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센테 델 보스케

비센테 델 보스케 곤살레스
(Vicente del Bosque González)
생년월일1950년 12월 23일
국적스페인
출신지살라망카
포지션수비형 미드필더 / 수비수
184cm
소속팀플루스 울트라 (1969~1970)
레알 마드리드 CF (1970~1984)
카스테욘 (임대) (1970~1971)
코르도바 CF (임대) (1971~1972)
카스테욘 (임대) (1972~1973)
지도자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감독 (1987~1990)
레알 마드리드 CF 감독 (1994)
레알 마드리드 CF 감독 (1996)
레알 마드리드 CF 감독 (1999~2003)
베식타쉬 JK 감독 (2004~2005)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08~2016)
국가대표18경기 1골
2010 FIFA 월드컵 올스타 팀
FW
다비드 비야
FW
디에고 포를란
FW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MF
차비 에르난데스
MF
웨슬리 스네이더
MF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DF
마이콘
DF
세르히오 라모스
DF
카를레스 푸욜
DF
필립 람
GK
이케르 카시야스
HC[1]
비센테 델 보스케
2010 FIFA 올해의 감독상
수상
주제 무리뉴
2위
비센테 델 보스케
3위
펩 과르디올라
2012 FIFA 올해의 감독상
수상
비센테 델 보스케
2위
주제 무리뉴
3위
펩 과르디올라
레알 마드리드 CF 역대 감독
베니토 플로로
(1992~1994)
비센테 델 보스케
(1994)
호르헤 발다노
(1994~1995)
아르세니오 이글레시아스
(1995~1996)
비센테 델 보스케
(1996)
파비오 카펠로
(1996~1997)
존 토샥
(1999)
비센테 델 보스케
(1999~2003)
카를로스 케이로스
(2003~2004)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감독
루이스 아라고네스
(2004~2008)
비센테 델 보스케
(2008~2016)
훌렌 로페테기
(2016~)

축구 역사상 최초로 FIFA 월드컵, 유로컵, UEFA 챔피언스 리그를 모두 우승한 명장

리누스 미헬스, 마르첼로 리피, 거스 히딩크와 함께 클럽과 국가대표 양쪽에서 모두 성공을 이룬 몇 안되는 감독[2][3]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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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왼쪽에는 현 한국국대 감독님도 있다.
선수 시절 대부분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었다.[4] 재적 중에는 이른바 라 킨타 델 부이트레(독수리 오형제, La Quinta del Buitre) 이전 시대에 해당하며, 수비형 미드필더, 수비수로 뛰면서 팀을 지원하였고, 프리메라 리가 우승 5회, 코파 델 레이 우승 4회를 달성하였다. 스페인 국가대표로 UEFA 유로 1980에 출전했다. 현역 은퇴 후 지도자의 길을 걸으며 레알 마드리드 유스팀을 지도하였다. 1999년부터 2003년까지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으로 지휘봉을 잡았다. 지휘한 4년 동안 프리메라 리가 우승 2회,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2회, 인터컨티넨탈컵 우승 1회 등 명문 레알 마드리드의 역사 중에서도 눈부신 성과를 보여준다. 2008년부터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취임하여 남아공 월드컵에서 우승하며 모국을 처음 세계 챔피언으로 이끌었다. 또한, 대회 이후에도 계속 대표팀를 지휘하여 유로 2012에서도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로 인해 스페인은 유로 2008,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유로 2012의 메이저 대회 3연패라는 전인미답의 기록을 달성하였다. 또한 델 보스케 개인도 FIFA 월드컵, UEFA 유로컵,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하며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최초의 감독이 되었다.

2 선수 시절

2.1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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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레알 마드리드 유스팀에 입단하였다. 1969년 플루스 울트라로 승격하여 11경기 5골을 기록하였다. 1970-71 시즌 1군팀 선수로 데뷔하였으나 1970년부터 1973년까지 CD 카스테욘(2회)와 코르도바 CF에 임대되어 플레이하였다. 1973년 여름에 원소속팀 레알 마드리드로 복귀 후 1974-75 시즌과 1975-76 시즌에 리그 2연패, 1977-78 시즌부터 1979-80 시즌까지 리그 3연패를 달성하였고, 코파 델 레이에서 4번의 우승을 이룩하였다. 현역 시절에는 프리메라 리가에서 통산 441경기에 출전해 30골을 기록하였다. 델 보스케는 퀸타 델 부이트레 이전 시대에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약하였고 1984년 6월에 은퇴하였다.

2.2 국가 대표

1975년에 스페인 국가대표로 데뷔하여 1978년 12월 15일 UEFA 유로 1980 예선 키프로스 전에 데뷔골을 기록하였다. 1980년 UEFA 유로 1980에 출전했지만 조별 리그에서 탈락하였다. 1980년까지 스페인 대표로 18경기 1골을 기록하였다.

3 지도자 생활

3.1 레알 마드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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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락티코스 1기의 전성기를 상징했던 감독

현역 은퇴 이후 레알 마드리드에서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1987년부터 1990년까지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의 감독을 맡았다. B팀 감독으로 이케르 카시야스 등을 발굴하였다. 1994년 1군팀의 베니토 플로로(Benito Floro) 감독이 경질된 후 약 2개월간 임시 감독으로 1군팀을 지휘하였다. 또한, 1996년 아르세니오 이글레시아스(Arsenio Iglesias) 감독이 경질된 후, 임시감독으로 1경기만 지휘하였다.

1999년 11월에 존 토샥 감독이 경질된 후 델 보스케는 공식적으로 1군팀의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그가 지휘봉을 잡은 4년간 레알 마드리드는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2회, 라 리가 우승 2회,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우승 1회, UEFA 슈퍼컵 우승 1회, 인터콘티넨탈컵 1회 등 수많은 타이틀을 획득하였다.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지휘한 4시즌 모두 4강 이상 진출시켰다. 또한 델 보스케는 겸손, 근면하고 소박한 성품으로 언론으로부터 평판이 좋았다.

때마침 2000년 여름에 플로렌티노 페레스 회장이 취임하며 이른바 지단-파본 정책(스타와 칸테라 출신 선수의 융합)을 표방하며 루이스 피구, 지네딘 지단, 호나우두 같은 슈퍼스타를 감독인 델 보스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영입하였다. 그 중에서도 델 보스케는 갈락티코와 칸테라 출신의 영플레이어와 베테랑 선수 등이 뒤섞인 라커룸을 훌륭하게 정리해 하나의 팀으로 만들며 로스 갈락티코스(Los Galacticos)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2002-03 시즌 종료 후 클럽은 잉글랜드 출신의 슈퍼 스타 데이비드 베컴의 영입에 대비되게, 클로드 마켈렐레, 페르난도 이에로, 페르난도 모리엔테스 등 클럽의 과거 숨은 공로자들을 잇따라 방출하였다. 그리고 감독인 델 보스케도 계약을 갱신하지 않는다고 발표하였다. 대신 그에게 클럽의 기술이사 부임을 요청하였으나 델 보스케는 이를 거부하였다. 페레즈 회장은 델 보스케와의 계약을 갱신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델 보스케는 피로를 보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지만, 그가 미래에 적절한 감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델 보스케의 전술은 전통적인 것이며 우리는 더 전술을 중요시하는 인물을 찾고 있다"라고 말하였다.

이후 로스 갈락티코스로 화제를 모은 레알 마드리드는 이후 팀으로서의 기능을 잃고 급속히 몰락하였다. 델 보스케 이후 클럽은 4년 동안 무려 7명의 감독을 맞았지만 2007년에 파비오 카펠로의 팀이 우승 할 때까지 리그 우승에서 멀어졌다. 또한, 1998년부터 2003년까지 6년간 5번 4강 이상(그 중 3회 우승) 진출이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남기고 있었던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델 보스케가 떠난 이후 2010-11 시즌 주제 무리뉴의 팀이 올랭피크 리옹을 격파하며 4강에 진출 할 때까지 무려 7년 동안 16강에서 계속 탈락하였다.

이후 델 보스케는 스페인 대표팀 감독 제의를 거절하고 2004년 터키 쉬페르 리그베식타쉬 JK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그러나 별다른 성적이 남기지 못했고, 2005년 경질되었다.

3.2 스페인 대표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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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인생 최정점을 차지하다.

비록 말년은 좋지 않았지만, 레알 마드리드FC 바르셀로나 멤버들을 주축으로 2010년대 초반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의 황금기를 이끌다

2008년 7월 루이스 아라고네스가 UEFA 유로 2008 우승을 차지한 후 그의 후임으로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되었다. 대표팀 감독 부임 이후 유로 우승 팀의 기본 뼈대를 유지하면서, 보얀 크르키치, 안도니 이라올라, 페르난도 요렌테, 디에고 카펠, 세르히오 부스케츠, 헤라르드 피케, 페드로 로드리게스, 페르난도 아모레비에타 등 그동안 대표팀에 소집되지 않았던 젊은선수들을 차례로 발탁하였다. 남아공 월드컵 사전 대회 성격의 2009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4강에서 미국에 패했으나 FIFA 월드컵 유럽예선에서 10전 전승의 놀라운 성적으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였다.

3.2.1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본선에서 조별 리그 첫 경기인 스위스 전에 0-1로 패하며 위기를 맞았으나 온두라스 전과 칠레 전에서 연승하여 조별 리그를 1위로 통과하였다. 토너먼트에서 포르투갈, 파라과이, 독일을 각각 1-0으로 꺾고 스페인 역사상 최초로 월드컵 결승전에 진출하였다. 결승 네덜란드 전에서도 팀은 연장 후반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의 결승골로 1-0로 승리하며 드디어 세계 정상에 올랐다. 월드컵 우승으로 델 보스케는 마르첼로 리피에 이어 FIFA 월드컵UEFA 챔피언스 리그를 모두 감독으로 우승한 사상 2번째 감독이 되었다. 또한 이 성과로 스페인 국왕 후안 카를로스 1세는 그에게 후작 칭호를 부여하였고, 그는 델 보스케 후작(Marqués de Del Bosque)이 되었다.

3.2.2 유로 2012

유로 2012 본선에서 공수의 핵심인 다비드 비야카를레스 푸욜이 부상으로 결장하며 팀 전력 저하가 우려되는 가운데 첫 경기인 이탈리아 전에서 공격수를 두지 않는 제로톱 전술을 선보이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첫 경기인 이탈리아 전은 1-1 무승부로 마쳤지만 그 다음 경기인 아일랜드, 크로아티아에 연승하고 조별 리그를 선두로 통과하였다. 토너먼트에서도 8강에서 프랑스를 2-0으로 격파하고, 4강에서 포르투갈에게 승부차기까지는 접전 끝에 힘겹게 결승에 올라갔지만 결승에서는 이탈리아에게 4-0으로 승리하며 유로 2연패를 달성하였다. 따라서 스페인은 사상 처음으로 UEFA 유로 2008, 2010년 FIFA 월드컵, UEFA 유로 2012에서 우승하며 메이저 대회 3연패라는 전인미답의 기록을 달성하였다. 그리고 델 보스케도 또한 헬무트 쇤(Helmut Schön)에 이어 FIFA 월드컵, UEFA 유럽축구선수권대회를 모두 우승한 사상 2번째 감독이 되었고, 거기에 UEFA 챔피언스 리그를 더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사상 최초의 감독이 되었다. 이러한 성과로 2012년 대표팀 감독으로선 처음으로 FIFA 발롱도르 감독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그 이후는

3.2.3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돌 보스케, 명보스케, 반보스케, HEll 보스케

2013년 전후로 스페인 축구의 주요 전술이었던 티키타카에 축구계가 적응을 하고 대처법이 나오기 시작했었고 2013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개최국 브라질에게 0-3으로 패해 준우승에 머물면서 불안감이 조금씩 몰려왔으나 아무도 본선에서 그렇게 몰락할지는 예상하지 못하였다. 월드컵 유럽 예선에서 6승 2무 조1위로 본선을 가볍게 통과하였고, 대부분의 축구 전문가들은 스페인이 조별리그를 무난히 통과 할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하지만 첫 경기인 네덜란드 전에서 선제골을 넣고도 내리 다섯골을 먹히며 1-5로 대패하면서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그래도 나머지 2경기를 승리하며 조 2위로 진출할 것이라고 봤으나 2번째 경기인 칠레 전에서도 0-2로 패하며 가장 먼저 짐을 싸게 되는 국가로 전락하였다. 특히 칠레는 이전까지 스페인 만나서 단 한번도 이겨본 적이 없었기에 그 임팩트는 1차전과 맞먹는 정도. 마지막 경기인 호주 전에서 3-0으로 이겼으나 간신히 체면치레만 했을 뿐이었다. 이러한 졸전으로 브라질 월드컵 후 사임한다는 추측이 있었으나 스페인왕립축구협회는 그동안의 성과를 감안하여 유로 2016까지 스페인을 이끈다고 발표하였다. 유로컵이랑 월드컵 우승을 이룬 커리어를 감안해서 스페인 국민들도 어느정도 넘어갔다.하지만...

3.2.4 유로 2016

스페인 축구의 최고 전성기를 이끈 명장의 씁쓸한 퇴장

월드컵에서의 실패 이후에 전술이나 스쿼드 등 변화를 시도했었지만 선수들의 부상도 있고 결과도 썩 만족스럽지 못했는지 그렇게 많은 변화를 주지 않았다. 그래도 선수들의 기본 명성이나 실력 덕분에 이번에도 우승후보로 거론됐는데...조편성 결과가 영 까다롭게 나왔다.

2승 1패로 16강에 진출했지만, 조별리그 마지막경기인 크로아티아 전에서 1:2 역전패를 당하여 조 2위로 진출하는 등, 기대에 못미치는 경기력으로 일관하다 결국 16강전에서도 지난 결승전 상대였던 이탈리아에게 0:2로 완패하여 탈락했다.

결국 대회 전 결과와 상관없이 이 대회를 끝으로 물러나겠다는 말대로 7월 1일 8년간 이어졌던 스페인 국대 감독직을 사임했다. 또한 이니에스타와 카시야스도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유로 2012[5]의 우승컵까지만 들고 은퇴했더라면 확실한 유종의 미를 거뒀을터인데, 괜히 지휘봉을 더 잡았다가 2014 브라질 월드컵때 충격의 조별리그 탈락에 이어, 유로 2016에서도 브라질 월드컵의 흑역사를 만회하지 못하는 등, 말년의 행보가 영 좋지 못했기때문에, 본인으로써는 찝찝함만 남긴 채 스페인 국가대표를 떠나게 되는 셈이다. 비록 유로 2016에서도 기대에 못미치는 성과를 냈지만, 그래도 까다로운 조에서 16강 진출, 2010년 남아공 월드컵과 유로 2012 우승의 성과를 거둔 공만 봐서라도 충분히 박수받아 마땅하다.
  1. Head Coach - 감독이다.
  2. 의외로 클럽과 국가대표를 모두 성공한 감독은 정말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델 보스케의 업적은 뛰어난 업적이다. 역대 축구사 최고의 명장인 알렉스 퍼거슨도 국가대표 4강 이상 경력이 없고, 압박축구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한 아리고 사키도 국가대표에서는 월드컵 준우승을 일궈냈지만 평이 저조했고, 유벤투스 역대 최고의 명장으로 평가받는 조반니 트라파토니도 국가대표에서의 성과가 부진했고, 우승 청부사라 불린 파비오 카펠로도 국가대표에서는 부진했다.
  3. 하지만 축구계에서는 지속적인 성과가 더 높은 평가를 받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국가대표보다는 클럽에서의 커리어가 훨씬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대표에서 부진했다고 클럽에서의 성과를 함부로 폄하할 수는 없다.
  4. 이 때 같이 뛰었던 동료 중 한 명이 현재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울리 슈틸리케다. 실제로 절친한 사이로 유명하다.
  5. 이때부터 조짐이 살짝 안좋아지기 시작했다. 사실 우승했으니 망정이지, 이때도 스페인 국대와 안맞는 펄스 나인(제로톱) 전술, 선수기용 고집에 대한 논란이 일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