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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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군(漢四郡)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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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군
임둔군
(臨屯郡)
진번군
(眞番郡)
현도군
(玄菟郡)


중국의 전한 왕조가 위만조선을 1년여의 전쟁끝에 멸망시킨 뒤 위만조선이 차지한 옛땅에 설치한 군현들(한사군) 중의 하나이다. 위만조선 이전에는 고조선의 지배를 받지 않는 독립적인 세력이었다. 다른 군현들과 같이 기원전 108년에 설치됐으나 기원전 82년에 폐지되고 현도군의 일부가 되었으나 현도군이 고구려의 압박으로 서쪽으로 밀려난 후 낙랑군의 동부도위가 되었다. 그 와중에 임둔군 아래 지배를 받던 세력들이 독립해 나가 옥저, 동예 등이 되었다. 4백년 넘게 존속된 낙랑군과 비교하면 참으로 안습이라고 할 수 있다.

한서』 무제기(武帝紀) 원봉(元封) 3년조에 대하여 신질(臣瓆)이 인용한 『무릉서(武陵書)』에 따르면, 현은 총 15개가 존재했고, 치소는 동이현(東暆縣)이었다.

위치는 임둔군의 유적이 확실하지 않아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대략 진번군 서쪽인 현 함경남도 일대 또는 강원도 북부쪽으로 보는 것이 대세이다.

1997년에 중국의 랴오닝성에서 '임둔태수장' 봉니가 출토되었다. 봉니(封泥)란 문서를 봉인할때 진흙을 붙이고 그 위에 도장을 찍은 것을 말한다. 서양 중세를 다룬 영화에서 문서 두루마리에 촛농을 뭍히고, 그것이 굳기 전에 인장(반지겸용)으로 꾹 눌러 표시하는 것의 고대 버전이다.

이 봉니가 출토된 것 때문에 임둔군의 위치가 이쪽으로 밝혀졌고 따라서 기타 한군현과 고조선 위치까지도 다시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고 환빠들이 이에 부화뇌동한 일이 있었으나 그건 잘못 이해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낙랑군이 평양 지역에 존재했던 것이 확실한 상태에서 문헌들이 낙랑군의 동쪽에 임둔군이 있다고 하고 있고 또한 랴오닝성 쪽엔 요동군이 설치되어있던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데, 겨우 봉니 한두개 나왔다고 지금까지의 지명비정을 모두 갈아엎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단순히 출토된 수가 적어서가 아니라, 봉니라는 물건 자체가 문서를 보내는 쪽과 받는 쪽 양쪽 모두에게 다 남아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부산광역시 소인이 찍인 우편봉투가 광주광역시에서 발견된다고 해도 광주 = 부산이 될 수는 없는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