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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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晶來
1899년 ~ 1989년 7월 28일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1899년 한성부 종로에서 태어났다. 경성부 사립 중앙학교, 이후 일본 도쿄 세이소쿠가쿠엔 고등학교, 와세다대학 전문부 정치경제학과, 경도제국대학 경제학부를 졸업, 수료하였다.

이후 귀국하여 동광당서점주식회사를 경영하였다.

1945년 8.15 광복우익 정당한국민주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민주당 후보로 전라남도 보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대한독립촉성국민회 김낙오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김성복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5년 민주당 창당에 참여하고 재정부장을 역임하였다. 이후 민주당에서 구파에 속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이승만 정권의 악질 부정선거닭죽 사건으로 인하여 자유당 안용백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닭죽 사건으로 인해 1959년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도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황성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12월 구파 정치인들과 민주당을 탈당하여 신민당을 창당하였다. 이듬해 5월 신민당 전라남도당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정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신민당 공천에서 탈락하였으나 대신 공천받은 전국구 국회의원 이중재를 지원하였다.

1970년 말 김대중제7대 대통령 선거의 신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자 이에 반발하여 신민당을 탈당하고 윤보선 등과 국민당을 창당하였다. 그러나 1971년 3월경 다시 국민당을 탈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