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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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주요 공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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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야어ଓଡ଼ିଆ‎
힌디어ओड़िआ
영어Oriya/Odia

1 개요

오리야어는 인도의 오디샤 주와 그 인접 지역에서 사용되는 언어로, 현재 약 3,300만 명의 사용인구가 있으며, 인도 정부가 헌법으로 지정한 22개의 공용어 중 하나이다. 오리야어는 인도유럽어족에 속한 언어이며, 오리야 문자라는 고유의 문자를 이용해 표기한다.

2 상세

오리야어는 인도에서 현재 약 3,300만 명이 사용하는 언어로, 인도의 공용어 중 하나로 당당하게 지정되어있다.

오리야어는 오디샤 주에 사용인구가 가장 많고[1] 서인도의 수라트 시가 그 다음으로 사용인구가 많으며[2] 그 외에도 서벵골 지역과 자르칸드 주, 차티스가르 주, 안드라프라데시 주 등지에도 소수의 오리야어 구사자들이 존재한다.

오리야어는 벵골어, 아삼어와 친척관계이다. 방언 정도의 차이 밖에 없어서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이다.

2.1 역사

현재까지 발견된 것 중에 오리야어가 기록된 최초의 문헌은 기원전 3세기에 쓰여진 Hathigumpha라는 비문이다. 다만 이 때는 오리야어를 표기하기 위한 자체적인 문자는 없었고, 비문의 내용은 칼링가 문자라는 고대 문자로 쓰여있었다. 대신 칼링가 문자는 나중에 오리야 문자의 기원이 된다.

이후 오리야어는 천 년이 넘도록 발전이 없다가 13세기 경부터 산문시나 소설 등 인도의 각종 고전문학들을 번역하는 것을 시작으로, 사랄라 다스(Sarala Das) 등의 유명 힌두교 승려리그베다 경전을 번역하고 다양한 문학 작품을 창작면서 오리야어는 점점 인도 문학계에서 큰 영향력을 갖추게 된다.
18세기는 오리야어의 영향력이 절정에 달해있던 때였는데 이 시기에 인도 문학계의 내로라하는 시인들과 소설가들의 상당수가 오리야인이었고, 비바와 하라발리 등 수많은 문학 작품이 탄생하였다.

1836년에 서양인 선교사들이 도입한 인쇄술에 힘입어 오리야 문자는 현대적인 모습을 갖추게 되고 이 시기에 오리야어 정서법도 마련되서 오늘날에 이르게 된다.

3 문자

오리야어는 오리야 문자라는 고유의 문자를 이용해 표기한다. 벵골어와 기원이 같아서그런지 벵골 문자와 비슷하게 생긴 문자들도 몇개 보인다.

초창기 오리야어는 야자나무 잎에다가 기록을 했는데 직선을 그으면 야자잎이 잘 찢어지기 때문에 곡선 모양의 문자들이 많아지게 되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다른 인도의 문자들이 그러하듯이, 오리야 문자도 아부기다에 속한다. 다만 오리야 문자는 몇가지 특이한 점이 있는데, 음절의 시작을 표시할 때 모음이 독립적인 문자로 표기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특이한 점은, 단어별로 띄어쓰기를 한다는 점이다.

3.1 유니코드

오리야 문자는 유니코드 U+0B00~U+0B7F 영역에 할당되어 있다.

U+0123456789ABCDEF
0B0x‎ଂ‎ଃ‎ଅ‎ଆ‎ଈ‎ଉ‎ଊ‎ଋ‎‎ଌ‎ଏ
0B1x‎ଐ‎ଓ‎ଔ‎‎କଖ‎ଙ‎ଛ‎ଜ‎ଝ‎‎ଟ
0B2x‎‎ଠଡ‎ଢ‎‎ଣତ‎ଥ‎ଦ‎ଧ‎ନ‎ପ‎ବ‎ମ‎ଯ‎
0B3x‎ର‎ଲ‎ଳ‎ଶ‎ଷ‎ସ‎ହ‎଼‎ା‎ି
0B4x‎ୀ‎ୂ‎ୄ‎ୖ‎‎ୋ‎‎୍‎
0B5xൗ‎ଡ଼‎ଢ଼‎ୟ‎
0B6x‎ൠ‎ୡ‎ୢ‎୧‎୨‎୪‎‎୬୭‎୮‎
0B7x‎ୱ‎୳‎୴‎୵‎୶‎୷‎
  1. 전체 오리야어 원어민 중 80% 이상을 차지한다.
  2. 뜬금없이 서인도 지역에 오리야어 사용인구가 많은 이유는 과거 수라트 시가 인도에서 가장 발전된 도시 중 하나였기 때문에 당시 오디샤 주의 노동자들이 대거 그쪽으로 몰려갔기 때문이다. 참고로 수라트 시의 주급 공용어는 구자라트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