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해자(垓子/垓字)
1.1 개요
파일:Attachment/Xian castle moat.png |
중국 시안성의 해자 |
적의 접근, 진격을 막기 위하여 일부러 성의 둘레 같은 곳에 땅을 파 놓고 물을 채워 놓은 것. 굴강(掘江),외호(外濠),성호(城濠) 등 여러 가지 이름이 있다. 영어로는 Moat.
비슷하지만 물을 채워넣지 않고 구덩이만 파 놓은 것은 공호라고 불렀으며, 비슷한 구덩이지만 적의 접근을 막는 용도가 아니라 그 안에 병사나 무기가 들어가있는 것은 참호라고 부른다.
1.2 방어 효과
고대, 중세의 건축기술의 한계 때문에 성벽을 높이는 것은 어렵고 너무 높이 쌓으면 내구력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다. 그에 비해서 구덩이는 인력만 있으면 충분히 팔 수 있으므로 해자를 파서 성벽의 높이를 보강할 수 있었다. 실제 성 밑에 선 적의 입장에서는 해자가 있으면 해자의 깊이 + 성벽의 높이가 되므로 매우 암담해진다.
물을 채우지 않은 공호라고 해도 당장 군대의 질서정연한 전진이 불가능해지는데다, 창이나 폴암 같은 장병기를 든 병력들은 급격하게 불편해지고 크게 깊지 않아도 군대의 전진 속도가 매우 느려지기 때문에 이때 활이나 투석기 같은 투사 무기로 요격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서 성벽이나 성문에 접근하면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파성추나 운제같은 공성병기의 전진 자체가 차단되기 때문에 수성측의 입장에서는 더이상 말할 필요가 없었을 정도로 효과가 좋다.함정도구를 만들어서 공호에 넣으면 보너스 효과
물이 채워진 해자 같은 경우는 앞서 제시한 장점 이외에도 부가 효과가 더해진다. 물의 저항 때문에 보병의 전진 속도가 매우 느려지고, 심리적으로도 거부감을 느낀다. 정말로 깊은 해자 속에는 함부로 들어갔다가 빠져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위력이 탁월했다. 많은 경우에 공성전에 나서는 병력들은 무거운 갑옷을 입기 때문에 물에 빠지는데는 취약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성의 둘레에는 항상 이 해자가 준비되어 있었다. 심지어 해자가 없는 성은 성이 아니라 단순한 판자집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게다가 중세 성내 생활의 특성상 이 해자 물이라는 게 대부분 상상도 못할 똥물일 경우가 많아 빠지면 똥독 올라 죽을 가능성도 높았다. 실제로 중세 성 안의 화장실에서 배설물을 벽을 통해 쓸어내서 그냥 해자에다가 흘려버렸으므로 진짜 똥물이 맞았다.평화로운 시기엔 엄청 큰 변소
화기가 발달한 뒤에도 해자는 한동안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성벽이 대포에 상대적으로 취약하지만 해자만은 어찌할 수 없었기 때문. 특히 기존의 높은 성벽은 피탄면적이 커서 공성포가 설치되기만 하면 시일이 문제일 뿐 반드시 무너졌고, 이에 대항해 수원화성처럼 이미 만들어진 구식 요새의 성벽에는 성벽 뒤에 언덕을 쌓아서 언덕이 포탄의 충격을 흡수하고 무너져도 성내로 바로 들어올 수 없도록 보강을 하고 새로 쌓는 성벽은 낮고 두껍게, 경사를 주어 쌓아서 포탄공격에도 뛰어난 방어력을 자랑하도록 했다. 이 방식은 '이탈리아식 배치(trace italienne)'란 이름으로 15세기 중반부터 서서히 도입되기 시작하였고, 프랑스의 육군원수 세바스티엥 르 프레스트르 드 보방 장군은 이에 더해 기하학을 적용, 요새를 별 모양으로 만들고 보루와 요새포, 화력거점의 교묘한 배치로 공격자는 어느 방향에서든 교차사격을 맞게 만들고 성벽을 낮고 두껍게 만들어서 둔덕같이 만드는 대신, 성벽의 역할을 물을 채운 참호인 해자로 대신하게 했으므로 오히려 해자의 폭과 깊이, 너비가 크게 증가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요새는 고폭약과 폭발하는 포탄이 등장하는 19세기까지 군사적 가치를 유지할 수 있었다.
민간 설화에서는 이 해자에 빠진 적군을 먹으라고 악어를 길렀다니 하는 소리도 가끔 나오는데, 성벽도 조금만 평화가 지속되면 관리를 안해서 엉망을 만들어놓는 상황에서 성벽 밖 구덩이까지 세심하게 관리하여 동물이 살 수 있도록 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며, 설령 그렇다고 해도 평시에 주민들이 성벽 밖으로 나왔다가 해자에서 나온 악어에게 습격당하면 어떻게 살란 말인가? 이런 거 좀 믿지 말자. 동화책 삽화를 진짜로 믿으시면 곤란합니다 고갱님 아무리 높으신 분들이라도 자기 지역 주민들에게 저렇게 까지 하지는 않는다
1.3 공성전에서의 공략법
결국 해자를 돌파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흙을 가져와서 구덩이를 메꿔버리는 것이었다. 일단 구덩이를 메꿔야 뭐라도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공격측도 이 해자와 공호를 메우기 위한 전문적인 장비들을 동원했는데, 전호차 같은 차량은 대형 차량에 참호를 메울 흙을 가득 탑재하고, 전방에 가죽으로 만든 투사무기 방어벽을 설치한 다음, 참호에 도달하면 앞의 구멍으로 흙을 쓸어넣어 안전하게 참호를 메우도록 만들어진 장비였다. 더불어 중세 독일의 소드 마스터 한스 탈호퍼의 검술서에서는 보트에 바퀴를 달아 해자에 빠트려 일종의 다리 역할을 하도록 만든 차량도 등장한다.
하지만 말이 쉽지 실제로 성벽에서 쏟아지는 각종 공격을 받으면서 해자를 메꾸거나 해자를 건널 다리를 연결하는 것 자체가 난이도가 높은 일이었다. 덤으로 인명손실과 장비손실도 많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시체와 장비들로 해자를 메꾸고 전진하는 이겨도 이긴게 아닌 막장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인해 성이나 요새를 재래식 방법으로 공격하기 위해서는 많은 병력과 물자, 시간이 소모되는 일이 많았다.
1.4 문제점
일단 구덩이다보니 관리가 매우 불편하고, 교통에도 불편을 초래한다. 특히 주기적으로 바닥을 파내고 내부를 강화하는 공사를 시행해야만 제 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데, 이런 조치를 하지 않으면 바닥에 쓰레기등이 쌓여서 저절로 메꿔져서 해자의 기능을 상실하거나, 성벽 기반을 파고들어가서 성벽이 붕괴되는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기에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동로마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이 최종적으로 함락될 때도 성벽 바깥에 너비가 20m에 이르는 해자가 이미 파여 있는 상태였지만 오랜 기간 관리가 안 된 탓에 깊이가 1m도 안돼서 침공하는 오스만 제국의 군대가 그냥 쉽게 메워 버리는 바람에 방어에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게다가 물을 채우면 상당히 비위생적이며 온갖 병균이 가득했고 모기들이 살아가기에도 좋아 여름이면 성은 모기들에 시달리는 경우도 허다했다. 더군다나 모기는 말라리아를 옮기는 매개체이므로 이럴 경우 전염병이 창궐해서 주민이 전멸, 도시가 혼자서 결딴나는 일도 흔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위생상 청결함을 유지할 수 있는 흐르는 물을 이용하기 위해 하중도에 성을 건설하여 자연적인 하천 그 자체를 해자로 사용하는 방식을 이용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물길이나 운하를 유사시 해자 대신으로 사용하는 방식도 많았다. 만일 이 방법을 사용하기 어려우면 평시에는 물을 넣지 않고 공호상태로 놓아두었다가 전시에 인근 강이나 호수의 물을 끌어들이는 방식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주변에 강이나 호수가 없는 경우에는 인력(...)으로 물을 집어넣어야 하므로 전시라도 충분한 대비시간이 없으면 물이 매우 적게 들어가서 수심이 얕아서 제대로 된 방호효과를 기대하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성이 방어적 기능을 상실한 21세기의 상황에서는 성을 관광 및 유적으로 보존하더라도 해자까지 모두 보존하는 경우는 드물며, 보통 해자를 보존하는 경우에는 특정지역의 특정부분에 한해 보존하며, 관리를 철저히 해서 수인성전염병을 막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런 식으로 관리하는 것이 일본의 성이라서 지금도 일본에 가면 주요 성곽에는 반드시 해자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1.5 창작물에서
마왕성에는 보통 용암으로된 해자가 있다. 대표적으로 반지의 제왕에서 사우론의 근거지인 바랏두르 성채.
2 海自
일본 해상자위대의 준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