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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鍾律
1941년 9월 26일 ~ 2008년 6월 2일
1941년 전라북도 남원군(현 남원시)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였는데, 박범진 등과 함께 학내써클 민족주의비교연구회를 조직하여 활동하다가 간첩 혐의로 기소되었다. 나중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동아일보 기자를 역임하다가 1978년 유신정우회 3기로 제10대 국회의원이 되었다.
1980년 국가보위입법회의에 속하여 법률을 입안하였다. 1981년 민주정의당 부대변인에 임명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이듬해인 1986년 대통령비서실 공보수석비서관 겸 청와대 대변인이 되어 전국구 의원직을 사퇴하였다. 1987년 7월 정무제1장관에 임명되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와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각각 민주정의당, 민주자유당 서초구 갑 지역구에 출마하였으나 모두 박찬종 후보에게 패하였다. 1993년 김영삼 정권이 출범하자 민정계 출신에 대한 배려와 문민시대 국회상 확립 차원에서 이광노의 후임 국회사무총장에 임명되어 3년간 역임하였다.
1998년 최병렬이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여 재보궐선거가 치러졌는데, 언론인 출신의 박원홍에게 공천에서 밀리자 무소속으로 서울특별시 서초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박원홍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에 공천 신청을 하였으나 탈락하자 남원시-순창군 지역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열린우리당 이강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