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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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한민국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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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대 박태준33대 이한동34대 김석수


이한동(李漢東, 1934. 12. 05. ~ )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법조인(검사, 변호사), 정치인, 관료이다. 호는 운천(雲天)이다.

1934년 경기도 포천군에서 태어났다. 경복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이후 판사, 검사로 근무하였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민주정의당에 입당하였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기도 연천군-포천군-가평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총재비서실장, 사무총장을 역임하였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86년 원내총무에 임명되었다. 1987년 대한민국 국회 운영위원장이 되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경기도 연천군-포천군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정책위의장이 되었다. 또한 같은 해 12월부터 1989년 7월까지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창당되자 민자당 소속 정치인이 되었다. 민정당 출신이라 민정계 인사로 분류되기는 했으나, 민주계 인사들과도 적극적으로 교류하는 등 계파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정치 행보를 보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춘구의 국회부의장 사임으로 1995년부터 1996년까지 제14대 국회 후반기 국회부의장을 역임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7년 대선 신한국당 후보 경선에 출마하여 제법 세몰이를 했으나, 1차 투표에서 간발의 차이로 이인제에 밀린 3위를 차지하며 후보가 되지 못했다.[1]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이회창 총재 체제에 반기를 들고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였고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5월부터 6월까지 국무총리 서리를 역임하였다. 이후 2002년 7월까지 대한민국 국무총리를 역임하였다.

2002년 자유민주연합을 탈당하고 군소정당 하나로국민연합을 창당하여 제16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0.3%의 지지율을 기록하면서 낙선하였다. 이후 정계를 은퇴하고 법무법인 남명 대표변호사로 근무하다가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에 복당하여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였다.

2 선거 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선거종류소속정당득표수(득표율)당선여부비고
1981제11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제12선거구)[2]민주정의당48,877 (43.3%)당선 (1위)
1985제12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포천/연천/가평)민주정의당68,793 (55.0%)당선 (1위)
1988제13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포천/연천)민주정의당57,531 (64.5%)당선 (1위)
1992제14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포천/연천)민주자유당51,920 (57.9%)당선 (1위)
1996제15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연천/포천)신한국당52,048 (62.5%)당선 (1위)
2000제16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연천/포천)자유민주연합42,678 (53.0%)당선 (1위)2002년 탈당 후 복당
2002제16대 대통령 선거하나로국민연합74,027 (0.3%)낙선 (4위)
  1. 이인제 14.7%, 이한동 14.6%. 득표수 차이는 이인제 1774표, 이한동 1766표로 고작 8표차였다.
  2. 포천군, 연천군, 가평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