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신궁

일본어 : 伊勢神宮(いせじんぐう)
영어 : Ise Grand Shrine
프랑스어 : Sanctuaire d'Ise
스페인어 : Santuario de Ise
독일어 : Ise-jingū

1 개요

홈페이지


일본 미에이세 지역에 위치한 신사로, 일본의 단일성을 나타내기 위해 기원전 1세기경에 조성되었다. 정식 명칭은 지명이 붙지 않은 그냥 '신궁(神宮-진구)'으로, 이세 신궁이라는 이름은 구분을 위해 '이세에 있는 신궁'이라는 의미로 불리는 명칭일 뿐이다. 일본 22사 중 상7사의 수위에 위치한 신사이며, 오늘날에도 일본 전국의 약 8만여개에 달하는 신사를 통괄하는 신사본청의 총본산에 해당[1]하는 중요한 신사이기도 하다.

크게 내궁(內宮)인 '코타이진구(皇大神宮)'와 외궁(外宮)인 '토요우케다이진구(豊受大神宮)'로 구분되는데, 이중 내궁인 코타이 진구 쪽에서는 덴노가의 우지카미(氏神; 씨족신)이자 '태양신'인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天照大御神)를 섬기고 있다. 그 탓에 역사적으로도 일본 황실 및 조정과의 연관성이 강한 편으로 대개 이세 신궁에 참배 목적으로 오는 참배객들은 이 내궁에 참배하기 위해 오는 경우가 많다. 외궁인 토요우케다이진구는 '식량의 신'인 토요우케오오미카미(豊受大御神)를 모시는 신궁으로 5세기경에 처음 조성되었으며, 내궁과는 도보로 약 50분 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에도 시대에는 사람들이 토요우케를 모시는 이세 외궁에 대한 참배(오이세마이리)가 유행했다. 특히 부모나 집 주인의 허락 없이 집을 빠져 나와 이세 신궁을 참배(누케마이리)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 경우에는 묵인해주는 것이 관례였다. 사실 이 시기에는 지역간 이동이 매우 제한되어 있어서, 이세 참배를 목적으로 겸사 겸사 여행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했다. 에도 막부의 강력한 정책으로 왕정 복고 초기 사람들이 천황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고, 결국 메이지 정부는 이세 외궁에 내한 경배를 아마테라스를 모시는 내궁 즉, 천황의 조상(이라고 생각되는 신)에 대한 경배로 교묘하게 전환시켜 버린다. 그리고 이세 신궁을 모독하는 행위를 불경죄로 코로 일식을 먹였다.

옛날에는 내친왕, 여왕[2] 등 미혼의 황녀들이 무녀로서 봉직하였는데 이를 사이구(斎宮, 재궁)라고 하였다. 사이구는 보통 새로운 덴노가 즉위할 즈음에 퇴임하였는데, 퇴임 이후에 결혼은 할 수 있었다고 하지만 대부분 미혼으로 살다 죽었다. 근현대에 들어서는 메이지 덴노의 7녀 기타시라카와 후사코(北白川房子)[3], 쇼와 덴노의 3녀 다카츠카사 카즈코, 쇼와 덴노의 4녀 이케다 아츠코 등이 제관을 맡았고, 2012년부터는 아키히토 덴노의 장녀 구로다 사야코가 보조 제관이 되어 쇠약해진 고모 아츠코를 돕고 있다. 근현대에 들어 제관이 된 후사코, 카즈코, 아츠코, 사야코 등의 공주들은 모두 기혼.

단순해 보이는 건물의 외관은 이 건물의 역사를 나타내주는 것. 역사도 역사지만 20년마다 건물을 해체하고 다시 짓는 식년천궁으로 유명하다.

2 기원

일본신화에 따르면 이세신궁이 창건된 계기는 이러하다. (이하의 내용은 일본서기 본문의 기록을 요약한 것이다. 일본서기에서 부연한 일서의 기록은 생략한다.)

10대 스진 덴노 재위 5년(기원전 93년)에 전염병이 돌아 많은 사람이 죽었다. 이듬해(기원전 92년)에도 그 여파로 백성들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충돌이 일어났고 이를 다스리기 어려웠다. 스진 덴노아마테라스와 야마토노오쿠니타마, 두 신을 궁궐에 모시면서 죄를 고백하고 제사를 지냈으나, 두 신을 두려워하여 궁궐 안에서 함께 지내기를 매우 부담스러워했다. 그래서 장녀인 토요스키이리비메(豊鍬入姬命)로 하여금 궁궐 밖에서 아마테라스를 모시며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4]

11대 스이닌 덴노 재위 25년(기원전 5년)에 스이닌 덴노아마테라스를 모시며 제사 지내는 직무를 누이인 토요스키이리비메 대신 자기 딸 야마토히메(倭姬命)가 맡도록 하였다. 야마토히메는 아마테라스를 모시기 좋은 터를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이세국(伊勢國)에 닿았을때 아마테라스가 신탁을 내려 알려주었다.

"신풍(神風)이 부는 이세국(伊勢國)은 도코요(常世)[5]의 파도가 계속 밀려드는 나라로 주변 나라들이 부러워한다.[6] 여기에 머무르도록 하라."

야마토히메는 신탁을 받은 뒤에 이세에 신궁[7]을 지었다고 하며, 여기가 아마테라스가 하늘에서 처음으로 내려온 곳이라고 일본서기는 말한다.

참고로 일본 각지에는 모토이세(元伊勢) 신궁이라고 불리는 곳들이 있다.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야마토히메가 지금의 이세신궁 자리로 아마테라스를 모시기 전에는 각지를 떠돌며 그 영위를 모셨는데, 모토이세라 불리는 곳들이 잠시나마 아마테라스를 모셨던 터라고 한다.

외궁의 기원에 대해서는 별개의 기록으로 전한다. 지유기궁의식장(止由気宮儀式帳)에 따르면, 21대 유라쿠 덴노 22년(477년)에 덴노의 꿈에 아마테라스가 나타나 말하기를 "나 혼자서는 안심하고 식사도 할 수 없어 매우 불편하다. 단바(丹波)[8]에 있는 토요우케(豊受大神)[9] 신을 내 가까이에 불러 날 시중 들도록 하라."하고 명령하였으므로 그대로 하였다고 한다.[10]

그러나 일본서기나 지유기궁의식장 등은 모두 실제 신궁이 건립된 지 수백 년이 지난 뒤에 기록되었으므로 곧이 믿기는 어렵다. 학자들은 대체로 이세신궁이 원래는 이세 지방의 토착신을 모신 성지였으리라 추정한다. 특히 이세 지방에 있던 이소베씨(磯部氏) 집안의 씨족신인 토요우케 신을 모신 곳이었을 가능성이 상당하다.[11] 이소베 씨는 성을 와타라이(度会)로 바꾸어 지금도 외궁의 신관직을 세습한다.

학계에서는 일본신화의 형태가 41대 지토 덴노(재위 690~697) 때 창작, 완성되었다고 본다.[12] 이세 신궁이 지금의 형태로 건축된 때도 지토 덴노 시절이다. 지토 덴노 시절에 아마테라스를 제사지내는 직무를 맡던 오쿠(大来) 황녀가 이세 신궁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했다는 기록도 이를 뒷받침한다.[13]

신화대로라면 아마테라스의 부속신으로 경내에서 조그만 건물 하나를 받았어야 할 토요우케 신이 '외궁'이라는 이름으로 거의 아마테라스와 동격의 건물을 받게 된 것도 본디 이세의 토착가문인 이소베씨의 성지를 아마테라스의 성지로 재편성하면서 나온 지토 덴노 시절의 정치적/종교적 타협의 산물이었을 것이다.

최초의 식년천궁이 지토 덴노 때 시작함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3 식년천궁

3.1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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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지은 건물(아래쪽)과 곧 헐릴 낡은 건물(위쪽)

식년천궁(式年遷宮)이란 일정 기간이 지나면 건물을 다시 짓고 신을 옮기는 의식이다. 이세 신궁은 20년 주기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2013년 10월에 62번째 천궁이 있었다. 이를 위해 200년, 300년 뒤에 사용할 나무를 미리 심고 있다.

이 식년천궁 제도의 유래는 분명하지 않다. 과거 선대 기술자들이 후세들에게 기술을 완전 전수하는 데 20년이 걸려서라는 것도 있고, 정기적인 재건축이 신의 영위를 재탄생시킨다는 설이나, 그냥 과거의 건축기술 부족으로 건물이 낡으면 위험해지니 정기적으로 때려부수고 다시 짓는 게 관습화되었다는 설, 손과 발을 사용해서 셀 수 있는 가장 큰 숫자가 20이기 때문이라는 설 등등(…) 다양한 설이 있다.

이걸 가지고 우리나라가 경복궁을 복원할 때 거대한 목재가 부족해서 외국에서 수입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갑론을박하는 것을 빗대서 일본은 나름의 선견지명과 일관성을 가지고 일을 추진한다고 하는 것은 말이 맞지 않다. 20년마다 한 번씩 건물을 새로 짓는다는 관습이 있으니 이에 맞추어 미리 준비했을 뿐이다. 경복궁은 이처럼 정기적으로 새로 짓는 건물이 아니다. 외려 예상치 못한 훼손과 고의적인 파괴로 인해 수리와 복원이 필요해진 것이라, 거대 목재의 수요가 있을 것을 예상하고 미리 심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더욱이, 이세신궁처럼 우리가 '현대 일본신사' 하면 떠오르는 신사 건축의 형태는 의외로 역사가 짧다. 에도 시대 신사건축 양식 중 '고대의 건축은 이렇게 짓지 않았을까'하고 추측하면서 짓던 복고양식 건축이 유행하다가 고착화된 것이다.[14]

하지만 이렇게 따지면 전세계 문화제중에서 가치를 인정할만한게 없다. 유럽의 성당들은 신도들의 등꼴을 빼먹은 것이며 경복궁은 나라경제 생각안하고 무조건 크게 만들다가 나라 경제를 망친 주범이 되며 미국의 마천루들은 금융자본들의 땅투기 장난질에 불과한 것이 된다. 각 건축은 그 나라의 문화로서 공과 과를 같이 보고 인정해야 마땅하다.

게다가 이세신궁의 재건축을 위해서 목재를 미리 준비하는게 부럽다고 평가한건 무슨 친일적인 학자나 언론사 기자도 아니고 현장에서 경복궁과 같은 한국의 건축물들을 복원하고 있는 목수들, 대목장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다.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독립한지 반세기가 한참전에 지나갔는데도 불구하고 조선시대 주요 궁궐과 건축물에 대한 복원이 완료되지 않았고 민주화 되기 이전에는 체계적인 계획도 없었다. 심지어는 식민지 지배의 상징인 조성총독부를 이전하자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근정전 앞에 놔두자는 주장도 있을 지경이었고 한성 성곽 복원보다 일본 황태자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 만든 동대문 운동장 보존이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많았다. 이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한 것이다.

3.2 역대 식년천궁

횟수내궁(內宮) 외궁(外宮)
서기연호덴노서기연호덴노
1회690지토(持統)692지토 덴노
2회709와도(和銅) 2겐메이 덴노711와도 4겐메이
3회729텐표(天平) 1쇼무(聖武)732텐표 4쇼무
4회747.9텐표 19748텐표쇼호(天平勝宝) 1코겐(孝謙)
5회766텐표진고(天平神護) 2쇼토쿠(称徳)768진고케이운(神護景雲) 2쇼토쿠
6회785.9.18엔랴쿠(延暦) 4간무(桓武)787엔랴쿠 6간무
[15]792엔랴쿠 11
7회810.9코닌(弘仁) 1사가(嵯峨)812.9코닌 3사가
8회829.9텐초(天長) 6준나(淳和)831.9텐초 8준나
9회849.9카쇼(嘉祥) 2닌묘(仁明)851.9닌주(仁寿) 1몬토쿠(文德)
10회868.9조간(貞観) 10세이와(清和)870.9조간 12세이와
11회886.9닌나(仁和) 2코코(光孝)889.10칸표(寛平) 1우다(宇多)
12회905.9엔기(延喜) 5다이고(醍醐)907엔기 7다이고
13회924.9엔초(延長) 2926.9엔초 4
14회943.9텐교(天慶) 6스자쿠(朱雀)945.12텐교 8스자쿠
15회962.9오와(応和) 2무라카미(村上)964.9코호(康保) 1무라카미
16회981.9.17텐겐(天元) 4엔유(円融)983.9에이간(永観) 1엔유
17회1000.9.16초호(長保) 2이치조(一条)1002.9초호 4이치조
18회1019.9.17칸닌(寛仁) 3고이치조(後一条)1021.9.16지안(治安) 1고이치조
19회1038.9.16초랴쿠(長暦) 2고스자쿠(後朱雀)1040.9.15초큐(長久) 1고스자쿠
20회1057.9텐기(天喜) 5고레이제이(後冷泉)
1059.9코헤이(康平) 2고레이제이
21회1076조호(承保) 3시라카와(白河)1078조랴쿠(承暦) 2시라카와
22회1095.9카호(嘉保) 2호리카와(堀河)1097.9조토쿠(承徳) 1호리카와
23회1114.9.16에이큐(永久) 2도바(鳥羽)1116.9에이큐 4도바
24회1133.9.16초쇼(長承) 2스토쿠(崇徳)1135.9호엔(保延) 1스토쿠
25회1152.9닌페이(仁平) 2코노에(近衛)1154.9큐주(久寿) 1코노에
[16]1169카오(嘉応) 1타카쿠라(高倉)
26회1171조안(承安) 11173조안 3타카쿠라
27회1190.9.16켄큐(建久) 1고토바(後鳥羽)1192.9켄큐 3고토바
28회1209.9.16조겐(承元) 3츠치미카도(土御門)1211.9켄랴쿠(建暦) 1준토쿠(順徳)
29회1228.9.16안테이(安貞) 2고호리카와(後堀河)1230칸키(寛喜) 2고호리카와
30회1247.9.16호지(宝治) 1고후카쿠사(後深草)1249.9.26켄초(建長) 1고후카쿠사
31회1266.9.16분에이(文永) 3카메야마(亀山)1268.9.15분에이 5카메야마
32회1285.9.16코안(弘安) 8고우다(後宇多)1287.9.18코안 10고우다
33회1304.12.22카겐(嘉元) 2고니조(後二条)1306.12.20토쿠지(徳治) 1고니조
34회1323.9.16겐코(元亨) 3고다이고(後醍醐)1325.9.16쇼추(正中) 2고다이고
35회1343.12.28코코쿠(興国) 4고무라카미(後村上)1345.12.27코코쿠 6고무라카미
36회1364.2.16쇼헤이(天平) 191380.9.8텐주(天授) 6고카메야마
37회1391.12.20겐추(元中) 8고카메야마(後亀山)1400.2.28오에이(応永) 7고코마츠
38회1411.12오에이 18고코마츠(後小松)1419.12.21오에이 26쇼코(称光)
39회1431.12.20에이쿄(永享) 3고하나조노(後花園)1434.9.23에이쿄 6고하나조노
40회1462.12.27칸쇼(寛正) 31563.9.23에이로쿠(永禄) 6오기마치
41회1585.10.13텐쇼(天正) 13오기마치(正親町)1585.10.15텐쇼 13
42회1600.9.21케이초(慶長) 14고요제이(後陽成)1600.9.27케이초 14고요제이
43회1629.9.21칸에이(寛永) 6고미즈노오(後水尾)1629.9.23칸에이 6고미즈노오
44회1649.9.25케이안(慶安) 2고코묘(後光明)1649.9.27케이안 2고코묘
[17]1659.11.25만지(万治) 2고사이(後西)
45회1669.9.26칸분(寛文) 9레이겐(霊元)1669.9.28칸분 9레이겐
[18]1683.3.10텐나(天和) 3
46회1689.9.10겐로쿠(元禄) 2히가시야마(東山)1689.9.13겐로쿠 2히가시야마
47회1709.9.2호에이(宝永) 6나카미카도(中御門)1709.9.5호에이 6나카미카도
48회1729.9.3쿄호(享保) 141709.9.6쿄호 14
49회1749.9.1칸엔(寛延) 2모모조노(桃園)1749.9.4칸엔 2모모조노
50회1769.9.3메이와(明和) 6고사쿠라마치(後桜町)1769.9.6메이와 6고사쿠라마치
51회1789.9.1칸세이(寛政) 1고카쿠(光格)1789.9.1칸세이 1고카쿠
52회1809.10.16분카(文化) 61809.10.16분카 6
53회1829.9.2분세이(文政) 12닌코(仁孝)1829.10.16분세이 12닌코
54회1849.9.2카에이(嘉永) 2코메이(孝明)1849.9.5카에이 2코메이
55회1869.9.4메이지(明治) 2메이지1869.9.7메이지 2메이지
56회1889.10.2메이지 221889.10.5메이지 22
[19]1900.10.2메이지 33
57회1909.10.2메이지 421909.10.5메이지 42
58회1929.10.2쇼와(昭和) 4쇼와1929.10.5쇼와 4쇼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59회 식년천궁 연기
59회1953.10.2쇼와 28쇼와 1953.10.5쇼와 28쇼와
60회1973.10.2쇼와 481973.10.5쇼와 48
61회1993.10.2헤이세이(平成) 5아키히토1993.10.5헤이세이 5아키히토
62회2013.10.2헤이세이 252013.10.5헤이세이 25

4 대중문화 속의 이세신궁

많은 일본 대중매체에서 간간히 이름을 언급하거나 배경으로 빌리고 있다.

X(CLAMP)키슈 아라시가 이 이세신궁의 무녀라는 설정으로 나온 바 있고, 또 이세 시가 배경으로 등장하는 라이트노벨 반쪽 달이 떠오르는 하늘에서도 등장한다.

5 관광시 주의할 점

야스쿠니 신사같이 침략과 연관된 것은 아니지만 이곳 내궁에서 모시는 신이 일본 덴노가의 중심적인 신이기 때문에, 일본 극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성지들 중 하나로 여긴다. 그렇지만 이곳에서 참배한다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동급으로 봐서는 무리. 야스쿠니 신사판데모니엄정도는 아닐 뿐더러 한국 관광객들이 반드시 한번은 들린다는 도쿄의 메이지 신같이 조금이라도 한국인이 꺼릴만한 역사가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따지면 오사카 성이 더 문제지

가기가 쉽지는 않다. 이세신궁이 위치한 곳은 미에 현에서도 동쪽 끝자락이라서 오사카나고야에서 멀다. 하지만 이세신궁은 일본인들이 평생 한번은 가보고싶어하는 곳으로 꼽는다. 그정도로 굉장히 가치가 있는 곳인데, 기회가 있으면 꼭 가보는걸 추천한다. 나고야와 오사카 같은 대도시에서 접근성이 매우 좋고, 시간상으로 대략 1시간 30분~2시간정도면 갈 수 있다. 물론 이것이 꽤 시간이 드는 것 이기 때문에 보통은 킨테츠 레일패스를 끊고 토바와 묶어서 여행하거나 더 넓혀서 미에현을 여행하기도 한다.

단, 칸사이(즉, 오사카, 교토, 나라 등을 중심으로 하는 여행)나 나고야권을 중심으로 돌아다니는 여행을 가면서 이곳만 들르는 것은 추천하기가 어렵다. 아무리 빨리 이동한다고 해도 적게는 왕복 3시간 길게는 왕복 5시간은 잡아야 하고, 스룻토 간사이 패스 같은 각종 칸사이나 나고야권에서 쓰는 패스의 통용 구간을 넘어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여기까지 오려면 얄짤없이 추가요금을 내야 한다. 킨테츠에서 발행하는 패스라면 추가요금 없이 올 수 있지만, 간사이나 나고야권 여행이라면 다른 패스에 비해 메리트가 없는 경우가 많다.

  1. 다만 신사본청의 종교법인으로서의 사무실은 도쿄 시부야에 위치하고 있다.
  2. 덴노의 딸과 손녀까지는 내친왕(內親王), 증손녀부터는 여왕(女王)이라 한다(남자는 친왕/왕). 1947년에 오늘날의 일본 황실전범이 정해지기 전에는 고손녀까지를 내친왕, 5대째 손녀부터 여왕이라고 했다.
  3. 후사코의 손녀 기타시라카와 하츠코(北白川肇子)는 1939년에 출생한 직후부터 황태자비 후보로 물망에 올랐는데, 평민 쇼다 미치코에게 밀려 탈락하고 고준황후(나가코)의 외가인 시마즈(島津) 가문으로 시집갔다. 때문에 아키히토 황태자와 쇼다 미치코가 결혼식 전 이세신궁을 참배하러 왔을 때, 후사코는 쇼다 미치코를 홀대하였다고.
  4. 야마토노오쿠니타마는 다른 곳에 따로 모시도록 하였다.
  5. 일본 신화나 고대 민속에서 말하는, 바다 건너편에 있다는 낙원, 이상향을 가리킨다. 신화에서 흔히 보이는 타계(他界)의 한 종류다. 일본의 민속에서는 타계를 흔히 산 속이나, 혹은 바다 너머에 있다고 상상한 반면, 궁중에서는 천상계에 타계가 있다고 믿었다. 타카마가하라야말로 야마토 조정의 궁중에서 믿었던 천상계 타계이다.
  6. 이세를 현세와 타계의 중간쯤에 위치한 곳, 타계에 가까운 곳으로 보는 것이다. 이 문맥에서는 이세를 도코요라는 '해상 타계'와 가까운 곳이라고 하는데, 아마테라스는 천상 타계인 타카마가하라의 군주다. 이 부분은 야마토 조정의 포섭 이전부터 존재했던 민간신앙의 성소를 야마토 조정이 포섭하려 한 역사가 신화에 남았다고 볼 수 있다. 야마토 조정의 포섭 이전에는 바다 건너편에서 이세로 신이 건너왔으므로, 그곳에 종교시설을 세웠다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7. 정확히는 지금의 내궁
  8. 지금의 교토 북부
  9. 곡령신(穀靈神), 즉 곡식의 신으로 그 중에서도 벼의 신이다. 따라서 벼농사 하는 농민에게 특히 숭배받았다. 기록에 따라 남신인지 여신인지 서로 말이 다르다.
  10. 아마테라스는 곡신의 신 보고 내 밥순이가 되라고 명령한 것이다.
  11. 다른 학설에서는 원래 이세의 토착 태양신을 모신 곳이었는데, 야마토 조정의 태양신인 아마테라스와 습합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12. 물론 아예 무에서 창작됐다는 소리가 아니다. 오래된 신화소는 분명히 존재했다. 하지만 그런 신화소를 끼워 맞추고 정치신화로 구성, 완성했다는 소리다. 또한 이런 과정에서 지토 덴노 본인은 물론 후지와라 가문의 고위층이 협력했으리라는 정황이 있다. 지토 덴노여자 덴노로, 선왕인 40대 덴무 덴노의 아내였다.
  13. 물론 오쿠 황녀의 행동은 자기 오빠를 죽인 지토 덴노에 대한 반발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세 신궁이 지토 덴노 이전까지만 해도 아마테라스의 전통적인 성소가 아니었기 때문에, 전통이 아님을 핑계로 오쿠 황녀는 이세 신궁에 들어가기를 거부하고, 정말 최소한의 경우에만 마지못해 이세 신궁에 들어가 제례를 거행하곤 되돌아가기를 반복하였다.
  14. 고토 오사무(도쿄대학 공학원대학 교수) 저, <일본건축사> 참조.
  15. 내궁 정전이 소실되어 임시로 천궁함.
  16. 내궁 정전이 소실되어 임시로 천궁함.
  17. 내궁 정전이 소실되어 임시로 천궁함.
  18. 내궁 정전이 소실되어 임시로 천궁함.
  19. 내궁 정전이 소실되어 임시로 천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