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원

(이상한 나라의 에이스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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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본 정보

이름이봉원(李俸源)
출생1963년 8월 5일, 경상남도 거창군[1]
신체165cm, 54kg, A형
가족1남 2녀 중 셋째[2], 배우자 박미선, 슬하 1남 1녀
학력장안대학교 일본어과
종교불교

2 트리비아

대한민국개그맨, 박미선남편으로 잘 알려져 있다. 키는 165cm로, 아내인 박미선보다 키가 작다.[3]

유머 일번지동작그만에서 곰팽이 이영남 이등병 역으로 보호관심병사 연기를 하는 것을 비롯하여 쇼 비디오 쟈키 등의 코미디 프로그램을 종횡무진 누리며 많은 인기를 누렸다. 과거에는 제법 인기를 끌었지만 요즘은... 과거에 여러 사업을 벌였으나 죄다 망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토크쇼에 나와 박미선이 이 양반이 하던 사업이 모조리 망해서 내가 뒷감당하느냐 고생했다고 같이 있는 자리에서 투덜거리고 이봉원도 뻘쭘한지 쓴웃음 지으며 난감해 했을 정도.

대략 살펴보면 단란주점을 했다가 오픈한지 얼마 안되 심야 단속이 강화되면서 손님이 끊겨 망하고, 백화점에 커피숍과 삼계탕집을 시도했다 또 실패하고, 일본 유학자금을 위해 고깃집을 했다 또 망하고, 이후 일본 유학후 돌아와서 기획사와 연기학원을 하다가 또 실패했다. 기획사에는 김구라 이광기 등이 소속되어있었다는데, 하필 이들은 이 소속사를 나오자마자 뜨기 시작했다는 듯. (...) 그러나 김구라가 방송을 통해서 여전히 존경한다는 이야기를 하는거 보면 서로 사이가 나쁘진 않은 듯하다.

뿐만 아니라 2009년에 또 사업한다고 사채까지 쓰면서 무려 7억원이나 빚을 졌다! 박미선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당연히 못 갚았을지도. 이러다 보니 뻔뻔하다느니 돈 날리는 식충이라느니 온갖 비난을 다 들었다. 그래도 박미선이 참으로 성인군자처럼 꾹 참고 다 갚아줬다고 우스개로 말하긴 했다. 실제로는 본인이 일해서 다 갚았다고 하며, 자기가 일해서 차를 사도 주변에서 마누라 등골 빼서 차 바꿨다느니 비아냥 거리는게 짜증난다고. "이래서 연예인은 한번 시작하면 평생 방송을 해야지, 사람들은 방송에 안나오면 노는줄 안다." 라면서 불평하기도 했다.

실제 수십억원이었으며 이젠 사업한다 안 나대고(...) 10년 동안 밤무대 방송일 행사 등을 겸하며 2015년에 다 갚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 사업들을 하면서 남은 건 오로지 개업 축하 화분. 집에 가면 이 화분들로 가득차서 식물원 수준이라나 뭐라나. 그럼 그 화분들에 신장개업 딱지 떼어버리고 분재 판매업 하면 되겠네. 근데 그것도 쫄딱 망해서 빚더미에 앉으면 어쩌나? 이때 후배들이랑 마시고 술값이 50만원이 나왔는데, 제일 선배인 이봉원이 내려 하자, 후배들이 "선배님 빚이 30억이라면서요? 저희가 낼게요." 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자 이봉원이 "30억이나, 30억 50만원이나 뭔 차이가 있냐?" 라면서 쿨하게 결제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를 참다 못했는지 부인 박미선이 고깃집과 꽃 사업에 도전했다! 근데 고깃집은 잘 안 된 모양.[4] 본인 말로는 본인의 기운을 받아서 잘 안 된 거 같다고 드립쳤다. 꽃 사업은 별다른 언급이 없으나, 이봉원 본인의 말로는 잘 안 되는 거 같다고 한다.(...)

2016년 MBC 드라마 옥중화에 고정 조연인 포도부장 양동구로 출연한다. 사실 드라마는 2005년 EBS에서 방송했던 '겨울아이'에 이어 두 번째. 그런데 각종 기사에는 이걸 잘 몰랐는지 아니면 관심이 없었는지 옥중화가 첫 드라마라고 나온다.

예전 인기보다는 못하더라도. 그래도 이제는 사업 욕심은 확실히 버리고. 본업인 방송업에 열중하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서 박수를 받고 있다.

한편, 이봉원은 1999년 3월 일본 유학을 떠난 뒤 2001년 10월 귀국했고 같은 해 11월 3일 시작한 SBS 코미디쇼 오 해피데이의 진행을 맡아 방송활동을 재개했는데 홍록기와 공동 MC를 맡았던 이 프로그램은 정통 코미디의 부활을 꿈꿨지만 시청자들로부터 냉담한 반응을 얻게 되자 처음 시작할 때 참여했던 출연진들이 대거 빠져나간 뒤 신인 개그맨들 위주로 꾸며왔다. 그 결과 동시간대 KBS 2TV 뮤직플러스와 MBC 생방송 음악캠프(2001년 11월 3일 첫 회), 코미디 하우스(2001.11.10 ~ 2001.12.29 최종회) 때문에 시청률 부진을 면치 못하여 2001년 12월 8일 방송분부터 임하룡이 공동 MC로 투입되어 이봉원,홍록기와 함께 3인 체제로 바뀌었으나 역시 시청률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9회(2001년 12월 29일)만에 조기종영됐고 이봉원은 그 이후 iTV 위주로 활동해 왔다[5].

3 여담

원래 90년대일본 유학을 가서 NHK의 한국어 강좌방송에 나왔었다. 본인이 개그맨이라는 장점을 살려 유쾌하고 독특한 컨셉으로 방송을 이끌어나가서 NHK 쪽에서는 계속 방송해 주길 바랬는데, 한국으로 귀국하고자 마음 먹으면서 방송이 종료되었다고 한다. 계속 일본에 남아 있었으면 일본 방송계에서 나름 활약했을 지도 모를 일...

위에 적힌것처럼 경제적인 부분에선 박미선의 속을 많이 썩였지만 박미선의 말을 빌려보자면 상당히 로맨티스트인듯하다. 가끔은 술에 만취한 상태로 집에 들어와 터프하게 다이아 목걸이를 선물한다거나[6] 비오는날의 수요일이면 잊지않고 늘 빨간색 장미를 사온다고... 일부러 이봉원은 사올때마다 우산을 안쓰고 비에 젖은채 초인종을 누른다고 한다. 이 정도면 정말 낭만과 기분에 사는 사람이라고 봐야할듯... 그리고 이게 박미선의 이상형...

대표적인 닮은꼴 스타가 가수 겸 작곡가 정재형. 2012년 MBC 방송연예대상에서도 박미선이 시상자로 나온 정재형에게 대놓고 "여보!"라고 불렀을 정도다.크헉

2001년 10월 일본에서 귀국한 후 방송활동 재개작인 SBS 코미디쇼 오 해피데이에서 김경식이 공동 진행자 물망에 한때 거론됐는데 이 프로그램에서 이봉원과 공동 MC를 맡았던 홍록기는 김경식 등과 함께 SBS 코미디 전망대에서 95년 가을개편 때 이봉원 후임(김미화)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7].

1995년 3월 28일부터 10월 10일까지 SBS <코미디 전망대>를 공동 진행했었으며 이 프로그램을 같은 해 3월 28일부터 4월 4일까지(당시에는 본명인 김현아) 공동 MC로 참여한 김정난은 당시 메인 진행자였던 김병조와 동향(전남 장성)인 서영명 작가의 작품 중 하나였던 KBS 1TV 금쪽같은 내 새끼 출연진 중 한 명이었고 이 드라마의 담당 PD 이상우씨는 이봉원과 동명이인이었던 영화감독과 함께 형사 25시란 드라마에서 연출자(이상우)-집필자(이봉원)로 호흡을 맞췄다.
  1. 실제로 자란 곳은 서울이다.
  2. 원래는 남동생 1명이 더 있었으나 그의 나이 21살때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즉 실제 가족관계는 2남 2녀 중 셋째이다.
  3. 이와 비슷한 케이스들로는 개그맨 정종철, 가수 윤종신, 박남정 등이 있다(...).
  4. 인천 계양구 작전역 근처에 '포도청'이라는 이름으로 했었다.
  5. 김경식이 공동 MC 후보에 한때 거론되기도 했으나 KBS 2TV 쇼 파워비디오 공동 진행자로 발탁되어 고사했는데 공교롭게도 이봉원의 아내 박미선은 김경식에 앞서 '쇼 파워비디오'의 김미화 후임 MC 물망에 오르기도 했고 김경식은 김미화가 메인 진행자를 맡아 온 SBS 웃는밤 좋은밤 고정 게스트 물망에 한때 거론됐다
  6. 박미선 입장에선 술을 먹고 들어왔단것만으로 매우 언짢을만하나 심쿵하고 흐뭇해했다는걸 봐선 취향 저격이었던듯하다(...) 빼박 천생연분
  7. 홍록기 김경식 등은 95년 2월 28일부터 '코미디 전망대'가 MC제를 도입할 당시 공동 남자 진행자 물망에 한때 거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