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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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KGC인삼공사 No.4
한수지
생년월일1989년 2월 1일
출신학교근영여자고등학교
포지션세터, 센터
신체사이즈신장 182cm, 체중 78kg
소속팀인천 GS칼텍스 (2006~2007.6.1)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2007.6.2~2010.6.3)
대전 KGC인삼공사 (2010.6.4~)
2006-07 KOVO V-리그 여자부 신인상
김연경
(천안 흥국생명)
한수지
(GS칼텍스 배구단)
배유나
(GS칼텍스)
2009-10 KOVO V-리그 여자부 세터상
이효희
(천안 흥국생명)
한수지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염혜선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2011-12 올스타전 스파이크서브 퀸
이소라 86km
(한국도로공사)
한수지 86km
(대전 KGC인삼공사)
이소영 84km
(GS칼텍스)
2016 청주 KOVO컵 MIP
황연주
(수원 현대건설)
한수지
(대전 KGC인삼공사)
2017 수상자

1 소개

대전 KGC인삼공사의 주전 세터이자 센터.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배구를 했다. 언니인 한은지(전 KGC인삼공사 센터)를 따라 같은 길을 가면서,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이미 장신세터로 유명세를 탔다.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1년전 이미 배유나[1]와 함께 국가대표에 이름을 올렸을 정도.

200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라운드 1순위로 GS칼텍스에 입단, 2006-07 시즌에 정지윤의 백업으로 활약해 그 시즌 신인왕을 수상했다.

그러나, 2007년 오프 시즌 첫 FA 당시 이숙자정대영을 영입하면서 강민정과 같이 수원 현대건설에 보상 선수로 이적하게 된다.

2007-08 시즌에 현대건설의 유니폼을 입고서 이숙자가 떠난 주전 세터를 맡았지만, 소포모어 징크스와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실망스러운 토스워크를 보여 줌으로 인해, 첫 경기 이후 겪은 11연패를 극복하지 못하고 최하위로 팀을 추락시켰다. 오죽했으면 연패 기간에 시즌 도중 실업 시절 5연패 당시 현대 주전 세터였던 강혜미를 긴급히 인스트럭터로 초빙할 정도였으니.관련기사

결국 2008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지명권을 목포여상의 세터 염혜선을 지명하는 원인이 되었고, 이후 2008-09 시즌에는 출전 빈도가 대폭 줄어들게 되었다. 그래도 외국인 선수 활용에서 염혜선보다 나은 모습을 보이며 2009-10 시즌 황현주 감독의 부임 속에서 당당히 정규리그 우승을 인도했지만, 챔피언결정전에서 준우승에 그치게 된다. 그리고 이 당시의 모습을 보고는 살짝 아니다 싶어서 결국 2010년 여름 FA당시 현대건설이 공격력 보강을 이유로 흥국생명에서 황연주를 영입했고, 동 시기 인삼공사의 FA였던 김사니가 흥국생명으로 이적하면서 보상 선수로 흥국을 거쳐 인삼공사로 이적하게 된다.

즉, 현건-흥국 간 황연주↔보상금+선수, 흥국-인삼 간 김사니↔보상금+선수라 실질은 인삼공사가 보상선수를 현대건설에서 받아간 셈이다. 그리고 입탈망효과 동시 발동

어찌되었든 언니 한은지가 있던 인삼공사로 이적한 후 10-11 시즌에는 김사니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며 딱히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지만, 2011-12시즌 세터 코치였던 이성희의 지도를 통해 외국인 선수 몬타뇨와 현대시절 동료 한유미, 그리고 장소연, 김세영 트윈센터에 언니와 같이 인삼공사의 첫 통합 우승을 인도한다. 그리고 FA를 신청해 인삼공사와 재계약하였는데...

통합우승 이후 여름에 언니인 한은지가 결혼을 이유로 은퇴하는 등 주요 선수들이 다 팀을 떠나고, 오프시즌 건강검진에서 갑상선 암이 발견[2]되며 전반기를 접었고관련 기사, 인삼공사는 차희선 하나로 세터진을 버텼다. 이후 원포인트 블로커로 합류했다가 발목 부상으로 후반기에 제대로 합류했지만, 20연패와 팀 최하위를 막지는 못했다.연패 탈출 후 기사

13-14 시즌에는 주장 완장을 차면서[3] 초반에 차희선과의 트레이드로 왔지만 호흡을 맞출 시간이 부족했던 이재은과 출전을 분담하면서[4] 주전 세터로 자리매김함과 동시에, 센터진이 붕괴되었을 때[5]에는 본인의 하드웨어를 무기로 센터로 출전하면서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었다.

하지만, 14-15시즌부터는 그냥 항암치료 전력으로 받은 동정도 싹 팔아먹는 몰빵 토스로 거하게 욕을 먹고 있다. 그래도 어떤 놈처럼 사고는 안 치니 다행이지만 시즌 후 국가대표로 차출,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출전하여 이효희의 백업 세터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6]

2015 - 2016 시즌도 마찬가지. 팀의 성적이 부진하다보니 세터 입장에선 확실한 득점원인 용병 헤일리에게로 많은 공을 올리게 되고 이는 상대팀 입장에서 수비하기 편한 상황을 제공하여 팀이 패배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여기에 부정확한 토스까지 더해져 많은 팬들에게 이성희 감독과 더불어 팀 부진의 원흉이라고 까였다. 오히려 이적 온 김해란의 디그 후 2단 연결 토스가 더 깔끔하다고 비교 되는 수모는 덤.

새로 부임한 서남원 감독이 포지션 파괴를 선언하면서, 비시즌 동안에 센터와 라이트 훈련을 많이 했다고 한다.백어택을 아주 잘한다고

2016 청주 코보컵에서는 세터가 아닌 라이트와 센터로 출전하여 포지션 변화에 완벽히 적응한 모습을 보여주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 팀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본인은 대회 MIP를 수상했다.

2 여담

  1. 고등학생 시절 배유나는 선배인 김연경을 이을 재목으로 평가받던 사기 공격수였다. 근데 2007년 GS칼텍스 입단 이후 팀 성적을 이유로 부업이었던 센터와 날개를 왔다갔다 하면서 이도저도 아닌 존재가 된 게 문제지만.
  2. 오죽했으면 복귀 이후 같은 처지였던 최태웅이 물어 볼 정도였다.(자신의 롤 모델이기도 했다. 최태웅도 림프암과 싸우면서 훈련과 경기를 뛰었다.)
  3. 사실 부주장이었다. 근데 주장은 임명옥이었는데 리베로라 주장 표식(등번호 밑의 작대기)이 안 된다는 조항이 있어서 작대기는 본인이 차게 됨.
  4. 이재은이 리그 전 국가대표 차출로 인해 인삼공사 선수들과 맞출 시간이 없었다.
  5. 2013 안산 우리카드배 KOVO컵부터 센터로도 뛰었다. 원체 센터진이 부실했던 인삼공사 입장에서는 높이라도 높이려는 고육책. 당시 선수가 9명에 불과했으니... 이후 13-14시즌에서는 이재은 선발 출전시 선발 센터로 나오기도 했다.
  6. 그 역할을 해야 할 이다영이 허리 부상으로 차출 불가인 상황이었다.
  7. 임경완의 보상 픽으로 데려온 이후, 당시 MLB 진출을 타진했다가 돌아온 정대현의 영입으로 인해 원래 소속 팀인 SK 와이번스로 복귀했다. 보상선수로 들어왔어도 해당 선수를 보호명단에서 고려하지 않는다는 게 없기 때문이다. 연봉이 롯데 기준으로 잡아놔 많이 받은 게 위안거리?
  8. 다만, 이 때 롯데 구단에서 보호선수 명단을 보상선수 공시일 직전에 히어로즈 구단에 넘겼기 때문에 없던 일이 됐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이 선수는 또 다시 보호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어 넥센 히어로즈로 갈 뻔했다. KBO에서 보호선수 명단을 넘긴 시점에서 롯데에 소속되어 있는 선수를 보상선수로 지명하라는 유권 해석을 내렸기 때문에 아무런 조치가 없었어도 간단하게 공시 직전 팀 소속으로 인정되어 보호됐기 때문이다. 4년 전의 반면교사가 약이 된 격. 롯데도 망국생명과 동급 취급받는 건 수모긴 하다 선수들이 술 문제 빼면 해서는 안 될 행동은 안 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