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任哲鎬
1905년 6월 12일 ~ 1990년 8월 19일
1905년 충청남도 부여군에서 태어났다. 일본 메이지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이후 귀국하여 일본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여 변호사가 되었다.
8.15 광복 후 이승만 대통령의 비서관이 되어 정계에 입문하였다. 1951년 한일회담 대표로 활동하였다. 1952년 자유당에서 중앙당 조직부장, 중앙위원회 의장 등을 역임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중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대한국민당 윤치영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5년 2월부터 같은 해 7월까지 농림부(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현역 국회의원 조남수와의 자유당 공천 경합에서 승리하였다. 그리하여 자유당 후보로 충청남도 부여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고 무소속 조남수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59년 신 국가보안법 파동으로 한희석이 국회부의장을 사임하자 같은 해부터 1960년까지 국회부의장을 역임하였다. 당시 이기붕의 측근으로 이기붕의 뒤를 이을 실세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4.19 혁명 이후 3.15 부정선거에 관여하였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고 수감되었다가 풀려났다. 1968년 국민복지회 사건의 여파로 김종필이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여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충청남도 부여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김종필의 둘째 형인 민주공화당 김종익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정치와는 거리를 두었고, 1973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