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호(李養鎬) | ||
1937년 ~ | ||
복무 | 대한민국 공군 | |
기간 | 1960년 ~ | |
임관 | 공사 8기 | |
최종계급 | 대장 | |
최종보직 | 합동참모의장 |
대한민국 공군의 참모총장 | ||||
20대 한주석 | → | 21대 이양호 | → | 22대 조근해 |
대한민국 국군의 합동참모의장 | ||||
24대 이필섭 | → | 25대 이양호 | → | 26대 김동진 |
역대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 | ||||||
31대 이병태 | → | 32대 이양호 | → | 33대 김동진 |
1 소개
2 생애
1937년 6월 16일에 충청북도 괴산군에서 태어났다. 1956년에 공군사관학교 8기로 입학했고 1960년에 소위로 임관했다.
1988년 공군교육사령관, 1989년 공군작전사령관을 역임한 뒤 1992년에 공군참모총장이 되었다. 참모총장 임기를 마치면 전역하였을 것인데...
1993년 취임한 김영삼 대통령이 하나회 군맥(軍脈)을 숙청하면서 육군 장성들이 줄줄이 날아가자, 대한민국 공군 출신으로는 최초로 합동참모의장[1] [2]이 되었다.
합동참모의장으로서 1994년 국군의 평시 작전통제권 환수를 마무리하고, 같은해 12월 국방장관이 되었다.[3] 1996년 경전투 헬기사업인 KLH사업과 관련해 대우중공업에서 1억5000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경질되었다.
3 여담
해병대 공군비행학교 습격사건 당시에 당직사령을 맡은 사람이 이양호 대위였다. 당시 해병대 소위 주동자 중에 한 명은 전도봉 소위[4]였는데 이들은 1994년에 각각 국방장관과 해병대사령관이 되어 만난다.- ↑ 중장 시절에 합동참모본부제3차장과 국방정보본부장 등을 지내는 등 합동군 업무를 맡긴 했다.
- ↑ 육참총장, 해참총장까지 다 날아가 버리는 바람에, 이양호 대장보다 1기수 후임이라 할 수 있는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김동진 대장이 후임 육참총장으로 임명됐고, 해참총장에는 김홍열 소장(!)이 중장 진급과 함께 임명되었으며, 공참총장에는 조근해 중장이 대장으로 승진되면서 임명되었다. 김홍열 중장은 군인사법 상 중장에서 대장으로 진급하려면 최소 1년을 경과해야 하기 때문에 1년 뒤 대장으로 진급할 때까지 예하 해병대사령관과 계급이 같았다.
- ↑ 공군 출신 최초의 국방장관은 아니다. 최초의 해군 출신 국방장관은 손원일 제독이었고, 또한 최초의 공군 출신 국방장관은 김정렬이었다.
- ↑ 연세대학교 출신 학사장교로 14대 최기덕 사령관 이래 유일하게 비해사 출신 사령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