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蔡汶植
1925년 1월 16일~ 2010년 6월 26일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자는 화방(華邦)이고, 호는 우치(又痴)이다.
1925년 경상북도 문경군에서 태어났다. 사립 중앙중학교(현 서울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성제국대학 예과 수료, 법문학부 법학과 1학년 재학 중에 해방을 맞았다. 해방 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당시 같은 정치학과 학생이었던 박준규(전 국회의장인 그 분 맞다)와 함께 반탁 우익 운동을 하였다.
서울대학교 졸업 이후에는 문경군수, 명지대학교 교수 등을 지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문경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이병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당 후보로,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경상북도 문경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이동녕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하였다. 당시 고흥문 계보에 속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경상북도 문경군-예천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황재홍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74년까지 신민당 대변인을 역임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구범모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그러나 1980년 신군부가 집권한 후 국가보위입법회의 구성에서 구 야당 대표격으로 의원에 포함되었다. 그리고 여당인 민주정의당에 입당하였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한국국민당 김기수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83년까지 국회부의장을, 1983년부터 1985년까지 국회의장을 역임하였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신한민주당 반형식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8년 초 민주정의당 대표위원이 되었고 같은 해 치러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그러나 과반수 의석 확보 실패로 대표위원직을 사임하였다.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 때는 민주자유당 내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김영삼 후보가 선출되자 불만을 품고 탈당하였다. 그리고 이종찬의 새한국당 창당에 참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