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G. 하딩

역대 미국 대통령
28대29대30대
토머스 우드로 윌슨워런 거메일리얼 하딩캘빈 쿨리지
공식 초상화
풀네임Warren Gamaliel Harding
출신 정당공화당
생몰년1865년 11월 2일 ~ 1923년 8월 2일
재임기간[[ 1921년]] 3월 4일 ~ 1923년 8월 2일
서명
183cm


에디슨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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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통령직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며 이 직책을 맡지 않았어야 했습니다." -친구였던 컬럼비아 대학 총장인 니컬러스 머리 버틀러(Nicholas Murray Butler)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개막장 대통령의 전형

Warren Gamaliel Harding(워런 거메일리얼 하딩). 1865년 11월 2일 ~ 1923년 8월 2일 (대통령 재임 : 1921년 ~ 1923년)

미국 29대 대통령. 똑같이 무능 대통령으로 평가받는 율리시스 S. 그랜트와 달리 정치, 사생활 등 올라운드 막장 행적으로 인하여[1], '미국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대통령'을 조사할 때마다 절대적 1위를 고수하는 사람이다. 다행히도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에선 꼴찌는 면하는 경우도 많다. 역대 미국 대통령 항목 참조.

최근에 들어서야 조지 W. 부시라는 위협적인 강적(?)이 등장했지만 아직 하딩의 입지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앞서 보았듯이, 사실 본인도 대통령 되고 싶은 마음 없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1917년 공화당에 복당한 후 재출마를 고려할 때 그의 눈에 들어 부통령 러닝메이트를 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1919년에 루스벨트는 사망. 낙동강 오리알이 된다. 아마 루스벨트가 조금만 더 살았으면 그는 그저 그런 부통령으로서 역사에 이름을 남겼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면 줄초상 났으려나뭐, 지금도 그저그런(?) 무능한 대통령이지만 하지만 테쿰세의 저주떄문에 대통령이 되는건 같을지도 뭐 본인이 걸려서 죽었지만

1 대통령 당선과정

당내 경선조차 정권교체가 확실해진터라 누가 나가도 이길 수 있는 상황에서, 당내 파벌끼리 자기네들끼리 해먹겠다고 난리를 쳤는데 그래도 결정이 나지 않자 투표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 때 9번이나 투표를 했는데도 후보가 결정되지 않았다. 그래서 지칠 대로 지친 계파 대표들이 모두 합의해서 "이럴 바에는 그냥 우리 모두가 쌈싸먹을 수 있는 호락호락한 녀석을 보내자"는 취지로 당첨되었으니 뭐……. 이 결정이 날 때 하도 사람들이 시가를 펴 대는 바람에 그 방이 시가 연기로 매우 자욱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Smoke-filled room(시가 연기로 꽉 찬 방)'으로 유명하다.

선거공약이 "정상 정치로의 복귀(Return to Normalcy)" 비정상의 정상화였다. 윌슨의 다소 개방적인 외교정책과 제1차 세계대전에 진절머리가 난 미국을 "정상 상태"로 되돌리겠다는 이야기. 대표적인 고립주의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데, 너무 복귀한 나머지 "아무런 업적도 남기지 못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능력과는 별개로 인기는 정말 좋았고 당선 이후 수많은 병크에도 불구하고 재임중 사망할 때 까지 인기가 좋은 대통령이었다. 왜냐하면 꽃미남이었기 때문에. 가문이나 정치적 업적 따위는 다 집어치우고, 오로지 꽃남이라서 표를 몰아받고 당선됐다는 믿기 힘든 일화를 가지고 있다. 무려 1천 6백만표, (60.3%)란 경이로운 득표를 얻었는데 이는 토머스 제퍼슨이나 제임스 먼로 이후 최대이며, 바로 직전 윌슨 대통령의 표(약 9백만표)의 거의 두 배로, 이 기록은 60.8%를 받은 프랭클린 루스벨트(1936년)까지 깨지지 않았다. 이후엔 린든 B. 존슨의 61.1%(1964년), 리처드 닉슨의 60.7%(1972년) 등의 기록이 있지만 이건 모두 신임받은 재선 대통령으로서의 득표였다. 즉, 초선에 갑툭튀한 인물에게 몰아준 케이스는 이 경우가 유일하다. 이후 잘생겼다는 이유로 인기가 많았던 정치인의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히며, 외모를 기준으로 판단을 내리는 행위를 가리키는 워런 하딩의 오류라는 표현이 생겨났다. 대표적인 사례가 로널드 레이건. 그리고 1920년 첫 라디오 정규방송이 1920년 선거 개표방송이었다. 이런면에서 볼대 미국 미디어상에서 의외로 큰 종적을 남긴 인물.

2 미국 역대 최악의 대통령

무능력한데다 성격도 유약해서, 선출배경에서 볼 수 있듯이 당내 파벌의 안배로 추대되었기 때문에 각 파벌에서 보내온 장관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였고, 부하들도 똑같이 무능한대다 부패해서 특히 하딩의 친구들로 구성된 "오하이오 갱"들의 부패 때문에 죽을때 까지 힘들어 했다고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티포트 돔 스캔들로 요약하자면 법무장관 해리 도허티와 내무장관과 몇몇 사업가들이 짝짜궁이 되어 유사시 해군용으로 쓰도록 남겨둔 유정을 거액의 뇌물을 받고 사업가들에게 넘겨준 것. 이 과정에서 유정을 넘겨주는데 반대한 해군 장관을 자기네 사람으로 갈아치운 것은 덤.[2]

하딩 자신도 자신이 대통령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라고 말할 정도로 능력이나 전망을 갖추었다고 보기 힘든 사람이였고 이 사람이 경제적으로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공황이 초래되었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 한 나라의 대통령이 무능하면 제대로 피본다는걸 보여준 케이스라고 볼 수도 있다.[3]

그리고 사생활도 나빠서 집권여당인 공화당(미국)이 주도해서 금주법을 만들어놓고도 정작 자신은 백악관에서 수시로 술쳐먹고 놀자판을 벌였다. 심지어는 금주법으로 압류한 밀주를 그대로 백악관으로 가져와서 마셨다는 증언도 있으며그 술에 메탄올이 조금만 섞여 있었으면 좋았을것을..., 소문에 의하면 영부인께서 직접 폭탄주를 말아주셨다고... 그리고 하딩의 취미가 술쳐먹고 포커치는거라 백악관에서 수시로 포커판이 벌어졌고 이 포커판에서 한 게임에 당시돈 4000$가 오갈 정도로 큰 도박판이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공처가였는데 아내를 항상 '공작부인'이라고 부르며 아내에게 설설 기었다고 한다. 그런데 부인을 두려워하면서도 불륜을 저질렀다. 바람을 피우다가 걸려도 당당했다는 후문이다(…). 백악관에서 바람을 피우다가 부인한테 들키자 경호원들을 고기방패로 삼는 찌질한 모습을 보여준 일화로 악명이 더 높아졌다. 심지어는 옷장속에서 바람을 피운 일도 있다고 한다. 이 양반 대체...

재임 2년 3개월만에 샌프란시스코 여행 중에 돌연사했는데, 심장마비란 설이 유력하다. 근거로 목적 자체가 선거 유세 지원이었다. 하딩은 이 무렵 건강이 심각하게 나빠져서 의사가 휴양할 것을 권고했는데도 공화당 의원들이 억지로 밀어붙이는 바람에 아픈 몸을 이끌고 길을 나섰던 것. 더구나 당시 하딩은 자신도 몰랐던 비리와 관련한 보고서를 받고 이 때문에 대단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죽기 바로 전달인 1923년 7월에 알래스카 여행 중 식중독에 걸려 큰 고생을 했다. 결국 그는 기차 안에서 쓰러졌고 샌프란시스코호텔에서 폐렴 증세를 나타내더니 1주일 정도 병상에 있다가 숨을 거두고 만 것. 당시 신문에 하딩의 사인은 뇌경색으로 보도되었다. 국내에도 조선왕 독살설이 있듯 미국에도 대통령 독살설이 있는데, 12대 재커리 테일러와 함께 독살 이야기가 도는 케이스. 사후 하딩의 여러 스캔들이 터져나오고 희대의 막장 인증 대통령이 되면서 무능한 대통령의 상징 같은 존재가 되었다.

3 업적

잘 알려지지 않은 업적으로 고립주의를 표방한 그로서는 아이러니한 사실이지만, 하딩의 최대 업적은 세계 최초의 군축조약인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지은 것이다. 이 조약 덕분에 미국은 영국과 함께 세계 1위의 해군력을 인정받았을 뿐만 아니라, 일본의 해군력을 미국 해군의 6할 정도로 억제하는데 성공하여, 1923년 경에 미국과 일본 간의 무제한적인 해군군비경쟁으로 인해 전쟁이 날지도 모른다는 수많은 억측들을 (최소한 20년 가까이) 잠재웠다. 하지만 일본은 때렸다.

또한 군축회의와 병행하여 진행한 일련의 회담을 통해서 일본이 팽창하는 뒷배경으로 사용되었던 영일동맹을 해체시키고, 베르사유 조약21개조 조약이래 일본이 중화민국에서 무제한적으로 팽창하는 사태를 저지하였다. 대표적인 것이 일본이 차지한 산동성내 독일 이권을 베르사유 조약과는 반대로 중국에게 반환시키고, 중국시장에 있어서 '기회균등의 원칙'을 내세워서 일본의 중국침략을 일시적이나마 저지시키는 9개국 조약을 성사시켰다. 하지만 결국 전쟁 났잖아

그리고 막장 이미지와는 달리 대단히 좋은 일을 하나 하려고 했는데 바로 국가 차원에서 1차대전 참전용사들을 돌봐주려고 한 것. 당시 까지 미국에서는 이런 전례가 없었고 미국 독립 전쟁이나 남북전쟁 때와는 달리 1차 대전 참전자들에게는 연금이나 기타 혜택도 없었다. 하딩을 이를 위해 Veterans Bureau[4]를 세우고 병원도 지어서 참전용사들을 지원해주라고 한 것 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그 첫 국장으로 앉힌 인물인 찰스 포브스가 비리와 부패의 일인자였다는 것.(...)

친구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바람에 얼마 안되는 업적은 잊혀지고 오명만이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1960년대 이후부터 지금도 종종 재평가도 이루어지고 있지만 워낙 쌓아온 이미지가 커서. 그리고 민주당 슈퍼스타 대통령 사이에서 공화당 막장정권의 시작을 끊어서 평가가 더욱 박하다

4 기타

그리고 남북전쟁 이래 쏟아져 나온 마지막 오하이오 출신 대통령이다. 7명 중 마지막. 특기할 것은 공화당 출신 중 선거로 당선된 이는 모두 오하이오 출신이었다는 것. 나머지는 모두 비 오하이오 출신(...) 이건 허버트 후버부터 깨지게 된다.

HBO 시리즈 보드워크 엠파이어 시즌 1에 후보로 선출되는 모습이 나오고 그 이후에는 언급으로만 등장한다. 물론 고증에 100% 충실(...)하여 해리 도허티에 휘둘리는 유약한 바람둥이로 나온다.
  1. 측근비리를 통제하지 못했던 무능한 정치인이라는 공통점이 있긴 하지만 최소 그랜트는 본인 자체는 청렴했고 아내와의 금슬도 매우 좋았던 인물이니 최소 불륜과 술판, 포커판을 벌이던 하딩보다는 덜 막장이라고 할 수 있다.
  2. 영화 "데어 윌 비 블러드" 마지막에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광기를 보이며 폴 다노에게 "내가 네 밀크셰이크를 다 마셨다."라고 언급을 하는데, 그 말은 이 워낙 티포트 돔 스캔들의 심각성을 알려주기 위하여 쉽게 예시를 들기 위해 나온 비유이다.
  3. 사실 하딩보다는 후임자인 캘빈 쿨리지허버트 후버의 잘못이 매우 크다는게 정설이다. 특히 쿨리지는 아는 경제지식이라곤 오로지 저축뿐이었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경제에 무지한 인물로 대공황을 초래하였고, 그 다음인 후버는 우왕좌왕하며 혼란을 오히려 키우기만 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당선될 만큼 미국 정치나 사회가 루즈해진 것도 사실이긴 했다.
  4. 오늘날 미 보훈부의 전신격인 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