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좌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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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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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공자가 지은 나라의 역사서인 춘추의 주석서로 공자의 제자인 좌구명이 지었다고 전해지나 실제로는 그가 지은 것이 아닌 어떤 무명의 인물이 저술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으며, 줄여서 춘추좌전, 좌씨전, 좌전 등으로 부른다.

2 서술상 특징

춘추공양전, 춘추곡량전 등과 함께 춘추 3전으로 불린 책으로 철학적인 면에 집중한 공양전과 곡량전과는 달리 역사적이고 실증적인 면에 치중했기 때문에[1] 나라 때는 외면받았고 공양전이 대세였지만, 후한 말부터 좌씨전이 주목받기 시작했는데[2] 서진 시대에 가면 3전 중에서도 독보적인 지위를 획득한다.[3] 지금도 춘추좌씨전이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또한 춘추공양전과 춘추곡량전에 비해 그 내용이 상당히 많다.

특히나 춘추같은 경우는 그 내용이 게임 삼국지 시리즈에 나오는 연표처럼 짧게 한줄 문장으로 기술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초자(초장왕)[4]가 정나라를 7년동안 칠 때 그 7년을 담은 문장들은 하나같이

초자(초나라 자작, 즉 초나라 왕)가 AA년 정후를 치다.

초자(초나라 자작, 즉 초나라 왕)가 BB년 정후를 치다.

이렇게 짧게 7번이 반복되며 AA나 BB에는 갑신 등의 그해 연도가 들어가지만 그에 비해 춘추좌씨전은 그 인과관계가 제법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또한 춘추에서 사건을 묘사할 때 특정 인물이나 사건을 비평하기 위해 어휘를 달리 하는데(예를 들어 높은 벼슬에 오른 사람이라도 그 행동이 악독하면 그의 본명을 그대로 불러서 깎아내린다.) 춘추만 읽어선 이걸 이해하기 힘들지만 춘추좌씨전은 그 어휘를 사용한 까닭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역사적 사실을 서술하고 그 뒤에 사가의 평을 넣는 좌전의 구성은 후대에도 이어져 사기, 한서뿐 아니라 삼국사기고려사등 한국의 역사서에도 이어져왔다.

3 이후의 좌전

사통에서는 춘추좌씨전에 대해 서사에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진(晉)나라 이후 좌전을 흠모해 모방하려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 모방한 작품들은 점차 볼품이 없어졌고 그 중에는 우연이라 해도 좋은 사례도 있다고 하면서 그 예시를 몇 가지 제시했다.

배송지가 주를 단 강표전에 따르면 관우가 좌씨전을 암송할 정도로 즐겨읽었다고 하며, 아버지의 영향으로 경전학에 조예가 있는 두예는 단순히 즐겨읽은 것을 넘어 현대까지 두루 쓰이는 형태로 좌씨전과 춘추의 본문을 합쳐 정리하고 주석까지 붙여 춘추좌씨경전집해, 춘추석례 등을 저술했다. 동우도 춘추좌씨전의 주석을 썼고 가규도 춘추좌씨장의를 편찬했다. 그 외에 삼국시대의 인물 중에서는 나라의 종요, 사섭, 촉한의 내민과 재야에 있던 인물로 고대 등이 좌전을 익혔다고 한다.

이외에도 춘추좌씨전을 좋아한 사람은 많으며 조선시대에도 좌전은 매우 대우받았다. 읽어보면 명언들이 넘쳐나며 춘추의 구절들의 이해관계를 설명하다보니 서사구조가 만들어져 읽기에도 흥미로우니 한번 읽어보는 것도 좋다.[5] 유명한 경극인 조가고아와 이를 바탕으로 한 볼테르의 "중국의 고아"는 춘추좌씨전에 수록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에도 시대의 탈성리학유학자인 이토 진사이는 춘추좌씨전을 높게 평가해서, "《춘추》를 아는 이로는 맹자만한 분이 없었고, 《좌씨전》만이 홀로 맹자의 뜻에 합치되었다. 그러므로 《춘추》를 읽는 자는 마땅히 맹자의 말씀을 정칙으로 삼고, 좌씨의 설을 참고해 보아야 한다. ...(중략) 좌씨가 전傳을 저술한 것은 역시 그 일의 본말을 두루 기록하여 뒷사람으로 하여금 그 선악의 실상을 지각케 한 것이니, 이것이 좌씨가 성인聖人의 뜻을 안 것이요, 맹자의 뜻과 합치된 것이다"라 하였다.

4 한계

  • 신뢰성

고대 역사서라는 한계가 여기에도 적용되기 때문에 여타 고대 역사서들과 맞지 않는 내용들도 제법 있는 편이라 어떤 것이 정확한 것인지는 아직 학자들도 의견이 분분하다. 이런 부분은 사기와 많이 상충되는데 사기 역시 그 정확성에 대해서 비판이 많은 만큼 주의해서 봐야할 부분이 많다. 그러나 이 때문에 이런 부분을 오점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울 듯 한 게 전체적인 내용은 다른 사서들과도 크게 상충되지는 않아 국내에 번역된 서책들은 이런 부분을 소개하는 책들도 다수 존재한다.(예시: 상하기수(陳)의 멸망 전후의 에피소드)

  • 내용의 누락

노나라의 역사서인 춘추의 주석서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춘추시대를 장식하는 개막 부분을 포함한 초반 부분의 100여년의 내용이 빠져 춘추시대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부분이 빠졌다.

이 때문에 강유위, 양계초, 고힐강 등 청말 신공양학파들은 유흠의 좌전 위작설을 부각시켰고, 이로 인해 한동안 좌전의 내용은 상당한 불신을 받았다. 현대에는 유흠의 좌전 위작설은 거의 부정되며, 신공양학파 학자들은 공양전을 중시하는 이들이었기 때문에 좌전을 공양전과 대립하는 것으로 보고 필요 이상으로 부당하게 좌전을 깎아내렸다고 보고 있지만, 여전히 좌전의 신빙성에 대해서는 논쟁 중. 이에는 현대 중공 역사학계의 고대 문헌 신뢰(이른바 '신고') 경향이 도를 넘어섰다는 외국 사학계의 판단도 있다.

5 각종 매체에서의 좌전

중국 삼국시대를 다룬 소설인 삼국지연의에서는 관우두예의 애독서로 그려지고 있으며 관우의 경우 청룡언월도를 주창이 받들고 선 가운데 춘추를 읽는 초상화가 잘 알려져 있고 두예는 춘추좌씨전을 줄줄 외울 정도라 당대 사람들이 좌전덕후벽이라고 일컬었다 전한다. 여하간 "의"의 상징으로서 적절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코에이의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게임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서적계열으로 등장해 정치능력을 5 올려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시나리오에 따라서 관우가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는 듯. 아쉽게도 삼국지 11에선 서적 아이템들의 효과가 몽땅 설전의 모든 커맨드 사용가능으로 통합되어 존재가치가 없어졌다(...). 삼국지 12에서는 다시 정치 + 5 시켜주고 공성 특기까지 부여해준다.

6 번역본

여러가지 번역본이 있는데, 을유문화사동서문화사에서 낸 것이 가장 좋다. 번역자는 을유판은 장세후, 동서판은 임동석. 분량이 분량이니만큼 번역본 쪽수가 엄청나게 많은데, 을유문화사에서 내놓은 춘추좌전 상,중,하 전3권은 전체 쪽수가 4452쪽이고, 동서문화사에서 내놓은 춘추좌전 전6권의 번역본은 3776쪽에 달한다. 이외에 한길사에서 신동준이 번역한 것도 있는데, 올재 클래식스에서 한정 출판하기도 했다.

  1. 보통 경문의 의미를 잘 밝힌 것은 공양전, 명분론을 잘 밝힌 것은 곡량전, 역사적 사실을 충실히 기록한 것은 좌씨전이라고 평하곤 했다. 비록 일부 해설은 그 내용을 알기 힘든 상황(예컨대, 암살당하는 사람이 죽기 직전에 한 말이 그대로 적혀져 있다)이 첨부되어 있지만, 아주 말이 안되는 허구가 아니라 그 상황에 사람이 했음직한 말을 서술했다. 사실 사기도 그런 식으로 윤색된 감이 없지 않다. 현실은 소설보다 소설같고, 소설은 현실보다 사실 같다고 했던가.
  2. 정현이 고문에 근거하여 유교 경전을 정리하면서 비주류였던 좌씨전의 위치가 주류의 단계로 올라서게 되었다. 곡량전은 전한 중기에 잠시 주목 받긴 했지만, 줄곧 비주류...
  3. 여기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두예. 원래 경문과 전문이 분리된 체제였던 좌씨전을 한 체제로 재구성하여 경전으로서의 위치를 다졌다.
  4. 초장왕은 스스로 왕을 칭했고, 춘추오패이기도 했으나 주나라에서는 초자, 즉 자작급이었다. 물론 초장왕은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춘추필법으로 춘추를 기록한혹은 편파적으로 서술한 공자는 그를 초자라고 썼다.
  5. 참고로 고전 업계(?)에서 《춘추좌씨전》은 《맹자孟子》, 《장자莊子》와 함께 선진先秦시대 3대 명문으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