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항목 : 축구 관련 인물
1993년생 부산 아이파크 소속 축구 선수에 대해서는 장현수(1993)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파일:/image/139/2014/02/05/SK004 20140205 132401 59 20140205193003.jpg | |
광저우 푸리 No.15 | |
장현수 (張賢秀(번체), 张贤秀(간체) / Jang Hyun-soo) | |
출생 | 1991년 9월 28일 |
국적 | 대한민국 |
출신지 | 서울특별시 |
포지션 |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
신체조건 | 187cm, 77kg |
학력 | 경희고-연세대 |
소속팀 | FC 도쿄(2012~2013) 광저우 푸리(2014~ ) |
국가대표 | 26경기 3골 |
1 클럽
연세대학교 재학 시절 U-20 대표팀인 이광종호에 선발되어 황도연과 짝을 이뤄 중앙 수비수를 보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이 때의 활약을 바탕으로 J리그 스카우터들의 눈에 띄어 FC 도쿄로 입단했다. 이후 2013년까지 FC 도쿄 소속으로 뛴 후, 2014년 중국 광저우 푸리로 이적하였다. 계약기간은 4년이며 이적료는 280만 달러[1]이다.
2015년 성남 FC와의 AFC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 1차전에서 황의조를 막지 못하고 골을 허용하고 말았고, 이 때문에 화가 치솟은 탓인지 같은 팀의 박종우가 파울을 당하자 심판한테 대놓고 배치기를 시전했고, 이로 인해 다이렉트 레드 카드로 퇴장을 당하면서 그야말로 폭풍같이 까였다. 그러나 이 때 악연으로 엮였던 황의조와는 슈틸리케호에서 자주 만나고 있으니 인생사 새옹지마...그때 기분이 상했는지 미얀마전때 황의조가 얻어준 페널티킥을 날렸다[2]
2015년 7월, 광저우 푸리와의 5년 재계약이 성사되면서 2020년까지 광저우에 남게 되었다.
2 국가대표
2012 런던 올림픽에도 주전 홍정호가 부상으로 낙마하면서 주전 출전이 유력했으나 불의의 부상으로 대표팀에서 낙마했다. 이때문에 자신의 대타로 선발된 김기희땜빵의 땜방가 동메달 결정전에서 종료 직전 교체 출장해 4분 만에 전역하는 것을 TV로 지켜봐야만 했으나, 본인도 2년 후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 참가해 금메달을 따면서 병역 혜택을 얻었다.
성인 대표팀에는 최강희호 시기에 처음 선발되었다. 이란과의 월드컵 최종예선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는데 본 포지션이 아닌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왔음에도 무난하고 안정적인 경기력을 발휘하였다. 홍명보호에선 센터백으론 홍정호, 김영권에 밀리고 수비형 미드필더론 한국영에 밀려 중용되지 못했으나 슈틸리케호에선 수비형 미드필더와 센터백을 오가며 중용되고 있다.
2015년 AFC 아시안컵에서는 조별 2차전[3]까진 선발 출전했으나 조별 2차전에서 경고 1장을 받았고 3차전인 호주와의 경기에선 카드 트러블 우려[4]로 결장했고 이날 선발 출장한 곽태휘-김영권 조합이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후보로 밀려났다. 8강 우즈벡전과 4강 이라크전에는 모두 경기 후반 굳히기를 위해 교체해 들어왔고 결승전에선 박주호가 측면으로 이동하자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수비형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했다.
2015년 동아시안컵에는 주전 수비형 미드필더로 3경기 모두 선발 출전했고 대회 최우수선수에 선정되었다.
2015년 9월 월드컵 2차 예선 라오스전에는 특이하게도 오른쪽 풀백으로 출전하여 팀의 8:0 승리에 힘을 보탰다. 뒤이은 레바논전에서도 오른쪽 풀백으로 출전해 패널티 킥으로 선제결승골을 기록했다. 2차 예선 7차전인 미얀마전 역시 오른쪽 풀백으로 선발 출전했다. 전반 23분 황의조가 얻어낸 PK를 실축했으나, 후반 36분 세트피스 상황에서 헤딩으로 팀의 세 번째 골을 기록하며 PK 실축을 만회했다.
2016 리우 올림픽에는 석현준, 손흥민과 함께 와일드카드로 선발되었다. 이에 대해 병역 면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와일드카드로 발탁된 것에 대해 의아해하는 팬들이 많았는데, 해답은 간단하다. 2012 런던 올림픽과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각각 동메달과 금메달을 석권함에 따라 해당 나이대의 주축 수비수들[5]이 전부 면제를 따내면서 와일드카드 자원 수급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에 장현수가 다시 선택을 받게 된 것. 이후 신태용호의 주장으로도 선임되었다.
이후로는 주로 우측 풀백으로 경기에 출장하고 있는데... 평가는 영 좋지 않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 참조.
2.1 통산 국가대표 기록
2016년 6월 16일 기준
연령 | 출전 | 골 |
U - 17 | 0 | 0 |
U - 20 | 25 | 4 |
U - 23 | 15 | 3 |
A 대표 | 26 | 3 |
종합기록 | 66 | 10 |
3 플레이 스타일
멀티플레이어로 중앙 수비수와 수비형 미드필더, 오른쪽 측면 수비수까지 소화할 수 있다. 발 밑에서 공을 다루는 기술과 정교한 롱패스를 바탕으로 한 빌드업 능력이 특히 좋으며, 게다가 슈팅 능력과 담력도 수준급이라 수비수임에도 페널티킥을 전담하고 있으며, 실제로도 지금까지 A매치에서 넣은 3골 중 2골이 페널티킥으로 넣은 골이다. 거기에 장신임에도 발이 빨라서 커버 플레이도 수준급. 다만 장신임에도 점프력이나 경합 능력이 평범해서 공중볼에 약점을 보이며, 그리고 지연 수비를 해야 할 상황에서 무리하게 공격 수비를 해 위험을 초래하는 일도 있다.
3.1 풀백으로 기용되는 이유?
위에서는 멀티플레이어라고 설명했지만, 장현수의 주 포지션은 사실상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다. 그런데 슈틸리케 취임 후 갑작스럽게 우측 풀백으로 기용되었고, 풀백으로 기용된 경기마다 영 좋지 않은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논란의 중심에 서고 있는데, 2016년 가을 그에 얽힌 비화가 밝혀졌다. 바로 슈틸리케 감독의 일방적인 요청으로 풀백을 떠맡게 된 것. # 즉 감독의 가당치도 않은 고집으로 맞지도 않는 포지션을 떠맡게 된 셈이니 장현수 입장에서는 억울한 부분이 적잖게 있는 셈이다.[6] 거기에 상대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국가대표팀의 감독이니 잘못 대응했다가 밉보이면 경기에 뛰지도 못할 확률이 높기에 참고 뛰었다가 이렇게 된 것.[7]
또한 장현수를 풀백으로 전환시키는 과정에서 특정 선수를 보고 배우라며 롤 모델을 제시해줬는데, 그 선수가 다름아닌 세계 최정상급 라이트백으로 손꼽히는 다니 아우베스다 (...) 게다가 대인 마크와 후방 빌드업 등의 수비적인 면이 장점인 장현수와 달리, 다니 아우베스는 측면을 돌파하며 크로스를 제공해주는 상당히 공격적인 윙백 성향이기 때문에 장현수와는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다. 즉, 애시당초 그를 단기간에 보고 배운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무리가 따르는 일이다. 결정적으로 장현수 본인도 자신이 왜 풀백으로 나서는지 모르겠다고 속마음을 털어놨던 적이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풀백으로 기용한다는 것은 선수에 대한 배려심이 없다는 얘기 또한 될 수 있다. 결국 슈틸리케 본인의 고집이 바뀌지 않는 이상, 장현수의 풀백 기용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 한화로 약 29억 원.
- ↑ 사실 소속 팀에서 충돌하더라도 국가대표에서는 자국의 대표로 함께 뛴다는 자부심과 동질감이 상당히 크기 때문에 국가대표팀에서까지 서로의 사이가 좋지 않을 가능성은 낮다. 대표적인 예로 서로 같은 리그에서 치고받는 선수들이 대부분임에도 국대 소집만 되면 또 하나의 팀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을 들 수 있다.
애초에 국가대표에서도 서로 으르렁 거리면 그냥 그 나라 대표팀은 망한 거다애초에 둘이 충돌해서 싸운 것도 아니다.2014년 월드컵에서 동료끼리 싸운 카메룬 대표팀을 생각하면 된다. - ↑ 조별 2차전에서 김영권(커맨더)-장현수(파이터) 조합으로 선발출전했다. 이 경기에서 뭔가 손발이 안맞는 모습을 보였지만 무실점으로 1:0 승리를 지켰다. 자세한 거 해당 항목 참고.
- ↑ 2차전에서 이미 1장 받았는데 3차전(호주전)에서 또 1장 받았다면 8강전에서 경고누적으로 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 ↑ 2012년 김창수&김영권&김기희&황석호&오재석&윤석영, 2014년 장현수&최성근&곽해성&김진수&이주영&김민혁&임창우.
- ↑ 비슷한 예로 조광래 시절 감독의 포지션 파괴로 줄곧 레프트백에서 뛰었다가 비판을 받았던 김영권이 있다.
- ↑ 참고로 장현수를 풀백으로 기용하는 감독은 슈틸리케가 유일하며, 소속팀인 광저우 푸리의 드라간 스토이코비치 감독과 청소년 대표팀에서 장현수를 지도했던 故 이광종 감독과 신태용 감독 또한 장현수를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로 주로 기용했지 풀백으로는 기용하지 않는다. 즉 감독의 고집이 선수를 망친 셈.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장현수(1993)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div></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