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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장 | ||||||
28대 우명규 | ← | 29대 최병렬 | → | 30대 조순 |
1 개요
대한민국의 언론인(기자), 정치인, 관료이다. 별명은 최틀러이다. 종교는 가톨릭(세례명 아우구스티노)이다.
1938년 경상남도 산청군에서 태어났다. 부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1959년 한국일보 기자로 있다가 1963년 조선일보로 옮겼다. 1980년 편집국장이 되었다. 1983년 조선일보 이사에 선임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하였다. 또한 민주정의당 정책연구소 정세분석실장을 지내면서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 후보가 당선되는 데 기여하였다.
1988년 2월 노태우 대통령이 취임할 무렵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에 임명되었다. 그러면서 5공 청산을 주도하여서 전두환 전 대통령 및 그의 측근들로부터 손 볼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 주었다. 같은 해 12월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되었다. 1990년 1월 초대 공보처(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공보처 장관 재임 중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선배인 윤세영 태영건설 창업주가 민영방송인 SBS를 개국할 수 있게 힘을 썼다는 평가가 있다. 같은 해 12월 노동부(현 고용노동부) 장관이 되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그리고 김영삼을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의 후보로 지지하였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후 서울특별시장을 지냈다.[1][2]그러나 임기 마지막 날에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겪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서초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새정치국민회의 고건 후보에게 밀려 낙선하였다[3].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강남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3년 박희태의 뒤를 이어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에 선출되었다. 그리고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때 탄핵소추안을 제출하여 가결시켰다.
이후 정계에서는 은퇴하였고 한나라당, 새누리당 상임고문으로 있다.
그의 아들 최희준은 TV조선 보도본부장이다. 조카 최재경 전 인천지검장은 2016년 10월 30일 신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으로 내정되었다.
2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 | 선거종류 | 소속정당 | 득표수(득표율) | 당선여부 | 비고 |
1985 |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전국구 34번) | 민주정의당 | - | 당선 | |
1988 |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전국구 10번) | 민주정의당 | - | 당선 | |
1992 |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전국구) | 민주자유당 | - | 당선 | |
1996 |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서초 갑) | 신한국당 | 40,191 (48.6%) | 당선 (1위) | 1998. 4. 29 의원직 사퇴 (서울시장 선거 출마) |
1998 |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 한나라당 | 1,512,854 (44.0%) | 낙선 (2위) | |
2000 |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강남 갑) | 한나라당 | 62,489 (56.5%) | 당선 (1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