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프로필
링 네임 | Chavo Guerrero Jr.[1] |
본명 | Salvador Guerrero IV |
생년월일 | 1970년 10월 20일 |
출신 |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고 |
키 | 183cm [2] |
체중 | 108kg |
피니쉬 무브 | 브레인버스터 고리 밤[3] 프로그 스플래쉬[4] |
주요 커리어 | WCW 태그팀 챔피언쉽 1회 WCW/WWE 크루저웨이트 챔피언 6회 WWE 태그팀 챔피언쉽 2회 ECW 챔피언쉽 1회 |
테마 | Chavito Ardiente |
2 소개
유명한 프로레슬링 집안 게레로 가문의 일원으로서, 아버지인 차보 게레로 Sr.도 레슬러였고, 삼촌은 그 유명한 에디 게레로이다. 아버지의 막내동생인 에디와는 단 세 살 차이로 형제와도 같은 사이였다.
작은 체구 때문에 메인급에서는 활동하지 못하고 주로 크루져웨이트급, 미드카더에서 활동하던 선수였다. 그러나 기량만큼은 최고의 레슬링 가문 게레로 가의 계승자답게 나무랄 데가 없다.
3 커리어
3.1 WCW (1996~2001)
차보는 1994년 데뷔하여 2년동안 멕시코와 신일본에서 활동하다가 1996년에 WCW로 이적한다. WCW에서 먼저 활동하고 있던 에디 게레로의 조카라는 사실에 주목받았다. 그러나 차보는 에디의 등에 업혀가는 것을 꺼려하며 에디와는 다른 스타일의 레슬링을 한다. 그러나 혼자서는 힘들었는지 1999년, 에디의 스테이블 'Latino World Order'에 가입하여 1년동안 함께 활동한다. 그 뒤로 2000년에는 코미디 스테이블 MIA에 가입하여 활동하면서 WCW 태그팀 챔피언이 되기도 한다.
3.2 WWF/E (2001~2011)
3.2.1 로스 게레로스 (2002~2004)
2001년 WCW가 WWF에 흡수되자 자연스럽게 차보도 WWF로 넘어왔다. 넘어와서는 디 얼라이언스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얼마 못가서 축출당한다. 2002년 WWF가 WWE로 바뀌고 나서는 삼촌 에디 게레로와 태그팀 '로스 게레로스'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차보도 삼촌처럼 거짓말하고, 속이고, 훔치는 레슬러가 되었다. 그렇게 에지&레이 미스테리오, 팀 앵글(셸턴 벤자민 & 찰리 하스)을 상대하며 태그팀 디비전의 중심이 되었고, WWE 태그팀 챔피언쉽까지 차지하는 영광을 누린다. 로스 게레로스는 날로 인기가 증가해 삼촌 에디가 WWE 챔피언쉽 스토리라인에 끼면서 차보보다는 에디의 상승세가 더 높아지게 되었다.
이것을 계기로 차보는 턴힐하며 차보가 에디를 배신함으로서 로스 게레로스는 끝이 났고, 에디와의 대립이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아버지인 차보 게레로 시니어와 함께 활동하며 1:2대립을 시작했다.[5] 이들의 대립은 2004 로얄럼블에서 에디가 차보를 꺾는 것으로 끝이 났다.
3.2.2 크루저웨이트의 터줏대감 (2004~2005)
2004년 에디와의 대립이 끝나고, 차보는 WWE 크루저웨이트 챔피언쉽을 차지하고 크루저웨이트급의 터줏대감으로 자리매김하여 레이 미스테리오, 빌리 키드먼 등과 대립했다. 2004년 2월 기세가 등등해진 차보는 크루저웨이트 챔피언쉽 오픈 챌린지를 열었고, 그 상대로 디바 재클린이 나왔다. 어이없어 하는 차보는 일단 경기를 시작했는데... 심판의 눈이 다른곳을 향했을때 재클린이 차보에게 로우 블로우를 먹이고 3 카운트를 따내며 챔피언쉽을 뺏긴다!![6] 그래도 12일 만에 다시 재클린으로부터 벨트를 회수한다.
그 뒤로 5월에는 스파이크 더들리와 대립하면서 5월 18일 스맥다운에서 차보 vs 스파이크 vs 차보 시니어 로 삼자간 챔피언쉽 경기가 열렸는데 어이없게도 아버지 차보 게레로 시니어가 아들을 커버하고 챔피언에 등극했다.아버지 통수 지리네 그러나 8월 스맥다운에서 빌리 키드먼과 경기 중에 슈팅스타 프레스를 잘못 맞고 뇌진탕에 걸려 몇달간 쉬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크루저웨이트 챔피언쉽은 아버지가 레이 미스테리오에게 뺏겼고, 스파이크 더들리, 후나키 순으로 챔피언이 되어 있었다.
차보는 부상 치료하면서 2005년에 돌아왔고 노 웨이 아웃 2005에서 6자간 크루저웨이트 챔피언쉽 경기에서 통산 5회 챔피언이 된다. 그러나 한 달만에 8인 배틀로얄 경기에서 폴 런던에게 타이틀을 뺏기고 만다. 그러다 경기 도중 뼈 골절 부상을 당하며 또 쉬게 된다. 그러다 2005년 드래프트에서 RAW로 전격 드래프트 된다.
3.2.3 커윈 화이트 (2005)
캐디인 닉 네메스와.
차보 게레로 최대의 흑역사
RAW로 드래프트된 차보는 링네임을 '커윈 화이트'로 바꾸고 기믹도 골프선수 기믹으로 바꾸고 활동하며 캐디로는 '닉 네메스' 를 데리고 다닌다.[7] 커윈은 자신을 앵글로 아메리카인이라고 지칭하며 누가 봐도 차보인데 활동했고 '흰색이 아니면 옳지 않다'는 자신만의 캐치프레이즈를 만들었다.[8] 문제는 저 흰색이 피부색이고 인종차별 기믹이었다. 그러나 커윈에 대한 관중의 반응이 아예 없는 수준(...)이라서 이 문제도 크게 두각되지 않았다. 그렇게 피부가 하얗지 않은 쉘턴 벤자민, 타지리등과 대립하며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었는데....
3.2.4 에디의 죽음, 그 이후... (2005~2007)
2005년 11월, 삼촌인 에디 게레로와 호텔을 같이 쓰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에디가 급성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 일이 일어나자마자 차보는 '커윈 화이트'기믹을 버리고 더불어 닉 네메스도 같이 버려지고 다시 '차보 게레로'로 돌아왔다. 이 소식을 들은 빈스 맥마흔은 바로 그 주의 로우와 스맥다운을 에디의 추모특집으로 마련했고, 에디와 친한 선수들과 차보는 그를 기리기 위해 그의 이니셜인 'EG'가 새겨진 완장을 차고 경기에 임했다. 거기서 차보는 존 브래드쇼 레이필드에게 승리했는데 그를 기리기 위해 피니쉬 무브로 프로그 스플래쉬를 사용했다. 또한 차보는 에디와 자신이 늘상 그러했듯이 거짓말하고 속여서 승리했기 때문에[9] 에디를 그리워하는 많은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2006년 2월 스맥다운에서 레이 미스테리오와 대립 중이던 랜디 오턴이 삼촌인 에디 게레로를 상대로한 고인드립을 치자 이에 분노하여 바로 등장하여 프로그 스플래쉬를 먹여준다. 그리고 그 다음 주 RAW에서 레슬매니아 22에서 머니 인 더 뱅크 매치 도전자 결정전을 쉘턴 벤자민과 치루고 있었는데 오턴이 난입해 그에게 RKO를 먹이고 쉘턴이 승리하게 되었다. 4월 RAW에선 '팬들의 성원에 감사하며, 에디의 영혼이 그의 가족과 나를 지켜줄것이다.'라며 에디를 추모했고, 에디 헌정 경기를 쉘턴 벤자민과의 WWE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쉽으로 하겠다고 했으나 패배하고 만다. 감정에 북받친 차보는 WWE를 떠나겠다는 세그먼트를 했다.
그리고 한동안 모습을 안보이다가 5월 스맥다운에서 모습을 나타냈고, 핀레이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그 뒤로 몇 주간 레이 미스테리오를 서포트 해준다. 그러나 레이 미스테리오와 킹 부커와의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쉽(WWE) 경기 도중 레이를 철제의자로 공격해 턴힐하며 킹 부커가 챔피언이 되는데 일조한다. 섬머슬램 2006 레이 미스테리오와의 경기에선 에디의 미망인이였던 비키 게레로가 등장하여 두 사람을 말리다 차보의 승리를 돕는다. 결국 이후의 스맥다운에서 비키 역시 레이를 배신하고 차보쪽으로 붙었다. 이어진 노머시에선 폴스 카운트 애니웨어 매치에서 패배하며 대립이 장기화되던 중 레이가 다리 부상을 당한다. 이에 위클리쇼인 스맥다운서 아이 큇 매치 때 레이 미스테리오를 구조물에 매달고 다리에 체어샷을 연타해 승리하며 레이를 스맥다운에서 자취를 감추게 한다. 그 뒤로는 비키와 같이 크리스 벤와와 대립하며 U.S 챔피언쉽도 노렸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2007년에는 WWE 크루저웨이트 챔피언쉽 8인경기에 참가해 그레고리 헴즈로 부터 타이틀을 가져오며 통산 6회 크루저웨이트 챔피언이 된다. 그 뒤로 그레이트 아메리칸 배쉬 2007에서 비슷한 방식의 6인 챔피언쉽 매치가 열리고, 혼스워글이 챔피언이 된다. 그 뒤로 2개월 뒤엔 비키 게레로의 의해 크루저웨이트 챔피언쉽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이후 경기 때마다 승리한 후면 상대에게 레이 미스테리오의 가면을 씌우고 프로그 스플래쉬를 날렸으며, 가면을 쓰고 레이 미스테리오를 사칭하며 유진과의 경기에서 레이의 기술을 쓰다가 619을 삑사리 내고 링 밖으로 나가떨어지지만 승리한다. 섬머슬램 2007 레이 미스테리오의 복귀전 희생양이 되었다. 섬머슬램 이후 첫번째 스맥다운에서 레이 미스테리오와의 아이 큇 매치가 열렸는데 링 안 턴버클 쪽에 매달린 채 다리에 체어샷 연타를 당하며 아이 큇을 외치곤 자취를 감춘다. 이는 웰니스 프로그램에서 적발된 것에 대한 징계성 조치로 추정된다.
3.2.5 ECW 챔피언, 라 패밀리아 (2007~2009)
U.S 챔피언 MVP와 ECW 챔피언 CM 펑크의 경기에서 이성을 잃고 심판의 제지를 아랑곳 않은 채 무자비한 공격을 퍼부은 MVP 때문에 CM 펑크가 DQ승을 얻었다. 이때 무기력해진 CM 펑크를 습격하며 연말에 ECW에서 복귀한다. 차보 게레로는 CM 펑크를 쓰리 아미고스와 프로그 스플래시로 공격하고는 타이틀에 도전할 것임을 암시한다.
2008년 1월에 CM펑크와 여러 차례 경기를 치뤘지만 계속해서 카운트아웃이나 DQ가 나와(이때까진 전부 차보가 패했다.) 타이틀전이 No DQ 매치가 된 당일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인 에지가 난입해 CM 펑크에게 스피어를 날려준 덕에 차보는 ECW 챔피언이 되어 최초로 업계 정상에 오르는 쾌거를 이룬다. 챔피언이 되면서 에지, 비키 게레로, 커트 호킨스, 잭 라이더와 함께 '라 패밀리아'를 결성한다. 이 라 패밀리아는 에지가 레이 미스테리오, 바티스타, 언더테이커 등의 강자들을 상대로 챔피언을 방어할 때 큰 도움이 된다.
그 뒤 CM 펑크를 상대로 타이틀을 지켜나가지만 레슬매니아 24에서 ECW 챔피언쉽 도전자 자격을 건 24인 배틀로얄 우승자 케인에게 단 11초만에 패배(...)하며 벨트를 뺏긴다. 그 뒤로 뱀 닐리를 자기 보디가드 겸 라 패밀리아의 일원으로 들이며 백래쉬에서 케인에게 재도전하지만 역시 털린다(...) 그 뒤로는 ECW에서 싱글 혹은 태그팀으로 활동하며 에반 본이나 리키 오티즈 같은 신입을 키우며과 대립하며 활동한다. 또한 ECW챔피언쉽에도 여러번 도전했으나 번번히 실패로 끝나고 만다.
에지의 바람기에 비키가 라 패밀리아가 매장시킨 언더테이커와[10] 에지의 헬 인 어 셀 매치를 부킹한다. 이에 백스테이지에서 미치광이가 된 에지의 습격을 받고 뻗은 모습으로 스맥다운에 등장한다.
3.2.6 WWE 말년 (2009~2011)
2009년 차보는 드래프트로 인해 RAW로 이적한다. 이적하고나서 비키 게레로와 산티노 마렐라와의 대립에 끼어들어서 산티노와 대립하며 익스트림 룰즈 2009에서 산티노와 Hog Pen Match에서 패배하여[11] 비키가 WWE를 떠나게 된다. 그러나 차보는 계속해서 산티노와 대립하였고 6월 WWE 슈퍼스타즈에서 패배하는 것으로 대립은 끝이 났다.
2010년에 차보는 드래프트로 인해 다시 스맥다운으로 돌아왔으며, 돌아오자마자 케인에게 초크슬램을 맞았다(...) 그 뒤로 비키가 매니지먼트 하고 있는 돌프 지글러의 연합에 가세하였다. 이 당시 돌프는 크리스챤과 대립중이였고, 차보는 돌프와 팀을 맺고 크리스챤은 혼스워글과 팀을 맺어 2:2매치를 가졌는데 패배했다. 그 뒤로 비키 & 돌프 & 차보는 연합을 맺었고, 비키는 계속 돌프를 도우라는 명령만 내리다 차보는 결국 빡친 나머지 그 명령을 거절하고 연합에서 탈퇴한다.
2011년 3월에는 NXT에서 대런 영의 프로가 되어서 활동했고, 스맥다운에선 타이슨 키드와 신 카라의 대립전선에 끼어들어서 그들과 대립했다. 이 대립은 PPV인 오버 더 리미트에서 신 카라가 이기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그 뒤로는 신인들에게 잡질을 해주다가 WWE에 방출을 요구하여 6월에 WWE를 나왔다.
3.3 WWE 이후 (2011~)
2011년에 독립단체로 돌아간 차보는 2년동안 활동하다 2012년에 TNA에 전격 데뷔한다. TNA에선 에르난데스와 함께 TNA 태그팀 챔피언이 되기도 하였다. TNA에서 2년동안 활동하다 2014년에 루차 언더그라운드에 입단하여 현재까지 활동중이라 한다.
4 트리비아
- 1996년에 데뷔한 선수로써 올해로 21년차 베테랑이다. 그러나 취급이 매우 안습하다. WWE.com 졸업생 목록에도 차보의 이름은 없고, 팬들은 그저 에디 게레로의 조카로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 나무위키에서도 취급이 안습한데, WWE에서도 오랫동안 활약하고, 팬들에게도
희미한기억이 있는 그이지만, 정작 항목은 2016년이 되서야 작성되었다.
- 그 유명한 차보 게레로 Sr.의 아들이기도 하며, 1998년에 수잔과 결혼하여 두 아들을 두었다.
- 2007년 웰니스 프로그램에서 스테로이드 과다 복용으로 몇개월간 자격 정지를 당한 경력이 있다.
- 2007년,
크리스 벤와의 사망당시, 벤와와 마지막으로 얘기를 나눈 사람들중 하나가 차보라고 전해진다. 벤와의 자살 암시 메시지를 차보가 처음 받았다 한다.
- 현재 활동하고 있는 루차 언더그라운드를 매우 호평하고 있다. 전 WWE선수들로 구성되었다는 비판이 있지만, 루차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의 기량은 월등히 좋다고 칭찬하고 있다. 실제로 차보는 현재 루차 언더그라운드에서 수석 에이전트가 되었다.
- ↑ 아버지인 차보 게레로 시니어와 함께 활동할때 Jr. 을 붙이고 활동했다.
- ↑ 영문 위키피디아나 TNA의 프로필엔 183cm로 나오지만 WWE에서 활동했던 당시의 그의 프로필상 키는 175cm였고 삼촌인 에디 게레로 보다 약간 크고 프로필상 181cm인 크리스 벤와 보다 작은 수준이였다.
- ↑ 그의 할아버지인 고리 게레로가 만든 기술
- ↑ 에디 게레로 사후에 그를 추모하기 위해 사용
- ↑ 물론 항상 1:2인 것은 아니고 에디 쪽에 커트 앵글이 붙기도 했다.
- ↑ 이 때, 재클린은 은퇴 직전이어서 WWE측에서 감사의 표시로 잠깐이나마 챔피언을 준 것이라고 한다.
- ↑ 링크로도 걸어놓았지만 닉은 후에 스피릿 스쿼드의 '니키'가 되었고, 그 뒤로는 '돌프 지글러'가 되었다.
- ↑ 영어로는 "If it's not White, it's not right.". 일종의 언어유희였다.
- ↑ 심판의 시선을 딴 곳으로 분산시킨 뒤 의자로 링 바닥을 내리치곤 의자를 경기 상대에게 던지는 동시에 자신은 맞은 척 뒤로 쓰러지는 방법이다. 에디 게레로가 간혹 쓰던 속임수로 생전 마지막 경기에서도 이 방식으로 승리했다.
- ↑ 언더테이커는 자기 기술 헬즈게이트#s-2가 선수를 부상시킨단 이유로 에지에게서 따낸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벨트를 박탈당했으며 공석이 된 타이틀을 차지하지 못하면 WWE를 떠나는 조항이 붙은 채 에지와의 TLC경기에서 라 패밀리아의 방해에 패하고 사라졌었다.
- ↑ 차보가 패배시에 비키가 WWE에서 떠난다는 조항이 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