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도어 모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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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치하에서 고통받는 민족들의 독립을 갈망하는 모렐 박사

[1]
자꾸 보면 정든다. 히틀러의 신체로 인체실험을 하는 계획을 세우며 미소짓는 저 카와이한 얼굴을 보라.

1 개요

Theodor Gilbert Morell(1886. 7. 22 ~ 1948. 5. 26)

히틀러의 주치의. 그리고 히틀러를 마약중독자로 만든걸로 유명한 돌팔이다. 그러나 그는 나치 독일이 자행했던 악행에 전혀 동조하지 않은 인물이기도 하다. 분명 의사로선 돌팔이였지만, 피해자가 그걸 당해도 싼 인물인데다 모렐을 기용하고 신임한게 본인이니만큼 순전히 자업자득인 관계로, 여느 돌팔이들과는 다른 평가를 받고 있다.

마약돼지 헤르만 괴링은 비꼬는 투로 그를 제국 주사부 장관이라고 부르곤 했다. 지가 할 말은 아닐텐데?

2 출생과 성장

모렐은 초등학교 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그르노블과 파리에서 산부인과에서 공부해서 1913년에 박사 학위를 땄다. 1차 대전 때는 군의관으로 종군했으며 종전 후 베를린에서 구식 치료법에 얽매이지 않는(!) 의사로 명성을 얻었고 페르시아(왕)나 루마니아의 국왕이 그를 주치의로 두길 바랬지만 거절했다. 그리고 훗날 이들은 모렐을 데려오지 않은 걸 신께 감사했다고 한다. 모렐은 후일의 노벨상 수상자 일리아 메치니코프(1845~1916)에게 배움을 받기도 하고 여러 대학의 교수로 활동했으며 규모가 큰 제약회사의 대주주였고. 1936년에는 베를린의 번화가 쿠담거리에서 잘 나가는 병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여기까지만 요약하면 평범한 의사의 출세 이야기이겠지만...

어느 날 그에게 아주 특별한 인생의 전환점이 생겼다.

3 본격적인 활동 내역

모렐은 1933년에 나치당에 가입했다. 그 후 히틀러의 사진사인 하인리히 호프만을 치료해주면서 점차 인맥을 쌓더니 호프만과 에바 브라운으로부터 히틀러의 주치의로 소개받는다. 아이고 만세 히틀러는 이제 죽었어

당시 피부 발진과 위장 가스로 고생하던 히틀러에게 모렐은 여러 약품을 조합하여 히틀러의 증상들을 치료했다고 히틀러가 착각하게 했고 대다수의 나치 지도자들은 그를 높게 평가했으나 힘러와 괴링은 그가 돌팔이라고 느꼈다고 한다. 물론 히틀러의 귀차니즘이 캐리해주었다

모렐은 이 후 친위대 출신으로 젊은 다른 주치의이자 인간쓰레기인 카를 브란트와 경쟁했는데, 히틀러는 모렐의 편을 자주 들어주었다.[2] 이렇게 모렐은 히틀러 옆에서 치료 활동겸 연합군 스파이 노릇을 했고 1944년에 7월에 히틀러 암살 미수사건에도 모렐은 약을 써서 히틀러의 기운을 차리게 했다. 그러나 1945년 4월에 히틀러는 그의 도움이 이제 없어도 된다토사구팽고 하며 그를 총통 방공호에서 떠나게 해주었다. 그가 얼마나 히틀러에게 신뢰를 받았는지 알 수 있는 내용이다.

3.1 그가 히틀러에게 처방했던

히틀러에게 처방했던 약물은 약의 쓰임새, 용법 등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달라졌을 뿐, 약이나 처방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하긴 힘들다. [3] 다만... 흥분제와 진정제를 같이, 장기간 투여시에 사람 몸이 어떻게 될지는 안봐도 비디오. 이 약물 치료로 인해, 히틀러는 1944~45년에는 파킨슨병 징후를 보였다.

  • 브롬화칼륨 : 1800년대의 경련 억제와 진정제로 쓰였다. 허나 지금은 개를 위한 약품으로 쓴다. 개 취급 받는 히틀러 근데 사실은 개보다 못했다는게 함정[4]
  • 마전자 : 인도산 교목으로 신경 흥분제의 효과를 줌. 비장과 위장이 상하는 부작용이 있다.
  • 아트로핀 : 유독성 알칼로이드로 경련 완화제 효과[5]
  • 나트륨 바르비탈 : 진정제, 수면제 효과, 단 호흡 곤란 또는 쇼크 시에 투입하면 위험하다.
  • 시네프린 타르타르산(Synephrine Tartrate) : 광귤 열매에서 추출하는 물질로 한국에선 식욕 억제제(다이어트제)로 왠지 인기가 높지만 신경계에 작용하는 약물이므로 부작용이 심하고 과다 복용시 사망할수도 있어 일각에서는 금지해야 한다는 소리도 나오는 약물이다.
  • 카밀레 : 영어로 하면 캐모마일, 쉽게 말하면 국화차다. 이 사람이 히틀러에게 실험처방한 약물 중 몇 안돼는 멀쩡한 성분
  • 테스토스테론 : 남성호르몬의 일종. 가장 흔히 알려진 남성 호르몬이기도 하다. 음모론에서 종종 나오는 "히틀러는 남성 호르몬 맞은 여자." 라는 헛소문이 이 처방때문일지도 모른다. 맨 파워를 증진하나?
  • 페르페나진 : 조현병 치료제, 구토 치료제. 과다 복용시 부작용으로 파킨슨증이 발생할 수 있다.
  • 카페인
  • 벨라도나 : 관목의 일종으로 열매를 3알 이상 먹으면 죽을 수 있다. 심박 급속증, 환각, 조급함, 균형 상실, 변비, 굵은 목소리, 목의 건조를 일으킬 수 있다. 요즘에는 경련 완화제인 아트로핀의 원료로 경작하나, 종종 마약으로도 쓰인다.
  • 대장균 (???)
  • 디히드로코데인 : 모르핀 계열의 강력한 마약의 일종
  • 술폰아미드 : 종합 항생제의 일종. 요제프 멩겔레, 카를 브란트 등 미친 새끼들이 인체실험할때 쓴 술폰아미드와는 다른 물질인듯. 걔들이 쓴건 멀쩡한 술폰아미드 항생제가 아니라 술폰산의 다른 화합물로 보인다.
  • 코카인 [6]&아드레날린 : 섞어서 안약 형태로 처방했다고 한다.
  • 효소
  • 비타민
  • 암페타민 : 각성제의 일종, 과다복용시 쇼크, 심정지 등의 위험이 있다.
  • 메스암페타민 : 쉬운 명칭으로 필로폰 본격 히틀러 약쟁이 만들기[7]
  • 단백질
  • 지질 : 지질은 단백질, 당질, 핵산의 결합체이나 그보다 더 많은 종류를 화합했으며 생체 내에서 다양한 역할을 한다.

이쯤되면 오히려 히틀러가 1945년까지 어떻게든 산 게 신기할 지경이다. 그것도 병으로 죽은게 아니다 저 정도로 아무거나 때려박고도 살 수 있게 만든 것만으로도 의사로서의 능력이 있는거 아닐까

심지어 하루에 28가지 씩의 알약과 물약, 주사약을 처방했다. 약만 먹어도 배부를 듯 하도 주사를 찔러대다보니 모렐의 진료기록에는 주사바늘이 휘었다[8]는 기록도 간간히 나온다.

보면 알겠지만, 모렐이 처방한 약들은 캐모마일과 술폰아미드, 효소 등 몇몇 일부를 빼면 하나같이 일시적으로 괜찮아보일 뿐[9]인 효과만 내는 땜빵에 불과한 것들이며[10], 그 댓가로 더 안좋은 효과를 가져다주는 사실상 독약들이었다. 심지어 일부는 양을 조금만 더 늘렸다면 바로 죽어도 할 말 없을 정도로 지독한 약들이였다. 한마디로 이독제독, 독으로 독을 다스린 셈. 즉 하나하나만 보면 당시의 의학수준에서는 적절한 때 적절한 양을 적절한 기간동안 쓰면 효과적인 약들이었으나, 지나치게 남용, 오용한 셈이다. 요즘의 예를 들면 항생제나 소염진통제, 소화제 등 대증적인 약을 무식하게 먹는 거나 마찬가지.

참고로 모렐은 단 한번도 히틀러에게 자신이 뭘 처방하는지 말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암살 진행을 들키면 곤란하니까 어차피 일자무식인 히틀러에게 말해줘도 뭘 알아듣겠느냐만은... 그래도 히틀러는 자기가 먹는게 뭔진 몰라도 일단 그의 처방대로 먹거나 맞고 나면 몸이 쌩쌩해지고 통증[11]이 싹 가라앉는 등 효과 하난 죽여줬던데다가, 타고난 귀차니즘 때문에[12] 안 물어본 모양.

사실 히틀러가 모렐을 신뢰한건 모렐의 처방전이 상술한대로 즉각적인 효능 하나는 끝내주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환자가 의학적 지식이 많은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자기 몸에 일어나는 통증의 강도 정도로밖에 자신의 회복 여부를 판단할 수 밖에 없으므로, 의사가 공들여 지은 약을 몇달동안 먹어 서서히 제대로 낫는 것 보다 진통제 한방 맞고 잠깐동안이지만 바로 쌩쌩해지는 쪽을 더욱 만족스러워한다. 실제 약효는 거의 없이 진통 효과가 전부인 파스가 만년 스테디셀러인것만 봐도 알 수 있다.[13] 즉 모렐의 처방전은 뭐가 어찌되었든 바로바로 약빨이 서니 히틀러가 아니라 누가 대상자가 되었어도 모렐을 신임하였을 것이다.[14] 지금은 나름 대중들의 건강, 의학 지식도 늘었고[15], 항생제 처방률에 대해 국가적 통제와 정보공개도 하니깐 저런 식의 오남용은 할 수 없다. 단지 의사, 약사와 상담 없이 혼자 약을 오남용하는 것을 주의하면 된다.

뭐 이런 것 외에도 말년으로 갈 수록 의심병 중증 환자가 된 히틀러의 입장에서 어떠한 정치적 욕심도 안보이고 자기 일에만 충실하는데다가 그 일이 자기 명줄 연장을 하는 중요업무를 맡았던만큼 여러모로 신뢰했던 것도 작용했을 것이다. 실제로 히틀러가 지정한 후계자는 그의 곁에 있던 괴링, 힘러 등의 나치 초기부터 오랜기간 동고동락한 옛 동지들[16]이 아닌 듣보잡 중의 듣보잡이였던 칼 되니츠 제독일 정도로 히틀러는 주변의 야심가들을 절대 믿지 않았다.

4 최후

독일에서 마지막 비행기를 타려던 모렐은 미군에게 체포된다. 그러나 히틀러의 최측근이기는 했지만 카를 브란트카를 게프하르트 같이 의학실험을 핑계로 학살같은 반인륜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대신 히틀러를 가지고 생체실험을 했지 나치에 열혈 충성했으나 학살에 찬성하지도 않았으니 전범이나 학살자로 취급할 수도 없고 잡아가둘 죄도, 명분도 없었다. 그리고 연합국 스파이 인데다 임무도 성공했다! 거기에 당시 모렐은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어서 뇌졸중 등 여러 병을 앓던 상황이라 증인으로 법정에 세우기도 어려웠기 때문에 연합군은 모렐을 석방하고 자기 집으로 돌려보낸다. 그리고 3년 뒤에 고향 테게른제에서 뇌졸중으로 별세한다. 나치, 그것도 히틀러를 매일매일 대면하는 그야말로 히틀러의 최측근 중의 최측근이면서도 천수를 누린 진귀한 최후의 소유자.

이처럼 히틀러 주치의로 역사에 남게 되었지만 히틀러 근처의 사람들 중 거의 유일하게 어떠한 전쟁 범죄에도 연루되지 않아서, 같이 히틀러 옆에 있던 자들이 처형당할 때 편히 침대에 누워 숨을 거뒀다. 여담으로 모렐이 죽고 1주일 후인 6월 2일, 두 쓰레기 카를 브란트카를 게프하르트는 사이좋게 폐기처형된다. 죽기 전에 모렐이 남긴 말은 "그 친구들이 안 됐군. 나는 침대에서 죽는데..."라며 씁쓸하게 말했다. 참고로 이 두 인간 말종은 감방에서 아주 신나게 얻어 터졌다고 한다. 야 신난다

참고로 모렐은 유태인 학살이라든지 다른 인종 학살에 대하여 부정적이었고 인체 실험, 해부는 의사로서 할 짓이 아니라며 전혀 따르지 않았다. 실제로 한번은 카를 게프하르트가 자신 앞에서 생체실험질 한 일들을 자랑하자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허허 웃으며 들어주다가 밖에 나가서는 그 잔혹함에 질려 구토하고 말았다. 의사로서 기술적 실력이 있는 나치당 내 다른 의사들은 의사로서 양심적 기본이 안 되어있었지만, 정작 의사로서 기술적 실력이 없는 모렐은 반대로 의사로서 양심적 기본이 되어 있었다는 게 아이러니.

이드 소프트웨어의 전설적인 고전게임 울펜슈타인3D에 등장하는 대머리 안경 돼지 매드사이언티스트 샵스 박사의 모델로 추정된다. 고인드립 사실 게프하르트가 더 알맞을 것 같은데
  1. 이미지 출처: [1]
  2. 이게 얼마나 굉장했냐면 1944년 10월 5일에 카를 브란트가 모렐의 약 처방에 반대하는 의견서를 내었는데 히틀러는 이 의견서를 보고 역으로 카를 브란트를 신뢰하지 않게 되었을 정도였다. 그는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예 총통부 의사직에서 해임크리먹고 본격적으로 멸망테크를 타게 된다.
  3. 19~20세기는 위생, 의료 부문에 있어 엄청난 발전이 이루어진 시대이다. 멸균 붕대를 전쟁에 지참하게 된 것이 제1차 세계대전이 처음이었다.
  4. 테오도어 모렐이 의대 공부시에 썼을 약품이다. 현재 동물에겐 전신 강직성 발작이 불응성일 때 phenobarbital과 병용하는 식으로 쓰인다. 백성귀족을 보면, 소에게 먹이는 진통제를 사람이 먹는 경우도 가끔 있는 걸 보면(물론 다음 컷에 바로 수의사 선생님한테 "효과가 있다고 해서 인체에 사용하면 안 돼요!! 라고 혼난다(...)), 약의 유행이나 안정적인 신물질 개발로 인해 쓰이지 않는 것이지 처방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여기긴 힘들다.
  5. 유독하지만, 독가스 해독제로 오늘날 쓰인다. 분량과 쓰일 시점이 문제다. 당장 국군이 운용중인 신경작용제인 KMARK-1은 이것과 옥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근데
  6. 1903년 이전의 코카콜라에는 마신 사람들이 중독자로 바뀌기 충분할 만큼의 코카인이 들어있었다. 독일에서 마약류 관련법이 제정된 것은 1929년. 일상생활에서 코카인이 위험하다는 사실은 인지되기 힘들었고, 1차 세계대전 종전 후부터 대공황을 끼고 있던 시절, 패전 후의 독일에서 코카인이라는 마약이 얼마나 많이 일상에서 쓰였는지는 짐작조차 힘들다.
  7. 사실, 필로폰은 제 2차 세계대전 내내, 연합군, 추축군을 가리지 않고 진통제나 각성제 용도로 무분별하게 쓰였다. 헤르베르트 브루네거 자서전에서도 각성 약물을 지급했다는 언급이 나온다. 독일군이 벨기에-프랑스를 점령할 때는 3일에 걸친 진격을 수행하기 위해 부대 내에서 필로폰을 사단 간부가 직접 관리했고, 일본군 비행사들은 일상적으로 필로폰을 빨았다. 그러니까 마치 오늘날 카페인처럼 무분별하게 쓰였다. 필로폰은 1960년대가 되어서야 마약류로 지정되었다.
  8. 주사 바늘이 1회용 소모품으로 처음 인식된 시기는 히틀러 사후인 1950년대이다. 1회용 주사바늘이 최초로 상용된 때는 1956년이라고 한다.
  9. 업 계열의 마약과 다운 계열의 마약을 같이 처방했기에(...), 진통효과와 각성 효과는 끝내줬지만 말 그대로 각성작용과 진정작용이 동시에 일어나다 보니 의외로 환각같은 즉각적인 부작용은 드물었을 것이고, 필로폰 때문에 머리가 더 잘돌아가고 활기가 넘쳐나는 효과...가 났음이 분명하다. 문제는 즉각적인 부작용만 드물다 뿐이지 이런 걸 장기투여하면... 망했어요.
  10. 모르핀을 비롯한 마약들은 의학적 목적으로 사용시 항정신성 의약품으로 분류되는데, 과거에는 의무병들이 1인 3회 제한만 두고 야전 병원과 전장에서 부상자들에게 찔렀지만 현대에는 알다싶이 중독과 여러 부작용으로 인해 말기 환자나 절단, 심한 화상 환자 등 정말 고통으로 쇼크사 할 정도의 환자들한테만 진통제로 쓰인다. 진통제를 먹는다고 병이 낫는건 아니지만 통증 완화를 통해 환자의 생활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에 그냥 진통제를 쓴 거면 딱히 문제될 이유는 없는데... 이 정도 질환에 마약 종류를, 그것도 참 다양하게(...) 때려부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11. 채식주의자였지만, 케이크를 한 끼에 '케이크 한개' 전체를 퍼먹을 정도로 좋아하는 바람에 제대로 된 치아가 존재하지 않았다. (채식 때문에 못 느끼는 먹는 즐거움을 케이크를 닥치는대로 먹는 것으로 달랜 탓에 케이크 중독자가 되었다는 분석도 있다) 아마 치통 끝내줬을 듯. 참고로 겪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치통은 정말 고통스러운 통증 중 하나이다. 그 외에도 자리가 자리니 관절염이나 만성 피로도 있었을테고.
  12. 마르틴 보어만의 예를 보면 알 수 있듯 히틀러는 꼼꼼함과는 한참 거리가 있는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사람이였다.
  13. 여담으로 의사들이 처방전에 진통제를 넣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환자로서는 빨리 안 아프고 싶을 따름이고, 의사들도 진통제를 처방해주어 통증을 덜어주려는 것. 진통제도 엄연히 약물이므로 운 없으면 부작용이나 내성이 생기는 만큼 정 진통제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면 의사에게 진통제는 빼달라고 부탁하자. 경우에 따라서는 정말로 진통제도 먹어줘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다들 빼준다. 다만 의사 찾아가 진단 다 받아놓고는 '내가 알아보니 XX 약물은 나한테 안 맞아 처방 바꿔줘' 같이 자기가 의사 노릇을 하는 개 짖는 소리를 남발하는 것도 곤란하다. 진통제 빼달래서 빼줬더니 왜 뺐냐고 난리치지도 마라.
  14. 같은 맥락에서 히틀러의 주치의가 되기 전에 이미 명망이 높았던 것도 이런 쪽에서 찾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15. 대신 정보를 아예 몰라서 문제가 아니라, 온갖 이해집단에서 쏟아내는 건강정보의 홍수 때문에 더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16. 물론 이는 이들이 대부분 알아서 자폭을 거하게 터뜨린 까닭도 있다. 힘러는 멋대로 서방 연합국들과 협상을 하려 했고 괴링은 히틀러에게 '님 죽으면 내가 님 자리 이어받아도 됨?'이라고 대놓고 말해서...예외가 총리로 지명한 괴벨스 정도인데 이 인간은 히틀러를 아버지처럼 따른 인간이고 히틀러랑 나란히 지옥으로 제발로 걸어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