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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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일화 천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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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서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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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현대 No.1
김용대 (金龍大 / Kim Yong-Dae)
생년월일1979년 10월 11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경상남도 밀양시
포지션골키퍼
신체조건192cm, 83kg
등번호1번
프로입단2002년 부산 아이콘스
소속팀부산 아이파크 (2002~2005)
성남 일화 천마 (2006~2007)
광주 상무 (2008~2009)
성남 일화 천마 (2009)
FC 서울 (2010~2015)
울산 현대(2016~)
국가대표2000~2011 , 21경기 / 12실점
2004년 FA컵 MVP
에드밀손(전북 현대 모터스)김용대(부산 아이파크)밀톤(전북 현대 모터스)
2010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김은중
FW
데얀
MF
몰리나
MF
윤빛가람
MF
구자철
MF
에닝요
DF
홍정호
DF
아디
DF
사샤
DF
최효진
GK
김용대
2012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이동국
FW
데얀
MF
몰리나
MF
하대성
MF
황진성
MF
이근호
DF
아디
DF
정인환
DF
곽태휘
DF
김창수
GK
김용대

1 소개

대한민국의 축구선수로 포지션은 골키퍼.
최은성, 김영광 등과 함께 실력은 있지만 국대에서는 빛나지 못한 선수. 별명으로는 용대사르가 있다.

2 선수 시절

2.1 클럽

2.1.1 부산 아이파크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2002년 부산 아이콘스에 입단하여, 2004년 대한축구협회 FA컵 우승을 이끌며 대회 MVP에 선정되었다. 부산 아이파크에서 85경기를 뛰고 성남 일화로 이적하였다.

2.1.2 성남 일화 천마

2006년 성남 일화 천마로 이적하였다. 이적 시즌인 2006년 K리그 우승. 07년도 K리그 준우승에 크게 기여하였다.

2.1.3 광주 상무

07시즌 이후 병역 해결을 위해 당시 광주 상무로 입대, 주전으로 뛰며 50경기를 뛰고 09년 11월에 전역하였다.

2.1.4 다시 성남 일화 천마

인천과의 09시즌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김정우와 교체되며 복귀전을 치루었다.[1] 이 경기에서 승부차기를 3개나 막아내는 활약 끝에 3:2로 승리를 거두었다. 남은 경기에서 주전으로 뛰고있던 정성룡과 경쟁을 했지만, 신태용 감독은 정성룡을 선택하였고, 그 결과 10시즌을 앞두고 FC서울로 이적했다. 성남에서는 총 53경기를 뛰었다.

2.1.5 FC 서울

이적 후 FC서울의 주전 골리로 활약하며 2010년 더블(포스코컵+K리그), 2012시즌 K리그 우승,ACL 준우승을 이끌었다. 이때가 최전성기로 10,12시즌 베스트 11과 12시즌 ACL 베스트 11에 올라가기도 했다.
15시즌을 치루면서 최용수 감독이 후보 골키퍼인 유상훈을 집중적으로 키우면서 단 12경기 출장에 머물렀다. 시즌 종료 후 그 해 최고의 활약을 펼친 유현(축구선수)을 영입하자 김승규가 이적해 공백이 생긴 울산 현대로 이적을 한다.

2.1.6 울산 현대

현재까지는 윤정환 감독의 신임을 받으며 주전 장갑을 끼고 있다. 대체적으로는 노익장을 과시하며 가끔은 전성기를 연상케 하는 뛰어난 선방도 선보이고 있지만, 아무래도 나이를 속이기는 어려운 것인지 가끔씩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특히 바로 전년도의 주전 골키퍼였던 김승규의 활약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저평가를 받는 경향도 있는 듯.
파일:김용대 기름기름열매.gif

2.2 국가대표

2000년 AFC 아시안컵 라오스 전에 데뷔하였다.[2]
준수한 외모와 빼어난 실력[3] 때문에 2000년대 초반에는 김병지, 이운재를 이을 차세대 국가대표 골키퍼로 각광을 받았지만,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거스 히딩크 당시 대표팀 감독은 2001년 말에 선수들 개개인에게 체력단련과 관련된 숙제를 내줬었는데, 2002년 초 대표팀이 다시 소집되었을 때 보여준 김용대의 체력은 도저히 숙제했다고 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결국 이후 식사 때 실컷 포식하는 모습을 보이며 불성실한 선수라고 찍혔고[4][5], 써드 키퍼 자리는 성실하게 훈련에 임한 최은성에게 돌아갔다.

이 일로 김용대는 한동안 방황하다가 마음을 다잡았고, 국가대표에도 선발되었지만 이운재의 벽이 너무 높았다. 2006년 독일 월드컵김영광과 함께 백업 골키퍼로 뽑혔지만 체중 논란에도 불구하고 눈부신 선방을 보여준 이운재의 벽에 막혀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2007년 2월 그리스와의 평가전에서 눈부신 선방으로 1-0 승리를 견인해 잠시 주목받았지만 끝내 주전을 꿰차는 데는 실패했다. 이운재의 기량이 떨어질 쯤에는 성남에서 잠시 경쟁했던 정성룡[6]이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출전이 좌절되고 태극마크와 멀어졌다. 2012 런던 올림픽브라질 월드컵, 호주 아시안컵을 거치며 이범영, 김승규, 김진현이 속속 등장하였기에 국대 재선발은 요원해 보인다.

2.3 기타

  • 미중년이다. 곧 40을 바라보는 나이인만큼 얼굴에 주름이 조금씩 생기고 몸놀림도 무뎌지긴 했지만 그래도 본판은 꽤 미남이라는 평. 거기에 대부분의 골키퍼들이 그렇듯 체격도 상당히 훤칠한 편이다.
  • 슈퍼매치 도중 실수를 한 볼보이를 상대로 욕설을 한 전적이 있다. 중요한건 볼보이는 대부분 해당 홈 팀의 유소년 선수가 담당하는데, 이 볼보이 역시 수원 유소년 선수인 매탄고등학교의 선수이다. 욕설을 한 것도 큰 사건인데, 그게 상대팀의 유소년 선수였으니 이건 어떻게 쉴드를 쳐주기 어려운, 김용대 스스로 노익장으로서의 품격을 깎아먹은 병크라고 할 수 있다.
  1. 이 경기에서 골키퍼로 뛰고있던 정성룡은 잠시 필드플레이어로 뛰었다.
  2. 이때 김용대는 연세대를 다니던 학생이었다.
  3. 거스 히딩크도 차후 3-4년 열심히 하면 국대 주전이 될거라 예상했었다.
  4. 다만 세간에 알려졌던 아이스크림을 자주 먹었다는 것은 오해로, 대표팀 선배들이 김용대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오라고 시켰는데 그 광경을 히딩크가 보고 김용대 본인이 먹으려고 산 것이라고 오해한 것이 와전된 것.
  5. 이 시기 김용대보다 더 잘못 찍힌 선수가 있었으니, 바로 이동국이다. 하필이면 프랑스 월드컵을 뛰었는데 그 뒤부터 엄청나게 혹사당하여 2002 월드컵 준비 기간 당시 몸 상태가 영 아니올시다였던 이동국은 결국 황선홍, 안정환, 최용수에게 밀려 월드컵 엔트리에서 탈락했다. 히딩크가 이동국을 게으른 선수라고 말했다는 루머 때문에 아직까지도 이동국에 대한 인식이 좋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이는 10년이 지난 현재도 마찬가지다.
  6. 지금은 퐈이야라고 조롱을 당하고 있지만, 런던 올림픽 때까지 정성룡의 실력은 상당한 수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