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개요
제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에 의해 자동화와 연결성이 극대화되는 산업환경의 변화를 의미한다. 2016년 1월 20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처음 언급된 개념이다. 학자에 따라 제시하는 키워드는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기계 학습과 인공지능의 발달이 주요 수단으로 꼽힌다.
이번 경우에는 '산업 혁명'이라는 표현이 정말 잘 어울린다고 할 수 있는데, 18세기 산업 혁명과 비슷하거나 어쩌면 그 이상으로 인간의 생산 수단에 대한 엄청난 효율 증가가 예견되어 있기 때문이다. 과거 한 대의 기계가 수백 명의 노동자들을 대체했듯이 이번에는 프로그램 하나, 컴퓨터 한 대가 수백, 혹은 수십만 명의 전문 인력을 대체할 수 있게 된다.
국내에서는 관련 번역 도서가 간간히 들어오는 정도였으나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안철수, 유승민, 문재인을 중심으로 여러 대선주자들이 4차 산업혁명을 반복해서 언급하면서 인지도가 크게 올랐다. 그런데 그 대책이랍시고 내놓는 정책이 중소기업 육성, 아니면 여성의 사회 참여 증대 같은 것임을 보면 이 현상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는 의견도 있다. 특이하게도 후술 되어있듯 대선주자들의 공약과 행보들을 보면 되려 앞서 이야기를 던져놓은 안철수, 유승민, 문재인보다 이재명이 말하는 기본소득제나 노동 시간 감소등이 더욱 제4차 산업혁명에 유리하며 되려 4차 산업혁명으로 올 미래 중 더 밝은 미래로 이끌 수 있는 대책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이까지 계산한 것이 아닐 것이라는 의견도 있으나, 기본소득제는 기본적으로 대책으로 불리고 있으며 노동 시간 감소는 케인즈가 주장한바 있는 유서 깊은 주장인데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듯한 행적을보이고 있는 것을 보면 경제 규모와 복지외에 이까지 계산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고도의 빅픽쳐
국가가 국민의 기본 소득을 보장하려한 역사적 사례는 있었다. 로마의 제정 시기, 스페인의 전성기, 그리고 공산혁명. 그러나 모두 실패했다. 과연, 기본소득 보장이 4차 산업혁명의 열쇠일까? 위의 사례들 모두 나름의 혁신이 있었다.
제4차 산업혁명은 2017년 지금 현재진행형이며, 이미 사회 곳곳에 그 여파가 드러나고 있다. 현재 전 세계의 실업자 수는 약 10억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이미 꽤나 많은 일자리가 사라졌고, 앞으로는 더욱 그럴 것이다. 학자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전체 일자리의 80~99%가 소멸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러한 결론은 너무나 파괴적이어서, 가장 뛰어난 지성들조차도 미래를 예측하기 주저하게 만든다.
만약 우리가 현재의 경제 구조를 그대로 간직한 채로 이런 극단적인 노동 수요 감소를 맞이한다면, 그 결과는 전례 없이 끔찍한 대공황이 될 것이다. 반면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일자리의 90%가 없어졌을 때 10명 중 한두 명만 짧은 노동을 하고, 나머지 대부분의 시민들은 노동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인공지능이 제공해 주는 무제한적인 자원을 마음껏 향유하는 유토피아를 꿈꿀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상적인 미래는 현재의 경제 구조로는 절대 달성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지옥과 천국을 오가는 두 가지 극단적인 미래 중에서 우리는 어떤 길로 가게 될 것인지는 전 세계 지식인들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이며, 조금이라도 유토피아에 가까운 미래를 달성하기 위한 고심이 이어지고 있다.
TED 4차산업혁명 강의
2 극소수 거대기업에 의한 독점 시장 형성
이 현상은 이미 우리의 피부로 와닿고 있다. 구글, 아마존, 유튜브, 페이스북 등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쉽다. 네트워크 효과 가 존재하는 모든 시장에서 이런 현상이 발생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 추세는 계속될 것이다.
사실 자본주의 이론의 기초를 놓은 아담 스미스 등 초기 이론가들과 미국의 트러스트 해체 등 독점을 무너뜨리려 한 시어도어 루스벨트 등의 혁신주의자들이 그토록 경계했던 독점이 기반이 된다.
네트워크 효과는 제4차 산업혁명의 키워드 중 하나로써, 이용자 수가 많아질수록 해당 플랫폼의 효용과 효율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지금 페이스북보다 훨씬 뛰어난 SNS 서비스를 개발해서 시판했다고 하자. 당신의 서비스가 페이스북보다 모든 면에서 낫다고 할지라도, 특별한 계기가 없는 이상 사람들은 계속 페이스북을 이용할 것이다. 왜냐하면 페이스북은 이미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고, 페이스북의 효용은 이용자 수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효과는 반드시 강한 독점력과 높은 진입장벽을 동반하며, 이는 그 시장이 극소수, 혹은 단 하나의 거대 기업에 의해 독점되도록 만든다.
그리고 많은 사용자를 확보한 측은 운영 면에서도 압도적인 우위를 가진다. 열 배로 많은 사용자를 확보했다고 해서 열 배로 높은 관리비가 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들은 경쟁사보다 더 낮은 이윤율로 소비자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이는 후발 주자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거대한 장벽을 형성한다. 예를 들어, 세계 최대의 동영상 제공업체 유튜브는 단 5초만 기다리면 광고를 스킵할 수 있다. 반면 네이버 동영상은 길고 짜증나는 광고로 악명이 높은데, 사용자 수가 적은 네이버는 5초의 광고로는 도저히 이윤을 챙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더 많은 사람들이 유튜브로 유출되도록 만들고, 다시 광고 시간을 늘리게 되는 치명적인 악순환의 고리를 이룬다. 네이버 뿐만 아니라 모든 우리나라의 동영상 제공 업체들이 같은 길을 걸었다.
또한 더 많은 사용자를 확보했다는 것은, 고객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가졌다는 것을 말한다. 많은 정보를 가진 기업은 기계학습을 이용해 모든 사용자들에게 더 정확한 맞춤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유튜브의 추천 동영상, 스팀의 맞춤 대기열, 아마존의 맞춤 도서 추천 등이 좋은 예시. 우리가 유튜브의 모든 동영상, 스팀의 모든 게임, 아마존의 모든 책을 일일히 살펴보고 결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것은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내며, 독점 기업의 독점력을 더 굳건하게 만들어 준다.
네트워크 효과가 있는 시장에서 독과점이 발생하는 것은 효율성 측면에서 좋은 일이다. 100개의 네이버 동영상이 있는 세상보단 1개의 유튜브가 있는 세상이 사용자 입장에서도 기업의 입장에서도 좋다. 다만 지금은 효율적인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극소수의 기업이 더 적은 인력으로 효율적으로 시장의 요구를 해결해 버리니, 새로 고용되는 숫자보다는 망해나가는 기업에서 해고되는 사람의 노동자의 숫자가 훨씬 많을 수밖에 없다.
만약 구글에 취직한 한 사람이 자신에 의해 해고된 열 사람의 노동자에게 월급을 나눠준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열 사람이 뼈빠지게 일하는 것보다는, 한 사람만 일하고 나머지 아홉 사람은 놀고먹는 것이 훨씬 나은 결말이다. 하지만 현재의 경제 체제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으니 문제가 되는 것.
3 인공지능에 의한 인간의 대체
이 동영상에 설명이 꽤나 잘 되어 있으니 시청해 볼 것을 권한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으로 우리는 물리력을 사용하는 일의 대부분을 기계에게 빼앗겼다. 당연히 일자리의 극단적인 감소가 있었고, 노동의 공급이 수요를 한참 초과하니 실업자가 거리에 넘쳐났고, 그나마 직장을 구한 사람들도 극단적인 저임금에 시달려야 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이러한 현상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는데, 이어진 기술의 발전에서 꽤 많은 노동자들을 흡수할 수 있는 다른 일거리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은행원, 의사, 프로그래머, 상담원 같은 직업들 말이다. 비록 충분한 양은 아니었지만, 노동 시장에 남아 있는 약간의 불균형은 복지 정책을 포함한 이러저러한 정부 대책으로 그럭저럭 커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부터 펼쳐질 제4차 산업 혁명에서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이 기계와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것이라는 것이 대부분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특히, 인간이 두뇌를 써서 수행하는 일의 대부분이 장기적으로 인공지능에게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 컴퓨터의 유지비는 인간 노동자와 비교할 수 없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기계 지성이 인간을 완전히 능가하는 시점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크게 불일치한다. 하지만 언젠가 이런 순간이 올 것이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컴퓨터는 할 수 없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다음의 두 가지 방법으로 증명할 수 있다.
1.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연산은 'and', 'or', 'not' 연산만으로 치환될 수 있음을 보였다.[1] 당연하지만 컴퓨터는 and, or, not을 계산할 수 있고, 따라서 컴퓨터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연산을 수행할 수 있다. 여기서 '연산'이라고 하는 것은 바둑, 체스, 작문, 번역, 작곡, 소설 쓰기, 영화 만들기, 잡담하기, 판결, 운전, 상담, 과학 연구, 그리고 더 나은 인공지능을 만드는 일까지, 우리의 두뇌가 수행할 수 있는 모든 작업과 그 이상을 포함한다.
2. 우리가 어떤 사람의 뇌를 아주 정밀하게 관측하여, 그 사람의 뇌세포 하나하나의 연결과 연결 강도를 알아내 컴퓨터로 똑같이 시뮬레이션한다고 하자. 이 작업은 아주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으며, 실제로 뉴런의 수가 적은 편모동물이나 작은 곤충에 대해서는 이 작업이 실험실에서 여러 차례 성공한 바가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프로그램은 그 사람의 생각을 정확하게 시뮬레이션할 것이며,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작업은 이 프로그램을을 통해서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무진장 비효율적인 방법이지만, 컴퓨터가 인간이 할 수 있는 어떤 작업을 수행하는 데에 근본적인 장벽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성을 완벽하게 대체하기 위해서는 꽤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물론, 레이 커즈와일처럼 강인공지능의 출현이 임박했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인간을 부분적으로 대체하고, 일자리의 대부분을 소멸시키는 것은 우리의 바로 앞에 닥친 현실이다.
4 몇 가지 사례
장기적인 관점에서 '절대로 기계나 인공지능에게 대체되지 않을 분야'라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도 좋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변화를 코 앞에 두고 있는 분야들이 있다. 많은 경우 인간 노동자가 해당 분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지만, 파격적인 노동 인구의 감소가 여러 곳에서 예고되고 있다.
- 자율주행 자동차가 인간 운전자와 동급 혹은 그 이상의 신뢰성을 얻는 순간, 택시, 버스, 고속버스, 화물차 운전수를 포함해 운전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던 전 세계 수억 명의 노동자들이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것이다. 자율주행자동차의 성능이 그리 좋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더라도 인간 운전수에게는 희망이 별로 없는데, 자율주행자동차의 유지비는 인간 운전자를 고용하는 비용보다 최소한 수백 배가 저렴할 것이기 때문이다. 당분간은 각 정부가 규제를 통해 이들의 일자리를 지켜 줄 가능성이 높지만, 장기적인 대책은 아니다. 특히 자율주행자동차가 본격적으로 상용화될 경우, 해킹이나 내부 오류, 천재 지변 등으로 인한 특수 상황이 아닌 이상, 인간 운전자처럼 주의집중력 저하, 피로 누적, 상황 오판단이 없고 그로 인한 이점으로 교통사고율이 매우 낮아질 것이기 때문에 상용화가 되면 장시간 운전을 요하는 곳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보급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철도에서 곳곳에서 자동 및 무인운전이 활발히 도입되고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사례인 서울도시철도공사 노선들의 경우 서울메트로와 코레일 노선 일부와는 달리 차장이 존재하지 않는다. ATO 덕분에 운전사 1인 승무가 가능[2]하며, 대부분의 경우 그 운전사도 버튼만 누른다[3].
- 의료 전문가 인공지능 왓슨은 현재 웬만한 전문의보다 더 정확한 진단을 내린다. 특히 고난도를 요구하고 체력소모가 비교적 심한 매우 장시간의 '외과 등'의 수술에서는 피로가 누적되어 집중력이 떨어지기 쉬운 의사보다 인공지능 수술 로봇이 압도적으로 유리할 수 밖에 없다. 가까운 미래에 의사 수의 현격한 감소가 예정되어 있으며, 현직 의사들도 시름이 매우 깊다. 의대생 등 예비 의료인들은 인공지능에 잠식당할 여지가 비교적 적은 성형외과 등에 몰리고 있는 상황.
- 변호사 등 문서 작업을 주로 하는 직종 역시 이미 알고리즘의 발전으로 많은 수가 줄어들었고, 앞으로도 더 줄어들 것이다. 과거 열 사람의 변호사가 수 주에 걸쳐 해야 했던 일을 잘 학습된 프로그램은 몇 분만에 해치울 수 있다. 물론 변호사라는 직종이 사라질 일은 없겠지만, 이미 이들의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고, 앞으로는 더욱 그럴 것이다.
- 은행 역시 핀테크의 발전으로 인원을 점점 줄여 나가는 추세이며, 더 많은 지점들이 문을 닫고 있다. '전산을 통해 할 수 없고 반드시 은행 직원을 거쳐야 하는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시중은행 중 지점을 늘리고 있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으며, 점차 신입사원 채용 숫자를 줄여 가면서 규모를 축소해 가고 있는 와중이다. 당연히 인사 정체 문제가 심각하고, 안에 있는 사람들은 과도한 경쟁으로 죽을 맛이다. 극단적인 경우, 아예 지점이 없는 은행도 해외에서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다.
- 50만 켤레의 신발을 만드는데 10명이면 충분한 아디다스 운동화 생산 공장. 이것때문에 과거에 최저가의 노동력을 찾아 떠돌던 생산시설이 물류비를 아끼기 위해 자국(소비국가)으로 돌아오고 있다.
아디다스 미래 공장 유튜브 영상
2017년 최고의 스타트업 기업으로 각광받는 로봇이 만드는 줌(zume) 피자
5 대책?
우리는 두 가지의 미래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하나는 영원히 끝나지 않은 끔찍한 대공황에 시달리면서 세계 인구의 대부분이 극빈층으로 전락하는 암울한 미래이고현 권력자들이 꿈꾸는 화려한 미래, 다른 하나는 인류가 노동에서 해방되어 모든 사람들이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무제한에 가까운 재화를 마음껏 누리는 장밋빛 미래다. 만약 우리가 현재의 경제 체제를 유지하고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탄 기차는 자연스럽게 끊어진 선로를 따라 지옥에 안착할 것이다. 우리는 이 파국을 피할 수 있을까? 우리는 토마스 모어와 소크라테스, 애덤 스미스와 케인즈, 그리고 마르크스가 꿈꾸던 유토피아에 도달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제4차 산업혁명에 대응할 수 있는 현실적이며 효과적인 대응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그런 편리한 방법이 존재했는데 지난 수십 년간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건 전 세계의 수많은 똑똑한 경제학자들에 대한 모독이다. 아래 제시된 내용도 잘 살펴보면 어디 한 군데씩은 반드시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으며,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이론적 방향성 정도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냉정하게 말하면, 우리의 미래는 이미 지옥행이 확정된 기차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런 비관적인 내용을 담은 책이 수없이 출간되고 있다.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우리의 길을 약간이라도 천국의 방향으로 돌릴 방법을 끝까지 탐색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일 것이다.
5.1 다른 나라의 일자리를 뺏어오기
전 세계적으로 10명 중에 9명이 실업자가 되어야 한다고 해서, 특정 국가의 100만 명 중 90만 명이 반드시 실업자가 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넘치는 초과 수요를 흡수해 줄 충분한 경제적 식민지가 해외에 존재한다면 어떤 국가는 낮은 실업률을 유지할 수도 있다. 과거 제국주의 시대의 서양 열강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국민이 절반이 실업자가 되어 고민인 A라는 국가가 있다고 하자. 똑같이 인구가 100만 명인 B 국가에서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고 모든 생산품을 A에서 수입해 준다면, B의 실업률은 100%가 되겠지만 A국가는 실업자가 없는 완전고용을 달성할 수 있다. 생각해 보면 꽤 아이러니한 상황인데, 서로 '너희는 일하지 말고 조용히 우리가 만든 물건 가져다 써!' 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당연하지만 이것은 국지적으로만 가능한 해결책이며, 모든 국가가 이 방법으로 생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시행되고 있는 정책이 이것이라는 게 문제. 도널드 트럼프의 'America first'가 가장 대표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있는 공장이 미국으로 돌아간다면, 미국이 일자리를 얻는 만큼 우리나라는 일자리를 잃는다. 현재 거의 모든 국가들이 법인세를 깎고, 때로 정치적 압력을 넣어서까지 서로 공장과 산업단지를 자국으로 끌어들이려 노력하고 있는데, 당연하지만 어떤 국가가 일자리 1만 개를 얻으면 다른 어떤 국가는 일자리 1만 개, 혹은 그 이상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마이너스섬 게임이다. 그럼에도 이것 외에는 마땅히 대책이 없으니 모든 국가들이 제살 깎아먹기 경쟁을 하고 있는 상황.
4차 산업혁명에 대해서 말할때, 정치권에서는 흔히 '우리도 벤처 기업을 육성해서 한국에 유튜브, 페이스북, 아마존 같은 기업이 나오도록 하자.' 같은 주장을 한다. 얼핏 들으면 좋은 말 같아 보이지만, 결국에는 잘 쳐 줘도 제로섬 게임이다. 왜냐면 제 4차 산업혁명에서는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지 않는다. 더 많은 혁신이 더 많은 수요를 만들어내지 않는다는 의미다. 만약 유튜브가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졌다면(그리고 전 세계로 보급되었다면), 미국에서는 유튜브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더 많은 유튜브가 등장한다고 해서 동영상을 시장의 총 규모가 커지지 않으며, 한정된 파이를 나누어 먹을 뿐이다.
결국 이 주장은 '우리가 먼저 독점 시장을 선점하여 다른 나라들의 일자리를 뺏어오자.' 라는 의미이고, 이는 'America first'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이 방법은 전 세계의 총 wealth를 증가시켜주지 못하며, 설령 우리가 다른 모든 국가들을 짓밟고 승리자가 된다 할지라도 근본적인 수요 부족을 해결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다.
당연하지만 이건 우리가 장기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방향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다른 방법을 택하려면 그에 맞는 대안이 있어야 할 텐데, 아직까지는 영 결론이 신통치 않다.
5.2 노동 시간을 감소시키는 방법
케인즈 학파로 유명한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즈는 1930년에 쓴 '손주 세대의 경제적 가능성'(Economic Possibilities for our Grandchildren)이라는 글에서 100년 뒤에는 살림살이가 8배 더 나아져 노동시간이 주당 15시간이면 충분할 것이라고 했다. 현재 기준으로는 하루 3시간만 일을 하면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우리의 노동 시간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특히 전문직종에서 이런 경향이 심한데, 살인적인 경쟁을 뚫고 전문의를 딴 의사는 살인적인 노동시간에 시달린다. 반면 경쟁에 탈락한 사람들은 실업자가 되어 거리를 떠돈다. 한 사람이 12시간을 일하고 한 사람은 실업자가 되느니, 두 사람이 일을 반씩 나눠 하루 6시간의 노동을 하면 안 되는 걸까? 폴 라파르그는 그의 책 <게으를 수 있는 권리>에서 이러한 부조리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만약 이 방법을 제대로 활용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제4차 산업혁명을 축복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일자리가 반으로 줄어든다면, 노동 시간을 반으로 줄이면 된다. 먼 미래에는 모든 사람들이 하루 1시간, 아니 30분씩 일하고서도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유토피아가 펼쳐질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나라에도 엄청난 수의 실업자(조사에 따라 100만~400만)가 있는데, 취직에 성공한 사람들은 대체로 혹독한 노동 환경에 시달린다. 우리가 노동 시간을 적절히 감소시킨다면, 지금이라도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아쉽게도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노동자와 고용주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노동자는 하루 5시간 노동으로 5만원을 받는 것보단 10시간의 노동으로 10만원을 받는 쪽을 택하며, 이는 고용주의 입장에서도 이득이다. 때문에 노동 시간을 규제하려는 정부의 노력은 대개 큰 반발에 부딪치며,(정부에서 공휴일을 늘리려 했을때 전경련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생각해 보자.) 노동자와 고용주들은 어떤 편법을 동원해서라도 실질 노동 시간을 늘리려고 한다. 양측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니 개선의 노력이 있을 수도 없고, 내부고발자가 나올 환경도 되지 않는다.
게다가 노동시간을 줄였을 때 경제가 나아진다는 것은 전 세계의 모든 국가들이 힘을 합쳐 동시에 노동시간을 규제했을 때의 이야기다. 우리나라는 하루 3시간씩 일하는데 다른 모든 국가들은 하루 10시간씩의 노동으로 생산물을 쏟아낸다면, 국제 사회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이는 죄수의 딜레마의 문제를 야기하는데, 전 세계의 정부를 대고 명령을 내릴 강력한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 이상, 내쉬 균형은 오직 모두의 배신 뿐이다.
하나, 큰 관점으로 보자면 과도한 노동이 시간당 생산량의 감소를 불려 킨다는 것은 확연한 사실이다. 특히나 한국은 이 현상과 연이 깊다. 국가 간 시간당 생산성 비교 . 필요 없는 야근이나 잔업시간, 대기시간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 일도 안 하고 펜대나 굴리며 자리에 앉아 있으면 뭐가 달라질까? 만약, 몸을 움직이는 일이라면 충분한 휴식만 못 하고 대기상태로 긴장만 하다가 잔병이 들 뿐이다. 오히려 사람의 행복에 필요한 여가활동이나 여러 창의적 소비 활동을 하는 게, 시장수요로 이어져 과공급이 당연시되는 4차산업이 만들 시장에는 차라리 좋을 것이다. 특히나 내수시장의 형성에는 좋다. 즉, 적절한 집중 가능한 노동시간을 정함으로써 생산성 향상을 유도하는 것이다.
노동시간 감소에 대한 정치적인 접근으로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에 최대한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있다. 인간의 행동 하나하나가 더욱 '가치' 있게 판단 된다면 적어도 인간의 쓰임이 기계의 생산성에 밀리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다면 시간당 비싼 임금을 받는 인간은 삶을 위해 많은 노동을 저절로 할 필요가 없다. '노동시간의 감소가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다.' 다만, 이것은 기득권들에게는 절대로 구미가 당겨지는 일은 아니다. 그들이 뭐가 아까워 인간이 하는 일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할까? 지금도 예술계와 한국의 인건비 후려치기를 보면 답이 나온다. 아마도 사회적 합의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5.3 노동 인구를 감소시키는 방법
그렇다면 노동 인구를 감소시키는 방법은 어떨까? 우리나라의 노동자들은 대개 20대에 취직하여 55세까지 일한다. 수많은 예외가 있겠지만 대충 인생에서 30년 정도를 일한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이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면 노동 시간을 줄이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지 않을까? 먼 미래에는 평생애 5년 정도를 일하고 일생을 풍족하게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방안은 정치권에서 꽤 현실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주제이기도 한데, 노동자의 법적 정년에 대한 것이 그렇다.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에서 이미 꽤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일어나고 있는데, '학력 인플레이션'이 그것이다. 당신이 직장을 다니는 성인이라면, 자신의 주변 사람들 중에 대학교에서 배운 전공을 직장에서 부분적으로라도 써먹고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 살펴보자. 인간 노동의 대부분은 비숙련노동이다.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70%에 달하지만, 사실 대학 교육이 필요한 직업은 전체 직업의 10%가 채 되지 않는다. 만약 사전 교육이 필요한 고급 직종일 경우에도, 대학에서 일관된 교육을 받느니 각 직장에서 내부 교육을 치르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며, 실제로도 그렇게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대학과 대학원에서 받은 교육은 대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학생들은 '취직을 위해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만, 모두가 고급 교육을 받는다고 해서 갑자기 일자리가 더 생기는 것은 아니다. 결국 이것도 죄수의 딜레마의 일종이다. 노동 시장의 균형이 깨져 있는 이상 받을 수 있는 최대한의 교육을 받아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개별 학생들에게는 이득이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엄청난 낭비가 된다.
노동 인구를 감소시키기 위한 그나마 현실적인 대책 중 하나는 현재 이재명 등이 주장하고 있는 기본소득 제도이다. 경제학에서 노동 공급은 상수가 아니며, 다른 여러 요소들에 대해 탄력성이 있다. 모든 사람이 모든 상황에서 노동 공급에 편입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기본 소득으로 일정 수준의 소득이 보장된다면 노동 시장에 참여할 유인이 비교적 적은 사람들, 부모의 재산이 충분하거나 사치에 대한 욕심이 적은 사람들부터 시장에서 이탈할 것이며, 노동 시장이 균형을 회복하고 평균 임금을 끌어올리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어차피 직장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의 숫자가 한정되어 있다면, 놀 사람은 제대로 노는 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이득일 것이다. 물론 기본 소득 역시 그 나름대로의 문제점을 안고 있으며, 현재와 미래의 모든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아니다. 자세한 사항은 항목을 참조하자.
어쨌거나 우리는 현재 노동 인구를 억지로라도 줄여야 할 처지에 있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겠다면서 노동 수요를 늘리는 정책을 펴겠다고 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예를 들어 모 대선주자는 제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겠다면서 여성의 사회 참여를 늘려 생산 인구를 더 늘리겠다는(...) 공약을 내놨는데, 적당히 걸러 듣도록 하자.
5.4 생산 효율성을 억지로 끌어내리는 방법
전통시장과 대형마트의 관계를 생각하면 편하다. 당연하지만 대형마트는 전통시장보다 효율적이며, 더 적은 인력을 고용하면서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때문에 대형마트가 들어서 알바생 100명을 고용하면, 전통시장에서는 2, 300명의 실업자가 발생한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한 하나의 방법은, 법적으로 대형마트가 들어설 수 없도록 규제하고 사람들을 억지로 전통시장으로 보내는 것이다.
과거 공산주의 체제 아래에서도 이런 일이 종종 발생했다. 매달 라디오 500대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이 있는데, 이번 달에 할당된 생산량은 300대라고 하자. 노동자들을 조금 해고하거나 평소보다 일찍 퇴근시켜 생산량을 줄일 수도 있겠지만, 공산주의 체제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따라서 공장에서는 라디오 400대를 만들고, 다시 100대를 부수는 것으로 모든 노동자들이 계속해서 일하도록 만들었다. 효율성을 억지로 끌어내리는 것으로 고용을 유지했던 것이다.
딱 봐도 효율적인 수단은 아니고, 실제로도 그렇다. 산업혁명 초기에,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은 방망이로 기계를 때려부쉈다. 자율주행자동차가 운전기사들의 일자리를 위협한다면, 이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사람들에게 비효율적인 수단(더 비싼 버스와 택시)을 강요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억지로 효율성을 끌어내리는 것은 인류 역사상 장기적으로 성공한 사례가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5.5 생산 효율성의 증대를 압도할 거대한 수요의 창출
생산이 너무 효율적이라서 문제라면, 늘어난 생산량만큼 우리가 더 많이 소비하면 된다. 한 사람이 생산할 수 있는 양이 10배로 늘어난다면, 그냥 소비를 10배로 늘리면 되지 않을까? 논리는 간단하지만 실현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세금을 늘리고 복지 예산 비중을 늘리는 정도로는 택도 없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증명된, 그 어떤 심각한 대공황도 순식간에 이겨낼 수 있는 스팀팩이 하나 있는데, 바로 전쟁이라는 놈이다.
전쟁은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을 양의 자원을 낭비시킨다. 총력전이라는 것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18세기 영국에서 산업 혁명이 시작된 이래로 생산은 언제나 수요를 초과했으며, 인류는 거의 항상 주기적인 경제 공황에 시달렸다. 10년, 혹은 20년 단위로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공황은 너무 심하게 반복되어 이를 설명하는 이론이 수도 없이 등장했을 정도이다. 하지만 인류가 경제 공황에서 자유로웠던 짧은 시기가 있었는데, 바로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시기다. 히틀러 역시 크고작은 전쟁을 일으키면서 공황에 시달리던 독일 경제를 순식간에 살려냈고, 미국과 일본도 이 전쟁 특수의 스팀팩을 맞고 경제를 급속히 발전시켰으며, 전쟁이 끝나자마자 곧장 심각한 경기 침체에 시달렸다.
물론 경기 침체를 극복하겠다고 일부러 전쟁을 벌이는 것은 미친짓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전쟁의 포화 한가운데보다는 낫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실업 문제가 심각해질수록 각 국가들이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넘어야 할 허들은 점점 낮아질 것이다.
현대에 와서 선진국 간의 전쟁은 사실상 종식되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통계가 있는데, 인류 역사상 맥도날드 지점이 들어선 국가끼리는 단 한 차례도 전쟁을 벌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맥도날드가 무슨 평화의 사도라던가 그런 것은 아니고, 맥도날드가 진출할 정도로 경제력이 있는(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군사력이 있는) 국가끼리는, 전쟁을 벌였을 때 서로 무지막지한 손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설령 전쟁에 이겨 옆 나라의 땅을 손바닥만큼 빼앗더라도, 차라리 그 나라에서 나온 생산물을 돈으로 사는 것이 수십 배는 저렴하다. 현대에 전쟁이 불식된 것은 딱히 UN에서 강대국들을 협박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하지만 언젠가 전쟁을 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는 상황이 온다면, 전 세계적으로 극우 세력이 고개를 들고 있는 지금, 언제 전쟁을 통해 경제를 살리려는 지도자가 등장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럼 인류는 앞으로 끝없이 전쟁을 일으키면서 경제를 유지해야 할까? 수요를 창출할 수단 치고 이건 부작용이 너무 심각하다. 다행히 이런 조건을 만족하는 다른 수단이자 바람직한 방향성이 딱 한 가지 더 있는데, 바로 인류의 우주 진출이다.
과거 세계 경제력의 절반을 차지했던 전성기의 미국에서도, NASA가 예산을 잡아먹는 괴물이라는 사실은 유명했다. NASA가 천문학계에 크게 이바지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학문의 영역에 불과할 뿐 다른 위성 및 행성에 대규모의 인구가 정착하고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 낸다는 것은 지금 단계에서는 그야말로 꿈같은 이야기에 불과하다. 실질적으로 인간이 지구 바깥을 개척한 것은 달에 유인 탐사선 몇 번 보내고, 지구 300km 상공에 구조물 하나 띄워 놓고, 지구 바로 옆에 있는 화성에는 유인우주선은 꿈도 못 꾸고 고작 수백kg짜리 발사체를 몇 개 던져 본 것이 전부다. 만약 인류가 달이나 화성에 진출하고, 달로 수만 명의 사람을 보내거나 화성에 수십만 톤의 화물을 매년 보내게 된다면? 분명 전 세계를 휘청거리게 할 만큼 엄청난 돈낭비수요 창출이 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현재로써는, 달이나 화성에 진출하는 것이 우리에게 아무 메리트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화성에 석유를 대체할 엄청난 연료라도 잔뜩 뭍혀 있다면 모를까... 냉전 시대에야 두 강대국이 서로 자존심 싸움에 팔려 무지막지한 돈을 퍼부었지만, 지금에 와서 단순히 인류의 호기심 충족을 위해 각 나라들이 자신의 GDP 규모에 필적하는 대규모 투자를 순순히 해 줄 리가 없다.
결국 문제는 다시 죄수의 딜레마로 회귀한다. 결국 충분한 권한을 가진 전 세계적 의사결정기구가 없다는 것이 결국 가장 큰 문제다. 사실 이런 것이 존재한다면 굳이 이런 돈지랄을 할 필요도 없다. 그냥 전 세계의 법인세를 통일하거나, 모든 국가에게 주 20시간 노동제 같은 것을 강요하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각 국가들은 점점 이기적으로만 변하고 있으니, 앞으로 갈 길은 요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