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에르 사비올라

CA 리버 플레이트 No.11
하비에르 페드로 사비올라 페르난데스
(Javier Pedro Saviola Fernández)
생년월일1981년 12월 11일
국적아르헨티나
출신지부에노스아이레스
포지션스트라이커
신장168cm
소속팀CA 리버 플레이트 (1998-2001)
FC 바르셀로나 (2001-2007)
AS 모나코(임대) (2004-2005)
세비야 FC(임대) (2005-2006)
레알 마드리드 (2007-2009)
벤피카 (2009-2012)
말라가 CF (2012-2013)
올림피아코스 FC (2013-2014)
헬라스 베로나 (2014-2015)
CA 리버 플레이트 (2015- )
국가대표39경기 11골

1 선수로서의 발자취

1.1 클럽 활동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별명은 토끼(El Conejo). 빠른 주력과 순도 높은 골결정력 덕분에 아르헨티나의 공격수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봄직한 포스트 마라도나 소리를 듣기도 했다. 2004년에는 펠레가 선정한 역대 최고의 선수를 뽑는 FIFA 100에 최연소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스페인에서 오래 선수생활을 한 덕분에 스페인 국적도 가지고 있다.

1998년 리베르 플라테에서 프로로서 첫 신고식을 했다. 2001년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하기 전까지 86경기에서 45골을 터트리며 디에고 마라도나 이후 10대 시절 가장 완성된 기량을 선보인 선수라는 찬사까지 들을 정도로 주목을 받던 그는 2001년 FIFA U-20 얼드컵에서 11골[1]을 뽑아내며 득점왕과 MVP를 독식하면서 전세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사비올라의 11골은 2011년까지도 깨지지 않은 U-20 월드컵 역대 최다 득점 기록이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그의 리즈시절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이 후에 이어지는 그의 축구인생은 순탄하지 못했다.

그렇게 명문구단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그는 2001년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하면서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에 발을 내딛는다. 하지만 3시즌 동안 리그 평균 15골 정도, 시즌 평균 20골 정도를 터트리는 준수한 활약도 바르셀로나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던 것 같다.

이 시기의 리그 득점 기록을 살펴보면 '01-02시즌 17골(팀내 1위 클루이베르트가 18골)[2], 02-03시즌 13골(팀내 1위 클루이베르트가 19골), 03-04시즌 14골(팀내 1위 클루이베르트가 15골)' 인데 충분히 자기 몫은 해 준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비올라의 입지가 불안정했던 이유는 바로 사비올라의 비교 대상이 다름아닌 히바우두였기 때문.

히바우두가 01-02시즌 후 AC 밀란으로 이적하면서 구단과 서포터들은 새로 들어온 사비올라가 히바우두의 빈자리를 채워주길 바랐을 테지만... 리그 평균 20골, 시즌 평균 30골 정도를 넣어주는 데다가 그 악마의 왼발로 어메이징한 플레이를 보여주며 서포터들의 눈까지 즐겁게 해주었던 히바우두에 비해 사비올라는 득점력도 기대에 못 미쳤을 뿐더러 플레이의 보는 맛도 부족했던 것이었다. 그 유명한 발렌시아전에서의 오버헤드킥이라든지... 한 폭의 그림같았던 프리킥들이라든지... 02-03시즌엔 반 할 감독의 3톱 전술에 적응하지 못하고 주춤하다, 새로 부임한 안티치 감독의 정석적 4-4-2 전술에선 자신의 이상적 위치인 투톱의 스몰로 클루이베르트와 좋은 호흡을 보여주며 다시 살아나기도 했다. 그러다 다시 03-04시즌 레이카르트 감독의 3톱 전술에서 최전방 스트라이커를 맡았고, 14골을 넣긴 했으나 전술에 녹아들지 못했다는 평가를 들어야만 했다. 결국 바르샤는 03-04시즌이 끝나자 클루이베르트는 팔아 버렸고, 사비올라도 임대 보내버렸다. 사비올라의 입장에선 토사구팽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닌 상황.

설상가상 2003년에는 외계인이 바르셀로나에 강림하면서 그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만다. 가장 큰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스트라이커였기 때문이다. 사비올라는 키 169cm의 루저이며 전술적으로는 스피드를 살린 최전방침투와 결정력을 살리는데 주력하는 그야말로 정통 스트라이커이며 일반적인 빅-스몰 투톱 시스템의 스몰에 어울리는 투톱형 스트라이커였다. 한마디로 원톱이 불가능한 포워드. 그런 선수를 딩요 데려와 다시 만든 바르샤식 3톱 시스템의 중앙에다 넣어 맞추려고 하면 맞춰지나...[3] 무엇보다도 서포터들은 호나우지뉴의 묘기에 가까운 플레이이에서 히바우두의 모습을 떠올리며 열광했을 것이다. 심지어 호나우지뉴는 히바우두가 했던 것과 거의 흡사한 바이시클 킥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2004년에는 카메룬산 흑표범스웨덴의 전설까지 합류하면서 결국 2시즌 연속 AS 모나코세비야 FC에서 임대생활을 한 그는 2006년 바르셀로나로 복귀하지만 그 시기는 아르헨티나 후배가 떠오르며 주전자리를 확고히 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결국 그는 다음해인 2007년 루이스 피구에 이어 바르샤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직행한 선수가 되지만 이미 바르샤에서 그의 입지도 인기도 그저 그럴때라 피구 때만큼의 충격은 없었다.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의 스트라이커 자리에는 레알의 아이콘 라울 곤살레스와 라 리가에서도 득점왕을 거머쥐며 골폭풍을 몰아치던 뤼트 판 니스텔로이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결국 제대로 출장기회도 잡지 못하고 2시즌 동안 벤치를 달구던 그는 2009년 갈락티고 시즌2 시작과 동시에 포르투갈벤피카로 이적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레알 마드리드 이적은 사비올라의 커리어가 꼬이게 된 계기. 사비올라가 레알 마드리드에 소속된 2007년 ~ 2009년에는 라울과 반 니스텔루이 등의 스트라이커진이 자리를 확고히 잡은 시기였기 때문에 사비올라가 중용되지 못하였고 그 결과 2시즌 합쳐서 20경기조차 나오지 못했다. 차라리 주전 출장을 할 수 있는 클럽으로 옮겼다면 커리어가 좀 더 나아졌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2007년 당시 사비올라의 나이는 26세였고 그 나이면 꼬였던 커리어를 풀 수 있을 충분한 나이였기 때문이다.

벤피카에선 좋은 활약하고 있다. 비록 대세는 포르투지만... 포르투가 워낙 대단한 거고 사비올라도 제 몫은 충분히 해내고 있다.

2012년 8월말라가 C.F.와 1년 계약을 맺고 이적하면서 다시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로 돌아왔다.

2013~14시즌은 그리스 리그의 올림피아코스 FC에서 활약했었고

2014년 9월 세리에 A의 헬라스 베로나 FC로 이적하였다.

2015년 6월 21일 고향 클럽인 CA 리버 플레이트로 이적하였다.

하지만 고향팀 리버 플레이트에선 리그에서 한골도 넣지못하는 극심한 부진을 보여준 바람에 2016년 1월 8일자로 리버 플레이트와 계약 해지를 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k리그 팬들은 '현재 빅네임이 필요하다는 전북 현대가 영입했으면 좋겠다.' 반응과 '이제 자국리그 에서도 안먹히는 퇴물선수인데 k리그 와도 안먹힐것 같다.'는등 여러반응이 나뉘고 있다.

1.2 국가대표 활동

포스트 마라도나의 최선봉으로 여겨졌던 선수답게 어린 시절부터 대단한 각광을 받았다. 실제로도 2001년 U20 월드컵에서 득점왕에 오르며, 파브리시오 콜로치니막시 로드리게스 등 뛰어난 동료들과 함께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러한 기대치 때문에 당시의 축구 게임 챔피언십 매니저(풋볼 매니저의 전신)에서는 무조건 세계 최고가 되는 선수로 이름을 널리 떨쳤다.

그러나 성인 무대에서는 빌어먹을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때문에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 엔트리멤버로 발탁되지 못했다. 이당시 아르헨티나 축구팀이 상당히 기형적이였던게 감독이 마르셀로 비엘사였는데 비엘사는 공격덕후인 것도 모자라 원맨플레이만 고집하는 그런 감독이었다. 때문에 팀웍과 규율을 별로 중시하지 않았고 바티만 일방적으로 편애했다. 이 때문에 이타적인 플레이를 하지만 바티의 따까리 역할을 못하는 사비올라를 배제하고 클라우디오 로페스를 철저하게 바티 따까리로 전락시켰다. 이 때문에 사비올라는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만 유일하게 국가대표 엔트리에 올랐다.

2006년 월드컵에서 엔트리에 올라 선배인 에르난 크레스포, 후안 파블로 소린 등과 같이 호흡을 맞추며 코트디부아르전과 세르비아몬테네그로전에서 득점을 올렸다. 이후 본선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이 월드컵 이후에는 그를 대체할 자원으로 앙헬 디 마리아가 등장하는 바람에 국가대표 엔트리에 오르지 못했고 그대로 국가대표로서는 은퇴했다.

2 기록

2.1 리그 기록

시즌클럽리그경기
1998/99리베르 플라테프리메라 디비시온196
1999/00리베르 플라테프리메라 디비시온3319
2000/01리베르 플라테프리메라 디비시온3420
2001/02FC 바르셀로나프리메라 리가3617
2002/03FC 바르셀로나프리메라 리가3613
2003/04FC 바르셀로나프리메라 리가3314
2004/05AS 모나코리그 앙297
2005/06세비야 FC프리메라 리가299
2006/07FC 바르셀로나프리메라 리가185
2007/08레알 마드리드프리메라 리가93
2008/09레알 마드리드프리메라 리가81
2009/10벤피카프리메이라리가2711
2010/11벤피카프리메이라리가249
2011/12벤피카프리메이라리가184
2012/13말라가 C.F.프리메라 리가278
2013/14올림피아코스 F.C.수페르리가 엘라다252
2014/15올림피아코스 F.C.수페르리가 엘라다10
2014/15헬라스 베로나세리에 A81

2.2 대회 기록

  • 세비야 FC (2005/06)
  • 레알 마드리드 (2007/08 - 2008/09)
    • La Liga (1) : 2007/08
    • Supercopa de España(1) : 2008 ; Runner-up 2007
  • 벤피카 (2009/10 - 2011/12)

2.3 수상 내역

  •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득점왕 (1999)
  • 남아메리카 올해의 선수 (1999)
  • 아르헨티나 올해의 선수 (1999)
  • FIFA U-20 월드컵 득점왕(2001)
  • FIFA U-20 월드컵 MVP(2001)
  • 프리메라리가 올해의 남미 선수 (2001)
  • 2009 프리메라리가 12월 선수상
  • 포르투갈 골든볼 (2010)
  • 피파 100인의 선수

2.4 여자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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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생인 그녀는 1981년생 사비올라와 사귄 지 10년 가까이 됐다.
  1. 여기엔 2번의 헤트트릭이 포함되어 있다.
  2. 더군다나 아르헨티나를 떠나 유럽에서의 첫 시즌이었다.
  3. 파트릭 클루이베르트와 클래식 투톱을 뛰던 시기인 2002~03시즌에는 빅-스몰의 조합이 적절했기에 사비올라의 득점력이 발휘되어 개인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그시기가 한참 루이스 반 할감독의 전술적 삽질등으로 성적이 널을 뛰었다는게... 사비올라와 같은 문제를 후안 로만 리켈메역시 겪었고 결국 리켈메도 바르셀로나 전술에 적응 실패해 비야레알로 갔다. 참고로, 그시기가 히카르두 콰레스마가 바르샤에서 병풍이던 시기다. 윙포워드가 4-4-2에서 윙으로 뛸 수가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