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개요
1996년 봄 대한민국 가요계에 불어닥친 가수들의 컴백 경쟁
이 위키에서 다룰 가수는 솔리드, R.ef, 김건모, 신승훈, 전람회, 윤종신 그리고 클론이다.
1996년 봄은 당시 한국 가요계를 좌지우지하던 슈퍼스타들의 컴백이 줄줄이 이어지던 시기였다.[1] 신인팀이었던 클론을 제외하면 나머지 팀의 경우 각 자의 커리어에 굉장히 중요한 시기였으며, 이 시기를 기점으로 인기가 꺾인 팀들도 있다.
앞서 말한 뮤지션들의 앨범 발매 순서는 솔리드 3집(4월초), R.ef 2집(4월중순), 신승훈 5집(5월초), 김건모 4집(5월중순)이 되겠다. 윤종신의 5집과 전람회의 2집은 4월에 발매되었고, 그 해 여름을 씹어먹은 클론의 데뷔앨범은 5월에 발매되었다.
2 발단 및 전개
당시 컴백 혹은 데뷔하던 가수들의 이해관계는 다음과 같으며 다루는 순서는 컴백 시기와 같다.
2.1 솔리드
김조한, 이준, 정재윤의 재미교포 3명으로 이루어진 솔리드는 1993년에 데뷔했지만 큰 인기를 못 얻다가 1995년 봄에 그들 최고의 히트곡 '이 밤의 끝을 잡고'가 터지면서 스타가 되었다. '이 밤의 끝을 잡고'는 후속곡 '나만의 친구'가 순위차트에 진입했다 빠질 때까지 머물렀을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성공적인 한 해를 보낸 솔리드는 1996년 봄을 3집 <Light, camera, action>의 발매시기로 잡게 된다.
2.2 R.ef
이성욱, 성대현, 박철우로 이뤄진 R.ef는 1995년에 데뷔했다. 그들의 1집에 담긴 '고요 속의 외침', '이별공식', '상심' 세 곡을 연달아 성공시키며 스타가 되었다. 특히 준수한 외모와 화려한 춤 덕에 소녀팬들의 지지가 아주 높았다. 인기 고공행진을 하던 R.ef는 연말 TV 3사 가요시상식을 끝으로 휴지기에 들어가고, 1996년 봄을 2집 <Back to the black>의 발매시기로 잡게 된다.
2.3 신승훈
이미 대중음악계의 슈퍼스타였던 신승훈은 1994년 가을 발매된 4집 <그 후로 오랫동안>을 끝으로 긴 휴지기에 들어가게 된다. 그는 다음 앨범을 1~4집 성공에 큰 역할을 한 소속사 라인음향의 김창환, 천성일 등의 도움을 최소화하여 발매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다음 그가 전곡 작사, 작곡, 편곡 및 프로듀싱까지 해 낸 5집 <Shin seung hun Ⅴ>를 1996년 봄에 발매하게 된다.
2.4 김건모
신승훈과 더불어 이미 대중음악계의 스타였던 김건모는 1995년초 대한민국을 온통 '잘못된 만남'의 멜로디로 뒤덮어 버린다. 그 뒤 그는 최다판매로 기네스 기록까지 갖게 된 3집 이후, 소속사 라인음향을 나오게 되고 프로듀서 김창환과 결별한 뒤 솔리드, 김현철이 소속된 서인기획으로 소속사를 갈아타게 된다. 또한 당시 여러 히트곡을 발매한 최준영과 함께 4집 <Exchange kg. m 4> 작업에 들어가, 컴백시기를 1996년 봄으로 잡게 된다.
2.5 클론
고등학교 동창인 구준엽, 강원래로 이루어진 클론은 1996년 당시 라인음향 소속 가수들의 작업을 도와주고 있었다. 미술을 전공한 구준엽은 앨범 디자인에 일가견이 있었으며, 강원래는 박미경을 비롯해 다른 라인음향 소속 가수들의 안무를 짜는 사람이었다. 현진영과 와와로 데뷔한 이 2명은 김건모가 라인음향을 나가면서 빡친 김창환의 주도로 '타도 김건모'를 기치로 데뷔앨범을 준비하게 되었으며, 첫 앨범 발매시기 역시 김건모의 5집과 동일한 1996년 봄으로 잡게 된다.
2.6 전람회와 윤종신
김동률과 서동욱으로 이뤄진 전람회는 1993년 MBC 대학가요제에 참가하면서 데뷔하였다. 1집 <Exhibition> 발매 후, '기억의 습작'이 성공하고 이들은 동시에 군입대(방위병)를 하게 된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친구였던 둘은 예전에 작업한 곡들과 더불어 군생활 틈틈히 작업한 새로운 곡들을 모아서 만든 2집 'Strangers…(Exhibiton 2)' 발매시기를 1996년 봄에 발매한다.
윤종신은 1993년 2집 <Sorrow>의 '너의 결혼식'(1992년 발매), 1994년 3집 <The Natural>의 '오래전 그날' (1993년 발매) 그리고 1995년 '부디'의 연속히트와 라디오 등지에서의 입담으로 점차 대중음악계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이때까지 윤종신의 앨범은 김형석, 정석원 등이 편곡을 맡았으나, 한 술자리에서 김장훈의 소개로 유희열을 만나게 되고 그를 음악노예로 참여시켜 5집 <우(愚)>를 1996년 봄에 발매하게 된다.
당시 이 두 뮤지션의 소속사는 '90년대 이른바 뮤지션들의 소굴이었던 '대영 AV'였다.
3 절정
3.1 솔리드
마침내 솔리드가 1996년 4월 15일, 3집 <Light, camera, action>을 들고 컴백한다. # 타이틀 곡은 '넌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이 노래는 솔리드 경력 중 최고봉인 '이 밤의 끝을 잡고'의 뒤를 잇는 R&B 발라드였다. 이 시기 출연과 관련해 갈등을 빚은 SBS를 제외하고, KBS 가요톱텐, MBC 인기가요 BEST 50 등 지상파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빠른 속도로 순위권에 진입했고, 앨범이 발매되고 얼마 되지 않는 시점에 가요톱텐에서 2주간 정상을 차지하다가 다음팀에게 정상을 내준다. 한편, 2집 활동 시절과는 달리 김조한 뿐만 아니라 랩을 담당한 이준도 턱수염을 기르고 나와 화제가 되었다.
3.2 R.ef
R.ef도 솔리드와 큰 시차를 두지 않고, 2집 <Back to the black>를 발매하고 컴백한다. 이례적으로 더블 타이틀곡으로 '찬란한 사랑'과 '마음 속을 걸어가'를 더불어 홍보하다가, 이성욱의 인상적인 나레이션으로 유명한 '찬란한 사랑'#(오그라듬 주의...)을 중심으로 활동을 진행한다. 정적인 솔리드와는 달리 현란한 춤을 주무기로 삼고 활동한 R.ef는 소녀팬들의 인기가 대단했으며 먼저 차트 1위를 차지한 솔리드의 뒤를 열심히 쫓아 마침내 1위 자리를 차지하면서 TV가요 20에서는 5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다만 다른 지상파 가요프로그램에서는 5월 29일 가요톱텐에서 1위를 차지한 게 전부였는데 그 이유는 역시 다음 컴백하는 가수 때문이었다.
3.3 신승훈
4집 활동 후, 1년 6개월여의 공백을 가진 신승훈의 컴백은 당시 가요계 전체를 들썩이게 만든 핫이슈였다. 신승훈은 본인이 가진 음악역량의 진수를 보여주고자 5집 <Shin seung hun Ⅴ> 전 곡을 작사, 작곡, 편곡했으며 타이틀 곡은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 신승훈이 그간 앨범에 담아왔던 애이불비 정서의 대단원에 해당하는 곡으로 신승훈의 1~4집과 발매와 더불어 빠른 속도로 100만장 판매를 훌쩍 넘기게 된다. 그와 더불어 차트 순위 진입 속도도 무척 빨라서 앨범 발매 후 가요톱텐에서 3주 만에 1위 후보가 되었다(3위 기록).
이는 당시 굉장히 이례적인 일로 신승훈의 인기를 반증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인기를 많이 얻은 골든컵 제조기인 그의 5집도 가요톱텐에선 6월 5일에 1위를 한 게 전부인데 그가 컴백하고 약 열흘 후, 한때 같은 라인음향 소속이자 90년대 가요계에서 그의 라이벌인 가수가 앨범을 발매했기 때문이다.
3.4 김건모
김창환과의 결별 후, 김건모는 당시 솔리드와 김현철이 소속되어 있던 서인기획으로 소속사를 옮기고 4집 <Exchange kg. m 4>를 발매한다. 타이틀 곡은 '스피드'.# 이 곡은 당시 쿨의 '작은 기다림', '슬퍼지려 하기 전에' 그리고 룰라의 '날개 잃은 천사' 등의 히트곡을 쏟아냈던 작곡가 최준영의 작품이기도 하다. (이 후에 이정현의 '와', '코요테의 '순정' 등을 작곡하기도 했다.) 당시 활동의상은 브라스 편곡과 더불어 복고적인 리듬으로 진행되는 곡에 맞춰 중절모와 품이 넓은 스트라이프 정장! (그래서 이 시기 영상들을 유튜브에서 찾아보면 남자 출연자들의 와이셔츠 깃이 재킷을 다 덮는다.) 심지어 남철, 남성남의 왔다갔다춤 등으로 곡의 분위기를 한껏 살리기도 하였다.
스피드는 처음에 가요톱텐에서 5위에 랭크되었다가 그 다음 주에 1위 후보에 올랐으며, 가요톱텐에서는 신승훈을 단 1주 1위에 머물게 하는 기염을 토한 뒤 3주간 쭉 1위를 연속 수성하면서 가요톱텐에서의 큰 역사를 남길 수 있었는데.....
3.5 클론
1996년 별들의 전쟁은 솔리드, R.ef, 신승훈의 연이은 컴백을 지나 김건모로 정리가 되어가고 있는 듯 했다. 더구나 김건모의 4집 앨범 타이틀 곡인 '스피드'는 파죽지세로 차트를 점령해가고 있을 때 라인기획의 프로듀서인 김창환은 댄스듀오 클론을 출격시킨다. 데뷔곡은 '꿍따리 샤바라'.#
클론은 현진영과 와와로 데뷔해서 라인음향 소속 가수들의 안무를 짜주곤 했는데, 그 덕에 방송무대에 자주 오르기도 하였다. 특히 강원래는 박미경 2집에 실린 '이브의 경고'에서 랩과 안무를 담당하며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건장한 체격의 두 남자는 화려한 춤을 무기로 여름느낌 물씬 나는 노래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이 곡은 그 해 전체를 지배하는 히트곡이 되면서 발매된지 3주 만에 1위 후보에 오른다.
그 절정의 순간이 바로 김건모가 가요톱텐에서 '스피드'로 전무후무한 역사를 쓰기 직전 클론이 이변을 연출해 냈으며, 그 기세로 또 다른 경쟁곡인 룰라의 <3! 4!>와 DJ DOC의 <여름 이야기>와의 대결 끝에 골든컵을 수상하면서 별들의 전쟁 승자가 되었다. 물론, 이 순간 모든 것을 지켜보며 만면에 미소를 띄고 있던건 라인음향의 프로듀서 김창환.
3.6 전람회와 윤종신
- 대형가수가 득세하는 이 난세 속에서 전람회는 2집 'Strangers…(Exhibiton 2)'를 발매해 군입대로 인한 긴 휴지기를 마치고 활동에 들어간다. 타이틀 곡은 '이방인'.# 전람회 특유의 진중한 사운드를 뿜어낸 이 곡은 라디오를 중심으로 서서히 인기몰이를 하기 시작했고, 같은 앨범의 'J's bar에서'와 '10년의 약속' 등도 호응을 얻었다. 무엇보다 이 앨범에 담긴 곡 중 지금까지 인기있는 곡이 있는데, 다름아닌 쑥맥남들의 고백송인 '취중진담'.
- 윤종신은 1996년 겨울로 예정된 군입대를 앞두고, 그 해 봄 5집 앨범 '<우(愚)>'를 발매했으며 타이틀 곡은 유희열과 함께 작곡한 '환생'.# 1996년은 1970년대 복고무드가 주름잡을 때였고 그 덕에 슈가팝 스타일의 '환생'은 가요톱텐에선 최고 4위까지 랭크되었으며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에서는 신승훈, 클론과 같이 1위 후보에 2차례 오르기도 했다.(당시 다양한 곡의 코러스를 담당하던 조규찬도 한 몫 했고...) 더불어 윤종신의 TV출연도 잦아지게 되었으며 이 앨범은 (이 후 윤종신이 앨범을 만드는 방식이 되기도 한) 앨범 전체를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 구성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기도 하다.
- 이 위키에서 전람회와 윤종신을 다루는 이유는 이른바 별들의 전쟁 속에서 본인들의 영역을 단단하게 지켜냈기 때문이다. 특히 대중적인 인기척도인 가요순위프로그램은 매주 시시각각 노래들의 순위가 오르내리고 있었으나, 이들의 앨범은 가요앨범판매 시장에서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었다. 솔리드, R.ef, 신승훈, 김건모의 경우 시장 초기반응이 원체 좋아서 순식간에 앨범판매량이 올라갔다면 이들의 앨범은 천천히 그리고 오래타는 장작처럼 시장을 달구어갔다.
4 결론
-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바와 같이 최종승리자는 클론이었으며 물론 그 해 가장 많은 앨범을 판매한 가수는 아니었지만[2] 클론이 거둔 가장 큰 의미는 신인으로서 당대의 스타들을 무너뜨렸다는 점에 있다. (더불어 김창환과 라인음향의 역습도...)
- 또한 클론은 SBS 가요대상과 서울가요대상에서 대상 2관왕을 차지하면서 전성기를 누렸으며 그 해 별들의 전쟁의 수록된 인물 가운데서 최다 1위를 기록했다.(가요톱텐 5주, TV가요 20 2주, 인기가요 베스트 50 3주)
- 가요계 전체를 달구었던 1996년 별들의 전쟁 이 후 이 위키에 서술된 뮤지션들의 행보는 다음과 같다.
4.1 솔리드
솔리드가 데뷔한 것은 1993년이었지만, 정작 인기를 얻게 된 것은 1995년이었다. 한국에서 R&B 스타일의 곡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솔리드는 비슷한 스타일의 곡으로 3집 활동을 시작했으나, 그 성과는 2집과 비교하면 적은 편이었다. (어쩌면 2집의 성공이 독이 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열거한 클론의 경우처럼 늘 의외의 곳에서 사건이 터지는데, 후속곡으로 홍보하기 시작한 곡이 그 해부터 지금껏 여름만 되면 울려퍼지는 스테디 셀러가 되었다. 그 곡이 다름아닌 '천생연분'이며 가요프로그램에서 10위 권에 드는 등 선전했다. #
하지만 이런 활동에도 불구하고 솔리드의 인기는 점차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고, 다음 해인 1997년 4집 앨범 <끼리끼리>라는 곡으로 활동한 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4.2 R.ef
- R.ef는 신승훈, 김건모, 클론이 KBS 가요톱텐에서 차례로 순위다툼을 하는 동안 MBC의 인기가요 BEST 50과 SBS의 TV가요20에서는 '찬란한 사랑'이 순위제 명예졸업을 하면서 1995년에 발매한 1집의 인기를 이어갔으며, 후속곡인 '마음 속을 걸어가'도 가요톱텐에선 10위권에 들었고 TV가요20에선 2주간 1위를 차지했다.
- 또한 1996년 가을에는 2.5집의 타이틀 곡 '가을의 기억'으로 가요톱텐에선 상위권에 올랐으며 TV가요 20에서는 1위 수상까지 하면서 인기를 얻고 있었는데..... # 1997년 초 R.ef가 소속사와의 이익배분 문제 때문에 잠적을 해버린 사건이 터지면서 내부적으로 심한 부침을 겪기도 했다.
- 다행히 이 문제는 곧 봉합되었고, R.ef는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그룹의 이름의 뜻을 'Rave effect'에서 'Ruff eazy flava'로 바꾼 뒤 1997년 가을에 힙합 장르를 기조로 한 3집 앨범 타이틀곡인 '심연'으로 가요차트 10위 권에 드는 등 선전했지만 내부적인 부침과 더불어 이들의 강력한 지지기반이었던 소녀팬들이 막 데뷔를 한 1세대 아이돌 가수들로 넘어갔던 시기였던터라 이들의 인기는 예전과 같지 않았고, 그 뒤 뮤직뱅크에서 4집 활동을 한 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4.3 신승훈
- 신승훈의 5집 앨범은 예전과는 달리 가요순위프로그램에서 1위를 많이 하지 못하면서 신승훈도 예전같지 않다는 말이 들려오기 시작했지만 그 해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기록되었다.
- 타이틀곡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 이후 그는 후속곡으로 '내 방식대로의 사랑'#으로 선정해 당시 유행하던 맘보무드를 한껏 이용해 가요톱텐에서는 최고 3위, mbc에서는 1위를 차지했으며 스케일이 있는 후속곡 '운명'까지 상위권 순위에 랭크시키며 활동을 이어갔다.
- 그 해 겨울 연말 시상식을 끝으로 신승훈은 다시 다음 앨범 준비에 들어갔으며, IMF로 대한민국이 꽁꽁 얼어붙었던 1998년 초 6집 타이틀곡인 <지킬수 없는 약속>으로 여러 가요프로그램에서 1위를 거머쥐면서 다시 전성기를 이어갔다.
4.4 김건모
- 라인음향을 떠난 이후에 김건모는 본인이 3집에서 거두었던 성공을 계속 이어나갈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래서 손을 잡은 인물이 바로 작곡가 최준영이었고 4집의 인기로 성공적인 안착도 이뤄지는 듯 했으나, 전 소속사 대표였던 김창환이 출격시킨 클론에 밀려서 아쉬운 결과를 낳았다.
- 물론 그는 후속곡 '악몽'#과 더불어 발라드 '미련', 동명의 MBC 프로그램의 오프닝 삽입곡으로 유명한 '테마게임'등을 연속 히트시켰으며 그 해 '스피드'라는 곡으로 MBC 가요대상, KBS 가요대상, 골든디스크 시상식(당시에는 대한민국영상음반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 그도 역시 그 해 연말 방송사 시상식을 끝으로 4집 활동을 마감하고, 1년여의 작업 끝에 1997년 12월 5집 앨범 <Myself>를 발매하면서 전성기를 이어갔다.
4.5 클론
1996년 여름을 씹어먹은 '꿍따리 샤바라' 덕분에 클론은 일약 최고스타가 되었으며, 후속곡 '난'으로 1996년 10월까지 활동을 이어간다. 그리고 다음 해 여름을 앞두고 '꿍따리 샤바라'와 비슷한 스타일의 '도시탈출'을 발매했을 때는 이전 스타일의 답습에 그쳤다는 평가와 함께 슈퍼루키 시절의 인기를 이어가진 못했지만 그래도 1위 후보에 여러번 오르면서 선전했으며[3] 나중에 대만 쪽으로 프로모션을 하게 되면서 새로운 길이 시작되었다.
4.6 전람회와 윤종신
1996년 봄의 조용한 승자 전람회는 사실 곧 팀 해체를 앞두고 있었다. 음악의 길을 걷고 싶어했던 김동률과 본인의 미래를 걷고 싶어한 서동욱은 서로를 위해 이듬해 초, 3집 <졸업>을 발매하고 공식 팀 해체를 선언했다.
또 다른 승자 윤종신은 '환생'으로 그 해 여름 내내 활동을 이어간 후, 11월에 6집 '육년'을 발매하고 군에 입대했다.
5 그 외
- 1996년대의 또 다른 승리자는 바로 김정민으로 그 해에 그는 가요 프로그램에서 26번이나 1위를 하면서 전성시대를 이끌어 갔다.[4]
- 이 해에는 스터디 셀러 명곡들이 많았는데, 1995년 겨울에 발매된 곡이 1996년 여름까지 순위권에 있었으며 설운도의 <삼바의 여인>은 1996년 10월 말까지 가요톱텐 차트 순위권에 있었다.
- 또한 유작 앨범인 故 김성재의 '말하자면'은 가요톱텐에서 1위 후보에 2주간 있었으며, 故 서지원의 '내 눈물 모아'는 각종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여러번 차지했다.
- 별들의 전쟁이 끝나자마자 데뷔한 가수가 1990년대 가요계의 신데렐라 김현정이었다.
- 별들의 전쟁이 끝난 뒤에도 1996년에는 명곡이 마구 쏟아졌는데, 룰라의 3!4!, 김원준의 '쇼' DJ DOC '여름이야기' 쿨 '운명' 이문세 '조조할인' 등이 이 해 여름과 가을에 나온 곡이며,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서며 영턱스클럽과 H.O.T.의 데뷔와 함께 1세대 아이돌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 ↑ 1996년 1월 서태지와 아이들의 돌연 은퇴선언으로 트리거가 당겨진 것도 컸다. 한편으로 당시 조선일보 같은 메이저 신문 연예면에서 방송사PD 입을 빌려 '서태지와 아이들은 냉정하게 말해 은퇴를 해서 후배 가수들에게 길을 열어줘라' 같은 칼럼으로 공격하고 있던 상황.
이게 뭔 소리야 - ↑ 그 해 최다 음반 판매는 신승훈의 5집
- ↑ 사실 이 때는 임창정이 '그 때 또 다시'라는 곡으로 전성기를 누리고 있던 시기여서...
- ↑ 슬픈 언약식(11번 - 가요톱텐 5번, TV가요 20 3번, 인기가요 베스트 50 3번), 마지막 약속(6번 - 가요톱텐 1번, TV가요 20 2번, 인기가요 베스트 50 3번), 애인(9번 - 가요톱텐 3번, TV가요 20 2번, 인기가요 베스트 50 4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