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들의 취미

뭔가 색다른 취미를 가진 들의 취미 일람. 다만 이는 정말 색다른 것일 수도 있고 왕답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1 아시아

1.1 한국

1.1.1 고구려

1.1.2 백제

1.1.3 신라

1.1.4 고려

1.1.5 조선

1.2 중국

1.2.1 은()나라

1.2.2 삼국

  • 조조 : 독서, 시짓기, 서예, 음주
  • 조비 : 탄기, 시짓기, 문학 평론 마음에 안 드는 사람 괴롭히기
  • 조예 : 궁궐 짓기
  • 손권 : 무예, 사냥, 음주
  • 손호 : 주색잡기,

1.2.3 서진

1.2.4 5호16국시대

1.2.5 당나라

1.2.6 송나라

1.2.7 금나라

1.2.8 원나라

1.2.9 명나라

1.2.10 청나라

1.3 일본[27]

1.3.1 무로마치 시대

1.3.2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

1.3.3 에도 시대

1.4 몽골

1.4.1 몽골 제국

1.5 우즈베키스탄

1.5.1 티무르 제국

2 유럽

2.1 독일

2.1.1 프로이센 왕국

2.1.2 바이에른 왕국

2.2 영국

2.3 프랑스

2.3.1 부르봉

2.4 그리스

2.4.1 헬레니즘 제국

2.4.2 근현대

2.5 러시아

2.5.1 로마노프 왕조

2.6 불가리아

2.7 로마(동로마 제국, 바티칸 포함)

3 중동

3.1 터키

3.1.1 오스만 제국

3.2 이집트

3.2.1 고대 4왕조

3.3 이슬람 제국

3.3.1 압바스 왕조

  • 알 마문 : 과학 연구 후원
  1. <삼국사기>에서 전하는 고구려 건국설화에 따르면 주몽은 이미 어렸을 적부터 집적 활을 만들거나 겨누어 쏠 수 있을정도로 활쏘기를 즐겼다. 이름인 '주몽'도 부여말로 '활을 잘쏘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2. 남당 박창화가 지은 <고구려사초>에는 모본왕이 측근인 두로를 총애하여 남첩으로 두었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박창화가 남긴 기록 자체가 대부분 위서로 여겨지고 있어 믿기 어려운 말이다.
  3. 고대 한국에서는 매사냥이 상당히 유행하였다. <일본서기>에서도 왜국에 처음으로 매사냥하는 법을 전파한 백제의 왕족인 주군의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4. 고구려의 승려 도림과 바둑 대결에 심취하여 나라를 거덜냈다는 설화는 유명하다(...).
  5. 사냥을 너무 좋아해서 신하 김후직이 줄기차게 이 점을 간언했다. 김후직 말을 계속 무시했지만 결국 김후직의 꾀로 마지막에 그만두긴 했다고 한다.
  6. 다만 신라 진골층 사이에서 근친상간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는 풍습이었다.
  7. 숙부인 각간 위홍과 불륜관계에 있었고, 위홍이 죽은 후에는 미소년들을 궁에 은밀히 들여 음행을 즐겼다.
  8. 모두 아내였던 노국대장공주 사후 이후에 벌어진 일이었는데, 노국공주와는 생전에 금슬이 좋아서 주색과 향락에 빠지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 공민왕이 남색과 관음증을 즐긴 일을 후대의 조작으로 보는 견해도 유력하다.
  9. 격구와 비슷한 채를 사용하지만 말을 타고 하는 격렬한 방식이 아니라 어르신들이 즐겨하는 게이트볼 비슷한 형식이었다고 한다.
  10. 밥 투정 기록도 있다.
  11. 성품이 호전적이거나 전투광이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시호에 맞지 않게 무기 및 전술 개량에 많이 공헌했기 때문이다. 다만 문종 어진의 풍채가 당당했다는걸 보면 안여멸보다는 반대쪽에 가까웠을 듯....
  12. 문종의 기상 예측은 매우 정확해서 세종도 문종에게 그날의 일기를 자주 물었다고 한다.
  13. 신하들이 지나치게 난리를 쳐서 시를 쓰진 못하고 읽기만 했다.
  14. 물론 왕위에 오른 이후 연산군이 연상된다며 신하들이 하지말라고 청하자 그만뒀다.
  15. 당대 최고의 명필 중 하나로 인정받아서 임진왜란 때 지원 온 명나라 장수들도 선조의 글씨를 탐냈을 정도였다. 본인도 자기 서예솜씨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또한 선조의 계비 인목왕후와 딸 정명공주도 서예에 뛰어났다.
  16. 사실 현종의 온천욕은 취미라기보다는 고질적인 피부병 때문이었다. 다만 온천행을 다니면서 군사들을 훈련시켰다고 한다.
  17. 협도 등의 크고 아름다운 무기를 잘 다뤘다고 한다. 본인의 위험한 입지 때문에 생긴 취미인 듯. 그리고 건장하고 무예도 뛰어난 정조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독살설의 근거 중 하나이다.
  18. 정사보다는 야사에서 자주 언급된다.
  19. 독다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커피 맛의 미묘한 변화까지 인지할 정도
  20. 황학정을 건립한 분이시다.
  21. 선교사에게 배워 즐겨 쳤다고 한다.
  22. 다만 이에는 이견이 있다. 해당 항목 참고.
  23. 양이 끄는 수레를 타고 궁궐을 돌아다니다 도착한 후궁의 처소에서 붕가붕가.이를 알아챈 몇몇 후궁들은 자기 처소 앞에 소금 등을 뿌려놓아 양이 멈추게 했다고 한다.
  24. 다만, 여기서 말하는 축국은 현대 축구와는 다른 형태라고 한다.
  25. 이 취미 때문에 피해를 입은 건 다름아닌 조선. 하도 등 각종 동물들을 조공으로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26. 중국 역사상 가장 검소한 황제였다고 한다.
  27. 쇼군들도 무사이기 때문에 검술과 도검 수집 및 남색 취미는 대부분 있었으므로 본 항목에서는 생략.
  28. 오닌의 난 때 쇼군
  29. 다른 쇼군들과 비교해도 특이할 정도. "검호 쇼군"이란 별칭을 지닐 정도다.
  30. 손수 탕약도 다렸다고 한다.
  31. 매우 흔한 취미이기는 하지만 오고타이는 이게 특히 심했던 쪽으로 기록되어 있다.
  32. 자기 별명이 발레왕이라는 것을 알고 직접 춤을 추는 것은 그만두었다. 다만 어린 시절 루이 14세가 발레에 몰두한 것은 모후인 안드 도트리슈와 재상 마자랭에게 눌려 국정을 돌볼 권한을 갖지 못한 허수아비 신세에서 오는 울분을 풀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33. 늙어서 말을 탈 수 없게 되자 마차를 타고 사슴을 쫓아다녔다.
  34. 왕세자 시절 1번, 즉위한 뒤 2번(공화제 쿠데타, 그리고 나치군 침공 때문에)
  35. 1960년 로마 대회 요트 종목 금메달리스트.
  36. 지휘하는 병사들의 총기에 실탄을 장전하고 실제로 전술훈련을 해 첫 전투에서 20여명이 살상된 기록이 있다. 그거 아무리봐도 그냥 갑질 아닌가
  37. 엄밀히 말하자면 이 사람은 생전에 제위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38. 다만 이 풍문을 기록한 수에토니우스의 황제열전의 신빙성을 부정하는 의견도 많다. 악의적인 풍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39. 하지만 실력은 시원찮았다고
  40. 동성애는 아니라고 함
  41. 수(受)였다고 한다.(...)
  42. 연회나 행사, 문화등에는 별 관심이 없었으며, 심지어 결혼도 하지 않고 평생을 군사 문제와 세수 확대에 쏟아부었다. 토탈워 맞네
  43. 독주회도 가능한 실력
  44. 다만 메메드가 양성애자라는 것은 두카스나 라오니코스 찰코콘딜레스 등 그리스측 역사가들의 기록에 보이는데, 현대 터키의 역사가로 오스만 제국사의 권위자인 할릴 이날칙(Halil İnalcık)은 동시대 오스만 제국의 기록 어디를 살펴보아도 황제가 남자를 가까이했다는 기록은 없다며 그리스 측의 기록은 사실무근이라고 강력히 주장한 바가 있다.
  45. 음주가 뭐가 특별한가 싶겠지만, 오스만의 국교가 이슬람이다. 당연히 금주가 원칙. 뿐만 아니라 셀림이 사망한 이유도 술 때문인데, 술에 취한 채 목욕탕에 들어갔다가 발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46. 다만 이건 별로 특별한 것이 아니다. 수준이야 개인별로 천차만별이겠지만, 셀림 1세나 메메드 2세 등도 페르시아어로 시를 지은 것이 남아있다.
  47. 그의 아버지도 취미가 숟가락 만들기였다고 한다. 당시에는 숟가락을 대모갑(바다거북 등껍질)이나 상아로 만들었는데 상아조각도 잘 했다고 한다.
  48. 투르크인의 전통 전사 복장을 유독 즐겨 입었고, 대다수의 초상화도 전사 차림의 그를 그린 것들이다.
  49. 평범한 시민도 아니고 한 제국의 황제인 자기 자신이 사용했던 최고급 가구들을 몸소 제작할 정도였다니 더 이상 설명이 必要韓紙. 또 이 사람은 1909년에 폐위당해 1918년에 죽었는데, 말년에 했던 일이 회상록 저술과 목공예였다고 한다.
  50. 아버지인 스네푸르는 3개, 아들인 쿠푸는 제일 큰 거로 1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