나 다른 행사에서도 모습을 보였다.
2013년 12월 17일 정오에 7집 티저가 공개되었다. 앨범 공개는 2014년 1월 1일 오후 11시 59분에 되었다. 소속사 트윗을 통해 이번 7집 앨범에는 타이틀 곡 '그대가 분다'를 포함 총 신곡 10곡과 연주곡 3곡, 라이브 음원 7곡으로 구성될 것이라 알려졌다.
2.8 14: 7집 발매와 화려한 부활
7집으로 컴백함과 동시에 음원 차트에서 타이틀 곡 이하 여러 곡들이 높은 순위를 기록하였다. 다만 그 사건 이후로 방송 출연은 자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인지 음악 방송에서 1위를 기록할 만한 음원 성적을 내고도 2위만을 기록 중이다. 여전히 대중들은 '성범죄자 OUT VS 충분한 공백 기간을 가졌고 대체 언제까지 깔 것이냐' 정도로 갈리는 중.
어쨌든 예상보다 빅 히트를 친 7집 덕분에, 3월부터 부산, 대구, 서울로 이어지는 공연 일정이 잡혔다. 공연장인 부산 KBS 홀은 약 3500석 규모이고 경북대학교 대강당은 약 2100석,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은 약 4300석이다. 성매매 사건 후 단독 콘서트시 500~1000석 규모의 소극장 공연 위주로 활동했던 게 불과 얼마 전인데 그것에 비하면 새 앨범의 성공에 힘입어 옛 명성을 회복해가는 중인 듯하다.
한편 3월 5일, 난데없이 엠씨더맥스의 이름으로 Best of Best 앨범이 발매됐다. 이는 엠씨더맥스의 악질 전 소속사 비타민에서 가수의 동의 없이 무단 발매한 것으로 전후 사정을 잘 모르는 일부 대중들은 복귀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우려먹냐고 비난하기도 했다.
5월 멤버 전민혁의 결혼 소식이 알려졌다. 언론에서는 지각(?) 결혼이라 보도되었는데 전민혁은 2009년 공군 복무 중 만났던 여성과 이미 2011년 10월 혼인신고를 했기에 이미 법적으로 혼인관계가 인정되는 유부남이었다. 어쨌든 팬들로써는 축하할 일이 생긴 셈.
5월 멤버 이수와 연인 사이였던 린이 서로 결혼을 공식 발표했다. 동년 9월 19일 결혼식을 올렸다.
2.9 15: 나는 가수다 3 출연 불발
해당 항목 참조
2.10 16: 2년만의 8집 발매
2년만의 공백을 깨고 8집인 pathos를 발매한다. 모두 10곡으로 이수가 직접 프로듀싱을 맡아 했다고 하며, 팬들이 원하는 록발라드 느낌을 잘 살리기 위해 고음의 힘을 뺐다고 한다. 판단은 프리뷰를 듣고 해보도록 하자. 2016년 1월 27일 15시에 기자간담회가 진행 되었고, 이튿날인 28일 자정에 음원이 공개되었다그리고 힘을 뺐다고 한 건 구라로 밝혀졌다..[34] 오프라인 앨범 판매는 2월 2일. 뒤이어 역시 pathos의 이름으로 전국 투어 콘서트도 진행한다.
28일 새벽 2시를 기준으로 타이틀 곡 '어디에도'가 멜론 실시간 차트 1위를 찍었다.
그리고 10월 라이브 앨범과 함께 컴백한다. 거기다 신곡 2곡까지 수록되어 있다!
3 노래 및 음악 스타일
팀 자체가 밴드 그룹이기 때문에 록 사운드를 많이 사용하지만 정통 록보다는 오히려 피아노나 현악기 세션 등을 이용한 팝적인 요소를 더 많이 추구한다. 쉽게 말해 팝적인 요소를 많이 가미한 록발라드를 하는 밴드 그룹이라고 보면 편할 듯. 감성적인 발라드와 파워풀한 록 장르의 경계 사이에서 대중들에게 잘 먹히는 음악을 뽑아내는 음악적 감각과 팀의 음악을 훌륭하게 표현해내는 보컬 이수의 뛰어난 가창력이 이 팀의 가장 큰 장점이다.
타이틀 곡이나 팀의 이름을 걸고 내는 곡들의 경우 대부분 록발라드 혹은 록 성향을 띠는 팝 발라드의 노래가 대부분이지만 가끔가다 멤버들 개개인의 취향을 담은 자작곡들을 수록하기도 한다. 이수의 경우 발라드, 윤재웅의 경우 재즈나 어쿠스틱 뭐 이런 식으로.
보컬을 맡은 이수의 경우 대한민국 남성 가수들 중에서는 톱클래스에 속하는 가창력을 가졌다고 평가받는다. 자세한 것은 이수 항목 참조.
전민혁과 윤재웅은 역할 특성상 가창력을 논하는 것은 좀 힘들지만 몇몇 노래에서는 두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트랙리스트 참고. 또 전민혁 같은 경우는 이수가 할 줄 아는 게 보컬밖에 없어서 보컬을 내줬다는 소리가 있다.[35] 한때 어떤 팬에 의해 가창력으로 FT아일랜드 보컬인 이홍기랑 비교당했던 적이 있는데 중요한 것은 한 그룹의 보컬과 한 그룹의 드러머를 가창력으로 비교했다는 것이다.
엠씨더맥스의 노래에는 자작곡이 꽤나 많은 편이다. 소속사를 옮기기 전에는 자작곡이 적었으나 옮긴 후에는 그 수가 많아져 이후 발매 앨범들에는 자작곡을 꾸준히 넣어주고 있다. 특히 『Rewind&Remind』에서는 대부분이 제이윤 작사/작곡이다. 엠씨더맥스라는 그룹의 음악 성향을 이끄는 건 윤재웅이란 소리.
윤재웅은 인피니트의 데뷔 시절부터 꾸준히 참여하고 있는데 인피니트 음악이 여타 아이돌 그룹과 차별화되는 독특한 사운드와 멜로디 진행을 추구하여 호평을 받았다. 인피니트 팬들 역시 윤재웅의 음악을 사랑하며 앨범 발매 시 크레딧에 제이윤의 이름이 있는지 찾아 볼 정도이다. Tic Toc과 Feel So Bad은 타이틀 곡만큼이나 사랑받는 명곡들. Tic Toc이 OGS Returns 라이브 앨범 뮤직비디오로 제작되면서 더욱 알려지고 있다. 특히 윤재웅은 인피니트 콘서트 그해 여름2를 직접 관람하며 메시지를 남겨, 이를 무대 위에 낭독하던 인피니트 멤버들이 놀란 표정으로 객석의 윤재웅을 찾기도 했다. 이때 윤재웅은 팬싸에서의 약속대로 인피니트 파라다이스 활동 당시 무대 의상 차림이었다고 한다.
인피니트 미니 5집 Reality에서는 아예 "인피니트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 제이윤은 ‘발걸음’이라는 곡을 통해 다시 한번 인피니트와 제이윤이 만났을 때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유니크한 음악이 탄생하는 공식을 재확인해주었다."라고 공식 인정되었다. 그리고 얼마 뒤엔 인피니트의 후배 걸그룹 러블리즈와도 'Hug Me'라는 곡으로 호흡을 맞췄는데, 여기서도 꽤나 호평을 받았다.
3.1 비판
정통 락 매니아들에게는 소위 간판만 밴드인 팝 발라드 그룹으로 자주 비판받는다. 가장 많은 비판을 받는 부분으로 히트곡들 대부분이 일본 번안곡이거나 남의 손을 빌린 노래라는 점이 자주 언급된다. 잠시만 안녕 같은 리메이크 외에도 행복하지 말아요 같은 대표곡들은 아예 외부에서 따로 곡을 사서 부른 노래이며 정작 본인들이 참여하는 노래들은 앨범 전체를 통틀어 많아봐야 3~4곡 정도로 비중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한 술더 떠 1집은 아예 2CD로 나눠 한쪽은 다른 이들로부터 받은 곡들로만, 다른쪽은 본인들의 자작곡으로만 채운 형태로 음반을 발매하였는데 볼륨이 11곡 내외인 정작 본인들의 자작곡 비중은 인트로를 뺸 5곡정도로 매우 비중이 낮아 진짜 밴드가 맞냐는 비판에 부딪히기도 하였다.[36]
{반론}
1집~4집은 소속사의 입김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갔기 때문에 본인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유명 작곡가, 외부 곡을 많이 포함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외부에서 곡을 사는 것이 과연 '음악성'이 낮다는 걸 보여주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점이 남는다.
또한, 5집부터는 엠씨더맥스의 색깔을 활발히 찾아가고 있다. 자작곡 비중이 점점 늘어가며, 소속사의 터치가 줄어들어 그들이 직접 프로듀싱도 하는 등..
이제는 실력, 음악성, 독립성까지 갖춘 실력파 그룹이라고 불러도 비판받을 구석이 없다.
팬들은 윤재웅이 뛰어난 작곡, 프로듀싱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고, 실제로 rewind&remind앨범의 상당수의 곡은 윤재웅이 작곡을 맡았는데, 평론가들 사이에서 극찬을 받은 완성도 높은 앨범이라고 평가받는다.
또한 소속사에서 양산형 발라드로만 타이틀 곡을 채우고, 그것들 혹은 유명 작곡가에게 받은 곡만 홍보를 해왔다는 점에서, 애초에 아무리 좋은 곡을 멤버들이 작곡했어도 대중들에게 들려준 적이 별로 없기 때문에 히트할 수 없고[37] 팬들 사이에서만 돌고 도는 수준에 맴돌았던 게 사실이다. 이수는 '앨범 전곡을 우리의 작사 작곡으로 채울 때까지 하겠다'고 했는데, 이를 실행할 수 있을지 여부는 소속사를 얼마나 잘 만나냐에 달린 것 같다. 그래서 2016년 드디어 직접 기획사를 차렸다
게다가 앨범의 노래를 본인들의 세션으로 모두 채우지 않고 일부를 다른 이들에게 연주를 맡긴다는 점에서도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5집 이후부터는 베이스, 바이올린, 드럼은 100% 윤재웅, 전민혁이 녹음에 참여를 하였고, 이수도 코러스, 기타, 피아노 녹음에 간혹 참여하였다.
엠씨더맥스는 애초에 밴드 사운드에 치우친 팀이 아니라 스트링편곡, 미디편곡 등등 다양한 악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전문 스트링 연주 팀과 세션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전문 기타 멤버가 없기 때문에 이수가 보컬, 세컨기타를 하면서 퍼스트기타까지 겸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기타 멤버를 따로 뽑지 않는 소속사 잘못이지 팀 자체의 역량 부족이라고 할 수 없다.)
또한 타이틀로 내건 노래들은 대부분 최루성 록발라드이고 구성, 전개면에서 전혀 이전 노래들과 차이점 없이 비슷비슷해 발전이 없다고 까이기도 한다.
개소리다. 락만 아는 사람들같다...
{반론}
수록곡 안들어보셨어요??? 라고 백번 질문하고싶다.
타이틀곡은 대중들이 원하고, 어느정도 안정성있는 곡울 내거는게 잘못된게 아니다.
그러다보니 이수의 가창력을 살리면서 스트링편곡을 드라마틱하게 가미하고 밴드사운드가 양념으로 들어간 음악이 자주 타이틀곡이 되는 것이다.
반면, 수록곡을 들어보면 엠씨더맥스의 진정한 색깔과 음악성을 알 수 있다.
사실 팬들은 타이틀곡 잘 안듣고 수록곡을 훨씬 더 언급한다. [38]
실제로 멤버들이 자주 듣고 좋아한다는 음악 장르는
팝, 댄스, 일렉트로닉, 디스코, 펑크 등등이다. [1]
이러한 비판이 소용없다는 것을 증명하듯
정작 그룹 내 음악적 비중이 가장 높았던 윤재웅이 프로듀싱에 참여했던 인피니트의 음반과 윤재웅의 자작곡들로 대부분을 채운 엠씨더맥스 스페셜앨범 Rewind &Remind는 음악성이 참 좋다. 참신하면서 대중적이다.라며 평론가들에게도 인정받았다는 점이다. 특유의 훅을 잡아내는 능력과 귀에 잘박히면서 신경쓴 듯한 멜로디가 인상적이다는 평으로 오히려 이쪽 부분에서는 본인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사실 엠씨더맥스 본체에서 윤재웅 작곡 노래들을 보면 의외로 여러 장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특히 팝적 요소) 정통 락보다는 오히려 대중적인 팝 쪽에 감각이 더 좋다는 이야기도 많이 듣기는 하였다.
3.2 발매 앨범 및 트랙 리스트
M.C The Max/음반 목록 문서 참조.
3.3 팬클럽
디시 엠씨더맥스 갤러리[39]
다음 엠씨더맥스 공식 팬 카페[40]
- ↑ 이수가 설립한 회사다. 엠씨더맥스 데뷔일인 3월 25일에서 따온 이름인 것으로 보아, 엠씨더맥스 멤버들과 평생 함께할 것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 ↑ 라이브에서 대부분의 노래는 세션이 연주하고, 리턴즈나 난 그냥 노래할래 등의 좀 달리는 록 음악에서 본인이 직접 든다. 제임스 타일러나 깁슨 ES-335 등의 고가 기타를 몇 대 소유하고 있다.
- ↑ 멤버들이 자신들의 본명에 대한 딜레마를 가지고 있다고 이수가 방송에서 장난 삼아 언급한 적이 있는데 사실 그들은 본명이 훨씬 잘 어울리는 행동을 자주 하는 편이다.
- ↑ 인스타에는 Jae Yoon이라고 적혀있었지만 현재는 본명으로 적혀 있다
- ↑ 제타의 스트라도스 모던을 사용하는 듯.
- ↑ 뮤직맨의 봉고 4현 모델을 사용한다. 드림 시어터의 존 명과 줄 수는 다르지만 같은 모델이다.
- ↑ 2013년 현재 팀의 리더를 맡고 있다. 2012년 크리스마스 콘서트 때 리더가 이수에서 윤재웅으로 바뀌었다고 언급했었다.
- ↑ 실물 미남. 거기다가 준수한 가창력은 보너스. 자세한 내용은 밑에 참조.
- ↑ 이수 솔로가 아니다. 또한 MIC Checker도 아니다!
- ↑ 한 프로그램에서 전민혁이 일화 중에 전민혁하고 이수가 소개팅을 나갔는데 전민혁의 소개팅녀가 몇십 분 후에 이수한테 넘어가 있어서 전민혁이 부럽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 ↑ 참고로 이수가 처음으로 붙은 오디션은 SM이었다. 그것도 한 번에! 그러나 그가 활동하게 될 그룹이 댄스 그룹 신화라는 소리를 듣고 그대로 뛰쳐나와 도망쳐 버렸다. 엠씨더맥스 입장이나 신화 입장이나 양쪽에서 잘 된 일이다.
- ↑ 윤재웅은 당시 미국에서 음악과 미술에 전념하고 있다가 300만원(제세공과금 떼고 약 270만원)의 계약금을 받고 문차일드에 합류했다. 그를 처음 본 이수와 전민혁의 첫 느낌은 '와 진짜 인중 짧다.'(...) 두 사람을 보자마자 아메리칸 스타일로 '반말'을 던진 윤재웅에게 두 사람은 함께 돌아가는 길 차 안에서 처절한 응징을 가했고, 그 이후로 데뷔 10년이 훨씬 넘었는데도 윤재웅은 겨우 한 살 차이나는 형들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한다. 윤재웅이 착한 것도 착한 거지만 두 사람이 대체 뭐라고 했기에?
그러나 결국 2015년 1월 이수에게 반말을 해 버린다 - ↑ 문차일드는 허정민이라는 멤버까지 포함해서 총 4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문차일드 해체 이후 허정민은 연기자로 복귀(허정민은 원래 아역배우 출신이다)하여 종종 일일 드라마에 여주인공의 남동생같은 역할로 얼굴을 비췄다. MBC 드라마 제5공화국의 5.18 광주 민주화운동편에서는 형을 잃은 시민군의 섬세한 연기를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 2016년에는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또 오해영'에서 에릭의 동생이자 허영지의 연인인 박훈 역으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다. 복면가왕에도 금의환향 귀성길이라는 이름으로 출연했지만,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 팽이소년에게 37:62로 밀려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 ↑ 같은 보컬이어서 그런지 신해철과 이수는 특히 친하다. 오죽하면 이수가 바이크를 타는 것을 보고 신해철이 이수의 팬들에게 '이수를 말려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다리라도 부러뜨려서라도 그만두게 하겠다'고 말을 전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신해철 문서 참고.
- ↑ 쿨의 'Love Letter'과 같은 곡에 가사만 다른 곡이다.
- ↑ 2000 드림콘서트였으며, 공교롭게도 이 날 젝스키스가 고별 무대를 했다.
조영구 차도 부서졌다 - ↑ 명색히 밴드인데 음방에서 소개할 때 발라드의 다크호스라고 소개했다. 흠좀무.
- ↑ 이 당시에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그건 6. 발매 앨범 및 트랙 리스트를 참조하길 바란다.
- ↑ 모태였던 문차일드가 최고로 성장한다는 뜻이라고 하며 힙합의 MC가 절대로 아닌데도 모 기사에서 힙합 그룹 MC더맥스라고 나간 적이 있다(...).
- ↑ 작곡가 히로세 코미가 준 곡. 이분은 2집 수록곡 '낮달' 외에도 3집 '행복하지 말아요', '해바라기도 가끔 목이 아프죠', '거짓 이별' 및 4집의 타이틀 '사랑은 아프려고 하는 거죠', '눈물겨운 고백', '녹이 쓴 추억', '난' 등 4집까지 곡을 주신다.
- ↑ 참고로 엠씨더맥스가 리메이크한 곡은 조용필 리메이크 앨범을 제외하고 1집의 '잠시만 안녕'과 '서시', 6집의 '나를 보낸다', 싱글 '레퀴엠'까지 총 네 곡 뿐이다. 히트곡이 일본 작곡가의 곡인 경우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리메이크와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 ↑ 우리가 흔히 아는 그 GM 맞다. 현재의 MBK엔터테인먼트.
- ↑ 이 역시 6.발매 앨범 및 트랙리스트 참조.
- ↑ 몇 년 전 MBC 연말 가요대제전에서 엠씨더맥스의 무대를 '노래만 라이브 연주는 MR' 상태로 꾸민 것을 보고 이수는 "손발 다 잘라먹고는 무대에 설 수 없다"며 수상까지 포기했으며 그 자리를 당시 이슈였던 EX가 메웠고 그 사건으로 이수가 멤버들을 얼마나 생각하는지는 확실히 증명되었다.
- ↑ 4집 이후 싱글 '볼때기 사랑'이 발매되었는데 'The perfect ballad'라는 앨범 제목과 3집에서의 이수 목소리라는 대다수의 팬들의 의견을 통해 이 앨범 역시 엠씨더맥스가 원해서 낸 앨범이 아니라는 목소리가 많고 실제로 논란이 있었다. 또한 당시 2번 트랙에는 'Finally'가 수록되었는데 이 곡은 이전에 엠씨더맥스가 발매한 디지털 싱글 'Duplex Man'의 삽입곡이며 앨범명과 동명인 곡으로 이름만 바꿔 수록한 것으로 밝혀져 중도에 '볼때기 사랑'의 반주곡으로 교체 수록되었다.
- ↑ 상표권 등록은 2집 활동시에 했다. 그럼 대체 몇 년 전부터 준비했던 거지? 상품화를?
- ↑ 하지만 이 노래는 '미운오리새끼' 앨범과 함께 완전히 망했고 당시 백 사장네 소속이었던 모 가수가 진행하는 라디오만 빼고 어떤 라디오도 이 노래를 엠씨더맥스의 노래라고 틀어준 적이 없다.
- ↑ 때문에 '커튼콜'의 실체를 알면서도 구입하는 팬들이 있었다.
- ↑ 당시 소속사가 신설이라 스케줄을 못 잡는다는 의견도 있다. 한낱 시기하는 목소리일 수도 있으나 엠씨더맥스가 왜 불교 방송 라디오에 나갔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면 무시할 만한 이야기도 아니다. 그래도 공연이 많고 사인회에 쇼케이스까지 하는 걸 보면 확실히 '가수가 원하는 쪽'은 잘 챙겨주는 것 같다는 말이 많았다. 다만 음판량의 저하며 미숙한 언론 플레이는... 안습.
- ↑ 뮤직비디오가 일본 밴드 GLAY의 뮤비를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GLAY / BEAUTIFUL DREAMER.
- ↑ 그 후 얼마 안 돼서 백 사장은 '커튼콜' 앨범을 발매한다. 결과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참패.
- ↑ 문차일드 시절에도 윤재웅을 비롯한 멤버 전원이 게이 취급을 받은 적이 있기는 하다.
- ↑ 이후 콘서트에서 종종 이수가 솔로 앨범 곡을 부를 때 멤버들은 "이 앨범이 잘 안 됐었죠?", "저희가 없으니 그렇죠" 등의 장난을 치기도 한다.
그리고 나가수 3에 솔로로 나가려다 진짜 안 돼버린다. - ↑ 실제로 이 앨범 타이틀곡인 "어디에도"는 3옥타브 레, 6번트랙의 "어김없이"는 타이틀곡 어디에도와 같은 음에 끝없는 음끌기와 하이라이트 부분이 2옥타브 후반~3옥타브 레까지 도배가 되어있어 MC THE MAX 노래들중 역대급 난이도로 평가받는다.
- ↑ 월아무적 라이브에서 사랑하고 싶었어를 전민혁이 불렀는데 키는 낮췄어도 리턴즈 파트2 2CD의 음원과 비교했을때 음색은 거의 그대로다. 소극장 공연에서 김범수의 보고싶다를 드럼을 치면서(!)불렀다. 마지막에 예능을 좀 하긴 했지만 드럼을 치며 그 정도 난이도 노래를 부른걸 보면 전민혁도 상당한 능력을 가졌다.
- ↑ 지금은 그러지않는다.
- ↑ 히트라고 볼 만한 게 원 러브나(이건 메가 히트다) 사랑을 찾아서나 입술의 말 정도...
- ↑ 이건 정말이다. 오히려 수록곡을 더 좋아하는 팬들이 훨씬 많다.
- ↑ 현재 가장 활발한 팬 커뮤니티지만 디시 특성상 관종이나 분탕종자가 좀 있다. 윤재웅이 자신을 욕한 갤러를 트위터로 깐 적이 있다.
- ↑ 공식 팬 카페지만 글 리젠률이 매우 안습하다. 맘먹고 좀만 노가다 뛰면 2009년 그 사건 때 글도 볼 수 있을 정도. 그때 팬들이 받은 충격이 어땠는지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