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차 이제르론 공방전

1 개요

第11次イゼルローン攻防戦

은하영웅전설의 전투. U.C 801년, N.C 3년에 일어난 전투이다. 소설 10권 <낙일편>에 서술된다. 이제르론 공화정부가 성립된 이래 은하제국군과 벌인 최초의 교전이다.

2 배경

신영토 반란사건에서 이제르론 공화정부가 신영토 총독 오스카 폰 로이엔탈의 협력 제의를 거부하고 은하제국에 협조하면서 형성된 해빙 무드 덕분에 양 세력은 잠시나마 평화공존 관계를 수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주력 801년, 신 제국력 3년에 접어들어 이 관계는 완전히 붕괴하고 말았다. 정초부터 구 동맹령의 물류망이 교란당해 물자 기근 상황이 벌어지자 행성 하이네센을 비롯한 구 동맹령에서 대규모 폭동이 발생했고, 페잔의 항로국이 해킹당하여 항로 데이터가 싸그리 삭제당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사건의 배후에는 아드리안 루빈스키가 있었는데, 제국 정부에서는 이참에 구 동맹령의 지배체계를 공고히 하고 이제르론 공화정부를 토벌하여 사회의 안정을 꾀해야 된다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한편 이제르론 공화정부 측에서는 그동안 하이네센을 비롯한 구 동맹령에서 타진하는 구원요청을 못 들은 척 방관하고 있었으나, 상황이 점점 급변하고 동맹령에서도 이제르론 공화정부에 대해 "언제까지 그 따위로 살 텐가?"란 식의 빈정거리는 반응이 흘러나오자 슬슬 대외활동을 할 시기가 됐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다만 제국군과 일전을 벌여 승리할 가능성이 있는가에 대한 문제로 주저하고 있었는데, 이제르론 공화정부군 사령관 율리안 민츠가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율리안 민츠는 제국군과 전면대결은 불가능하지만 구 동맹령에서 폭동을 진압하고 치안유지활동을 하고 있던 아우구스트 자무엘 바렌 상급대장을 유인하여 격파하는 계획을 제시하였고, 작전 준비에 착수하면서 양 세력 사이에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3 경과

가뜩이나 구 동맹령의 혼란으로 정신없는 와중에 이제르론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반응을 보이자 제국정부에서도 즉각 반응을 보였다. 우선 봐렌에게 구원군을 파견하고 그림자의 성채 주변에 함대를 집결시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게 하였다. 한편 바렌은 하이네센과 이제르론 요새의 중간 위치에 함대를 배치시켜 구 동맹령에서 발생한 소요사태를 진압하고 동시에 이제르론 공화정부군을 견제하려 하였다. 당시 바렌이 지휘하는 함대는 1만 5,600척이었고, 이제르론 공화정부군의 규모는 그에 비해 적었기 때문에 충분히 대비가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하지만 2월 7일 율리안 민츠가 이끄는 6,600척의 이제르론 공화정부군은 구 동맹령이 아닌 제국본토쪽으로 진격을 시작하여 바렌과 참모장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별다른 전략적 가치가 없는 진격이었기 때문에 바렌은 양동작전으로 생각하였다. 그렇다고 이제르론 공화정부군을 내버려둘 수는 없었기에 함대를 이제르론 회랑까지 진출하여 배후에 위협을 가하기로 결정하고 2월 8일 함대를 출격시켰다.

3.1 전투 개시

제국 본토 방면에는 바겐자일 대장이 지휘하는 8,500척의 함대가 이제르론 공화정부군을 맞이하였다.. 2월 12일 4시 20분 대치상태에 돌입한 양군은 4시 53분부터 교전에 돌입하였다. 일단 이제르론군의 방침은 요새 주포 토르해머의 사정권으로 끌어들여 제국군을 이격에 관광태우는 것이었고, 제국군도 이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급적 사정권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양군 사이의 거리가 적당히 벌어지자 제국군은 더이상 공세를 펼치지 않았고, 이제르론군은 물러난 위치에서 방어태세를 취하였으나 제국군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5시 40분 율리안 민츠는 후퇴를 지시하여 후방의 본진으로 귀환하기 시작했다.

6시 30분, 조용히 뒤로 물러나는 이제르론군의 행동에 자극받은 제국군이 무질서한 추격을 시작하였다. 한편 올리비에 포플란이 지휘하는 항공전대도 이 무렵 함대에 복귀하였는데, 스파르타니안 240기중 16기를 상실하는 동안 제국군 발퀴레 104기를 작살내는 우월한 교환비를 기록하면서 그 실력을 과시하였으며, 이 전투에서 포플란은 250번째 격추기록을 세웠다.

한편 바겐자일 대장은 제국군의 무질서한 추격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으나 이제르론군 후방에 바짝 붙어서 병행추격을 하면 주포를 발사하지 못할 것이라 판단하여 오히려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하였다. 하지만 이런 바겐자일의 의도와는 달리 토르해머 사정권에 완벽하게 끌려들어갔고 바겐자일은 그제서야 식겁하여 황급히 후퇴명령을 내렸다.

이 무렵 바렌 함대가 전투현장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이제르론 요새 주포 사정거리에 휘말려 들어가면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바겐자일을 죽게 내버려둘 수 없었기 때문에 위험장소에 머무르면서 지원에 나섰다. 그리고 요새 주포가 에너지 충전하는 사이에 이제르론 요새로 돌진하기 위해 잠시 주포의 사각지대로 함대를 물렸는데 이를 계산하고 매복해 있던 빌리바르트 요아힘 폰 메르카츠의 공격을 받고 사각지대 진입에 실패하였다. 더불어 이제르론군의 공세에 밀려 함렬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결국 요새주포 정면에 그대로 노출된 상황이 되었다.

20시 15분 기다리고 있던 발터 폰 쇤코프 중장이 요새주포 발사를 명령하였고 바렌 함대는 큰 타격을 입었다. 이어서 2차 포격이 이루어지고 제국군은 이 포격에 결정타를 먹고 모랄빵전의가 꺾였다. 결국 20시 45분 바렌은 바겐자일이 무사히 이탈한 것을 확인하고, 토르해머의 공포에 넋이 나간 장병들을 수습하여 함대 질서를 회복한다음 이제르론 회랑에서 이탈하였다.

21시 40분 제국군이 완전히 전장에서 철수한 것을 확인한 율리안 민츠는 이제르론 요새로 철수하였다.

4 이후 이야기

이제르론 공화정부군에서는 "황제의 정강이를 걷어차 줬다"며 이 전투의 승리를 평가하고 자축하였다. 어쨌든 양 웬리 사후 처음으로 민주공화주의 세력이 제국군을 꺾은 전투였다. 여기에 바그다슈보리스 코네프 등이 이 승전보를 프로파간다 삼아 반제국 세력의 사기를 끌어올리려 하였다.

바렌의 패배를 보고받은 황제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이 친정을 선언하였으나 공교롭게도 발열이 일어나는 바람에 잠시 연기하게 되었다. 대신 하이네센에서 사전 정지작업을 목적으로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을 대리인으로 파견하였는데 배배꼬인슈타인이 오베르슈타인의 풀베기를 단행하고 라그풀 교도소 폭동사건이 터지면서 오히려 혼란이 가중됐다.

발터 폰 쇤코프 중장은 다른 장소에서 아텐보로, 포플란과 함께 하이네센 탈환작전이 시작될꺼라고 예측했지만 결국 그 작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후 시바 성역 회전에서 제국군과 화평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양 웬리 사후 의문 부호가 따라붙던 율리안 민츠의 실력이 드러난 전투이다. 작전 자체는 양 웬리에게 어깨너머로 배운 것들을 짜맞춰 수립한 것으로 바렌의 도착시점을 미리 계산하여 그에 맞춰 바겐자일 함대를 도발하였고, 바렌 함대의 위치를 시시각각 보고를 받으면서 제국군을 이제르론 요새로 유인하였다. 그 결과 바렌은 토르해머 사정권에서 위기에 봉착한 바겐자일 함대를 내버려둘 수 없었고, 바렌이 이동할 것으로 예측된 사각지대에 메르카츠가 매복하고 기다리고 있었던 덕분에 결국 바렌 본인이 토르해머 사정권으로 끌려내게 되었고 주포에 정통으로 얻어맞는 상황을 연출했다. 역시 엄친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