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

1 시설(수로)

1.1 개요

이 지나다니는 길. 하천이나 도랑, 해협 등 뱃길 또는 물길 전부를 포함한다. 대표적인 예로 한려 수도나 세월호 사고가 일어난 지역인 맹골 수도가 있다. 일반인들이 보통 '수도'라고 하면 상/하수도를 의미한다.(위의 수도와 같은 한자 水道를 사용한다) 수도가 발달하지 않았던 고대에는 우물을 이용하여 식수 문제를 해결했다.

1.2 상수도

취수한 물을 사용자에게까지 공급하는 시스템. 과거의 도시들이 자력으로 대량 수도공급을 하는 것이 힘들기에 입지조건이 강가로 한정되었다.[1]본격적으로 수로 시스템을 도입하여 장거리로 수돗물을 공급하면서부터 도시의 입지조건이 닥치고 강변이라는 선택지에서 약간 벗어나게 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로마.

고대로마는 고대 도시 중에서 이례적으로 외부 인구의 적극적 이민을 수용한 곳으로 인구의 폭발적인 성장을 경험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인구 유입을 수용하기 위해 상수도의 건설을 시도하였다. 로마식 상수도는 에트루리아의 기술을 도입한 것이었는데 이를 지속적으로 개선, 후대에 로만 에퀘덕(Roman aqueduct)이라는 독특한 상수도 시스템을 구축한다. 이 상수도 시스템은 고지대의 수원과 직접 연결된 엄청난 높이의 콘크리트로 지어진 수로를 도시에 요소까지 연결하는 것으로서, 이러한 11개의 에퀘덕이 끊임없이 공급하는 물로 인해 로마시는 인구를 백만까지 수용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로마의 상수도는 수도관을 만들때 그 재질을 으로 하여 납중독 크리로 인한 로마쇠퇴의 한 원인으로 주목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은 사실이 아니라는 쪽으로 밝혀졌다. 납을 사용한 구간은 수도교에서 공동수조까지의 짧은 거리에 불과하며, [2] 이탈리아 지역의 특성상 물에 석회질이 많아 납관 내부에는 마치 석회질이 코팅되듯이 관석이 쌓여서 (...) 수돗물에 석회가 좀 섞여있지만 납이 거의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3] 가령 대부분의 납 수도관은 발굴시에 석회질로 코팅되어 있었다. 또한 로마인들은 납이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어서 세라믹(도자기) 관으로 교체하고자 하는 운동을 벌이기도 했으나[4][5] 문제로 실현하지 못했다(...) 그리고 로마와 이탈리아같이 로마제국의 왕정과 공화정 초,중기에 편입된 곳은 납관이지만, 군대에 납을 남품하다보니 점차 가격이 올라서 나머지는 나무관을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하였다.
그리고 북아프리카와 터키 중동지역, 유럽 일부에서는 아직까지도 당시의 수도관을 사용한다. 이 로마식 상수도가 얼마나 튼튼한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현대식 수도관에 비해 누수율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대형상수도 사업에서 상수도관을 콘크리트관을 쓰는 것도 이러한 이유. 그리고 이안에 플라스틱 관을 추가로 넣어서 부식에도 훨씬 강하다. 그리고 스테인레스관, 구리관보다 의외로 저렴하다.

현대의 상수도는 취수한 물을 여과, 약품처리 등을 통해 공급한다. 수돗물 특유의 약품냄새는 이 처리과정에서 들어가는 염소(원소) 냄새다. 처리가 끝난 수돗물은 그상태로 음용이 가능하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석회질이 많은 지역에서는 수돗물 말고는 음용수가 전혀 없는 곳도 많이 존재한다. 그런 지역은 보통 생활용수로만 수돗물을 쓰고 식수는 따로 먹는 데도 있다. 이 지역들 역시 정수기를 설치한 가정이 많다.

서울에서는 이를 두고 아리수라고 브랜드까지 붙여가며 홍보하고 있다. 그걸 아무도 안 마셔서 문제지. 하지만 세간에 널리 퍼진 수돗물에 대한 불신과는 달리 대한민국의 수돗물은 믿고 마셔도 좋을 만큼 대단히 안전하다. 또 한국의 수돗물 가격은 주요 선진국들 중에 제일 저렴하다. OECD/환경지표 문서를 참조.

한국에선 1906년에 처음으로 상수도관이 도입 되었다. #

이 현대적 상수도의 보급은 의료계에서도 의료기술보다 수명연장에 공이 크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인류의 건강에 혁명적인 공을 세웠다. 콜레라등의 치명적인 수인성 전염병의 위협에서부터 안전한 물의 공급으로 인해 수명연장에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이다.

1.3 테러 가능성

웹툰 70에 이산화망간과 염소를 섞어 염산가스를 만든 뒤 각 가정에 실시간으로 배달하는 방식의 테러가 나왔다. 물론 수돗물의 염산은 상당히 희석한 상태이기 때문에 직접 섞는 것이라면 실현가능성이 높지는 않지만, 일단 상수도 제압을 통해 염산을 푸는 데만 성공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방법이다. 여기에 이산화망간을 섞는다면 위에 나온 실시간 염소가스 배달이 이뤄지게 된다. 물 틀자마자 염소가스가 같이 나오면서 끔살.

물론 이렇게 하자면 일단 상수도 침투부터 해야겠지만. 사실 원전이나 외부 침투가 어렵지, 상수도나 관리자 혹은 관련 기술을 아는 자가 시설을 장악했을 경우 그걸로 테러를 저지르는 것은 일도 아니다.

실제 웹툰 70도 정수장으로 가는 과정 때문에 까이지, 테러 자체는 고증에 부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히려 일부에서는 그냥 독극물 푸는 대신 이산화망간을 이용하는 비효율적인 짓을 했다고 까는 판

일단 장악만 성공하면 테러 자체야 어려운 일은 아닌데 침투 과정의 난이도가 상당하다. 웹툰 70에 나온 것처럼 의경 한 명이 통제하고 그 뒤에 직원 한 명이 대충 근무하는 건 평시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과거와 같이 대규모 경비인원이 주둔하지는 않지만 대신 시설 외곽에 엄청난 양의 CCTV와 경보시스템이 구축되어 있고, 아무리 인력을 줄였다 해도 1개 조에 X명 수준의 인원은 투입한다.

그나마 왠지 부족해 보이는 느낌의 경비 체계도 어디까지나 평시의 이야기. 전시 또는 준 전시 상황에서는 아예 무장한 향토예비군이 방어한다. 대도시급의 주요 정수장이나 취수장은 국가보안시설로 지정이 되어 있기 때문. 원칙적으로 취수장/정수장 직원으로 구성된 직장예비군이 시설 내부를, 향토예비군이 외곽 경비를 하도록 되어 있으나 자동화로 인원이 크게 줄어들고 직원들의 연령도 높아진 현실에서 직장예비군만으로 시설 경비를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실제로는 향토예비군이 내외부 경비를 다 하게 된다. 취수장이나 정수장 주변 동대 소속인 향토예비군들은 민간인 신분임에도 향방작계 훈련때는 정수장 안을 들어가 볼 수 있다.[6] 국가와 지자체도 바보가 아닌 만큼 특작부대를 이용한 취수장/정수장에 대한 테러는 전시에 '너무나 당연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에 맞춘 방어 계획을 세워 놓고 있으니 현실에서 저렇게 정수장이 털려 시민들이 끔살당할 위험에 빠질 가능성은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1.4 하수도

사용한 물을 하수처리장으로 보내어 처리, 배출하는 시스템. 하수라해도 사용된 상수도만이 아닌 우수, 지하수같은 것도 전부 포함한다. 역시 도시의 위생 상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특히 화장실에서 발생하는 하수들이 문제가 되는데 이 시설이 잘 안 갖추어진 곳에서는 분뇨수거차가 대활약한다(...). 한 번 썼지만 쓸만한 상태의 물[7]을 저장하여 한번 더 재활용[8]하는 중수도 시스템이라는 것이 있어 환경보호에 이바지하고 있다.

하수처리장에서는 모아진 하수들을 방류하기 적당한 레벨로 돌리는 역할을 한다. 침전,미생물 분해 등의 방법이 쓰인다. 반드시 필요한 시설이지만 당연히 대표적인 님비시설물이다.(...)

게임에서는 틈만 나면 온갖 괴물들이 모여사는 꿈동산(...)으로 그려지며, 주인공이 사다리타고 내려와 똥물을 철벅이며 물이 찬 지하 터널을 돌아다니는 건 거의 클리셰급. 하수도를 주제로 한 괴담도 많은 편이다. 하수구의 악어가 그 예시. 내지는 웬 피자덕후 파충류들의 서식지라든지...
한국에는 이런 모습의 하수도는 드물고 거의 다 파이프 매립형이다. 굳이 찾는다면 복개된 상태의 청계천 정도일 것이다. 파리의 하수도가 매우 유명하여 관광상품화 되어 있다.

영화 다크맨 시리즈에서는 하수도에 있던 악당이 하수구 뚜껑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가, 머리가 지나가던 차에 깔려 죽는 장면이 시리즈 전체에 걸쳐 나온다.(...)

파리나 런던 등 유럽의 하수도의 경우,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넝마주이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수구로 떠내려온 옷 조각이나 동전 등을 주워서 먹고 사는 것. 물론 당시 사회에서도 가장 밑바닥 계층이라 할 수 있었다.[9] 또한, 이 당시에는 관련 체계의 미비로 하수들이 제대로 된 처리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하천에 방류되어서 끔찍한 환경 오염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았다.

하수 배출이 인간의 삶에서 위생과 관련해 필수적인 부분인지라, 의외로 역사가 깊다. 고고학적 발굴로 가장 초기에 확인할 수 있는 하수도는 인도 인더스 문명의 모헨조다로이며, 우리나라에서도 황룡사 발굴 조사 당시 하수도가 발견된 적이 있다. 심지어 부산에서는 현재 사용하는 하수도가 사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하수관 거였다는 게 밝혀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 탓에 2016년 10월 5일 태풍 차바 때 부산이 대파되어서 관거정비가 소홀하면 어떠한지 교훈을 얻었다.

한국인들의 경우 워낙 대도시, 아파트에 몰려 살다보니 하수도는 그냥 당연히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개발도상국은 말할 것도 없고 선진국 클럽이라는 OECD 국가들도 하수도의 혜택을 보지않는 인구의 비중이 상당히 높은 경우가 많다. OECD/환경지표 문서를 참조.

2 勿吉

만주의 역사
고대중세근세근현대
연(燕)고조선동호예맥숙신 / 퉁구스
진(秦)
전한흉노
후한선비고구려부여읍루
조위
서진
전연
전진물길
후연
북연두막루
북위(북조)거란실위말갈
동위
북제
북주
수(隋)
물길
勿吉
존속기간5세기 ~ 6세기
위치만주 동북부
수도불명
정치체제군주제
국가원수군장
언어불명
민족퉁구스
종교토착 종교
주요사건5세기 건국
475년 북위에 조공
494년 부여와 전쟁
6세기 고구려에 복속
성립 이전읍루
멸망 이후말갈

5세기 중엽에서 6세기 중엽까지 만주 동북부(?)에 살던 숙신계(혹은 퉁구스계) 민족 국가. 읍루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이며 이후 말갈로 이어진다. 물길의 중심지는 고구려의 북쪽, 낙양에서 5천 리 떨어진 곳, 남쪽에 '도태산(徒太山)'이 있고 '속말수(速末水)'가 흐르는 곳이다.

고구려의 전성기인 5세기에 고구려 동북방에서 성장한다. 475년, 고구려가 북진을 그만두고 백제를 공격하러 가버리자 아무런 간섭 없이 북위에 조공할 수 있었다. 물길의 첫 등장인 이 기록은 위서#s-2 물길전에 남아있다. 물길은 이후에도 100년동안 25차례 북위에 조공했는데, 이는 숙신의 2번, 읍루의 6번 조공보다 많은 편이다.

二月, 扶餘王及妻孥 以國來降
2월에, 부여의 왕이 처자식과 더불어 항복하러 나라(고구려)에 왔다. -삼국사기
그 후 약 20년만인 494년, 세력을 확장하던 물길은 마지막 남은 부여의 세력을 멸한다. 고구려 북부까지 세력을 넓힌 물길과 기타 말갈 세력들은 일부를 제외하고 고구려에 복속한다.
  1. 서울의 한강, 평양의 대동강등
  2. 아무리 로마라도 현대의 수도처럼 가정마다 수도관이 가지는 못하고, 도시 곳곳에 같은 것을 배치했다. 단 부유층은 제외
  3. 그런데 이를 반박하는 연구결과도 존재한다. 납 성분이 보통 물에 비해 최대 백 배까지 섞였다고 하는 연구결과
  4. 로마의 문명화 수준이 굉장히 높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생존이외의 것을 신경쓰기 시작한 국가는 현대에도 적은 편이다.
  5. 서로마 붕괴 이후 수도가 다시 등장하는 것은 현대에 와서나 이루어진 일이란 것을 생각해보자.
  6. 그렇다고 실제 작동하는 시설 내부까지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7. 세면대에서 손을 씻은 물 등
  8. 간단히 여과하여 변기 물 등으로 사용
  9. 단, 하수도로 흘러간 귀중품을 찾아주는 전문업자들은 예외였다. 이 일은 위험하고, 더럽고, 힘든 3박자를 모두 갖췄지만 돈은 많이 벌었다. 진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어서 그렇다(...) 이 시기의 하수구는 산더미 같은 오물과 괴물같이 큰 쥐 등으로 인해 진짜 던전 그 자체였기 때문에.. 지금도 외국에서는 오수처리장 등지에서 잠수복 입고 들어가서 직접 수리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름 전문직이다. 물론 앞의 직종처럼 3D를 골고루 갖췄다. 예전만큼은 위험하지 않지만.